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강림
* * *
태양이 머리 위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공터 중앙에는 커다란 천막이 설치돼 있었고, 천막 내부에는 그 안에 들어갈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고의 설비가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철로 되어 있는 투구는 태양 빛을 받아서 뜨겁게 달아올랐고, 갑옷들도 마찬가지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갑옷을 입은 사람들은 겉부터 노릇노릇하게 읶어 간다고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으허... 더워... 이거 벗으면 안 될까?"
"아서라, 그러다 영창간다? 가고 싶으면 벗던가."
"염병, 그냥 저기 천막안쪽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자, 지금 안에 아무도 없잖아."
"야, 그건 '영창 갔어.'가 아니라, '머리가 집 나갔어.'인데?"
구름한점 없이 맑은날은 병사들의 불쾌지수를 높히고, 불만을 토해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노오옾으신 왕들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거 알까?"
"모르겠지, 아! 마법국은 그래도 챙겨 주기는 한다고 들었는데..."
"대신 목숨이 위험하잖아,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목이 쉽게 달아난다네."
"어휴, 저쪽 마왕군도 엄격한가 봐, 아주 군기가 바짝들어가 있네."
왕국군은 이 뜨거운 날씨에 땀 한 방울도 안흘린다면서 독하다 욕했지만, 알고 보면 갑옷 내부에 있는 의류에 온도유지 효과가 붙어 있는 것뿐이었다.
오히려 '힝~ 추워... 온도조절 효과로 바꿔달라 해야징.'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병사들에게 주는 마왕에 의한 복지가 눈이 부실 정도였다.
마법국도 이 부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은 목이 쉽게 달아나서 그렇지 쓸모 있고 왕에게 반기만 안 들면 처형당할 일도 없고, 월급도 왕국군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받아 갔다.
일만 잘하면, 고수당에 앞서나가는 마법효과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직장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힘든 건 오직 왕국군 뿐.
그렇게 왕국군만 불평을 하고 있을 무렵.
"이반 메드로 드 디퍼루드 3세 전하의 행차하십니다!!!"
"로젤리아 드 글리아스 여왕님의 오셨습니다!"
왕들의 이곳에 도착했다.
☆☆☆
"하! 어이가 없군요. 마왕은 오지도 않은 건가요?"
마왕의 지각에 로젤리아가 짜증을 냈지만, 오히려 마왕은 먼저 올 필요가 전혀 없었다.
'전쟁을 당장 시작해도 아쉬울게 없는 자가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을 필요는 없지.'
요청을 하는 건, 어디까지나 인족이었으니까.
마왕이 오기 전에 먼저 안으로 들어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중 한 악마족 시종이 걸어와서 평온한 말투로 마왕의 지각사유를 답해주었다.
"마왕님은 회담의 전제조건이 되는 '군량을 받고 나서 오겠노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만약 회담이 결렬되었다고 안 주면 그만이니, 미리 받고 시작해야지, 크흐흐..'
"뭐라..! 아직 오지도 않은 자에게 제가 왜..!"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정답도 아니다.
"마왕님께서는 안 받아도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되면 국경의 병사들을 진격시키고, 본인도 직접 나서겠다고 하셨으니까요."
"!!"
이곳에 없다고, 마왕이 마왕성에만 박혀 있거나, 뒤에서 기다릴 거란 생각은 접어야 한다.
'전대 마왕은 마왕성에만 있었다고, 현마왕이 그러라는 법은 없으니까. 이 왕은 전장을 선두에서서 지휘하는 쪽이군.'
이건 군주나 장군의 성향에 따라 다르기에 정답은 없었다.
딱히 장군이어도 전장에서 직접 칼을 들고서 싸울 필요도 없고, 군주가 직접 전장에 서는 일은 더더욱 필요 없는 행위로 볼 수 있었다.
'후계가 없는 왕이 죽어 버리면 나라의 개념이 흔들린다, 본래는 지탄받아야 마땅하지만... 그 마왕을 죽일만한 인물은 없지.'
어디서 극독은 가져와서 먹이지 않는 이상에는 전장에서 죽이기는 힘들 것이다.
"좋다, 어이! 당장 군량을 가져와라!"
또 어찌 보면, 전장의 선봉에서 서 있는 왕은 병사들의 사기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니, 그녀만의 정답에 도출했다는 것 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이건 그녀의 행동에대한 자신의 대답.
"이반 왕! 왜, 혼자서 판단하고 있나요!"
"그래? 그러면 글리아스에서 준비한 것을 제외하고 가져와라!"
"쯧! 저희가 준비한 것도 가져오세요."
로젤리아도 혀를 차면서 왕국분의 군량을 가져왔다.
시종은 병사들과 군량을 상태를 신중하게 확인한 후에 통신구를 들었다.
"소피아님 전부 확인했습니다. 이제 오셔도..."
마왕을 부르려던 시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간이 일그러졌다.
'대규모 전이... 여전히 보여주기로는 화려한 걸 좋아하는군.'
일그러진 공간이 깨지면서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고작, 본인 혼자서 전이를 하는데, 대규모 전이 같은 마법을 쓰고 말이야.'
신화는 건재하다는 증명.
신화의 마왕이 강림했다.
☆☆☆
전이진을 열어놓은 상태로 찾아온 두 왕보다, 데카리비아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데카라비아, 군량을 전이진을 통해서 옮기거라 마력은 넘쳐나니까, 천천히 옮겨."
"예, 소피아님. 병사분들? 일부는 당장 군량을 옮기세요."
"예! 데카라비아 시종장님!"
데카라비아의 명령에 병사들이 긴장채로 움직였다.
...평소에 막, 괴롭히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괴롭혀도 파니아나 앨리스만 괴롭히렴...'
이왕이면 나는 꼭 좀 빼주고.
마왕성의 창고가 채워질 것을 흐뭇하게 상상하면서, 두 왕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반과...
'로젤리아.'
쿠구구구구.
대지가 떨고 있었다.
대기가 요동치고, 공터 근처에 있던 숲에 사는 동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재앙을 피하려고 도망을 쳤다.
"마... 마수가..!"
재앙에서의 피신은 마수도 마찬가지였다.
공격본능만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던 마수가 공포를 느끼며 재앙에서 멀어지려고 하고 있으니까.
오직 한 사람과 마주친 덕에 일어난 분노.
그 분노가 불러오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숲속의 생명체들이 도망을 선택했다.
'죽일까? 내가 저거를 왜 살려 두는 거지? 받을 거는 다 받았는 데,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 살려둘 이유도 없잖아, 어차피 죽일 거 지금 죽이나, 나중에 죽이나 똑같은데...'
<소피아, 너무="" 화내고="" 있다.="" 으이구,="" 그대는="" 네="" 사람이="" 없으면="" 감정조절을="" 잘="" 못하는구나.=""/>
"..."
<정말, 소피아님은="" 점잖은="" 척해도="" 가만히="" 보면="" 분노조절장애="" 같아요.="" 후후="" 소피아님,="" 우리="" 용사님이="" '분조장은="" 매가="" 약이다.'라고="" 하셨는데...="" 카르마="" 어떡해요?="" 소피아님에게="" 듣는="" 없어요.=""/>
<본녀가 보기에는="" 로자리아가="" 매를="" 맞게="" 생겼구나...=""/>
<엇..! 어...="" 데헷!=""/>
콩!
<아얏!/>
둘의 바보 같은 대화에 헛웃음이 나오면서 진정이 됐다.
'음... 생각보다 참기는 힘들었어.'
단순하게 마주친 것만으로도 투력과 마력이 야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이반은 평소처럼 큭큭대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렸고, 왕국군을 포함해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병사들이 겁에 질려서 떨고 있었다.
'마왕군도 조금은 긴장했나 보네.'
아군.
그것도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분노한 것에 긴장을 했다.
내가 그들의 머리여서 긴장정도로 끝난 것이지, 적이 었다면 인족처럼 겁에 질려 피가 식을 것이다.
그리고 로젤리아는.
'오, 용하게 실금은 안 했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지렸으면 볼 만 했을 텐데.'
내 분노를 직접받은 그녀는 공포에 입조차 다물지 못하고 딱딱거리면서 떨고 있었다.
죽음의 칼날이 목 끝까지 파고들었으니, 어련히 무서웠으리라.
'웬일로 껌딱지마냥 붙어 있던 라인하르트도 두고 왔으니 더 그렇겠지.'
철저하게 호위를 시키던 라인하르트를 놓고 왔다.
'데카라비아에게 조사 좀 시켜야겠다, 이런 자리에 그냥 두고 올 만한 인간이 아닌데.'
이내 흥미가 떨어져서, 로젤리아를 지나치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자네가 무엇의 분노를 깨운 것인지 알겠나?"
뒤이어서 따라오는 이반과 함께.
☆☆☆
'뭔가요.. 도대체 방금 그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그가, 아니, 그녀가 자신과 마주친 순간 뿜어낸 힘은 여지것 살면서 본 힘중에 당연히 으뜸을 차지 할 정도였다.
그것도 자신을 노리는 힘중에서.
'전대마왕도, 그 당시의 괴물도 저렇지는 않았어요!'
그거야 당연하게 둘 다 자신을 노린 적이 없기에 그렇고, 분노도 한 적이 없기에 몰랐을 뿐이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라인하르트가 곁에 있었으면 달랐을까?
어쩌면 똑같았을 것이다.
그가 '영약'을 완전하게 흡수하도록 건드리지 않고 두고 왔지만, 그가 있었다 한들 더욱 큰 분노를 샀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건재? 아니, 확신은 없어요. 하지만 마왕을 제외하면 누구도 손댈 수 없던 시절만큼은 회복한 것 같네요.'
그녀가 대비하기 이전에 일을 끝내려고 했지만, 이미 크게 늦은 상태였다.
그녀는 모든 대비를 하고 물밑에서 고개를 내민 것이었다.
습격자라고 해서 그녀의 존재를 배제 했었다.
설마 목이 잘려 나간 존재가 다시 돌아올 줄 알았겠는가.
마왕을 자칭하는 자라고 해서 용사를 소환했지만, 그들은 쓸모가 없었다.
이미 완성된 자에게 만들어져가는 자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금 더 일찍 그녀의 존재가 괴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그녀가 다이너령을 습격했을 당시에 바로 사람들을 보냈으면 위험을 사전에 정리했을 것이다.
'저는... 우리는 인족의 영웅이에요. 제 행동은 어디까지나 인족을 위해서 움직이죠. 그래요, 마왕 당신이 얼마나 세계에 위협이 되는지 인정하겠어요.'
한 걸음.
겨우 한 걸음을 땐 것이지만, 자신에게는 공포를 이겨 냈다는 증거였다.
겨우 움직이기 시작한 다리가 천막 안, 회담장으로 향했다.
'제가 다시 한번 마왕에게서 인족을 구하겠어요.'
적어도 라인하르트가 그녀와 대적할 정도로 성장할 때까지.
'그깟 머리 좀 숙여주죠, 마왕 당신은 라인하르트가 마력을 깨우쳐 간다는 걸 알기에는 아직 일러요.'
그녀와 가장 가까이에서 싸워나간 라인하르트만이.
'당신을 이길 유일한 존재입니다.'
마왕이 강림한 대지에 회담이 열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