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두 번째이자 첫 번째
* * *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기 때문에 고민이 됐다.
지구, 그러니까 현대 사회에서 조차,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 차별과 폭력이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고, 다수에 속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사회'.
'제국이 있었을 때는 화합을 했다지만.'
마왕출현 이전에는 제국이라는 강대한 국가가 화합을 주장하니까 가능했던 것이고, 마왕출현 이후에는 제국이 무너졌어도 마왕이라는 '공통된 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두 번째 마왕이 서로 협력하지 않던 종족들을 한곳에 뭉쳐 놓을 수 있었던 것도, '인족'이라는 공통된 적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이상속에서 사는 꽃이 가득한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싸우지 말라면 안 싸울 거야!' 라는 생각은 어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고민거리도 안 됐지.'
"하아... 왜 그딴 소리를 해가지고는..."
툭툭.
리리스가 어깨를 건드리면서 말했다.
"언니, 고민거리가 있을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죠?"
"...상담."
그리고 상냥하게 미소 짓는다.
"네, 언니가 고민하시는 걸 상담해 보세요!"
☆☆☆
나는 부관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고, 그거 때문에 생긴 고민거리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소피아는 언젠가 인족이 똑같은 짓을 할까 봐서 고민이라는 거지?"
"응, 인족 말고도 다른 종족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니, 솔직히 사람을 무슨 동물취급하고, 사냥하고, 인신 공양같은 건 너무하잖아."
'노예 둘을 가지고 있는 내가 말하기에는 조금 뭐 하지만...'
문화적인 차이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나갔다.
신분제도가 있는 세상에서 계급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나도 한 나라의 왕이란 계급으로 신분제도가 있는 세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부분이 바뀌려면 한세대의 노력이 아닌 수 세대가 합심하여 노력을 해야한다.
명백하게 내 손으로는 무리가 있는 이야기였고, 그 일에 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계기를 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내 나라의 사람들은 법을 만들어서, 지켜야 할 선을 넘으면 강한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는 있어."
내가 서류지옥에 빠져 있는 이유였다.
그리고 나랑 같이 법을 제정하는 등의 서류작업을 하고 있는 리리스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종족에 따라서 단순한 수감생활은 쉬울 수도 있고, 장수종의 경우는 백 년 단위로 처벌을 가해도 처벌이 강하다는 느낌을 못 받을 수도 있잖아..."
막말로 만년을 사는 용족에게 백 년 동안 감옥에 있으라고 전해도 별 느낌도 못 받을 거같다.
도를 넘는 행위에대한 법적제재는 절대로 가벼워서는 안 되고, 그 어떤 종족에게도 같은 수준의 처벌이 돼야하기에 힘이 들기 시작한 거다.
그나마 마왕국은 강자의 위주로 돌아가기에 편한감은 있지만, 현재 있는 강자가 인격자여서 그런 거지 후대에 안하무인의 강자가 나온다면 큰일이다.
누구도 막지 못하는 망나니의 잔인한 나라가 될 거니까.
'그러다 누군가에게 목이 날아가고 나라가 망하는 거지, 기껏 세운 나라가 망해 버리도록 두고 싶지는 않아.'
"최소한 잘못을 잘못이라 인식하고, 악을 악이라 인식하게 만들어야지."
"어? 오빠, 교육시설이라도 세우게? 학교 같은 거."
'후후, 시연이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예전의 학창 시절이 떠올라서 어두워져 버린 눈동자를 내리까고 대답해 주었다.
"시연아, 학교야말로 따돌림과 차별, 편먹고 괴롭히기의 온상이야, 학생들은 하지 말라면 더해."
그들의 '장난'은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고통 속에 시달리게 만드는 '아픔'이 될 수 있다.
'나만 해도 친구가 없...'
"흑!"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 모습을 본 시연이 당황하면서 위로하지만, 내가 친구없던 원인중 하나가 그녀라서 썩 도움은 되지 못했다.
☆☆☆
"언니가 정하는 법을 어기고 받는 처벌은 종족별로 수준을 나누어 버리면, 그거야말로 종족불화의 원인이 되고, 그렇다고 모든 종족이 같은 처벌을 받는 다면 장수종이 너무 혜택을 봐버려서 문제야."
불우했던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다리를 끌어안고 우울해 하고 있을 무렵 리리스가 대신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솔직히 친구가 없고, 이 세계에 와서 생긴 친구가 그것들이라...
"어쩐지... 아무리 건국초기라지만, 소피아의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어."
미네르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해를 했다.
생각해 보니까, 미네르바도 리우스의 딸로서 지도자 교육을 받아던 거로 아는데...
"크흥! 미네르바?"
코맹맹이 소리로 그녀를 불렀고, 그녀는 왜 불렀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네르바도 할 수 있는 거 많이 있지 않아?"
서류 작업이라던지, 서류 작업이라던지, 서류 작업이라던지...
시선을 피하는 거 보니까 맞는 거 같다.
일할 사람 하나 확보.
"이게 쉽게 될 일이 아니거든, 아까 시연이가 말한 학교도 교육의 질은 높일 수 있어. 인족의 경우로 보면 교육이 지배계층의 권리나 마찬가지잖아?"
있는 사람이 영원하게 있을 수 있는 이유.
당연한 것을 알지 못해서 배운자들에게 속고, 그 배운자들이 '이게 맞는 거다.'라고 말하면 의심 없이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교육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거다.
'리리스도 이 모습으로 처음 만났을 때도 나보고 글을 쓸 수 있냐고 물어봤지.'
문맹률이 높기에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용병보다는 상인이 되려고 한다.
글도 쓸 수 있는데, 누가 몸쓰는 위험한 일을 하려고 할까.
조금 엇나가고 있지만...
"교육의 질을 높히면 사람들은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잘못된 것도 알 수 있고."
지구에서도 법을 어긴 사람 중에 그게 법을 어기는 줄 모르고 어긴 사람도 꽤 있었다.
'그게 위법이라고 배우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변호사가 있는 거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학교, 그러니까 교육시설의 단점이 몇 가지 있어, 하루벌고 하루를 먹고살는 사람에게는 교육이란 것은 꿈도 못꾸는 거."
집에 있는 아이의 손이라도 빌려서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마왕국은 선대가 해 놓은 것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발전이 있었지만, 인족들의 나라는 아니었다.
귀족이 평민을 지배하는 데에 있어서, 무지는 쉬운 방법이니까.
'마왕국도 완전하지는 않지.'
어디까지나 발전은 있었다 수준.
"그리고 종족을 가리지 않고 받아도 학생들끼리 뭉쳐 버리면 답이 없어, 학교야말로 하나의 작은 '사회'니까. 자신들만의 파벌을 만들고 그 사이에서의 배척이 생기면 해결은 불가능해."
이건 현대사회에서도 해결 못한 것이다.
학생들은 어른들이 모르는 따돌림을 자연스럽게 이루고, 그들만의 무리를 만든다.
'그 무리의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 법을 어기는 것보다 더 두려워하니까.'
무리에게 배척당하는 건, 어린 학생들에게는 최악의 형벌이다.
"물론 이 부분은 확신은 못해, 꼭 종족별로 무리를 지으라는 보장은 못하니까."
수인족과 용족의 친구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고, 이번에 마왕국에 들어온 인어족 친구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교육시설은 당장에 건드리기 힘든 문제였다.
"남편, 한 가지를 빼먹었어."
닉스가 내 소매를 잡고서 말했다.
"가장 중요한 인족은 어떻게 할 거야?"
"..."
애써 빼먹고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마왕국'에 한정된 이야기 였다.
내가 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두 대국을 내 손에 쥔다고 해도 다른 소국이 연합을 하고 나에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일이다.
싸우지 않는 평화 노선을 취해도 타국에게 내 나라의 법을 강제하는 것은 월권이었다.
명목상으로는 따를 수 있어도, 그러면 뒤에서는 칼을 가는 법이다.
<그건 쉬운="" 방법이="" 있다.=""/>
☆☆☆
로자리아와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카르마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본.녀.등.장!/>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마왕국에 한정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이야, 타국에 명령해도 당장은 나를 두려워해서 따르겠지만, 나중은 모르지."
그래서 무시했다.
<무시하지 말거라!=""/>
"검순아, 장난은 나중에 하자? 지금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니까."
내 말에 카르마가 화를 내면서 대답했다.
<장난이라니! 본녀는="" 그대의="" 고민에="" 정답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어디 한번 말해 보라는 듯이 손짓했다.
<이익! 후우...="" 똑똑한="" 본녀가="" 참아야지,="" 바보="" 같은="" 소피아는="" 모르니까...=""/>
'? 나도 갈 때까지 간 건가?, 하필이면 검순이한테 그런 소리를 듣고.'
<일단 붙잡은="" 인족의="" 처형은="" 멈추거라.=""/>
"싫어."
내가 멈추어도 마왕군이 안 좋아할 거다.
<풀어 주라는="" 말이="" 아니다.="" 평생을="" 노예로="" 노역을="" 시키든="" 가두어="" 놓든,="" 살려만="" 놓으란="" 이야기다.=""/>
"..."
내가 말없이 바라보자, 카르마는 더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내의="" '나라'에서만="" 할="" 수="" 있다는="" 일을="" 하거라.=""/>
"하아... 검순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대가="" 멍청하다는="" 거다.="" 부관이="" 죽기전에="" 한="" 말은="" 저주가="" 아니라="" 지금="" 하는="" 고민의="" 정답이었느니라.=""/>
'정답?'
설마 나한테...
"인족을 전멸시키라고? 아니, 붙잡은 인족을 노예로 만들라고 했으니 후자였겠네."
아무리 카르마가 한 말이라지만, 조금은 화가 난다.
아니면, 업보수치가 높아져서 마검화가 진행되고 있다든지.
최전선의 인족이나, 원인을 알고 있는 인족이라면 모를까, 무지한 자에게 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다.
<...이해력이 딸리면="" 대학을="" 못="" 간다="" 했느냐?="" 그대는="" 어떻게="" 합격을="" 한="" 것이냐?=""/>
카르마가 고개를 흔들면서 나를 '어떻게 이런 멍청이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바라보았다.
...정말로 카르마에게는 당하기 싫은 눈빛이었다.
카르마는 손가락을 피고, 하나씩 접어 가면서 말했다.
<죄를 지은="" 인족만="" 가두고,="" 그="" 정도가="" 심한자는="" 전부="" 노역을="" 주거라.=""/>
하나.
<그대의 나라에서="" 정해진="" 법으로="" 그대가="" 가르치는="" 교육으로="" 가능한="" 일이면="" 그렇게="" 하거라.=""/>
둘.
<인족의 최전선을="" 뒤로="" 밀어도="" 최전선이="" 있으면,="" 아예="" 없애="" 버리는="" 것이다.=""/>
셋.
<소피아, 대륙을="" 정복하거라.="" 인족="" 전원을="" 노예로="" 만들지="" 말고="" 그대의="" 국민으로="" 만들어라.=""/>
넷.
<황제가 되는="" 것이다.="" 소피아여,="" 설마="" 나라의="" 개념이="" 왕국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이미="" 멸망했지만,="" 과거에는="" 제국도="" 있었느니라.=""/>
...어?
아니, 하지만...
<음... 그대는="" 전쟁으로="" 정복한="" 사람이="" 그대를="" 따르지="" 않을="" 것을="" 고민하는="" 것이구나,="" 그래서="" 필요한="" 것이="" 처형을="" 멈추는="" 거다.="" 전쟁에서="" 사망해도="" 원망="" 받는="" 지배한="" 이후에="" 처형까지="" 한다면="" 그대가="" 아무리="" 선정을="" 펼쳐도="" 것이다.=""/>
네 개의 손가락을 모두 접고 하나 남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켰다.
<그대의 일="" 대="" 천하가="" 아닌,="" 천="" 년="" 제국을="" 만들려고="" 한다면="" 지배하게="" 된="" 국민에게="" 믿음을="" 주거라,="" 처형에="" 손을="" 댄다면="" 그대는="" 이반과="" 같은="" 폭군으로="" 인식될="" 것이고,="" 한="" 번="" 밖혀="" 버린="" 인식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 어차피="" 저="" 황제는="" 언젠가="" 처형을="" 할="" 거야.'="" 생각을="" 하게="" 만든다.=""/>
"..."
<소피아여, 그대의="" 제국을="" 만들거라.="" 제국민에게="" 그대를="" 믿게="" 하거라.="" 그리고="" 그대가="" 바라는="" 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주거라.=""/>
카르마가...
<대륙의 두="" 번째="" 제국이자,="" 대륙을="" 첫="" 번째로="" 통일한="" 마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대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
카르마가 가장 좋은 선택지를 주었다.
<물론 그대의="" 세대에서는="" 힘들=""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어쩌겠느냐,="" 약인="" 것을="" 제국민에게="" 뿌리를="" 박을="" 있도록="" 노력을...=""/>
<큰일이에요, 소피아님!="" 카르마가="" 아픈가="" 봐요!="" 왠="" 일로="" 옳은="" 소리를..!=""/>
<이익! 본녀는="" 맞는="" 말="" 하면="" 안="" 되느냐!="" 막말로="" 소피아가="" 마황이="" 되면="" 해결될="" 일="" 아니었느냐!=""/>
"..하하, 알았어. 일단 리노 쪽에도 말은 해 볼게, 그들도 인족에게는 원한은 있으니까."
두 번째이자 첫 번째 제국.
대륙에서 두 번째로 탄생할 제국.
대륙을 첫 번째로 평정한 제국.
마황이 되어, 마왕국을 마황국으로 만들 마왕.
<어떠냐, 소피아.="" 답이="" 되었느냐?=""/>
"그래, 고마워."
마황 소피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면 포로의 처우는 어떻게 할지를 정할까? 리리스, 미안한데, 리노 좀... 아니, 이참에 다른 사람들도 부르자. 어차피 리노는 지금 맞고 있어서 바로는 못 올 거 같아."
"네, 언니. 리우스님이랑 아버지, 음... 변경백 지위를 가진 인어여왕 같은 분들도 부를 까요?"
"응, 부탁할게."
마왕국이자, 장차 마황국이 될 내 나라의 첫 번째 국가회의가 열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