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군주의 차이
* * *
넓은 테이블.
그곳에는 왜소한 한 남자만이 앉아 있었다.
"흠... 두 왕이 즉위를 했다. 하나는 모두의 인정을 받아서 건국을 했고, 하나는 찬탈자라..."
<예, 전하.="" 로젤리아="" 왕녀는="" 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실망이 크군."
<전하, 전하께서="" 로젤리아="" 왕녀에게="" 실망하실="" 필요는...=""/>
자신의 손에 있는 와인잔을 굴리면서 답을 해주었다.
"짐에대한 실망이다, 어찌도 암군을 못 알아보고 폭군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했을까."
로젤리아는 이미 다음 왕으로 내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마왕의 무력이 있었다고 해도, 그녀와 그녀의 동료가 이룩한 업적은 대단했으니까.
용사를 이용해서 인류를 구했다.
거기에 한동안 '사냥'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력석을 얻어냈다.
거기까지만 해도 글리아스가 국가 간의 주도권을 가지게 될 만큼의 업적을 만든 것이다.
'짐의 나라는 앨리스, 교국은 마리아, 멸망한 지저국은 프로그, 그린우드의 파니아.'
처음부터 대국인 디퍼루드는 크게 바뀌지 않았어도, 지저국과 그린우드의 위치는 꽤나 많이 바뀌었다.
'교국은 신도들로 인해서 위세를 떨치는 놈들이었으니, 이쪽도 바뀌는 것은 없고.'
두 국가가 대국에게 발언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위상을 얻었고, 글리아스는 주도권을 얻었다.
'그 주도권을 주는 팔다리가 모조리 잘려 나간 상태에서도 이끌어가려 한다, 제 힘을 넘어선 일이라는 것을 판단하지 못하다니.'
"자네는 성군과 폭군, 그리고 암군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나?"
<...성군은 무릇,="" 백성들을="" 살피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자라고="" 생각="" 됩니다.=""/>
평화로운 시대라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지금처럼 전시라면 조금 다르지, 그냥 전쟁을 최대한 적은 피해를 입은 상태로 승리하면 그게 성군이다."
처음부터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편이 좋지만, 전쟁이 필요할 때에는 사상자가 얼마나 있냐에 따라서 왕의 평가가 갈린다.
"그러면 폭군과 암군은?"
<폭군은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고,="" 잔혹하게="" 처형하고,="" 충언을="" 귀담아듣지="" 않는="" 자입니다.=""/>
"하하하! 그래! 가까이에 짐이 있으니, 답을 찾기 쉽겠군!"
<전하는 충언은="" 들으십니다.=""/>
그 충언을 하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니 문제다.
'다들 제 목숨은 보존하려고 충신보다, 간신이 되려고 하지.'
대신 우수한 인물을 판단하기는 쉽다.
목숨 걸고 발언하는자들은 대부분이 우수한 충신이 될 가능성이 넘쳐흐르니까.
<암군은...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 백성들을="" 죽게="" 만드는="" 자입니다.=""/>
"자네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짐의 생각과는 다르구나, 잔혹을 파악하지 못한자. 그게 암군이야."
폭군과 암군의 차이.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이 행한 일을 파악하지 못한 우둔한자.
"로젤리아는 암군이다."
'마왕이여. 자네는 과연 성군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짐처럼 편리하고 끊을 수 없는 마약과도 같은 잔학을 행하는 폭군이 될 것인가...'
적어도 그는 암군은 되지 않을 것이다.
☆☆☆
마왕성 회의실.
"마왕님, 시연 님과 연계해서 만든 약품의 시범작이에요."
"빠르네?"
연구를 시작한지 며칠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시간 안에 시범작을 만들기는 무리가 있을 것인데...
"혹시 또 야근 했어?"
"아니요, 시연 님이 만들어 주신 '주사'를 토대로 연구했으니까요. 아직 시범작이고 해열제 기에 빠르게 만들 수 있었어요."
다행히 야근은 안했던 것 같다.
나는 일단 시연이 만든 주사의 약물들을 연구, 제작하길 부탁했고 연구원들도 가볍게 알겠다고 했다.
'엘리트라 불리는 마탑출신이라 그런가? 정말로 상층으로 올라가지 못한 건 실력 문제가 아닌 성정탓인가 보네.'
쾅!
"헨리! 놀러 가자!"
"어?! 어... 레이나? 그, 나는..."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레이나.
아슈키를 끌고, 헨리를 찾으러 왔다.
"나는 인질이라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는데..."
이반에게 담보로 맡고 있는 인질이었다.
레이나랑 동년배로 그 아이도 어른들만 있는 주변에서 유일하다 싶은 동년배를 만나서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아슈키는 엄밀히 말하면 동년배는 아닌데...'
"다녀오지?"
"에? 그 마왕 소피아, 제가 마왕성을 멋대로 돌아다니기에는..."
"상관없어, 다녀와."
"예, 가자 레이나?"
"응! 히히히."
어린아이 둘이 손잡고 놀러 다니는 것도 보기는 좋다.
"...아버지, 아직 아이잖아요. 그렇게 누구 죽일 듯이 노려보지 마세요."
프레디와 훈련의 보고를 하러 온 아버지가 가죽을 벗기겠다는 듯이 노려보는 것만 아니면.
"감이 안 좋아, 감이... 막내딸 마저 빼앗길 거 같은 기분이야."
...이 아저씨는 한동안 감시 좀 해야겠다.
"그래, 프레디. 보고는 네가 해야겠다."
"네, 소피아. 그런데 저대로 둬도 정말로 상관없는 것입니까? 아마도..."
"그래, 인질을 겸해서 보낸 이반의 세작이겠지."
세작을 보내는 건 딱히 신기한 일이 아니다.
적의 정보를 자신만 염탐한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못해서 자만에 빠진 인간들이나 하는 일이니까.
버틀러도 마왕령 어딘가에 남아서, 마왕령의 소식을 로젤리아에게 전달하겠지.
이 휴전은 최소한 한 달은 유지되기에 그동안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전부 어떻게든 많이 모아야 한다.
"그러면 왜 그 아이를 자유롭게 두는 것입니까?"
"어머나, 프레디 님. 그거야 간단해요, 당연하게 줄 정보는 주고, 숨길만한 정보는 숨기기 위해서예요."
적에게 아무 정보도 없을 시에는, 상대는 완전한 미지의 적에게 극도로 경계한다.
거기에 저런 식으로 대놓고 보내는 세작이 있으면, 진짜 세작은 숨겨지는 법.
'앨리스에게 들은 마탑원의 증명서, 설마 그게 감시용일 줄은 몰랐지...'
연구원 다섯이 습관처럼 착용한 '목걸이', 그것이 디퍼루드 왕가가 마탑에게 건 제한이자, 감시용 마도구 였다.
'마탑의 힘이 왕가를 넘지 않기를 바란 도구.'
잘못했으면 우리의 연구자료가 모조리 넘어갈뻔했다.
"이반 왕도 기밀사항은 포기했을 거예요. 완전하게는 안심할 수 없지만요."
"리리스..."
"후후후, 프레디 님? 왜 그러시나요? 혹시 '전투'에서는 천재성을 발휘해도 '전쟁'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것이 분해서? 아니면..."
리리스의 장난기 어린미소가 괴롭힘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도 미련이 남으신 건가요?"
"아닙니다. 그 부분은 포기한지 오래고, 사람이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으니 전쟁에 대한 부분도 알아가면 됩니다."
프레디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회의 중에는 자중하십시오. 소피아, 당신도."
회의실 상석에서 나를 무릎 위에 앉히고 껴안고 있는 리리스와 나에게.
"크흠! 역시 그래야겠지?"
꽈악.
안 놓아주는 데요?
"프레디 님? 오늘은 제 차례인데, 포기하란 말씀이신가요? 어림없어요."
다른 인물들은 익숙한 광경에 이미 포기한 눈치였지만, 아직 프레디는 아니었다.
'나도 요즘 자연스럽게 안기지만, 역시 때와 장소는 가려야지. 하하하...'
나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서 양손을 벌리는 리리스의 무릎에 앉아 버렸다.
역시 습관이란 무섭다.
"하아... 알겠습니다."
'포기하지 말아줘!제발 포기하지 마, 넌 할 수 있어!'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프레디도 깔끔하게 포기한 듯싶다.
"그래도 이반 왕은 자신의 자식을 인질로 보내다니, 아무리 확실한 인질이어도 이건 좀..."
'너무한 듯싶습니다.'작게 중얼거린 말은 내 귀에 확실하게 들려왔다.
"조금 다르지, 이반의 유일한 자식이라고 했나? 그가 아직 왕자였던 시절에 사망한 아나스타시아 왕자비와의."
내 물음에 리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맞아요, 언니. 세간에는 헨리를 출산하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잔학행위가 시작된 시기가 그 시점인 것을 보면 아마도 암살일 거예요."
그는 그 시점을 기준으로 사람이 돌변했다.
미쳐 버린 왕자가 벌인 학살극.
'결과적으로는 디퍼루드의 왕가는 헨리와 이반말고는 남지 않았지.'
"그렇다고, 자식까지 도구로 보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뿐인 자식이라면 더더욱."
"그게 조금 다르단 거야, 이반 그 양반이 바보는 아니지. 오히려 여우 같은 사람이야, 지금까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을 모조리 처형했으니까."
마법국의 절대적인 공포로 자리 잡을 정도로 여우 같은 정치를 펼치는 자.
"그 정도로 잔머리를 잘굴리고 하나뿐인 아들조차 살려온 사람이 단순한 인질이나 세작으로 나에게 보냈을까?"
"다른 뜻이 있다는 소리입니까?"
물론.
"헨리는 인질로 있는 동안은 안전하지, 그리고 내가 어린아이까지 죽일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는 것 같고."
정보를 얻으면서, 대륙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에 아들을 보낸 것이다.
"내가 있으면 '인질'인 헨리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독살의 위험도 없다. 덤으로 정보까지 얻는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만한 가치가 떨어지는 인질도 아니다.
한 명의 인질로 몇 개를 얻어가는지 모르겠다.
"폼으로 폭군을 하면서 오래도록 살아남은 것이 아니란 거다."
"그러면 이반 왕은 자식을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까?"
확신은 아니지만.
"그렇게 의심할 수 있지, 오히려 이반은 그렇게 비추는 것을 환영할 거야."
자식으로 왕을 협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길 바라며.
한 가지 일을 할 때, 당장 앞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상대할 때가 제일 머리 아픈 거야, 전쟁에서 압도적인 무력만이 아니라, 지략전. 책사들에게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있으니까."
편리한 공포정치를 하면서도 그 공포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
"이 양반은 폭군이 되지 않았으면, 성군이 됐을 거라니까..."
어려운 길보단, 편한 길을 택한 그의 잘못이다.
그도 자신의 최후가 깔끔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린 듯하다.
'안 그러면 나에게 헨리를 맡기지 않았지, 아무리 생각해도 3할 5푼은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