〈 129화 〉 망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망한거다
* * *
"주군, 소피아님. 특이한 일이시네요."
데카라비아가 손목을 가볍게 흔들면서 말했다.
"효율적인 고문법을 배우고 싶다니요."
촤아악.
"끄어어억..."
거꾸로 매달린 파니아가 담겨 있던 수조에 물보라가 쳤다.
파니아를 고정시킨건 발톱 사이에 들어간 바늘들이었으며, 바닥에는 올리비아에게 의뢰한 감도증폭물약의 빈 병들이 나돌아다니고 있었다.
"음... 그냥 괴롭히고 싶어서?"
"인정합니다. 다만, 이 세상에 손쉬운 고문법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고문에도..."
"잠깐만요, 시녀장님..!"
데카라비아가 손을 놓자, 파니아는 수조로 추락했고, 온몸을 묶은 쇠사슬에 의해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번거로운 수고가 들어갑니다."
수조가 잠잠해지고, 올라오는 공기방울이 사라진 것을 보니 운명한 것 같다.
"죽은 거 아니야?"
"아닙니다, 벗어나고 싶어서 연기를 하는 것이지요."
발톱에 밖혀 있던 바늘을 꺼내자, 살점들이 몇 개 뜯어져 나오면서 수조가 다시 요동치고 있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아주 괘씸하게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바늘을 도로 집어넣었다.
저 작은 바늘들이 어떻게 파니아를 매달 수 있는지가 궁금했었는데, 바늘 기둥에 미세한 바늘들이 역방향으로 돋아 있어서 몸을 고정시켰던 것 같다.
"오... 물은 그냥 물?"
고개를 흔드는 데카라비아.
"수조 안은 불순물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눈도 강제로 고정시켜서 많이 따가울 것입니다."
촤아악.
"크어어... 죽는다.. 진짜로 죽는다..."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말했지만, 내가 데카라비아에게 파니아의 담당을 맡기면서 명한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죽이지는 말아라.
그것 하나뿐이었고, 우수한 데카라비아는 훌륭하게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파니아를 괴롭히고 있었다.
"오브제가 보기 좋네."
"칭찬 감사합니다, 소피아님."
내 칭찬에 데카라비아는 쑥스러움을 느끼면서 얼굴을 붉혔다.
"네 취향을 발전시켜가며 이룬 경지를 칭찬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떤 하이엘프가 거꾸로 매달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브금이 흘러나오는 오브제라니... 이런 훌륭한 예술품을 어찌 칭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에 늙은 마법사만 추가하면 되겠다."
"히익!"
처음에 지급해주었던 솔이 다 나간 칫솔을 들고서 청소를 하러 온 늙은 마법사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쯧... 도망이나치고 말이야.."
동료애가 없다, 동료애가.
'그러니까, 뒤통수나 치고다니지.'
<저기, 카르마?="" 소피아님은="" 이="" 광경을="" 보면서="" 심신에="" 안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죠?=""/>
<음.. 그런="" 것="" 같구나,="" 소피아의="" 정신="" 상태를="" 걱정해야="" 할지...="" 아니면,="" 특정인물에게만="" 저렇게="" 변하는="" 것에="" 안심해야="" 할지..=""/>
안심이다.
정신 상태를 걱정할 필요따윈 전혀 없다.
난 단순하게 저것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보고 싶을 뿐이다.
'물멍, 불멍.. 고문멍? 그런것 처럼 마음의 평안을 주는 행위야.'
아주 훌륭한 행위에 정신 건강을 걱정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저 상태로 있어도 살려고는 하네..."
혹시 바퀴벌레인가? 엘프는 바퀴벌레 같은 건가?
'한번 물어나 볼까?'
내 손짓에 데카라비아가 거꾸로 매달린 파니아를 내려놓았다.
촤르륵! 퍽!
"꾸엑!"
물론 고통스럽게.
브라보.
"파니아, 엘프는 바퀴벌레 같은 거야?"
"무슨 또 개ㅅ.. 아니, 무슨 말씀이신가요, 주인님."
...개소리라고 했기에 일단 한대 때렸다.
"꽥!"
"아니, 지겹게도 살려고하고 또, 살아남으려고 하니까."
보통은 이쯤 되면 그냥 죽여달라고 하는데, 파니아는 아직도 '살려 줘', '이러다 다 죽어'등의 말만한다.
'죽어도 혼자 죽는데.'
"슬슬 죽고 싶을 때 아니야? 말만해, 언제든지 죽여줄게! 히힛."
죽여달라면 더 죽일 생각은 없어진다.
그냥 해 본 소리였는데, 파니아는 울상으로 격렬하게 고개를 흔든다.
"노예로 살면 살려는 준다면서요! 구라쟁이! 사기 계약! 사기꾼 주인님을 처..."
그냥 해 본소리에 사기 계약이라고 시끄럽게군다.
'...그냥 죽일까?'
이런.. 생각이 또 표정에 들어났나보다.
급격하게 들어온 공포로 인해서 딸국질이 나는 것 같지만, 애써 참으면서 조용하게 만들었다.
"넌 정말로 왜 그렇게 살려고 하는 거야?"
그냥 문득 궁금해졌다.
초대 용사파티와는 비교되는 인성들에 괴롭히려고 온 것이었지만, 이수준으로 목숨을 구걸하면 궁금해 질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하면, 너는 꽤 오래 살지 않았나?"
"...오래 살면, 더 이상 살고 싶으면 안 되나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삶에 집착한다.
"이런 식으로 살아도?"
"예, 이런 식으로 살아도요."
왜지? 엘프와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달라서?
그래서 오랜 시간의 기준이 다른 건가?
"예전에... 어... 그러니까, 한.. 수백 년 전쯤?"
...기준이 다른 건 맞는 듯싶다.
"제가 하이엘프가 되기 전에 선대 하이엘프가 해준 이야기가 있어요."
왜 그렇게 살고 싶는지 물어보니까, 선대 하이엘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세계수를 닮아서 개처럼 사는 것이 아니었나? 선대 하이엘프?'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거면 때리고 본다.
"선대가 말했죠, 세계수의 명령에 충실했던 선선대는 에고웨폰이 되었다고, 자신은 명령에 따르는 척하면서 삶을 갈구한다고 말했죠."
...역시 엘프는 바퀴벌레인가? 아니면 하이엘프가 되는 기준이 바퀴벌레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가능한 걸까?
역시 쓸데없는 소리여서 주먹을 치켜들었다.
"자아암깐! 주인님! 아닙니다! 아직 말 안 끝났어요!"
손에 힘을 풀었다.
"하아... 진짜 숨질뻔했네.. 아무튼, 선대의 평판은 좋았어요. 대대로 하이엘프는 평판 하나는 훌륭했거든요."
평판만 훌륭하고 뒤에서 별짓을 다 했다는 소리구나.
"근대 죽었어요. 마수의 한 끼 식사가 돼서요. 삶을 갈구하면서 고고하게 살던 것치고는 꽤나 잔인한 최후였죠."
...전개가 너무 빠른 데?
"음... 제가 아직 인간으로 쳐도 어릴 때 였네요. 눈앞에서 씹히고, 뜯기고, 맛보고, 즐겨지는 걸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 죽고싶지 않다. 개처럼 살아도 살아야지..' 그래서 생존 앞에서 자존심도 뭣도 다버리고 사는 겁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저는 그때 운이 좋아서 하이엘프가 되는 덕에 엘프들의 희생으로 살았어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질질 쌌지만요."
저딴 이야기를 저런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야기하다니, 어떤의미로는 참 대단한 엘프다.
"아프더라도 살아는 있으니까, 언젠가는.. 끄아아악! 내 눈! 내 눈!!!"
그래서 찔렀다.
기분 나빴어...
뭘 어떻게 해서 어린아이가 '개처럼 살아도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할까.. 그냥 떡잎부터 노란 엘프였던 거겠지.
결국 쓸데없는 소리였다.
'죽도록 고통스러워도 살고는 있으니까, 다행이라는 소리아니야 결국에는...'
"데카라비아, 다시 시작해."
"알겠습니다. 파니아? 오늘 밤도 즐겁게 놀아보죠."
"포.. 폭력반대!! 즐거운 건 시녀장 혼자만이 잖아요!"
표정을 찾기 힘들던 데카라비아가 이번만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매우 야릇하면서 섬뜩한 미소로.
"당신까지 즐거우면 고문하는 맛이 안살잖아요? 하아... 후우... 진정한 가학성을 살리려면 상대에게 쾌락을 주어서는 안 되죠. 후후후.."
데카라비아는 수조에 감도증폭물약을 채워 넣기 시작했고,파니아는 나를 바라보면서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도망친 앨리스도 잡아올게."
"어머나, 감사합니다. 역시 제 주군이시군요."
다시 찌를 뻔한 것을 데카라비아에게 양보했다.
'망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망한 거란다.'
"후후, 채찍질 정도로는 쾌락을 느끼게 돼서는.. 좀 더 수고를 들여야 하잖아요."
"에잇..! 선택을 잘못했다가 이꼬라지가 나서는..! 아앗..! 죽이지 마세요! 죽이지.. 끄아악!"
오늘도 훌륭한 브금을 들으면서 앨리스를 잡으러 나섰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
"전하, 병사들을 모두 무사히 탈출시켰습니다."
"음... 그래, 수고했다. 돌아가서 다음 임무를 준비.. 아니, 잠시만 기다리거라."
마르스가 고개를 숙인 채로 대기 했다.
"이봐, 대신. 그건 협력할 마음이 든 건가?"
"예... 깨어난 뒤로 상황을 지켜본다고 한 뒤로, 협락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짓 했다.
"짐이 자네의 수족을 새롭게 선물하지."
"전하, 저는 그레고리가.."
"아닐세, 뭐, 수족이라고 해도 자네 말을 듣는다는 보장은 없네. 그리고 자네의 연인보다는 전투적인 측면에서 더 강할 거야."
마르스가 당황했다.
"전하, 그러니까.."
"하하하! 짐은 그런데에 편견이 없어. 크흠! 그렇다고 짐을 넘 볼 생각은 말아야 할걸세. 베어버릴 거야."
마르스가 두 눈을 가리고 '망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왕인 자신은 귀족들의 다양한 성생활에 대해서 알고 있다.
'자신들은 숨긴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마법국의 귀족들에게는 모두 자신의 감시의 눈이 뻗어 있다.
'저 둘은 잘 숨겨 왔더군.'
둘이 그런 분위기라는 것은 전에 흘리듯이 보고를 받은 적이 있어서 알고는 있었다.
'두 부친이라는 장벽이 사라지니, 아주 대놓고 즐기는군.'
기사단장의 '아들'과 영주의 '아들'의 신분과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이라니.
의외로 풋풋한 구석이 있었다.
'풋내라기보가는 뭔가 그냥 더러운 냄새가 나는 연인들이지만, 사기와 전력손실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막을 필요도 없을 거야.'
오히려 약점을 하나 틀어 쥔것이다.
마왕도 그 소식을 알고 있어서 양날의 검이 되어 버렸어도, 둘을 잡는 데에는 이만한 검이 없을 것이다.
"따라오게, 그레고리 자네도."
마르스의 옆에서 어깨를 들썩이던 그레고리가 대답했다.
"크흡! 풋! 이런.. 죄송합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전하."
"...?"
마르스의 표정이 더욱 썩어들어갔다.
"...명, 받들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