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공성전:이틀 불화
* * *
우두머리가 사라진 집단은 손쉽게 무너진다.
흔한이야기고, 집단끼리 싸울 때의 우두머리는 언제나 우선적으로 노려질 정도로 정석인 전투법 중에 하나이다.
집단이 와해되는 경우는 반파와 지휘권의 부재, 내부의 불화 만큼이나 효과적인 방법은 찾기 힘드니까.
하지만 이 집단은...
"리노, 보이지? 지휘관이 사망하고 당황할 틈도 없이 일어난 최선임자의 지휘권의 승계."
그리고 전임자의 마지막 명령을 일말에 의심도 없이 이행하는 모습.
임시로 지휘권을 가진 자는 지휘관이 내린 '후퇴'라는 명령이 그릇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는지, 필사적으로 군을 일끌면서 후퇴를 하고 있었다.
"저것이 오래도록 전쟁터에서 살아왔던 자들의 모습이다."
그것도 지휘관이 자신이 전사했을 때를 대비한 군대의 모습.
지휘관이 '킹'이 아닌 '퀸'일 때.
군은 단지 강한 말을 잃은 것이지, 지휘관 '하나'로 무너질만한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제는 '하나'의 타격이 아닌, '다수'의 타격을 주어야 할 때.
'그리고 우수한 다음 지휘관을 분노로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게 만들어야 할 때.'
요새의 벽위에서 소리치고 있는 부관을 바라보았다.
"리노 너는 아직 전쟁 경험이 부족하니까, 이런 경우는 '반파'가 더욱 쉬워."
"명심."
리노는 무기를 잡고서 후퇴하는 군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병사들도 퇴로를 막으면서 적군을 '반파'시키려 든다.
"너는 전장에서 마왕군을 책임질 장군이 되어줬으면 해. 짧은 기간이지만 최대한 많은 깨달음을 얻어 줘."
후퇴하는 군의 끝자락에 있던 기마병의 말위로 뛰었다.
"무.. 무슨..!"
그리고 날아오르는 기마병의 머리.
"리노! 군마는 되도록이면 살려놔! 다만, 우리가 빼앗을 수 없을 때는 죽여놔야 해!"
보통 말보다 뛰어난 군마의 경우는 적의 전투력을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만큼 군마를 키우기는 힘들고 훈련된 군마를 빼앗을 수 있다면, 빼앗는 것이 적에게 큰 손실을 안겨줄 수 있다.
'애초에 군마가 우리의 통제를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때는 식량으로 쓰면 될 일이야.'
차라리 그편이 적의 기동력을 유지시켜 주는 것보다는 낫다.
내 지시를 들은 리노는 군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적군의 '기마병'만을 노려서 공격하고 있었다.
군마를 살리기가 힘들 때는 군마째로 두 동강을 내면서.
'음... 리노는 조금만 더 데리고 다니면서 알려주면 마왕군의 총대장도 맡길 수 있겠어.'
실력은 전혀 부족하지 않고, 모자란 경험만 채워주면 거인족만이 아니라, 용족, 수인족, 악마족을 통틀어서 신임을 받는 장군이 될 것이다.
'거인족의 족장을 하면서 지휘관으로서의 능력도 증명했어.'
"후퇴! 불허!"
...저 이상한 컨셉도 고쳐주자.
"그러면 뒷일은 리노에게 맡기고.. 나는 요새 내부있는 부관의 뒤흔들어 볼까?"
머리가 뚫려 버린 시신을 들고서 요새를 향해서 달려 나갔다.
☆☆☆
"놔! 죽여 버리겠어! 감히..! 감히 그 사람을..!"
"부관님! 진정하세요! 부관님이 진정하지 않으시면 이 요새는 끝난단 말입니다!"
그 사람이 죽었다.
이십 년 동안 자신의 곁에서 굳건하게 존재하던 그가 전사했다.
언제나 곁에 있을 거 같았던 그가.
이번에도 다시 돌아올 것 같이 출정을 했으면서, 결국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할 말이 있으면 돌아오란 말이에요, 왜... 왜, 돌아오지도 못할 거면서..!'
전장은 늘 죽음을 곁에두고 있다.
언젠가 그가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각오하고 있었어도 가슴 한구석으로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슬퍼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거다.
그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거다.
과연 누가 그런 준비를 할 수 있을까.
가장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목격할 준비를 할 사람이 존재는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자신은 아니었다.
"놓으라고! 놓지 않으면 당장 명령 불복종으로 즉결 처분을 하겠다!"
말리는 병사에게는 부당한 처사였지만,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는 나에게는 정당한 처벌로만 느껴졌다.
"지금 문을 열었다가는 적군이 들어올 겁니다! 저런 함정도 판 놈들인데, 당연히 처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말을 타고서 당장에 출격할 생각이었다.
혼자서라도 달려가려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문은 아군이 거의 다 후퇴했을 때 열죠, 지금은 안 됩니다. 명령 불복종으로 제 목을 치셔도 좋습니다. 그걸로 부관님이 진정할 수 있다면 기꺼이 목을 내놓겠습니다."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병사를 바라보았다.
병사의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는 일그러짐.
그 일그러짐이 자신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미안... 미안하다, 그분이 전사하는 걸 눈앞에서 목격하는 바람에..."
"압니다, 하필이면 망원마법으로 확대된 상태여서 더욱 그러셨을 겁니다."
진정하자.
그가 전사한 지금, 요새의 병사들의 총책임자는 자신이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기마병도 있어, 그들이 최대한 안전하게 돌아오려면 자신이 진정해야 돼.'
분노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우선 구출조와 수비조를 나눈다, 당장 인원을 모집..."
감정을 죽이면서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지만, 위쪽에서 들리는감시병의 목소리에 분노의 감정이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적습!!! 적습이다!!! 인원은 하나! 엄청난 속도로 접근중! 손에는 장군님의 시신을 들고 있습니다!"
그를 들고 있는 자가 홀로 이곳에 접근하고 있다.
아마도 그를 죽였던 인물일 것이다.
분노의 대상자가 알아서 찾아와주니, 겨우 진정되던 감정이 다시 타오르지 않고서 버티겠는가.
"당장 요격..!"
자살행위처럼 홀로 돌진하는 자를 요격하라고 명령하려 했다.
멍청하게 적진에 단신으로 돌진하는 먹잇감을 요격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해..."
명령을 들을 성벽 위의 감시병이 튕겨 나가지만 않았다면 명령은 이행 되었을 거다.
태양을 가리는 세 개의 그림자.
하나는 튕겨 나간 병사였고, 하나는 병사의 머리를 쥐고 있는 여자, 나머지 하나는...
"그분의 갑옷..!"
그의 갑옷을 입고 있는 머리가 뚫려 있는 시신이었다.
세 개의 그림자가 하늘을 활공하고 있었다.
쾅!
그리고 굉음과 함께 자신에게로 빠르게 추락했다.
쿵...
묵직한 소리와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그림자는 바닥에 도착했고, 그를 죽인자가 눈앞에 등장했다.
"너도 오랜만이네? 내가 선물을 들고 왔어, 이히히히!"
☆☆☆
오늘 두 번째로 마주치는 오래된 인연중 하나에게 인사했다.
손에 쥐고 있는 자의 부관이자, 그의 손에 길러진 여성.
"네가 기뻐할 만한 선물을 들고 왔어, 오랜만에 만나는 데 빈손으로 오는 건 정이 없잖아."
그녀에게 '선물'을 던져 주었다.
"어..? 어? ㄲ... 꺄아아아악!"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던져진 그를 붙잡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뜨렸다.
"너무하네, 그래도 네가 아끼는 사람의 시신인데."
머리에 구멍이 좀 뚫려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상당히 멀쩡한 편이었다.
'잘게 갈려 있는 고기를 들고 온 것도 아니잖아?'
그 수준이면 나도 꺼려져서 안 들고 온다.
부관은 망연자실하게 기어가면서 그의 시신에게로 다가갔고.
"아.. 아아아악..!"
오열했다.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부관은 이곳에 내가 있든 없든 상관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이곳에 있는 건 그와 자신 뿐인 것처럼, 차가워진 시신을 끌어안고서 울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면 내가 나쁜 놈 같잖아?
'아직 진짜로 나쁜 짓은 하지도 않았는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기를 들고서 나에게 접근하는 병사들.
요새 안으로 처들어온 나만은 반드시 잡겠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서 접근하고 있었다.
"너희들, 그 이상 접근하면 부관도 죽여 버린다?"
즉시 검을 뽑아서 부관의 목에다가 가져다 댔다.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처럼 목에 살짝 찔러 넣었고, 그곳에서 한줄기의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멈춰 선 병사들.
'이제야 대화할 만한 상황이 만들어졌네.'
"음... 일단 내 '선물'은 마음에 들었나 몰라?"
"?! 마왕!!! 죽여 버릴 거야! 너만은 반드시..!"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도 전혀 겁을 먹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너를 죽이고, 그 시신을 들고서 이 사람의 무덤에 들고 갈 거다. 그리고 당신의 복수를 했노라고..!"
"무덤? 만들 시간을 줄거 같아?"
딱.
튕겨진 손가락에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들려오는 짧은 파열음.
퍽.
터져 버린 지휘관의 시신에서 들린 파열음이었다.
시신에서 터진 고기덩이들은 사방으로 튀었고, 그를 안고 있던 부관은 온몸이 젖을 정도의 피가 묻어 나왔다.
이제는 시신조차 없게 된 지휘관.
자그마한 고기덩이들과 터져 나간 혈흔들.
이 세상에 그가 있었다는 마지막 증거들.
'이게 진짜로 나쁜 짓이지.'
"정확히 내일 정오까지 시간을 주지, 여기 있는 전원이 저렇게 터져 나갈 수도 있고, 아니면 살 수도 있어."
부관은 이게 현실이 아니라는 것처럼 멍하니 고기덩이들을 바라보았다.
"내일 정오에 내가 다시 이곳으로 올 거다. 그때에 선택을 잘한 인물은 살려주고 아닌 인물들은 전부 죽인다."
병사들에게는 내 말이 들리겠지만, 부관은 듣고 있는 걸까?
뭐 안 들려도 상관은 없다.
"그러면 전할 것들은 다 전했으니까, 나는 이만 사라진다? 아..! 그리고 이놈은 내가 들고 갈게. 어제 나한테 시비 건 놈이니까, 선택권을 줘서는 안 되지."
내용은 병사들이 알아서 잘 전달할 테니까.
그래서 손에 쥐어진 한 명의 병사를 흔들며 선언했고, 땅을 박차고 요새의 성벽을 넘어갔다.
☆☆☆
<소피아, 무슨="" 일이냐?="" 본녀는="" 그대가="" 전부="" 죽일="" 줄="" 알았는데.=""/>
"응? 아아.. 선택을 잘하라고 했지, 어떤 선택을 잘하라는지는 말 안 했잖아, 전부 죽이는 거 맞아."
내가 한 짓은 나에게 큰 원한이 있는 자를 만들고, 아닌 자들을 만든 것뿐.
그들은 오늘, 살려는 자들과 목숨을 걸고서라도 싸워야 한다는 자들로 나뉠 것이다.
나에게 원한이 가장 큰 부관은 저항파의 수장이 되어서 배신자들을 '처단'해 갈 것이다.
항복파는 마왕군에게 요새를 손수 개방해주려고 하겠지.
저항파들의 목을 제 손으로 가져다 바치면 더욱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면서 '숙청'할 것이다.
"오늘 밤은 요새에서 타오르는 불꽃 덕분에 꽤나 밝을 지도 모르겠네."
내부의 분란이 일어나는 요새를 우리는 구경이나 하면서 기다리면 된다.
'하루면 조금 촉박하지만... 촉박한 게 불안감을 조성하기에는 더 적합하지.'
"읍!읍!읍!"
"쉿! 너는 병신이 따로 놀아 줄게."
병신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