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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한 용사는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된다-118화 (118/156)

〈 118화 〉 공성전:사흘 종료

* * *

요새 내부의 불화로 인한 다툼.

"싸워라! 그릇 된 판단으로 부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저 여자야말로 우리의 적이다!"

소수로 움직이던 항복파는 다툼이 격해지자, 다수의 인원들을 선동하면서 저항파와 당당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소수였던 사람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니, 너도나도 무기를 들고서 항복파에게 동참하고 있었다.

항명할 명분이 생기고, 그에 동참하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자연스럽게 죄책감이란 것도 낮아진 것이다.

"배신자를 처단해라! 그들은 더 이상 항명죄가 아닌 인족에 대한 반란죄로 처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공격하는 저항파들.

항복파를 항명죄로 잡아들이던 저항파는 제압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인지, 그들을 명령에 불복종하는자가 아닌 종족의 반란자로서 처단하고 있었다.

어느 쪽도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외치면서 무기를 들고 있으니, 펼쳐지는 건 그저 전날까지도 웃고 떠들던 사이끼리의 칼부림이라는 아비규환 뿐이었다.

요새 바깥은 마왕군이 포위망을 좁히고 있건만, 이들은 이 사실조차 모르고 다투고 있었다.

이 다툼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여군과 여기사들이었다.

이 세계에는 전쟁과 관련된 조약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만큼 전투로 스트레스를 받은 병사의 발산처가 되는 건 점령지의 여자였고, 포로로 잡은 여군들이었다.

이 부분은 양군에서 모두 동일하게 일어났다.

무력해진 적을 강간하려다, 무방비해진 상태에서 다른 적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강간한 상대가 숨겨 놓은 작은 검에 목이 베여서 죽어 버리거나.

외부와 단절된 요새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란 말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끔찍한 장소로 변해 버렸다.

"내가 만든 광경이지만... 정말 인간이란 동물은 벗겨 보면, 가장 잔인한 동물이 된다니까."

이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고서 시간을 벌겠다고 했던 '영웅 놀이'를 즐기던 자들이었다.

정말로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 생기니, 얼마든지 잔인하게 변하고, 인간이란 동물의 추악한 면모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존재들이 말이다.

어찌 보면 지금 이 세계의 인족에게는 이 모습이 당연한 걸 수도 있다.

내가 여행을 할 당시에는 눈에 띄지 않게 잘 숨겨 왔겠지만, '인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현시대에서는 적이 되어 버린 존재에게 욕망을 들어내는 이 모습이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다.

날이 밝아오고 있다.

더 이상 '다툼'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이 '욕망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면 나도 내려가 볼까?"

☆☆☆

"크아아악!"

땅에 발을 디딘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인족을 베어 냈다.

우연이지만 방금 베어낸 인족이 저항파 였던 것인지, 그가 베어내려고 했던 인족이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마.. 마왕! 아니, 마왕님! 항복합니다! 저희는 위대하신 마왕님께 항복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을 처단 하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조아리면서 이 더러운 행위를 정당하다는 듯이 포장하고 자랑한다.

딱히 오해를 해명할 생각도 없어서, 그를 대충 옆으로 치우고 부관에게 다가갔다.

"마왕!"

"잠시만 참으세요! 부관님!"

나에게 달려들던 부관을 제지한 병사는 그 부관을 대신해서 나를 노려보고는 입을 열었다.

"마왕, 뭐하러 온 거지?"

"하하! 뭐하러 왔냐니, 진심으로 물어보는 거야?"

그를 비웃어 주면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켰다.

"시간이 다 되어 간다만... 뭐, 이제는 너희의 선택을 더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볼 만큼은 다 보았다.

부관도 딱히 그 참상을 말리지 않고, 항복파를 쓸어 버리는 걸 보면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인족'중 하나인 것이었다.

"하! 마왕, 네가 그딴 식으로 나올 줄 알았지! 뭐? 선택? 너는 악이다!"

'참 편리한 악이네...'

내가 내려온 것을 눈치챈 건 주위뿐 이었고, 조금 떨어진 장소는 아직도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인족에게는 '악'이 맞겠지만, 이 참상을 보면 뭐랄까...'

나만을 '악'으로 몰고 가는 것은 조금 억울한 기분들었다.

"그래, '창고'는 어디지?"

"그걸 말해 줄 것 같으냐?!"

"!! 멍청아, 그걸 말하면 어떻..."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부관이 병사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위치만 말하지 않았을 뿐이고, 이 요새 어딘가에는 존재한다는 듯이 말했으니까.

"있었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인족의 최전선은 '인족의 농장'이 맞았구나?"

"그게 어쨌다는 거지? 저런 편리한 짐승들을 가만히 두라고? 십여 년 전에 출몰한 두 번째 마왕탓에 주춤했지만, 네 덕분에 다시 활발하게 활동 할 수 있었잖아?"

"..."

같은 인족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말이었다.

태어난 세계가 다르단 것이 이 정도로 인식의 차이를 만들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지구도 인종차별은 있으니까, 여기나 거기나 똑같은 건가?'

인종차별에서 종족차별로 바뀐 것뿐이다.

"후우... 그래, 내가 너희에게 안겨 준 거지. 그러니까 다시 가져가려고."

부관는 그런 나를 비웃고 있었다.

"하하하하! 아... 다시 빼았겠다고? 재미있네, 여기가 밀리면 다음 요새가 '인족의 최전선'이 될 뿐이야. 이거 처음에는 꺼려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하다 보면 익숙해지니까."

'장군에게 주워진지 이십 년이 지났다고 했던가?'

그 정도의 시간이면 사상을 개조하는 데에는 충분하고도 남아돈다.

그리고 사상이 개조된 자들만 모이고 욕망에 충실한 자들만 모인 최전선은 프레디 같은 신념이 있는 존재는 없었다.

"팔 하나 정도는 가져가마, 그 사람에게 가서 '보아라, 당신의 시신까지 모독한 자의 팔이노라.'라고 전할 것이다."

부관이 무기를 들었고, 그녀의 주위에 있는 저항파들도 그녀를 따라서 무기를 들었다.

"저주하지, 네가 아무리 전진하고 최전선들을 뒤로 밀어 놓아도 인족을 전멸시키거나, 대륙을 정복해서 인족을 전부 네 노예로 만들지 않으면... 이 세계는 언제고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사망하고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난 다면 입장에 반대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수백 년 전에 모든 종족이 화합하던 시대에서 인족이 타락한 시대가 된 것처럼.

언제나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니까.

'그렇식으로는 안 되게 노력은 할 거지만.'

"죽어라, 마왕!"

☆☆☆

발아래에서는 부관과 그녀를 따르던 병사의 시신들이 누워 있었다.

팔 하나를 가져간다고 소리치면서 덤벼든 것치고는 매우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 했다.

내 검격을 수합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갔으니, 위세만 강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무력보다는 단체로서의 무력으로 빛을 발휘하던 사람들이니까.'

십수 명 정도의 인원으로 나를 상대하려면 세계에서 손에 꼽을 자들로 데려와라.

나름 명색의 마왕이자, 전 용사다.

"마.. 마왕님, 하하... 역시 저희의 선택이 맞았군요!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 전에 고개를 조아리던 자였다.

"아니 살려줄 생각..."

말을 멈추고 생각을 해보았다.

요새는 항복파로 승부가 기울고 있었다.

저항파의 우두머리가 이렇게 죽었으니, 기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항복파들은 정말로 목숨 걸고 싸웠으니까.'

나에게 저항했다가는 죽는다는 각오로 싸웠고, 그 절박함이 없던 힘까지 발휘해서 저항파를 베어나갔다.

자신들의 손으로 괴멸시켜 버린 요새의 인족들을 잡는 데에 마왕군이 피해를 입을 거라는 생각도 안 들었다.

'내가 당장 목을 베어도 상관은 없지만...'

그랬다가는 항복파들도 당황하고 도망을 치거나, 내가 속였다면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덤벼들 수도 있다.

그때는 나 혼자서 요새를 정리해야 하고, 또 라나에게 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리노야 큰 상관은 없지만, 라나는 은근히 쓴소리를 잘했다.

이것까지도 참을 수는 있다.

어차피 쓴소리야, 아내들에게 매일 같이 듣고 있으니까.

단지.

"그래, 저항파는 패배했다. 당장 항복파들에게 전해서 요새의문을 개방하라, 우리 마왕군이 힘들이지 않고 들어 올 수 있도록."

"예... 예!"

인족은 발에 불이 난 것처럼 뛰어가면서 부관의 사망과 나의 출현, 저항파의 패배를 알렸다.

'단지, 여기 있는 인족들을 지금 죽이면 문을 내가 다 열고 다녀야 하잖아, 귀찮아! 인원이 많은 인족이 열리고해!'

일하기 싫어서 도망... 아니, 넘쳐나는 일이 조금 버거워서 좀 더 쉬운 함락을 선택했다.

여기서까지 열심히 일하는 마왕이 되기는 싫다.

"후우! 나는 너무 열심히 하는 게 싫어, 역시 사람은 늘어 질 줄 알아야지!"

허리춤에 양손을 대고서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열심히="" 했다만...="" 그래,="" 착한="" 본녀가="" 모른="" 척="" 해="" 주마.=""/>

<제말이요, 제일="" 열심히="" 일하신="" 분이...="" 에휴...=""/>

☆☆☆

마왕군은 내부에 들어오자마자, 인족들 전원을 제압했고, 항복파들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밧줄에 묶였다.

살아남은 저항파들은 그런 항복파들을 모독하고 있었다.

"쓰레기 새끼들이! 눈이 멀어서 동료들을 팔고, 결국에는 자신들의 목도 조였구나!"

"마왕님! 항복을 하면 살려주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아니다.

"안 살려줄 거지?"

리노에게도 물어보았지만, 그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이 죽인자들 중에는 전사가 아닌자도 존재했다. 전사인 우리야, 싸울 수 있었다지만, 전사가 아닌 자들은 다수의 습격을 버티지 못하고 잡혀가거나, 죽어서 인족의 소재로 쓰인 경우도 있다."

목소리에 잔잔한 분노가 묻어 있었다.

확실히 힘없는 자들은 그의 말대로 인족의 좋은 먹잇감으로 인식 되어서 잡혔을 것이다.

'근대, 리노. 너 화나서 실수 한 것이 있어.'

두 눈이 매우 커다래지고, 떡 벌어진 입은 더 커다란 라나를 신경 안 쓰고 정상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명복을 빈다.

"그러면 일단은 어디에 가둬 놓고 감시할 인원들을 돌리자, 처형을 수일 뒤로하고."

"그러지."

요새의 외벽은 멀쩡해도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우선 정리부터 해 놓고 뭘 하고 싶어진다.

"아! 리리스하고 다른 사람도 불러야지, 사흘정도 지났는 데 이상하게 더 오래된 것 같아..."

그리고 처리할 서류가 늘었다는 기쁜고 슬픈 소식도 전해야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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