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개전의 봉화
* * *
공격용 마도구들에서 쏘아진 마법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 틈을 타서 마법사는 영창을 했고, 자신은 그 마법사의 행동을 방어만을 하면서 지켜보았다.
'저 마법사는 압도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딱히 대단할 것도 없다.'
마법사의 전투는 거리유지가 관건이었다. 전장에서는 뒤쪽에서 강한마법을 시전하고, 이런 식의 소수의 전투는 피하는 것이 상책.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위계가 낮은, 빠르게 시전할 수 있는 마법들로 적에게 데미지를 축척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마법사는 투력으로 싸우는 사람과 근접전에서 불리하다고들 했지.'
기사도 그 반대의 경우는 불리한 것처럼, 저마다 장점이 있는 거다.
소피아가 말했다, 마법사가 거리를 두고 있다면 단번에 거리를 좁혀서 베어내거나, 자신도 똑같이 거리의 불리함을 줄이는 공격을 하라고.
'아니,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지만, 모두가 당신처럼 가능한 건 아닙니다.'
'당연하지, 나는 밥아저씨고, 너희는 아니고. 솔직히 너도 밥아저씨 꿈나무 같지만...'
밥아저씨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대단한 일을 참 쉽게 해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 같았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질문하자, 그녀는 왜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며 혼을 냈다.
'그런 건 혼자서 찾아야지! 너만의 방법으로. 뭐, 나는 투력을 쏘거나, 무기를 던지거나, 그것도 아니면 마법사가 거리를 벌리기 전에 따라다니면서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지. 이것들이 참 쉬워.'
그게 되면 전장에는 마법사가 없을 것이다.
'아니면 착각하게 만들던가, 이것도 상대방과 자신의 실력 차이가 나야 가능한 방법인데. 실력은 네가 위인데, 다가가기는 힘들다? 그럼, 마법사가 압도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 줘, 방어하는 것이 고작이라는 모습으로.'
프라이드도 그렇고, 소피아도 그렇고 안 알려줄 것처럼 하면서 친절하게 전부 알려 준다.
"그것이 마법사의 영역이라면 더더욱..."
"크하하하하! 고작 방어밖에 못하느냐?! 무슨 '당신은 저 마무리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냐? 하하하하!"
그와 나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가고 있었다. 마법사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한 번에 거리를 줄일만한 위치가 될 때까지.'
하나의 골렘이 다가왔다.
후웅.
아까 전의 자칭 '궁극의 고렘'보다는 떨어졌지만, 이 골렘도 충분히 쓸 만했다.
'파괴력은 적당하고, 속도도 적당해. 전쟁 준비로 만들어졌다는 양산형 골렘이군.'
단순한 돌진, 공격, 복귀, 피아판별 정도만 입력되어 있는 단순한 골렘이지만, 난전이 될 수 있는 전장에서는 딱히 그 이상의 명령은 필요가 없었다.
잠깐동안 골렘의 공격을 피하면서 마법사에게 접근했다.
챙강!
적당하게 접근했을 때, 코어를 부수고 다시 방어 태세로 접어들었다.
'정직한 결투가 아닌, 전투에서는 공격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거기에 저 마법사와의 싸움은 부족한 실전을 채우는 정도야.'
소피아의 전투는 참고가 되는 것이 많지가 않았다. 프라이드는 전투보단 싸움이 더 어울리는 방식이었다.
그러면 자신만의 전투법을 고안해 내어야 한다.
'나에게 맞는 전투, 적을 보는 즉시 학습한다.'
쏟아지는 공격, 많은 마도구를 이용한 전투법.
쉴세 없이 덮쳐드는 검.
"!! 뭐냐?! 왜 갑자기..!"
"당신과 나의 거리가 가까워졌습니다. 이미 늦었지만."
하나의 동작과 이어질 다음 동작의 텀을 줄인다. 그리고 가장 짧은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마법사의 상처가 하나씩 늘어가고, 그와 나의 거리도 한 걸음 씩 줄어간다.
"으윽! 감히! 감히..!"
"그 말 말고는 못하는 것입니까?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이군요. 그러면 끝을 냅시다."
무릎을 굽히고, 자신을 투석기의 돌처럼 쏘아 냈다.
"당신이 죽인 모든 무고한 이들에게 참회해라."
"?!"
서걱.
공중으로 떠오르는 마법사의 머리는 수차례 회전을 하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시에는 강해 보였는데... 겉만 좋은 악당이었군."
말이 통하지 않는 악당들.
☆☆☆
지옥의 업화 수 분만에 로마노프의 신체를 태웠고, 이윽고 그는 회색의 재가 되었다.
하지만 업화는 죄인을 지칭하는 그 어떠한 것도 세상에 남기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재마저도 태워갔고, 단 함줌의 재마저도 사라졌을 무렵에야 업화는 사그라들었다.
인간을 벗어나고, 사람들로 하여금 끔찍한 실험을 행하던 자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최후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마지막 불씨가 사라질 때까지 업화를 지켜 보았고, 그 사이에 어떠한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이제 가자, 딱히 애도할 필요도 없고, 더 있을 필요도 없으니까."
"잠시만."
앨리스는 로마노프가 있던 곳으로 가서, 그가 가지고 있던 스태프를 주워 들었다.
"버려, 유품이라고 챙길려는 것이면 당장 태워 버릴..."
"이거야, 소피아를 재료로 만들어진 스태프. 이것에 대한 처분은 소피아가 맡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나에게 스태프가 내밀어졌다.
프로그가 만들었던 검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제 심장이 사용된 무기를 보는 이질적이면서도 구토감이 밀려오는 기분.
최고의 검를 만들어서,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고 싶다.
최고의 지팡이를 만들어서, 최고의 마법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들의 욕망은 선을 넘어서 실천의 경지로 갔고, 그 결과물로는 어중간한 것들이 제작되었다. 거기에 뜨거운 태양에 다가가던 이카로스처럼, 욕망의 태양에 그들의 날개는 녹아내리면서 저 아래로 끝인 없이 추락해 간다.
'에고웨폰을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그저 조금 좋은 매직웨폰이 탄생했지.'
그녀가 내민 스태프를 쥐었다.
'처분이라...'
딱히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았다.
이걸 앨리스의 눈앞에서 태운다고 해도 그녀가 절망하거나 괴로워할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프로그처럼 그것만 있는 존재도 아니었고, 이 스태프가 아니었어도 그녀는 이미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었지. 단지 에고웨폰을 가지고 싶다거나, 연구하고 싶다는 목적이었겠지만.'
"어쩔까... 뭐, 나중에 생각하자."
나는 그 스태프를 아공간에 집어넣고 등을 돌렸다.
"가자, 앨리스. 네 방으로."
☆☆☆
"오! 뭐야, 여기는? 쓰레기장?"
발디딜 틈만 있는 이곳은 폐기물 처리장... 아니, 앨리스의 개인실이었다.
"...내 방..."
어찌 보면 쓰레기의 방이니, 쓰레기장이 맞을 지도 모른다.
빈 약병, 읽다만 마법서, 먹고 나서 씻지도 않은 그릇,
그리고.
"어린 남자 춘화집? 왜 여기만 깨끗해?"
야한 잡지.
이 더러운 방에서 오직 이곳만 깔끔했다.
심지어 회차별로 정리까지 돼 있었다.
"팬으로서 당연한... 아! 태우지마! 잘못했어! 소피아 몇 개는 프리미엄 붙어서 다시는 못 구한... 아..."
그녀의 더러운 욕망을 태우고 있자, 그녀는 흑빛이 되어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육십 년간의 기록이..."
육십 년 전부터 가지고 있던 성취향이었군.
어째서인지 진짜 연구기록을 태우기 전인데, 마치 모든 연구 기록을 잃었다는 것 같은 태도였다.
<이 정도면="" 지고지순하다고="" 할="" 수="" 있네요,="" 지고지순한="" 변태요.=""/>
<취향도 한="" 부분만을="" 판것이다.="" 그게="" 조금="" 그런="" 쪽이어서="" 그렇지.="" 으으...=""/>
"그런데, 여기 치우고는 사는 거야?"
"응..? 하하... 응."
치우고 사는 거라고? 이게?
"말단들이."
...말단 좀 그만 괴롭혀라.
"그중에서 마탑의 막내인 올리비아가."
'뚝배기 깨질만 한데?'
지금 이 순간, 앨리스의 담당일진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올리비아가 없어서 이 지경까지.. 그..! 그래도 미안해서 연구할 것도 줬어!"
☆☆☆
쓰레기의 산을 지나, 개인실 내부에 있는 연구실에 들어왔다. 창고도 들렀지만, 창고를 연 즉시, 보는 것을 포기했다.
거긴 인세가 아닌 무언가였다.
더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간, 거기서 어떻게 물건을 찾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창고가 아닌 진정한 쓰레기장이었다.
<원래 정리를="" 안="" 하는="" 것을="" 알았지만,="" 더="" 더러워졌구나.="" 본녀,="" 시야="" 차단했잖아.=""/>
로자리아는 아예 말을 잃었다.
아직까지 말을 하는 카르마가 정말로 대단한 거다.
<후우... 소피아="" 님,="" 제가="" 뭘="" 봤던="" 것일까요?=""/>
저도 몰라요.
"그래도 여기는 비교적 깔끔하네."
잘 정돈 되어 있는 연구서와 자료들.
나란히 놓여 있는 약병.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빈 종이들과 펜.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는 장기들.
"전부... 전부 없앨게. 저 장기들은 무덤을 만들줄 거야."
앨리스는 앞으로 할 일을 하나씩 말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저 혼자 만들어 드릴게요. 미안해요."
이곳은 로마노프를 제외한 그 누구도 들이지 않았던 공간이라고 했다. 전부 창고로 보내지 않고, 이곳에서만 보관을 했고. 어떤 실험을 했던 것인지, 장기가 보관 되어 있는 유리관에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1차 젊음의 묘약.'
'마력 증폭 연구.'
'장생의 영약.'
'마력과 투력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돌림병 치료.'
.
.
.
'에고웨폰.'
다양한 연구를 했고, 나름 도움도 되는 연구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보관 되어 있던 심장은 오직 그녀의 욕심만을 위해서 사용된 재료였다.
챙!
유리관을 깨고, 그 안의 심장을 꺼내 들었다.
"이건 필요 없어. 같이 태워 버려."
"응..."
앨리스에게 쥐어진 심장.
한때, 이성재라는 존재를 움직이게 해주었던 나의 심장이었다.
"앨리스, 연구중에는 적지만 이로운 것도 있었어. 그런데 나중에 가면 줄어들고 거의 마법연구만을 했네?"
"좋은 것들은 아니었지."
"맞아, 뭘 어떻게 포장해도 좋을 수가 없지. 주로 마력의 연구나 영약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장기를 구한 것일 거고."
그녀의 앞머리를 살짝 잡아당겼다.
"전부 속죄하면서 살아, 넌 용서해 줄 사람이 없어진 끝없는 죄책감과 네 소중한 이를 죽였다는 것에 대한 절망으로 이 모든 벌을 받아야 할 거야. 편하게 잊어 버리게 할 뻔했네. 그러면 안 되었어, 이건 잊어선 안 되는 일들이야."
그렇게 편하게 보낼것인가?
아니다.
적어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기억을 지웠을 수도 있지만, 지금같이 용서를 구하려 할 때는 잊게 해서는 안 된다.
되돌릴 수 없는 일에 영원히 고통받아야 한다.
'네가 그 고통이 옅어지면, 기억이 사라져 갈 거야.'
그녀에게 고통이 아니게 되면, 새로운 공포와 고통이 그녀를 맞이 할 것이다.
"전부 불태우고, 마탑도 무너뜨리자."
☆☆☆
닉스의 위에서 바라보는 마탑의 최상층은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하나의 촛불 같았다.
<남편, 멀리서="" 인간들이="" 몰려와.=""/>
문을 화려하게 터트리고, 최상층에는 화마, 눈에 잘 보이는 위치까지 내려온 닉스.
인족들은 당황해서 군을 끌고 몰려올 것이다.
"그렇기에 개전의 봉화지. 마지막으로 하나 터트리고 돌아가자, 닉스."
'필요한 건 신벌.'
타락해 버린 인족과 마법사에게.
'원하는 건 파괴.'
첫 시작은 순수한 연구와 동경이었고.
'떨어지는 건 낙뢰.'
순수함은 적어지고, 누구나 하기에 조금씩 모두에게 피해를 줬다.
'행하는 건 종막.'
아무도 그들의 죄를 바판하는 자들이 없었을 것이다.
'벌하는 건 지상.'
그렇기에 그들은 타락해 갔다.
'집행하는 건 자신.'
타락의 정도를 떠나서, 대부분의 인간들이 타락하고 익숙해져 갔다.
'사라지는 건 타락.'
어느 누구는 속죄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피어나는 건 자비.'
어느 누구는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악을 했다. 어느 누구는 죄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아아... 세상이여, 타락한 세상이여. 그대들에게 벌을 내리겠다. 스스로 행하는 일에 누구도 죄를 묻지 않으니, 내가 이 자리에서 네 죄를 묻겠다. 참회하라, 네 타락을 참회하라, 네 죄악을 참회하라. 세상이여, 네게 자비를 선사하겠노라. 이것은 신벌에서 피어나는 자비일지니, 이 새하얀빛이 네 타락을 씻겨 나갈 자비가 될 것이다. 다시 타락할 것인지, 참회할 것인지 선택의 자비를 주겠노라.'
이 봉화는 내 자비이다.
너희가 죄를 받아드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내 자비.
"10위계 마법 [JUDGMENTPILLAR OF LIGHTNING]."
심장을 강타하는 울림과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기둥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귀가 멀고,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거대한 낙뢰가 지상의 덮쳤다.
낙뢰가 닿은 곳은 대지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사라졌으며, 멀리서 달려오던 인족들은 낙뢰에 심장이 멈춘사람도 있고 공포에 떨면서 주저앉아 버린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외쳤다.
"나는 세 번째 마왕!!! 오늘 이 마탑을 기점으로 너의 인족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이 신벌은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개전의 봉화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