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올때는 가볍게
* * *
"소피아 한테 죽을뻔한 게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하하."
"크흡! 미... 미안... 너를 좀 깜빡했어, 하하하..."
마탑을 세상에서 소멸시킬 때, 프레디는 목숨을 건 대탈출을 시도했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고 하면.
<하하하! 이몸이="" 말했지="" 않나?="" 마력의="" 흐름이="" 심상치="" 않으니까,="" 죽기="" 살기로="" 도망치라고.=""/>
여지껏 밀어두었던 디아블로와 사용자 계약을 단번에 할 정도였으니까.
"정말 면목없습니다!"
"하하하. 살아 있으니 상관없습니다. 삐끗했으면 죽을 뻔했지만..."
뒷끝이 심해 보인다, 이거 잘못하면 평생을 놀림당할 정도로.
'아니, 그래도 정말 위험했으면 검순이가 알려 줬을 건데.'
로자리아도 그의 존재를 말했을 것이며, 나는 프레디를 데려오고 마법을 시전했을 것이다.
그가 탈출을 감행했을 시기는 앨리스가 마법을 시전했을 때부터니까.
"그건 이제 넘어가고, 10위계입니까... 그런 게 정말로 있는 영역이었을 줄이야. 말로는 들었지만 두 눈으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응, 잘 사용안하지. 그거 한 방 날리면 쉽게 정리 되지만, 그만큼 적에게 내 위치를 들키기 쉬워지고, 또 노려지니까."
마력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 위계였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정리가능하고 일부는 지형이 바뀔정도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누가 전투 중에 마력 모으면서 '나 필살기 쓰니까, 기다려?' 이러고 있으면, '응! 알았어!' 이러지 않지.'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거, 먼저 공격하지 나중에 공격하지 않는다.
<남편, 우리="" 이제="" 한="" 달="" 동안="" 뭐="" 해?=""/>
"안 돼, 닉스. 시간이 한 달이 생겼다고, 놀 수는 없어."
종족별 대표들을 모아서 현 마왕군의 일을 논하고, 각자의 능력에 맞게 업무를 배분, 국경지역의 경계병들의 배치등등할 일이 참 많이 있다.
<남편, 한="" 달="" 동안="" 뭐="" 해?=""/>
"..."
'가불기인가?'
아니다, 모든 걸 들어주면 언젠가는 정말 답도 없게 변한다. 가끔은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닉스."
<쓰읍! 우리가="" 남편="" 일할="" 때까지="" 건드릴="" 거="" 같아?="" 남편,="" 혼나.=""/>
아... 쉴때 뭐 하냐구요? 진작 말씀하시지...
"그건 가족끼리 상의해야지?"
군 회의보다, 가족회의가 더 급해 보이는 건 어째서 일까. 혼나면 또 묶일 수도 있다. 그거는 사양이다.
'사실 조금은... 헛! 내가 무슨 생각을!'
"크흡! 닉스, 가족일은 가족회의로 결정하자. 그래도 앞으로 있을 업무에 지장없게 해야돼?"
<응, 우리가="" 더="" 열심히="" 할게.=""/>
일단 지장이 올 수 있을 정도로 하시겠다는 거군요.
살살해주세요.
☆☆☆
"그렇게 되었다. 로젤리아 왕녀여, 한 달 뒤까지 준비해 둬라."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그런 일을 혼자서 진행하시다니요! 뭘 멋대로..."
이반이 글리아스로 돌아가려던 자신을 붙잡고 어이가 없는 소리를 했다.
'마왕에게 줄 군량을 준비하라구요? 이게 지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요?!'
멍청하다.
저 왕은 너무 멍청하다.
어찌 우리가 마왕에게 군량을 줘야 하는 가, 이성재 그자가 군량이 부족한 것을 왜 적국인 우리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군."
"당연하죠! 왜 우리가...!"
"그럼 준비하지 말거라. 거기도 딱히 부족한 것은 아닐 거니까."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요?!"
"준비하지 말라고 했다. 그 괴물이 약해졌다? 웃기는군. 마탑을 10위계 마법으로 주변과 함께 소멸시켰다. 말 그대로 '소멸'이었지."
"!!"
10위계, 그건 괴물이던 그도 몇 번 사용한적없는 위계이다. 하지만 그 위치까지 왔다면 상당히 위험하다, 그가 10위계 마법을 사용하지 않던 이유도 그저 한 번 시전하는데 오래 걸린다는 이유뿐이었으니까.
'아니요. 아직 몰라요. 그런 걸 여러 번 시전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아무리 그 괴물이라도 10위계를 여러 번 시전할 리가 없지 않나요? 잔혹한 군주라 불리는 분이 이리 겁이 많아서야, 호칭이 울겠어요. 후후후."
"하... 우위에 서 있는 기분인가? 그러면 동맹은 파기하고 자네 혼자서 그를 감당하라. 짐은 3할 5푼의 군량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과 그와의 회담을 살 것이니, 어차피 전쟁이 일어나는 거 최대한 늦으면 나야 대비할 시간도 많아지고 좋지 않나."
동맹파기, 이 무슨. 인족이 전부 일치단결해야 할 이 시기에 간단하게 파기라니.
"믿을 수가 없군요! 이반 왕, 그대는 국가 간의 약조를 뭐라고 보시는 건가요. 지금은 인족이 전부 연합해야...!"
"그래, '연합'을 해야지. 연합을 하지 않으면 대적 불가능한 괴물을 두고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벌어 주었다. 그 뒤에 회담때 또 얼마나 밀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천천히 다가오는 이반을 라인하르트가 막아서려 했지만, 자신은 그를 막으면서 물렸다.
"우리는 최대한 시간을 끌고, 최대한의 군사를 끌어모아야 한다. 한 달이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지, 지금 당장 그와 대적 할 수단이 있나? 그러면 자네는 준비하지 말아라. 아니면 준비해라."
이반의 눈빛이 차가워지고 있다.
그에게서 자신의 평가가 떨어져 가는 기분이었다.
"짐은 네 신하가 아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지, 네 욕심에 사라지는 건, 네 나라다. 네가 당장 전쟁을 하자고 하면 그는 오히려 좋아하겠군. 글리아스가 그의 손에서 유린당하는 동안에 다른 나라들은 준비할 시간을 벌어서 좋고."
눈앞에 있는 왕은 정말로 그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진정으로 잔혹하기에 한 나라를 미끼로 던질 수 있는 왕, 지금이 왕에게 글리아스의 존재가치는 그 수준일 것이다.
"당신이 그러고도 무사할 거 같나요? 우리에게는..!"
"너희에게는 이제 압도적인 전력이 없다. 너희가 전대 마왕에게 맞설 수 있게 해주고, 나라간의 주도권을 가지게 만든 용사는 현 마왕이 되었지. 세상은 네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로젤리아 왕녀. 대륙의 패권을 가지고 싶으면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야지, 네 용사파티는 옆의 기사만 남은 상황이다."
"..."
"짐을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아라, 짐은 폭군일지언정 암군은 아니니까."
그 말은 자신이 암군이란 말인가.
"동맹의 주도권을 얻고 싶어서, 판단을 그르치지 말라는 소리지. 짐의 결정에 무조건 반발하려 들지말고 한 번은 생각을 해보아라."
"...돌아가죠, 라인하르트. 이반 왕 추후에 다시 논의하겠어요."
그때는 당신의 선택에 끌려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
"언니!"
"흐응... 소피아, 소피아, 소피아..."
"오빠아.. 하아... 왜일까? 굉장히 오랜만인 거 같아. 왜 떨어진 거야? 응? 오빠? 왜 이렇게 오래 떨어지려고 한 거야?"
"쓰으으읍! 하아..."
마왕성에 도착하자 바르게 정렬한 용족들과 함께 날 맞이해준 것은 그녀들이었다.
내가 도착한 즉시 나에게 달려왔고, 자신들의 담당구역을 유린, 추행중이었다. 심지어 계속 같이 있었던 닉스도 나에게 다가와서 냄새를 흡입중이었다.
"하앙! 잠깐만... 보는 사람도 많으니까..!"
"오빠, 보라고 해. 우리는 오빠성분이 부족해져서 그런 거야. 응? 설마 우리가 아니고 다른 누군가가 마중나왔으면 했어? 응? 누구야? 말해줘 오빠아."
앗... 눈 돌아갔다. 얌전히 있어야지.
아버지는 이 익숙한 장면을 무시하고 신혁을 업은 상태로, 용족에게 그를 눕힐 만한 곳을 물어본 채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프레디와 올리비아는 네 명의 여자에게 유린당하는 나를 보면서, 굉장하게 놀랐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푹.
"끄아아아악! 내 눈! 내 누우운!"
"깜짝이야, 마왕 씨가 당하는 거 보고 잠깐 정신을 놓았는데 프레디는... 아니, 남자는 저런 거 보면 안 돼. 마왕 씨를 생각해서라도. 알았지?"
순간 정신을 차린 올리비아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프레디의 두 눈의 시야를 없애버리고 이야기했다.
다른 용족들도 눈을 가리면서 이 장면을 절대로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두 눈을 공격당한 프레디의 신음과 나의 신음을 듣지 않겠다는 것처럼 귀도 막았다.
...귀가 저기 있나?
"소피아 님, 오시자마자 명령을 내리실 줄이야. 현 왕족들의 행동을 파악하고, 인족이 보유하고 있는 총 군량의 수 입니까? 알겠습니다. '저' 앨리스가 소피아 님에게 있으니까 일이 남지요."
자... 잘못했어요!
역시 데카라비아는 조금 화가 난 것 같다. 아니면 제 취미생활을 풀 수 있는 파니아를 달라는 딜이거나.
"하아.. 한 달가안! 파니아를 데카라비아 마음대로 써."
"?!"
"주군의 아량에 이 데카라비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
내 말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데카라비아와 혼자만 절망한 표정으로 주저앉은 파니아.
그 둘의 조합에도 놀라버린 올리비아는 이내 포기한 것인지 쓴웃만을 지으면서 우리에게서 눈을 돌렸다.
내 마왕으로서의 위엄이 다 날아갔다.
"언니, 마왕으로서 정식으로 옥좌에 앉는 건 마왕군들이 모이면 하죠. 오늘은 쉬어요. 여기는 침실도 있으니까요. 후후후."
"어? 리리스, 그거 바실리스크가 치웠다고 했어. '용족의 성에 인족사이즈 침실이 왠말이냐.'라고 하면서."
'노란 도마뱀이 날 도왔다! 어째서 만 하루도 안떨어진 아내님들이 눈부터 도셔서는 날 여기저기 성희롱 하실 때부터 큰일이다고 느꼈는데! 고맙다, 바식아.'
"하하... 그러면 어쩔 수 없네, 다음에 하자. 응?"
여러분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요.
"야, 도마뱀들... 다 나가, 우리 오빠가 누구 있으면 하기 싫다잖아."
시연의 말에 모든 용족들이 몰려나갔고, 올리비아도 프레디를 끌고 가면서 '재미있게 즐기세요.'라고 말했다.
힘들게 즐기는 건데요?
"헤으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