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라나
* * *
지시와 동시에 발을 굴리면서 빠른 속도로 전진하는 리노의 군대.
최전방은 전력으로 달리는 지룡이 길을 만들었고, 그중에서 가장 앞쪽에 있는 지룡 위에는 거인족인 라나가 랜스를 들고서 탑승해 있었다.
"우오오오오오!"
전장에 울리는 라나의 함성이 인족을 향한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라나를 선두로 만들어진 거대한 창.
그것이 인족의 진형을 꽤 뚫었다.
콰아아앙!
'우와... 거인족도 기마병이 될 수 있구나..'
따지자면 기룡병이지만,그 파괴력은 인족의 기마병과는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크기부터가 다르잖아, 시간이 짧아서 기룡술을 익힌건 라나 뿐이지.'
수가 늘어나면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돌격병이 탄생할 것이다.
지룡족이 거인족을 등에 태우는 것에 대한 거부와 거대한 크기 때문에 기마술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던 거인족이기에 시간은 걸리겠지만, 앞으로 꼭 발전시켜야 할 병과이다.
라나도 힘으로 제압하는 무식한 방법으로 지룡을 길들였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주먹으로 해결하라.
골리앗의 딸다운 방식이었다.
'가끔 생각하는 거지만, 용족은 여기저기서 얻어맞는 호구 집단같아..'
분명히 전체적으로 강한 종족이지만, 소수의 강자들에게 너무 맞고 다닌다.
'앞으로는 조금 더 잘해 줘야지...'
라나와 지룡들이 무너뜨린 향해서 남은 군을 진격시켰다.
우선 내가 인족에게 안겨 준 것들부터 빼앗아간다.
'우선 글리아스의 최전선에 구축한 요새부터.'
다음은 디퍼루드.
나로 인해서 손에 쥐었던 것들은 다시 나로 인해서 빼았기게 될 것이다.
☆☆☆
"와아아아!"
무너진 대형 당황한 것은 잠시였고, 인족들도 정신을 차리고 마왕군을 향해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들도 나름 최전선을 지키던 베테랑이었기에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던 거다.
라나와 지룡들이 분전하고 있지만 인족은 수의 폭력으로 맞붙어 온다.
돌격할 때 사용했던 랜스는 근접전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었기에 던져 버린 지 오래였고, 양손에 도끼들고서 휘둘렀다.
그런 라나의 기동력을 빼앗으려는 인족은 도끼에 잘려 나가면서도 지룡의 다리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빨리도 온다, 대머리!"
인족의 공격이 집중되던 라나가 소리치며 리노를 타박했지만, 표정에는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마왕, 도움, 돼지! 위험!"
...이 와중에 돼지와 대머리란 말은 빼놓지 않는 대단한 남매다.
라나와 지룡을 고립 시키기 위한 목숨을 건 고기 방패들.
"버텨라! 목숨을 걸고서라도 적에게 첫 승리를 쥐어 줘서는 안 된다!"
승리를 병사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끼친다.
라나가 단순하게 적군을 휩쓸고 돌아오는 것만 해도 영향이 간다.
아군에게는 적군을 가볍게 치고왔다는 자신감과 승리의 고양이.
적군에게는 적에게 손쉽게 당했다는 자괴감과 패배의 죄절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돌격병이 첫 출진부터 괴멸하면 나는 멍청하게 아군을 사망하게 만든 적장으로 웃음거리가 되겠지.
일반적으로는 고립되기 쉬운 이런 전법은 선택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래, 일반적으로는 말이지...'
나는 마력의 실을 뽑아서 원뿔 형태의 기둥을 만들었다.
그 기둥은 라나가 쓰던 랜스처럼 앞을 향해서 뻗어 있었고, 나선모양으로 홈이 나,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순수한 마력으로 만든 드릴이었다.
강화마법을 걸고, 투력을 둘러서 육체에 들어오는 부담을 줄인다.
이후에 고립된 라나를 향해서 육체를 쏘았다.
단 한 명에 의해서 만들어진 돌격진.
인족병사들은 급하게 막아섰지만, 전방에 있는 마력드릴에 의해서 너무도 쉽게 갈려 나갔다.
아무리 뭉쳐서 육벽을 만든다 하여도 막을 수 없었다.
"아하하하하! 피하지 않으면 갈려나갈 뿐이라고?! 아하하핫!"
아군이었을 때는 무엇이든 해내는 든든한 용사님이었겠지만, 적으로 돌아선 후부터는 정말로 뭐든지 해 버리는 괴물 같은 마왕이 된다.
"발버둥 쳐라! 발버둥 치고, 발버둥 치고, 발버둥 쳐라! 최후까지 발버둥 쳐서 절망 속에서 덧없는 희망을 갈구하라!"
그래야.
"그래야,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 탓에 더욱 절망할 것이다."
☆☆☆
인간이란 육벽을 흩날리면서 라나의 곁으로 도착했다.
"짜잔! 마왕님 등장!"
조금 상처가 나버린 그녀에게 로자리아를 이용한 깨끗한 치료마법을 날려주었고, 태양에게 만세를 외칠 것만 같은 자세로 매우 당당하게 등장을 외쳤다.
"늦어!"
"끄악!"
그리고 한대 맞았다.
"어?! 어?!! 일단 알맞게 온 거 같은데?!"
심지어 위엄있게 적을 쓸고 오는 길이다.
여기서 이런 식으로 맞아버리면 전부 꽝이다.
봐라, 인족군도 당황하지 않았나.
"맞게 온 건 맞아, 그렇다고 이런 도움은 필요 없었어."
'네?'
"우리를 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머저리로 만들지 마라."
"..."
이들에게는 내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 버텨 왔다.
'용사'라는 압도적인 힘 앞에서 버텨 왔다.
'인족'이라는 이기적인 생물에게서 버텨 왔다.
이들은 도움만을 바라는 존재가 아니었다.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고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미안, 내가 잘못했네. 그래, 그러면 같이 싸우ㅈ..."
"내가 도움을 바란 건 내 폭주에 지룡이 피해를 입지 않게 지켜 주길 바란 거야, 필요한 도움을 착각하지 말길 바라."
...네? 뭐요? 폭주요?
"내가 저 대머리보다, 강하면서 왜 족장이 되지 못했는 줄 알아?"
그거야 저도 모르죠.
인족군은 불안감을 느꼈는지, 공격을 시도하려고 접근했다.
"고유능력 [폭주], 이 능력을 쓰면 대머리보다 강하게 싸울 수 있지만, 이성이 반쯤 날아가거든. 가끔 아군도 공격하니까, 아군을 지킬 사람이 없으면 정말로 필요 없는 능력이야."
'어... 그러니까...'
"우리가 늦게 왔어도, [폭주]를 써서 이길 수 있었다는 거지?"
영약에 정신이 나간 광전사들과 비슷한.
아니, 고유능력이니 힘의 증가도 있을 것이고, 단순한 이성상실과는 차이가 날 수도 있다.
'리노, 여태까지 라나를 말려왔구나...'
그녀의 몸에서 붉은색의 투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던 투기는 압력을 못 이겨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같이 뻗어갔고, 그녀의 눈에서는 이채가 사라져갔다.
그리고.
"끼야아아아악!!!"
함성이 아닌, 괴성을 질렀다.
☆☆☆
"피.. 피해! 피해, 지룡들!"
지룡들이 내가 뚫어 놓은 길로 헐래벌떡 도망친다.
그중에서 한 지룡만 머리를 땅에 밖고 바들거리고 있었다.
라나가 타고 있던 지룡이다.
라나에게 가장 많이 맞은 지룡.
<아..안 보이니까="" 모를="" 거야...="" 숨어야="" 돼..!=""/>
용왕을 죽이는 날에 나에게 맞고 벽에 밖힌 서열이 높아 보이던 지룡.
<라나님이 눈="" 돌아가면="" 조절을="" 못="" 하신다..!="" 또="" 맞을="" 거야..!=""/>
'도대체 얼마나 맞았길래!'
겁쟁이가 다 됐다.
라나는 여전히 괴성을 지르면서 도끼로 인족을 도륙내고 있었다.
쾅!!!
투력은 점점 더 강해지고, 나는 폭주의 여파로 날아온 돌덩이를 부시면서 지룡을 지켜 주었다.
쾅!쾅!쾅!
"이런, 저 멧돼지가 또 멧돼지가 됐다."
조금 늦게 도착한 리노는 라나를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고, 눈앞의 모든 것을 찢어 놓는 라나를 보면서 '멧돼지'라고 불렀다.
다른 거인족은 그녀를 '사자'라고 불렀지만, 리노는 '돼지'라고 불렀다.
지금까지는 리노가 그녀를 부르는 '근육돼지'는 라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었다.
오히려 지방이 없는 운동녀 같은 인상이었지, 돼지는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의 사자 갈기 같은 머리와 어울리는 '사자'라는 별명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사자'도 '돼지'도 안어울려, 저건 그런 동물이 아닌 그냥 '곰'이야.'
그것도 먹잇감을 빼앗겨서 분노한 곰.
콰아앙!
'전부 찢어 버리고 있어.'
도끼에 찢기고, 발에 찢기고, 부딪힌 몸에 찢겨 나갔다.
투력도 그녀의 능력에 호흥하여서 폭주 해나갔고, 그 여파만으로 주변이 찢겨 나갔다.
"리노, 왜 말 안 해 준 거야. 라나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지룡이 위험하다고."
"응? 난 말했다. '마왕 도와줘, 돼지는 위험하니까.'라고."
"...너 이 새끼, 앞으로 말할 때는 꼭 번역기 달고 다녀라."
아니다.
그냥 라나에게 모든 걸 이야기하자, 리노는 사실 말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속이고 있는 거라고.
앞으로는 그딴 알기 힘든 말을 쓰지 못하도록.
"끼야아아아악!"
콰아앙!!!
'허허허... 근육도 폭주하네, 점점 불어 터지고 있어.'
이대로 인족이 찢겨나가는걸 감상하면서, 요새의 공성전에 대한 작전이나 생각해야겠다.
필요하다고 생각돼서 찾아왔지만, 공성전에서라도 일하지 않으면 전혀 쓸모없는 찬밥신세가 될 거 같으니까.
'강한 힘에는 강한 반동이 따라오니까, 라나도 힘을 다하면 최소 한나절, 길면 수일 동안 전력 외가 되겠지.'
"리노, 라나가 능력을 쓰면 반동은 얼마나 가지?"
"오, 신기하다. 능력에 반동이 있다는 것도 알고."
그거야, 나도 반동있는 기술은 있으니까.
곧, 라나에게 진실이 들킬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태평하면서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시간에 따라 다르다. 긴 시간을 폭주하면 더욱 긴 시간 동안 지쳐 있지."
들리는 설명으로 유추하면, 반동은 곱연산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한 시간 동안 능력을 쓰면, 나흘. 그 절반 정도면 하루다."
그러면 앞으로는 삼십 분 이상은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으면 된다.
지룡이 라나를 옮기고, 적진 중앙에서 폭주.
'보조할 만한 인물이 있으면 폭격같은 전법이 되겠지.'
"능력사용을 중단하는 법은?"
저 힘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짧으면 본인도 정신이 남아 있기에 스스로 멈출 수 있다. 다만, 완전히 눈돌아가면 답이 없다. 그냥 때려서 기절시켜라."
시켜라?
"너는 안 하고?"
"나는 더 이상 뽑힐 머리도 없다. 머리를 잡으면 미끄러진다고 비웃음 당하기는 싫다."
앗... 아아...
"미안, 그래도 내가 없을 때는 네가 멈추게 해."
"그래..."
어째서 리노의 볼에 물이 흐르는 것일까?
"끼야아아아악!"
이야, 잘 찢네.
확실히 내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우린, 우린 공성전에 대한 작전이나 짜자."
내 깨달음과 감동을 돌려받고 싶다.
사과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