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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한 용사는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된다-117화 (117/156)

〈 117화 〉 공성전:사흘 선택

* * *

어둠이 내려앉은 밤.

고요함이 세상을 지배하고 모두가 잠들 시간, 유독 한 곳만은 낮 이상으로 소란스러운 장소가 있었다.

"항복권고라니! 우리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마왕은 요새에 멀쩡하게 침입한 것도 모자라서 항복요구를 전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치욕이었다.

인족의 최전선 중 하나를 지키던 자신들에게는 너무도 커다란 치욕이었다.

"그러면 다 죽자는 말입니까? 낮에 전투에 나선자들이 한 명이라도 돌아오기는 했습니까?"

...

모두가 침묵을 했다.

단순하게 치욕적인 일만 일어 났다면 권고를 무시하고 맞서 싸웠을 것이다.

마왕의 침입을 허용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요새가 함락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승산이 있는 싸움과 그렇지 못한 싸움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싸워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수도 있지만, 이미 두 번의 교전이 일어났고, 두 번 모두 패배라는 쓰디쓴 결과를 맛보았으니까.

첫 번째 전투는 전투가 아닌 학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고 했다.

자신들이 직접 목격한 두 번째 전투는 누구도 돌아오지 못하고 고립되어서 죽어 나갔다.

전사자 중에는 이 요새의 지휘를 책임지는 장군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왕에게 받은 달콤한 항복권고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항복 권고를 받아들이자는 자들은 절대로 소수가 아닙니다. 특히 첫 번째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하고, 그들의 상태를 목격한 사람들은 벌써 무기를 내려 놓았습니다."

단순하게 전멸 수준이었던 두 번째 전투 였다면 동료가 전사했다, 군마를 빼앗기는 실책을 범했다등의 이유로 무기를 놓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전투가 어떠하였는지 들었던 사람들은, 생존자들의 신음을 들은 사람들은, 겁에 질려서 벌벌 떨고 있는자들을 본자들은...

"어차피 높으신분들 탓에 일어난 전쟁인데 왜 우리가 죽어 나가야 하냐면서 무기를 내려 놓았단 말입니다! 저항도 의지가 있는자들이 많아야 가능하지, 마음이 꺾인자들을 데리고 저항해 봤자 전부 죽어 나가는 결과만 있을 뿐입니다!"

조용하게 사실만 전하던 이도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한 것인지 언성을 높여가면서 호소하고 있었다.

자신은 장군처럼 죽은 뒤에도 시신이 터지거나, 고기덩이처럼 변해가면서 죽고 싶지 않다.

언젠가는 전사할 거라고 생각했어도 이건 뭔가 다르다.

눈앞에 닥쳐 온 죽음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도 요새 안에서 농성을 하면..!"

"농성은 무슨! 마왕이 요새의 방벽을 돌부리 넘어가는 것처럼 넘어 버렸는데 농성을 어떻게 한답니까?! 요새의 의미부터가 사라졌습니다!"

마왕만이 문제도 아니었다.

거인족이야 어쨌든 농성을 선택해볼 법 했지만, 비행이 가능한 용족이 온다면 아무리 거대한 방벽이 쌓여 있다고 해도 뚫려 버릴 것이다.

소수라면 요격을 할 수 있어도 대량을 용족이 날아 온다면 요격은 무리다.

"흐음..."

여기저기서 괴로운 듯한 신음이 울리면서 저마다 착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의 설득에 몇 명은 '정말로 항복하면 살 수는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백기를 듭시다, 전사하신 장군님께는 죄송한 일입니다만 전 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부관님도 지금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지휘할 사람이 망가졌는데, 의지 했다가는 그냥 전멸입니다."

저마다 그에게 동조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부관의 존재가 걸렸었다.

장군이 사망한 지금, 이 요새의 지휘관은 부관이다.

일단 자신들은 군대에 소속 되어 있는 자들이다.

명령권자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항명이며, 이는 곳 즉결처분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행위였다.

항복이 정답이라 해도, 한 번 항명을 해 버리면 나중에는 누군가가 이 행위를 따라 할 수도 있다.

단 한 차례의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될 엄격한 체계인 것이다.

"부관님이라면 그냥 몰래 처리해 버리고 '창고' 같은데에 던져 놓는 건 어떻습니까? 그러다 시신이 나오면 마왕이 처리한 거로 하면 믿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항복하지 않을 사람이다.

몇 시간 일찍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사람을 제 멋대로 죽게 만들 바에는 차라리 우리 손으로 처단하자고."

그런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자, 몇 명은 한술 더 떠서 자신들의 욕망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일 거 맛 좀 보고 죽이면 안 됩니까? 그거 아직 처녀로 알고 있는데..."

"아... 장군님만 바라보다가 그 나이까지 연애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했지? 크크크, 전투에 참여할 정도로 단련 돼 있으니까, 나름 조일 거 같은데?"

명분이 무색해 질 정도로 추악한 욕망을.

"그러면, 그렇게 합의 된 걸로 알겠습니다."

☆☆☆

"뭐라고? 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일부 병사들에게서 항복하려는 움직임이기 보이기에 감시할 사람을 보냈 것만, 아니나 다를까 항복하자고 작당중이었다.

"나를... 나를 뭐 어쩐다고? 아하하하."

단순하게 그것뿐이었으면 참작이 가능했지만, 항복 뒤에 했던 말들은 그냥은 넘어갈 수 없었다.

'나를 강간하고 죽이겠다고?'

"당장 그들을 처단해라, 사유는... 그래, 반란이 좋겠네."

마왕은 그를 죽인 것도 모자라서 시신조차 욕을 보였다.

마왕은 용서할 수 없고, 용서를 해서도 안 될 악인이다.

그런 마왕이 준 선택권에 침을 흘리면서 달려든 배반자들도 처단해야 할 악이다.

그 악중에는 그 사람에게 목숨을 구원 받은자들도 있었다.

'은혜도 모르는 놈들..!'

요새 밖의 짐승들이랑 다를 게 없는 쓰레기다.

"아니지, 이참에 여왕님이 말한 병사를 만드는데 보내자, 여왕님도 재료가 부족할 테니 기뻐하시겠지."

쓰레기여도 '창고'에 있는 짐승들 처럼 쓸모는 있는 것 같다.

☆☆☆

"오... 벌써 싸우기 시작했네."

요새 위에 올라선 나는 소란스러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방벽의 위쪽의 사람들도 아래쪽의 다툼에 참여 있는 것인지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다.

역시나 그들은 저항과 항복을 가지고서 다투고 있었다.

<소피아님 어느="" 쪽을="" 골라도="" 죽는="" 것이면,="" 죽지="" 않는="" 선택도="" 있었던="" 건가요?=""/>

로자리아의 물음.

그녀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던 건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리노도 어째서 항복을 안 받는 건지 알고 있었던 거 같은데...'

"목걸아, 마탑에서 봤던 수많은 사체들이 주로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해?"

<예? 그거는="" 인족이="" 사냥을="" 했다고...="" 어?="" 설마...=""/>

로자리아도 그 이유를 이해했다.

이 요새도, 다른 최전선도 타종족이 사는 마왕국에 가장 가깝다는 특징이 있고, 잦은 전투가 일어난 특징도 있었다.

그러면 반드시 많은 시신이 생겨 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회수 하지 못하는 시신도 생겨 날 것이다.

그러면 그 시신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인가.

"그 설마야, 인족의 최전선은 인족의 최대의 마력석 생산농장과 소재생산 농장일 거야, 목걸이도 슬슬 겉면만이 아니라 속도 봐야 할 거 같아."

안 그러면 실망만하다가 지쳐 버린다.

<죄송해요, 소피아님.="" 저는="" 아직도="" 모두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나="" 봐요.=""/>

딱히 로자리아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말대로 어딘가의 시골에서는 그러지 않은 인간들도 존재할 것이다.

국경지대에도 도시와 떨어진 산속 마을이라면 가능성도 있는 이야기였다.

"그냥, 전투가 빈번히 일어나는 이런 곳이 진실도 모르고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나보다 마왕군들에게 더 큰 원한을 심어 준 자들.

그래서 리노도 내가 한, 이 나쁜 장난질에도 별다른 거리낌 없이 담담하게 다음 전투를 준비한 것이다.

'음... 문이 열리면 전부 쓸어버릴 준비를 했다고 하니까.'

알아서 잘 할것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마왕군이 이길 확률을 더욱 높여 주는 것.

이 요새의 인족을 최대한 줄이는 일이다.

"내가 왜 마왕으로 돌아선지는 몰라도 다른 건 잘 알 걸?"

'왜 마왕군이 공격하는 건지.'

그것조차 모르고 있는 인간은 그저 모든 것을 남탓으로 돌리는 짐승만도 못한 존재들 뿐이다.

<소피아가 말한="" '선택'이란="" 건,="" 아마도="" 어떠한="" '선택'도="" 하지="" 말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이다.=""/>

"하하! 역시 검순이, 파트너로 있는 것이 오래되니까, 대충 들어도 잘 아는 구나? 맞아, 그냥 받아들이고 나서 피해를 본 모두가 용서한다면 살 수는 있어."

내 장난기 섞인 질문에 카르마는 떫은 감을 씹은 것처럼 대답해 주었다.

<그대가 어지간="" 했어야지,="" 소피아도="" 그="" '번역기'?="" 라는="" 것을="" 들고="" 다녀라.=""/>

...리노 보다는 알아듣기 쉽게 말하는 것 같은데...

아니었나 보다.

"그거는 둘 째치고."

<둘 째치지="" 마라.=""/>

인족의 가장 어두운 면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요새.

가장 추악한 짐승들.

'인족의 요새'가, 같은 '인족'들의 손으로 무너지는 순간을 두 눈 속에 똑똑히 새겨 넣었다.

"자신들의 죄 조차 모르는 짐승들의 다툼이나 구경하자."

'무덤을 만들어줄 가치조차 없는 장군과 같이, '사냥'이 너무도 당연해진 짐승들여.'

내가 만든 거미줄에서 자신들의 목을 조여가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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