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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한 용사는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된다-119화 (119/156)

〈 119화 〉 고민

* * *

언니가 전장에 나선지 사흘째가 되는 날에 한 장의 보고서가 날아왔다.

'요새 하나를 함락 했어요. 우선적으로 점령했기에 다른 지역은 아직이에요.'

언니라면 문제없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도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고, 시연에게도 되도록이면 빨리 돌아오라는 말도 전해 달라 했다.

걱정은 기우였고, 부탁대로 빠르게 요새를 함락했다는 소식이 왔다.

이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함락시킨 것인지는 모르지만, 또 정석을 벗어난 방식으로 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후처리 문제로 며칠만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안 오신단다.

'정말, 정말, 정말로 마왕성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고 싶지만 붙잡아둔 인족의 문제와 요새 내부의 정리 때문이에요.'

요즘 언니한테 일이 많은 느낌이 있기는 했다.

물론 급하게 도망치기는 했디만 전처럼 가출 한 것도 아니고, 언니가 보고서에 작성한 것처럼 점령 후에 전후처리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부디 용서해주세요.'

뭐라고 할 생각은 없고, 오히려 다치지는 않았는지 물어보고 싶을 뿐이다.

누가 보면 자신이 맨날 언니를 혼내는 줄 알 수도 있다.

혼내는 건 어디까지나 침대에서만 혼내고 있었다.

넷이서 같이 혼내기는 하지만...

'벌'이라고 겁은 주었어도 언니가 꼭 해야 하는 일은 제외하고는 모두 처리했으니까, 침대에서의 '벌'만 줄 생각이었다.

솔직히 언니가 보고 싶기도 했고.

'그런데, 셋 다 여기에 올 거지? 너무 바쁜 것만 아니면 오는 것도 상관없는데... 준비는 해 놓을 게.'

"어라?"

다시 한번 글을 읽어 보았다.

오는 것도 상관없다.

준비는 해 놓는다.

"!!"

어떤 '준비'일까.

언니니까 벌 받을 준비는 아니겠지만, 분명 아니지만...

괜히 이상한 기대가 된다.

그리고 언니도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고 싶다는 걸 돌려서 말했을 거다.

우리 언니가 보고 싶다는 데, 자신들이 어떻게 안 갈 수가 있는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순식간에 해치워서 안 바쁜 상태로 만들 것이다.

장담할 수 있다.

"미네르바! 닉스!"

급하지 않은 일을 제쳐두었다.

아니, 그런 걸 판단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챙겨 갈 수 있는 일은 전부 챙겼다.

"언니가 보고 싶다고 편지했어! 찾아가자!"

통신구로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굳이 보고서로 올린 거면 은근히 부끄러워서 그런 거다.

'언니.. 언니..!'

언니의 바람을 들어 주기 위해서 지금 찾아갈 게요.

☆☆☆

함락한 요새 내부는 분주했다.

인족끼리의 전투로 난장판이 된 곳들을 정리하고, 당장에 사용 가능한 곳들부터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배정하는 작업을 하느라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배정된 곳은 휴식 공간이고, 다들 교대로 쉬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크헉! 억! 잠깐..! 살려..!"

"대머리! 내 미안함 돌려내라! 내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멍청이로 만든줄 알았다고!"

유독 한 곳은 굉장히 소란스럽고, 무언가 맞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지만, 이 요새에 있는 모두가 거기만은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있네.'

어쩌면 신경이라도 썻다가 자신도 피해를 볼 거 같아서 무시하는 걸 수도 있다.

"히히히... 오빠, 다른 세 사람이 그렇게 보고 싶었어? 바로 편지쓰고 말이야."

"?! 아니, 편지가 아니라 보고서라니까!"

시연의 오해에 고개를 들어서 반박했지만, 그녀는 내 머리를 지그시 누르면서 자신의 허벅지에 눕혀놓고 헤실헤실 웃고만 있는다.

보고서 맞는데.

장문의 편지느낌이 있어도 보고서다.

'편지처럼 쓴건 맞지만.'

특히 마지막은 사욕을 담고서 썻다.

"크흠! 시연아 이제 쉴 사람은 쉬고 있어서, 대놓고 쉬어도 눈치는 안 보이는 데, 무릎베개는 안 보이는 곳에서 하면 안 될까?"

마왕군도 첫 함락에 휴식을 하고 있으니, 우리도 쉬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당당하게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있는 건 뭐랄까, 음... 좀 부끄럽다.

"응? 싫어, 난 이게 좋아."

"응..."

내 머리를 정리하고 있는 시연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다.

이 요새를 관리할 사람과 주둔군을 뽑기 전에는 지휘관실은 공실로 두고, 현재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내가 임시로 쓰고 있다.

그래, 지휘관실이라는 훌륭하게 프라이버시가 보장 되는 공간이 있는데도 여기서 이러고 있다.

라나에게 맞는 리노 뿐만 아니라 이쪽에도 시선을 두지 않고 있었다.

...이 두 곳만은 절대로 시선을 두고 싶지 않아 보였다.

"앗! 역시 시연이 소피아를 독점하고 있었잖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리리스, 미네르바, 닉스 세 명이 도착해 있었다.

"빠르네..."

편ㅈ... 보고서를 보낸지 얼마 안 지난 거 같은데, 벌써 도착을 했다.

보자마자 출발한 듯싶다.

"에잇! 나는 군의관으로 따라온 거니까!"

"그래도 언니 독점은 아니지!"

"맞아, 남편 독점은 위반사항이야."

위반사항도 있었어?

"저기, 다른 규칙도 있어?"

내가 모르는 규칙이요.

"언니는 쉿!"

"..."

넷이 티격대라고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가볍게 붙잡혀서 전리품이 되어 버렸다.

"잠깐, 분명 사흘간 오빠를 독점한 것은 인정하겠어. 그래도 밤일은 안 했다고. 솔직히 오빠가 점령하느라 잠도 거의 안잤단말이야."

시연이 독점의 정도를 들이밀면서 반박했다.

확실히 전투 중에 붙어서 연애하는 미친짓은 나도 안 한다.

잠깐동안 휴식할 때, 시연이 내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워 있던 것과 반대의 상황이 된 지금이 다랄까... 왜 바람피다 걸린 남편 같은 생각을 하는 거지?

딱히 바람도 아닌데.

"킁킁."

"히얏!"

목 뒤에서 닉스가 냄새를 확인했다.

'깜짝이야... 갑자기 들어와서 놀랐네.'

"확실히 남편한테서 시연 냄새는 옅어, 붙어 있던 시간은 길지 않은 거 같아."

이쯤 되면 닉스는 용이 아니라 개가 아닐까?

어떻게 하면 냄새로 대략적인 시간까지 유추할 수 있는 거지?

그건 그렇고 닉스의 모습이 조금 바뀌었다.

구체적으로 인족의 모습을 취하던 것과 다르게, 날개와 용의 꼬리를 달고 있었다.

"닉스? 그 모습은 왜.."

"이거? 신혁이 '아니, 왜 용소녀의 특징이 옅어지는 사람의 모습을 하는 거야? 내가 볼 때는 날개와 용의 꼬리, 그리고 뿔이 용소녀의 큰 특징이라고 생각해.' 라고 남편이 좋아할 거라고 해서, ...싫어?"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싫지는 않다고 답해 주었다.

날개나 꼬리가 생긴다고 닉스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신혁이 여자라면 안 가릴 것처럼 하면서도 이상한 부분에서는 단호하네, 겉모습이 중요한 게 아닌데.'

전에 라나를 처음 봤을 때도 '팔척님?! 아니, 운동한 팔척님?!'라고 말하면서 어떤 모습이 가장 어울리는지, 나에게 열변하다가 한 대 얻어맞기도 했다.

'뭐라고 했더라? '팔척귀신 처럼 눈매가 부드러운 것이 아니고, 몸은 부드럽다기보단 탄탄해 보이니까, 탱크탑과 스패츠.'라고 했었나?'

라나에게 직접했으면 아마도 저기서 블라인드 처리될 것만 같은 상태가 되어 버린 리노처럼 변했을 것이다.

멀쩡해진 것 같아도 가끔 여성한정으로 속내를 들어내고 있었다.

예전처럼 상대에게 대놓고 들어내지는 않았고, 나나 프레디에게만 대화하면서 들어낸다.

그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언니가 고민을..."

리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응,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어. 누군한테 이상한 소리라도 들은 거 같아. 그리고 인족군을 내부에서 무너지게 했다는데, 그 모습이 보기에 썩 좋지는 않았나 봐."

시연은 그런 리리스를 보면서 이곳에서 있던 일을 다시 한번 설명했고, 조금 심각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피아의 머리를 만지면서 진정시킨 거구나."

미네르바는 나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는 원만하게 끝났다.

다른 사람들도 며칠 못 본 게 아쉬워서 심술을 부렸던 거였고, 정말로 시연을 나쁘게 몰고 갈 생각은 없었을 테니까.

아내 넷은 티격대기는 해도, 알고 보면 사이는 매우 좋다.

이 대화의 취지는 결국에는 '나를 각자 사흘씩 독점하는 날을 가지고 싶다.' 였을 거고, 그 순서는 늘 하는 내기로 정하는 걸로 한참전에 합의를 봤다.

여전히 내 의사는 쥐꼬리만큼도 존재하지 않지만...

'안 되겠어, 오늘의 내기는 나도 참여해서 내 의사도 넣어야지.'

구체적으로 사흘간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고 싶은 그런 의사를.

문제는 대화의 끝에 내가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나왔다.

"내가 고민을? 무슨 고민을?"

한다고? 내가?

"응, 오빠가 고민을."

왜, 나보다 시연이 더 나를 잘 알지?

아... 시연이 나보다 나를 더 잘알지... 깜빡했네.

"확실히 조금 고민하는 것처럼 보여요, 언니."

지금은 내기에 참여해서 어떻게 이길까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

그리고 전력배분, 요새 주둔군, 신혁파티를 어디로 보낼지, 다음 진군시기 등등 고민은 많이 한다.

그러니까 그냥 잠만 자면서 쉬고 싶은 거다.

"소피아, 누구한테 뭘 들었어?"

"응? 뭐가?"

미네르바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되물었고, 닉스가 대신해서 다시 질문했다.

"남편이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조금은 우울? 아니, 생각이 많아 보여서."

'생각이라...'

하나는 있었다.

부관이 나를 저주하면서 한 말.

'저주하지, 네가 아무리 전진하고 최전선들을 뒤로 밀어 놓아도 인족을 전멸시키거나, 대륙을 정복해서 인족을 전부 네 노예로 만들지 않으면... 이 세계는 언제고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어떤 식으로 노력을 해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 수 있나에 대한 생각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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