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를 구한 용사는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된다-109화 (109/156)

〈 109화 〉 전야

* * *

집무실 창밖에는 달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배치는?"

"예, 소피아님. 국경에는 당장이라도 전쟁을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배치가 끝났습니다."

데카라비아가 달빛을 받으며, 선언했다.

"'인족'에게 불리한 협상 테이블을 모두 마련했습니다."

준비가 끝났다고.

☆☆☆

수일전.

"언니, 마법국쪽의 동향보고예요."

"응."

리리스가 건네는 서류뭉치를 받아들었다.

이반이 새롭게 등용한 인물들과 기존인물들에 대한,그중에서도 특별히 주의를 요하는 인물들을 모아 놓은 자료였다.

'마르스...는 처음 듣는 사람이고, 그레고리라...'

로마노프의 자식.

그의 밑에있는 마탑원들.

'운 좋게 살아남은 자들인가?'

내가 이반이었으면 그들을 이용해서 새로운 영약을 개발 시켰을 것이다.

'나도 영약은 아니지만, 효과 좋은 물약들을 개발시키고 있으니까.'

확실히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영웅의 영약, 그 이상의 것이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어디까지나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알렉스는 오래도록 축척된 영약들과 영웅의 영약, 그리고 직접 신혁이를 물어뜯은 것이 겹쳐서 일어난 기적이었어.'

만들어진다면, 광전사를 그저 살인충동을 조절하기 힘든 자들로 낮추는 것이 한계일 거다.

그래도 광전사만큼 군대에 방해되는 존재가 아닌 만큼, 좀 더 효율적인 전투가 가능하리라.

'어디까지나 광전사만큼이지, 잘 훈련을 받은 병사만큼 규율을 지키지 못하면 영약의 효과를 끌어내지 못해...'

거기서 이 마르스라는 인물에 눈이 갔다.

말 그대로, '잘 훈련 받은 병사'는 그 일 것이다.

'음... 지휘에도 능통하다, 검술도 기사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의 실력은 된다, 프레디와 비슷한 신동이라는 느낌인가?'

아니면 조금은 다른 계통.

검술은 동년배에서 우수, 오히려 전투를 지휘하는 것이 뛰어난 인물일 수도 있다.

'프레디는 지휘쪽은 평범해 보였으니까, 신혁이가 더 뛰어났지...'

그렇게 생각하면 마르스란 인물에게 영약을 먹이는 것은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생각된다.

"일단, 이반과 마법국의 위험도를 2단계정도 높이자. 리리스? 글리아스에 대한 소식은?"

"여기요, 언니."

...?

"이게 다야?"

"...그러게요, 제 생각보다 얇아서 놀랐어요. 설마 비아가 제대로 조사를 못한 줄 알고 재조사를 시켰어요."

"그래서 이거라는 거야?"

"예, 심지어 제가 받았을 때도, 이미 수차례 확인을 마친 상태라고 했어요."

어째서?

어째서, 그 여자가 지배하게 된 왕국의 정보가 이거뿐인가.

'정보통제를 확실히 한 건가? 버틀러의 작품? 아니야, 그 집사는 절대로 주인의 권위 이상은 넘지 안으려고 했어.'

보이는 건, 현재 로젤리아가 국민들을 반복적으로 세뇌하고 있다는 거였다.

오직, 내가 타락했다.

내가 욕망에 사로잡혀서 인족을 멸망시키려 한다.

세계수가 선언했다, 내가 세계를 불태울 악이라고.

심지어 서민인 척 접근해서, 그 사상에 동조시키는 자들도 만들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사상개조.

지금 로젤리아가 나를 죽이려고, 제 국민의 사상을 개조한다.

"사상을 완전하게 지배하려면 빠른시일 안에는 불가능할 텐데, 이반과 같이 공포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면 더더욱."

"정말, 저와 지략전을 펼치던 사람이 맞나요? 빠르게 바뀐 사상은 빠르게 무너진다는 걸 모를 수가 없을 건데..."

그녀의 말이 맞다.

그날 이반이 병사를 바로잡을 수 있던 것은 나보다 그가 더욱 큰 공포로 자리 잡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하루 이틀 동안 공포의 폭군으로 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그만의 기예였다.

똑같이 오랜 시간 동안 폭군으로 있지 않은 존재가, 학살도 아닌 세뇌만으로 국민을 일으킨다.

"전쟁터에서 혼란에 빠지면 금세 풀리겠어."

생각했던 것, 이하의 조사가 왔기에 나는 리리스에게 더욱 주의하라는 지시와 삼국이 만나기 전에 전선배치를 끝내라고 했다.

☆☆☆

다시 전야.

그 뒤로 알게 된 글리아스의 정보는 한 가지 말고는 없었다.

그녀가 철저하게 정보를 통제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생각했던 그녀의 지휘는 전부 요행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았다.

단순하게 위험도를 최상으로 높이고, 경계만 할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세뇌는 달라지는 것이 없어, 마리아는 적어도 사람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서, '설득'시켰는데 말이지..."

내가 잠을 아껴가면서 준비를 했다.

부디 요행이 아니길 빌겠다.

"소피아님, 제 주군이시여. 제가 볼 때는 이반 왕의 정보통제가 훨씬 뛰어난 것 같습니다."

'그래, 이 이반은 뭐 하나 지는 것이 없네.'

산처럼 쌓여 있는 정보중에 중요한 것은 얼마 없었고, 그 조차도 자신의 손에는 벅차서 등용한 인재목록이라는 소식이었다.

'음... 살아남은 마탑원으로 하는 일이 뭔지만 알면 한은 없는데, 아쉬워.'

그는 정보속에 정보를 숨긴 것뿐이다.

내게 주어진 정보는 그가 공개하고 싶은 만큼만.

이 산더미 같은 조사서가 '자네가 짐에게 보여 준 정보도 이 정도가 아닌가?'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는 건가?'

내가 하지 않은 일은 그는 했다.

비밀을 알게 된 이들을 모조리 죽여서, 비밀로 만든다.

혹은 주종계약으로 묶어서, 절대적이고 확실한 '명령'을 내린다.

"'비밀은 두 사람이 알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라... 내가 그토록 주의 하던 일을 이반은 실현 시켰어."

내 전야는 더욱 길어질 것만 같았다.

☆☆☆

밝게 빛나는 달과 별빛들.

마왕성에서는 볼 수 없는 별빛들이 공터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왕령에 존재한다는 독기가 실감날 정도였다.

'그 독기를 뿌린 범인이 내 곁에 있군, 나중에 그에게도 정화를 도우라고 해야겠어..'

그 당시에 살던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에 디아블로랑은 무난하게 지내고 있지만, 과거 세상을 침략하려 했던 마왕이니만큼 깊게 지내고 있지도 않다.

그냥 그럭저럭인 관계.

그 정도 수준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시대의 사람이 본다면, 분노하면서 달려들겠군.'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에게는 조금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나도 소피아를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는 그랬으니까, 대륙의 역사를 통틀어서 정말로 악한 마왕은 디아블로, 그 말고는 없었지.'

"프레디, 소피아가 이곳을 회담장소로 지목했다고?"

"아.. 그렇다고 하네, 저쪽의 병사들은 우리처럼 미리와서 대기 중이고, 각국의 왕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일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이 공터.

바닥에 타고 남은 흔적은 어느 정도 지워져 있었다.

'그래도 전부는 아니다.'

건물을 지탱했던 기둥들은 흔적이라도 남아 있었고, 이 '공터'가 마을이었을 당시에 살던 주민들의 시신은 공터 끝 쪽에 '누군가'가 공동으로 무덤이 만들어 주었다.

'그 '누군가'는 내일 오시겠지, 아니면 나랑 같이온 프라이드 님이거나.'

한 명의 마법사가 지시하고, 인족의 병사들이 불태운 마을.

소피아가 선택한 장소는 자신이 살아왔던 마을이었다.

그 마법사를 자신의 손으로 처단했어도, 그날의 기억에서는 완전하게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아직도 손끝이 떨린다, 내가... 내가 짊어져야 할 생명들이다.'

무고한 마을 주민이 죽어가는걸 막지 못한 자신이 짊어질 생명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 게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적어도 이 전쟁을 끝으로 왕들의 악의를 위해서 희생되는 사람이 없어져야 한다."

내 말에 신혁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했다.

"속이고, 이용하고, 끝에는 폐기처분하는 그런자들은 처벌을 받아야지..."

☆☆☆

"로젤리아 님."

"후후후... 라인하르트, 재료는 준비 되었어요. 굳이 약하고 쓸모 없는 것을 키울 필요 없이, 처음부터 강한이에게 힘을 몰아주면 될 일이었습니다."

테이블에 '영약'을 늘어놓았다.

괴물에게서 추출했던 혈액의 원액.

자신과 라인하르트가 가지고 있던 분량들.

그리고...

"읍! 으읍! 읍!"

몸이 묶인 채로 바닥을 뒹굴고 있는 '영약'의 산재료.

"각오는 되셨나요? 앨리스가 가기 전에 만든 마법진... 효율이 좋아 졌어요. 영약이 둘씩이나 소환되니, 하나는 섭취하고, 하나는 '무기'로 쓰면 되니까요. 후후후..."

"!!! 흐읍! 읍읍!"

'얻은 소식에 의하면 분명히 남성 쪽을 섭취했어요.'

"저의 라인하르트, 부디 마력을 얻고 저의 충실하고 강력한 검이 되어 주세요."

"여왕님의 뜻대로..."

라인하르트가 병에 들어 있는 혈액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뿌직.

콰드득.

"흐으읍..."

"저의 사랑스러운 라인하르트? 드시기 편하게 뭉개 놓았습니다. 어머나? 여성 쪽 도구는 실금을 해 버렸네요. 후후후..."

저런 광경을 본다면 명령에 충실한 개가 되려나?

'가능해요, 라인하르트만... 그만 마력을 깨우치면 이길 수 있어요.'

☆☆☆

'짐에게 더 필요한 시간은...'

서류를 들여다 보면서 마왕에게 어떤 식으로 원하는 시간을 받아 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자신이 말해서는 안 된다.

마왕의 입에서.

"오직, 마왕이 직접 꺼내게 만들어야 돼. 그러기 위해서는 짐에게 그 시간이 촉박하도록 비추어야 한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왕도 인족령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회담의 조건인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즉시 전쟁에 임할 수 있는 전력들을 국경에 배치해 놓았다.

'안 해 놓는 게 멍청이지, 협상이란 얼마나 자신이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런 협박정도야, 아직은 귀여운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흠... 그러면 역시 짐이 원하는 답을 받도록 끌어내야겠군."

서류뭉치에 과거부터 작성된, 그의 기록을 모조리 살펴본다.

이 피없는 전장의 승리자가 누가 될지는...

'내일이 되면 밝혀질 것이다, 마왕이여.'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