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를 구한 용사는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된다-115화 (115/156)

〈 115화 〉 공성전:이틀 조우

* * *

이른 새벽, 요새의 성벽 위.

그곳에서 한 무리의 병사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공격도 머졌네, 마력이 전부 떨어졌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설마 마법사가 회색머리 하나 말고는 없었다던가..."

만약에 그렇다면 어떤 자신감으로 그런 것인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불침번을 세우면서 요새 밖의 마왕군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소득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마법을 사용하던 건 그 회색머리의 여자뿐.

이쯤 되면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그 여자는 견제용으로 있었을 뿐이고, 진짜는 나중에 있을 전투를 위해서 마력을 보전 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왕군의 실질적인 전투조는 아마도 이곳에 오자마자 야영준비를 마치고 휴식에 들어간 자들.

그들이 전투에 나서기 전에 한 번 정도는 적 전력을 깎을 필요가 있다.

"이봐, 아무래도 오늘 한번 전투가 날 거 같지?"

"아무렴, 우리 지휘관. 장군님이 선두에 서겠다고 하시더군."

"음? 그러면 지휘는?"

"부관님이 있지 않나, 부관님도 장군님이랑 같이 있던 세월덕에 장군님 못지않게 훌륭하다고."

마지막 말에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저들은 진군을 멈추고, 휴식과 경계만을 선택했다.

적진을 앞에 두고 대담하다고 할 수 있으나, 첫 전투에서의 승리로 도취된 것이겠지.

견제는 한다고 해도 인족군을 한참은 깔보는 행위였다.

그런 기만행위에도 숨길 수 없는 단 하나.

"진군을 멈추었단 소리는 저놈들도 피로가 상당하다는 이야기야.승리를 하고, 사기가 상당히 올라 있을 때에 휴식을 취했으니까."

아직 피로가 덜 풀렸을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다.

주력이 전부 휴식에 들어가고, 나머지 경계와 견제를 하는 인원을 친다.

그러면 주력은 후퇴를 선택하던지, 아니면 인원을 나누어서 부담은 되더라도 계속 나아가 던지를 선택해야 한다.

첫 전투에서부터 후퇴를 선택하기는 힘들 것이다.

차라리 부담이 되더라도 진군을 선택해서 군의 사기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겠지.

"우리는 이제부터 휴식이고, 전투는 낮에 근무하던 놈들이 나가려나?"

"그래 주면 고맙겠네, 안 그래도 슬슬 피곤해지려고 하니까."

"저기, 교대할 놈들도 오네, 어이! 어제 그렇게 놀리더니, 돌격조로는 안 가나 봐? 크크크."

새벽부터 근무를 나온 동료를 놀리면서 특이사항이나, 적들의 동태를 보고하면서 자리를 벗어 났다.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지, 나였으면 어제 놀려 먹던 너부터 노릴 거니까. 크크크, 수고하고."

"시끄러! 하아... 새벽부터 이게 무슨 고생이야..."

☆☆☆

<소피아여, 자지="" 않아도="" 괜찮겠느냐?=""/>

견제마법에도 반응이 없어질 무렵에 마법을 중단하고 막사 내부로 들어왔다.

평소였으면 휴식을 취했지만, 딱히 휴식이 필요한 만큼 지치지도 않았고, 막사의 위치도 대놓고 적진의 코앞에 세웠다.

지금 휴식을 취하는 인원은 비전투원이나, 라나 같이 꼭 휴식이 필요한 인원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일단 쪽잠은 자고는 있지만, 대부분이 막사 안에서도 무장한 상태로 있지...'

나름 쉬라고 야영준비를 한 것이지만, 역시 적진을 눈앞에 두고도 태평하게 쉬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괜히 미안해지네.'

시연도 쉬라고 했지만, 그저 내 허벅지를 베개 삼아서 누워만 있고 잠은 청하지 않고 있었다.

"글쎄? 검순아, 잘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

인족군이 완전하게 요새를 걸어 잠구지 않는 이상에는 휴식을 취할 생각은 없다.

"오빠, 그런데 저쪽이 오빠 생각대로 움직여 줄까?"

그녀는 내 허벅지를 쓱쓱 문지르면서 말했다.

...사실 열심히 휴식중인 건가?

어쩌면 이 독점적인 시간을 만끽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마도? 시연아, 저 요새의 지휘관이 누구랑 같이 전쟁을 했을 거 같아?"

나다.

<엇..! 소피아님에게="" 전쟁의="" 지휘를="" 알려="" 준="" 건...=""/>

"응, 지금 대부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놈들에게 지휘를 배우고, 머리를 맞대어서 더 나은 해법을 찾았지."

쉽게 말하면 저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나도 다 알고 있다.

각 지휘관의 성격을 고려해서 어떤 전략을 이끌고 나올지도 예상이 간다.

"후후후... 내가 마냥 서류를 들여다본 게 아니라고..."

니 시선은 먼 곳을 응시했지만, 한 달 동안 나라의 일 처리를 하면서 틈틈이 인족 장군들이 지휘관으로 주둔하고 있는 위치를 외웠다.

'그것도 최신정보로.'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참고하기에는 충분한 자료들이었다.

저쪽세계에서 공부만 하던 학생이 이곳에와서 처음으로 전쟁을 겪어 본 것이다.

당연히 무능한 지휘관이었고 개인적인 무력만 강한 존재였다.

하지만 여러 전장에 불려다니고 어깨너머로 지휘라는 것을 배웠다.

나중에는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좀 더 효율적인 안을 제시하기 시작하면서 끝에는 내게 답을 바라는 지경까지 성장을 했다.

'가끔가다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전략도 들고 나왔지.'

내가.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있지만, 요지는 그들이 성장을 하지않고 안주한다는 가정하에 요새를 지휘하는 지휘관, 장군의 정보만 알면 대략적인 전략도 알고 있다는 소리다.

내가 인족의 용사출신이 아니었으면 알 수 없는 그들의 정보였다.

'저기 있는 사람은... 분명 경험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어.'

그의 부관이었던 사람은 경험보다는 상대가 나오는 전략에 따라서 빠르게 다음 안을 도출해내는 사람이었다.

어지간하면 같이 다니지만 상대에게 승리를 확신할 때는 부관을 지휘부로 빼놓고 다니기도 했다.

'그 둘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만큼, 떨어지면 실력이 반감 돼.'

오늘있을 전투에는 그 장군의 성격상 자신이 직접 나오겠지만, 부관이 나와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한 사람은 오늘 사살 당할 예정이니까.

'둘 다 나오면 최고지만, 하나만 나오겠지.'

그 둘은 어느 한쪽이 안 다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안 다치는 쪽을 선택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뭐... 거의 연인 사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떨지는 모르겠네...'

☆☆☆

"장군님 정말 직접 나가시려는 건가요?"

"오! 네가 마중나오는 걸 보니까, 오늘 전투는 꼭 승리할 수 있을 것 같네, 아하하하하!"

장군은 말위에서 자신의 부관을 내려다보고는 크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만, 부관이 그의 손을 처 내면서 불만을 토했을 뿐.

"어린아이 취급은 그만하시죠, 저도 이제 스물아홉이에요. 이러다 서른이 넘어도 결혼조차 못할 거 같으니까요."

그녀의 투덜거림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치웠다.

자신의 부관이 마음을 표현한지는 십 년이 지났다.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 부관과 알고 지낸 것만 이십 년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우연히 고아였던 부관을 주워서 데리고 다닌지도 이십 년이 넘었다는 소리다.

'딸 같은 부관을 내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바라보겠나, 거기에 나도 나이가 오십 대이니까.'

만약 그런자가 있다면 자신이 요절을 낼 것이다.

본래라면 전장에도 데려올 생각은 없지만, 그녀가 본인의 우수함을 증명하고 한 사람의 손이라도 아쉬운 최전방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주변에서는 거의 연인 사이로 보고 있다만...

이런 중년 아저씨랑 '아직'은 이십 대의 아가씨.

어딜 봐도 경비대에 잡혀갈 만한 조합이었다.

"크흠! 그럼, 다녀오겠다. 부관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방비를 철저히 하도록."

"...그렇게 만약을 따지면, 저도 좀... 하... 알겠어요, 다른 병사들을에게 철저하게 농성을 할 준비를 마쳐 놓으라고 할게요."

부관은 불만 가득한 표정을 하면서도 야무지게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치... 스무 살 차이가 뭐 어때서...'라고 중얼거리지만 않았으면 더 야무졌을 테지만.

"그래, 음... 돌아오면 할 이야기도 있으니까, 잘하고 있어야 한다, 알겠지?"

어련히 잘하겠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아이와도 같았다.

내 걱정을 아는 것인지 같이 돌격에 투입되는 병사들이 웃으면서 '장군님! 부관님이면 장군님 보다 잘합니다, 하하하하!'하고 대신 답변해주었다.

"이놈들이... 됐다, 문을 열어라!"

끼이이익.

요새의 문이 개방됨과 동시에 말을 탄 기마병들이 달려 나갔다.

☆☆☆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진해나가는 기마병들.

이미 한 번 패배한 자신들에게는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몇몇 부하들은 마음이 풀어졌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전장에서 돌이온 부하들의 상태는 평범한 전투로는 있을 수 없는 상처였으니까.

'아니,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유린을 당한 것이겠지.'

돌아온 자들의 공포가 그걸 증명해주었다.

때문에 그 유린으로부터 하루 정도 지난 지금이 적의 전력을 깎을 유일한 기회나 다름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적의 전력은 만전의 상태가 된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사기를 높여놔야 돼..!'

지금이야 괜찮다고 해도 나중은 아니었다.

변변치 않은 공격조차 없이 수성만을 고집한다면 고립되어 있는 요새의 특성상 언젠가는 식량이 바닥나고 만다.

제 시간에 지원이 와 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상황도 고려해야 하니까, 지금처럼 적이 전투와 행군으로 지쳐 있을 때 공격을 해야 가장 효과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

'거기에 이제 해가 뜨기 시작했지, 휴식중인 적이 가장 방심했을 때야.'

우리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서, 바로 전투 준비를 해도 자다 깬 상태로는 정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그냥 저버릴 수는 없다.

"달려라! 경계를 서는 적을 피하고 적의 본진만을 치고 돌아가는 거다!"

자신의 말처럼 경계를 서는 적군이 대응을 했지만, 그들 보다 작은 우리는 마치 고양이를 피하는 쥐마냥 돌아다니면서 적이 야영중이던 본진을 향해서 빠르게 나아갔다.

'...너무, 너무 엉성하다...'

얼핏 보면 튼튼해 보였지만, 몇 군데에 구멍이 있었다.

때문에 엉성해 보이는 포위진이었다.

그 엉성함을 근처에서 보니, 조금은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불안하다.

자신의 경험이 당장 돌아가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교묘하게 모든 것을 짜놓고 먹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거미같은 수법.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거미줄에 잡혀 버렸을 때라는 그 수법은 어디건가 많이 본 기분이었다.

'이런 악랄한 수법...'

"!!! 전군! 후퇴하라!"

'용사! 아니, 마왕이다! 마왕이 이곳에 있어!'

마왕의 생김새.

회색머리에 붉은 눈을 한 여자.

병사들에게 실력 떨어지는 마법사가 요새의 벽에 마법을 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다.

회색머리를 한 마법사라고 들었지만...

'멍청이들! 그 회색머리가 마왕이라고!'

자신이 끌고 온 병사들은 오래도록 전장에서 구른자들이기에 후퇴명령에도 이상함을 느낄 것 없이 말머리를 뒤쪽으로 돌리려고 했다.

'이런! 인원이 많아서 바로 돌아가지 못한다!'

고립된다.

이대로는 고립되고 만다.

병사들이 견제용 마법사라고 했을 때, 무시했으면 안 됐다.

'내가 직접 확인했어야 했는데!'

기마병들은 자신을 따라서 급히 우회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말들끼리 부딪치면서 낙마하는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까꿍."

순간 적진에서 들려오는 소름 끼치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돌아보자 회색머리를 한 여자가 창을 들고서 서 있었다.

"오랜만이야, 그리고 잘 가."

그녀의 손에서 던져진 창.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소리.

푸슉...

그건 자신의 머리가 뚫리는 소리였다.

☆☆☆

"어라? 부관님, 혹시 장군님을 보러 오신 겁니까?"

어제부터 마왕군을 도발하던 병사가 다가왔다.

"아니, 마왕군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봐야 하니까."

사실은 그냥 그가 걱정돼서 올라온 것이다.

그가 홀로 전장에 나설 때마다 이런 핑계와 저런 핑계를 대면서 이곳에 올라 왔기에 병사들은 키득 되면서도 모른 척을 해주었다.

마법사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이 자연스럽게 망원 마법을 걸어 주었다.

'흠흠... 과연 적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까나... 어라?'

그가 급하게 말머리를 돌리면서 돌아오려고 했다.

물론 그 혼자가 아니었기에 크게 반원을 그려야 했고, 그마저도 최대한 줄이면서 돌렸다.

적의 본진은 닿지도 않았고, 심지어 경계중이던 마왕군을 피하면서 접근했기에 그들의 피해도 없는 상황이었다.

적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후퇴를 선택한 상황.

'함정..!'

적이 판 함정이다.

그러면 빠른 후퇴가 정답이다.

더 고립되기 전에 후퇴한 것은 정말로 오른 판단을 한 것이다.

"당장 밑에 있는 병사들에게 개문을..!"

명하려고 했다.

후퇴를 선택한 군대 뒤쪽에 나타난 회색머리의 여자만 아니었으면.

"어?"

망원 마법으로 인해서 확대된 그의 모습은 마치 코앞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의 머리를 창이 뚫고 지나가는 그 장면이 말이다.

슈우우우... 쾅!

"으앗!"

그의 머리를 뚫은 창은 바람을 가르면서 날아와서 요새의 벽에 꽂혔다.

병사들은 다소 놀라서 주춤거렸고, 자신은 아직도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서 멍하니 머리가 없는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말위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그'.

"어..? 어? 아... 안 돼!!!"

너무도 소중한 '아버지'이자 자신을 고독에서 구해 준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