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독점기간 리리스
* * *
현재 교전지역, 점령지역, 점령지의 포로들의 처우.
점령지의 식사 배급.
'음... 신혁이가 웬일로 옳은 소리를 했네...'
군부대의 식사질은 전투력과 연결된다.
'잘 들어 소피아, 짬밥은 매우 중요해. 군생활에 목숨 걸고 전투를 하는데 밥이 맛없다? 나였으면 반란을 일으켰어. 소시지 케찹 볶음만 있어도 달려가서 먹으니까, 부대 밥은 맛있는 거로 배급하도록!'
조금 건방진 말투이기에 한 대 쥐어박았었다.
나도 식사의 질은 동의하는바 였고, 마왕군 병사들이 배는 굶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 병사들의 만족도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음! 좋아! 명태 순살 조림은 거르라고 했지?"
어차피 명태가 나올리 없다.
아니, 있으면 나부터 먹고 싶다.
"신혁이가 아직 이세계 물을 덜 먹었네."
지구음식을 가리다니, 이곳에 온 지 일 년차 정도면 한식이 먹고 싶어지기는 했다.
물론, 그 당시도 싫어하는 음식은 생각도 안났지만, 지금은 그냥 지구 음식이라면 팝콘 하나에도 감동 받으면서 먹는 수준까지 왔다.
'내가 군대를 가기 전에 이곳에 와서 모르는데, 그 명순조가 그렇게 맛없나?'
유명한 밥경찰에 밥형사반장도 있다고 하니까, 맛없다는 음식은 되도록이면 거르자.
"끝났다! 급한일이 사라졌다!"
쉴 수 있다.
이제는 조금 정도는 쉴 수 있다!
쾅.
휴식이라는 소리가 나오기가 무섭게 리리스가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표정이 굳은 걸 보니까, 굉장히 심각한 일이 생긴 것 같다.
"리리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내가 직접 나서야 해?"
"예, 언니가 직접 나서야 해요."
휴식은 물 건너 갔군.
"가자."
"예, 언니. 언니의 일 때문에 못한 사흘 독점을 진행하죠."
...이상한 거 말하는 것치고는 표정은 상당히 진지하네...
"진짜 휴식은 물 건너 갔네..."
내 허리를 안고서 무서운 곳으로 끌고 가는 리리스의 표정은 정말로 진지했다.
☆☆☆
집에 왔다.
일을 하는 마왕성이 아닌 우리의 집으로.
'...나 여기 무서운데.'
집의 의미가 뭔가?
편안한 곳, 휴식처, 개인적인 공간.
여려가지의 의미가 있지만, 우리 집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거다.
"리리스? 나 오늘 얼마나 괴롭혀 지는 거야?"
장소를 안 가리는 사람들이 집까지 데려올 정도면, 오늘은 얼마나 심하게 괴롭히려고...
"예? 아니에요.후후후, 사흘이나 있는걸요. '오늘은' 아니에요."
"어? 오늘은 안 괴롭힌다고? 시간이 남는데 안 괴롭힌다고?!"
혹시 어디가 아픈 건지 걱정이 돼서 그녀에게 다가가 이마에 손을 대어 봤다.
"열은 안나는 거 같은데... 리리스? 혹시 요즘 어딘가 안 좋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언니..."
리리스 자신도 찔리는 것이 있어서 화를 내지 못하고 부들거리면서 떨고만 있었다.
"진짜로?"
"후우... 언니, 걱정해주신 건 정말로 감사한데요. 정말로 둘이서만 있고 싶은 거예요..."
"집에 왔는데?"
리리스의 동공이 떨리고 있다.
역시 저렇게 말하면서 오늘도 괴롭힐 생각인가 보다.
'그럼 그렇지, 이제야 조금 안심되네.'
"언니, 죄송해요. 저희가 요즘 너무 심했죠? 오늘은 그냥 같이 있고 싶은 거였는데, 뭐만 하면 저희가 괴롭힌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리리스가 내 머리를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안고서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얼마나 심했으면 집도 무서워 하시게 된 걸까요."
...여기서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했으니까?
"언니? 오늘은 푹 쉬세요. 제가 보살펴 드릴게요. 후후후, 이러니까 아직 둘만 있을 때가 떠오르네요."
"으... 응, 진짜 쉬어도 되지?"
내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그녀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 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니. 오늘은 쉬고, 하는 건 하루 만. 마지막 날도 쉬어요."
허락해준다면 마음껏 쉬어야지.
☆☆☆
사람이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게으르게 변한 다는 건 정말인 것 같다.
"언니! 언니가 좋아하시는 과자예요!"
"응, 아아~"
바사삭.
오늘은 소금기를 조금 적게 튀긴 것 같다.
"담백하네, 역시 리리스는 내가 먹고 싶은 건 다 만들어 준다니까."
내 혀와 위를 쥐고 있는 사람은 리리스와 시연이다.
간단한 설명만 듣고 먹을 것을 만들어 오는 리리스와 지구출신으로 지구요리에 능통한 시연.
이 둘이 요리를 파업한다면, 난 울 자신이 있다.
이미 그녀들의 요리가 없으면 살 수가 없는 몸이 되어 버린 거다.
"언니가 먹고 싶어 하니까요, 흐음~ 전 언니가 먹고 좋아하시는 모습만 봐도 만족스러워요, 후후."
이런 사람들이 없는 신혁은 지구 음식따윈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아니, 꿈만 꾸다가 이 세계의 음식에 적응해 버리고, 음식의 맛따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서 음식의 형상만이 남을 것이다.
'리리스도 시연이랑 요리방법을 상의 하더니, 더 뛰어나 졌지.'
덕분에 내 혀는 기뻐서 날뛰고 있었다.
의자에서 있는 힘껏 늘어지고, 왕비가 먹여주는 간식을 먹는 왕.
'누가 보면 탐욕스러운 왕으로 볼 수도 있겠는데?'
뭔 상관인가, 집은 휴식공간에 개인적인 공간이다.
내가 내 아내랑 늘어지면서 집 데이트를 즐기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한단 말인가.
<본녀가 뭐라고="" 하겠..="" 히익!="" 미안하다,="" 리리스!="" 본녀="" 아무것도="" 안="" 보여!=""/>
둘만의 공간에 이상한 소녀, 카르마가 실체화를 해서 끼어들려고 했지만, 리리스의 분노 어린 눈빛에 겁을 먹고 숨어 들었다.
<쯧쯧, 카르마.="" 이럴="" 때는=""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죠,="" 눈치="" 없게="" 그러면="" 안="" 돼요.=""/>
하다하다 로자리아에게도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들은 카르마는 충격을 먹고 잠잠해졌다.
☆☆☆
"가끔 이런 것도 좋네, 하하.. 다른 사람은 나중인가? 흐으응.."
"네, 언니. 아무래도 휴식 시간이 많이 남는 건 아니니까요. 여기도 많이 뭉치셨나요?"
"응응, 거기도... 하앙.."
리리스가 만들어 준 간식을 다 먹고 나니, 그녀가 뭉친 곳을 풀어 주겠다면서 나에게 업드리라고 했다.
그리고 시작된 마사지.
'아.. 천국 간다...'
정말로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편안했다.
"리리스, 혹시 점령지 같은 곳에서 연락 온 건 없어?"
이럴 때면 꼭 무슨 일이 터진다.
"언니, 언니도 일 중독이에요. 교전지역은 아무 문제없는 전력이 주둔하고 있고, 점령지는 안정화, 그리고 포로는... 언니가 말씀하신 대로 그 사람들을 조사하고 처우를 결정하고 있어요."
교전 중이라고 해도 큰 전투가 없는 곳에 가치가 크지 않는 곳이었다.
점령지도 안정화를 했다.
포로의 조사는 힘들었지만, 데카라비아가 걱정 말라면서 열심히 조사해주고 있었다.
"그게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왕국 쪽이 너무 조용해, 이반도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고. 흐아앗.. 응, 거기 조금만 더 눌러줘."
"언니가 그래서 쉬지 않고 일하신 거잖아요, 아래의 군인들에게는 따로 휴식 시간도 챙겨 주시면서, 정작 본인이 안 쉬면 어떡해요?"
모두를 책임지는 내가 너무 자주 쉬면 아랫 사람들이 고통받는다.
"언니는 쉬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시면서, 강제로 쉬게 만드는 것이 아니면 쉬지를 않으시니까, 저희가 이렇게 쉴 수 있는 주는 거잖아요. 반성하세요, 흥!"
고개를 돌리면서 화가 난 것처럼 새침하게 말했지만, 내가 볼 때는 그냥 귀여웠다.
"하하, 알았어. 우리 아내님이 주신 휴식 시간에는 휴식만을 할게요."
"네, 용서해드리죠. 후후후."
꾸우욱.
"으읏! 아.. 어깨가 너무 결린다. 서류 업무도 있는데, 역시 가슴이 문제란 말이야. 가슴 무게 때문에 더 그런 거 같아."
리리스가 눌러 주는 어깨가 기분 좋게 풀리는 것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아! 알 것 같아요. 언니! 가끔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정말 편하다니까요."
내 투정에 리리스도 동조해서 불평한다.
전투에도 불편하다.
기억을 찾았을 때도 무게 중심이 가슴으로 쏠리는 탓에 예전과 괴리감을 느끼면서 익숙해지는 데에도 시간을 소모 시켰다.
"브래지어를 안 했다가는 흔들려서 방해고, 그러다가 끊기면 평생을 축 늘어진다며? 난 요즘 미네르바가 부럽.."
"언니."
다고 말하려는데, 리리스가 진지한 말투로 끊었다.
"제가 예전에 미네르바를 보고 부럽다고 한적이 있어요."
그녀의 진지한 말투에 마른침을 삼키면서 물었다.
"어.. 그래? 무슨 일 생겼어?"
잠시동안 침묵하던 리리스가 입을 열었고.
"가슴을 뜯길 뻔했죠, '부러우면 내놔!'라고 소리치면서요."
"..."
절대로 미네르바 앞에서는 이런 소리는 하지 말아야지...
'잡아 뜯길라...'
잘못 쥐면 아픈데, 고통을 목적으로 쥐어진다면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다.
어쩌면 미네르바가 내 가슴에 집착하는 이유도 자신의 가슴에서 나온 걸지도 모른다.
"근대, 나 신기한 것이 하나가 있어."
"예? 어떤 건가요, 언니?"
"메티스씨의 유전자는 어디로 간 걸까?"
미네르바가 좀 더 성숙하고 요염하고 부드러워 보이도록 자랐다면 메티스랑 똑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닮지 않은 모녀였다.
그중에서 가슴이 절망적으로 안 닮았다.
유전자의 신비와도 같은 것은 없고, 메티스의 가슴 대신 성욕을 진하게 물려 받은 느낌이었다.
'여기에 없으니까 망정이지, 있었으면 함부로 이런 소리는 못하..'
쫑긋쫑긋.
'...어라?'
왜 눈앞에 고양이귀가 쫑긋 거리는 걸까?
오늘은 리리스의 독점날 아니었나?
스륵.
내가 업드려 있는 소파의 손잡이 부분에서 미네르바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밝게 웃고 있는 미네르바가.
눈은 웃고 있지 않은 미네르바가.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한층 더 밝은 미소를 지은 채로 입을 열었다.
"소피아, 잘 쉬고 있었나 보네. 히히히."
"히끅! 미.. 미네르바, 혹시.. 히끅! 들었어?"
"응!"
리리스가 조용히 가슴을 가리면서 미네르바에게 말했다.
"어.. 어디부터.."
"음... '으읏! 아.. 어깨가 너무 결린다. 서류 업무도 있는데, 역시 가슴이 문제란 말이야. 가슴 무게 때문에 더 그런 거 같아.' 부터."
들어서는 안 될 부분부터 들었다는 소리군.
'망했네.'
"미네르바! 잠깐 여기에 오는 건 계약 위반..!"
리리스가 당황하면서 소리쳤지만, 미네르바는 그걸 끊고 자기가 할 말을 했다.
"응, 설마 집에서 데이트 할 줄은 몰랐지, 여기에 전부 다 있고 딱히 우리는 두 사람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어."
확실히 내가 눈치 못챌 정도로 기척을 줄이고 있었으니, 정말로 방해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냥 넘기기 힘든 소리가 들리잖아."
미네르바의 시선은 나와 리리스의 가슴을 번갈아 갔고, 마지막은 내 가슴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리리스, 잠깐 소피아를 빌려주면 리리스는 용서해 줄게."
"응! 알았어!"
...바로 배신 당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분노한 미네르바에게 닫지는 못한 것 같다.
"ㄲ.. 꺄아아아아악!"
매우 여성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가슴이 쥐어뜯겨 가는 고통을 느껴버린 나는 울면서 다시는 그런 소리를 안 하겠다고 다짐한 후에야 풀려 날 수 있었다.
...아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