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마탑
* * *
"이반 왕, 저는 영웅의 영약을 범죄자들에게 먹이기를 권하겠어요."
"호오, 어째서? 그냥 적당한 평민이나 하급귀족에게 먹이면 되는 것 아니냐? 우리는 그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위치다."
고요한 회담장.
그곳에는 단 두 명의 남녀의 대화만이 들리고 있었다.
회담내용을 기록하는 자들과 두 남녀의 호위들, 그들의 시중,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곳에서 입을 여는 것이 허락된 건 오직 이 둘 뿐이었다.
"죄 없는 인족들에게 먹이기에는, 영약의 부작용이 너무 심해요."
"그래서 흉악범에게 먹이자? 그래, 흉악범들을 계속 살려 두는 것도 세금낭비니까, 이해는 한다만... 이 나라는 전부 처형한다고?"
"처형이 아니라, 마탑의 실험체이겠지요."
"하! 처형이나, 실험체나 똑같지. 어찌 되었건, 내 나라는 흉악범이 부족하다. 경범죄자든 노예든 사용하기 편리한 쪽부터 먹이지."
"...알겠어요. 현재, 영약의 양이나 생상량, 그리고 글리아스에 지원가능한 수량을 알려주시죠."
회담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영약, 전쟁의 주도권, 승리시에 저주받은 대지를 나눌 지분, 전쟁의 전리품등 두 나라의 정상들끼리 나눌 이야기는 매우 많이 있었다.
"소국들은 강제적으로 참가시키면..."
덜컹!
"전하!"
위기 상황을 전하러 온 것인지, 다수의 신하가 흐트러진 숨을 몰아쉬면서 회담장의 문을 열고 이반을 찾았다.
"전하! 긴급상황입니다!"
"그렇지, 긴급상황이 아니면 지금 무례하게 회담장 문을 연, 자네들의 목이 달아날 거니까."
이반은 평소와 같은 나른한 듯한 표정으로 턱을 괴면서 말하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심기가 불편한 듯이 매우 낮게 깔려 있었다.
"그..!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니드호그가 국경을 넘었습니..."
서걱.
신하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니드호그의 국경 침범을 전부 전하기 전에 날아온 이반의 바람마법으로 인해 목이 잘려 나가서, 뒷 내용을 전달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으니까.
"흠... 자네들이 얼마나 무능한지 전하러 온 것이면 말하게나. 귀찮아도 짐이 특별하게, 하나씩 죽음을 선사하겠네."
"!! 통촉하여주시옵소서!!"
먼저 생을 달리한 동료를 본 신하들은 전부 부복을 하면서, 이반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이반 왕, 니드호그의 국경침범이면 큰일이지 않나요? 저 신하들의 보고를 듣지 않으면 대처할 방법을 찾기가 힘들어요."
"허허, 로젤리아여. 짐은 상당하게 자제하고 있다. 한 개의 목만 쳤으니까, 그런데 보고가 더 늦으면 자제심도 사라지겠어..."
로젤리아와 이반은 죽음의 공포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는 신하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이 보고를 전하는 사람부터 죽어 나간다.
회담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있는, 자신들의 이마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액체가 그걸 말해주고 있다.
앞서서 보고하다가 죽어 버린 동료의 피.
그자처럼 죽고 싶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짐이 벙어리를 궁에 두었나보군, 보고도 못하는 신하따위는 필요 없지."
무감정한 눈으로 바람마법을 시전한다.
"전하! 제... 제가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서걱.
"!!"
보고를 시작하려는 신하의 주위에 수많은 피가 튀었다.
이반이 그를 제외한 다른 자들을 전부 죽인 것이다.
"보고하는 인물은 하나면 충분하지, 더 들어 봤자, 자네들이 얼마나 무능한지 알려주는 보고일 테니 살려 둘 필요도 없고."
'저것들을 영약병으로 쓸걸... 아쉽군.'이라는 말을 덧붙인 채로 아쉬운 듯, 자신의 턱을 쓸었다.
"히.. 히익! 전하..! 국경을 통과한 니드호그를 요격, 나라에서 쫓아내려고 했지만 어떠한 효과도 없었습니다! 국경의 상공을 비행하던 니드호그는 방향을 틀어서 다시 비행! 다이너 영지의 주변에서 돌연 모습을 감췄습니다!"
주변의 신하처럼 되기 싫다는 의지가 보이는 보고였다.
숨조차 쉬지 않고 말을 이었던 신하는 보고를 마치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모습을 감췄다라... 결국에는 무능하다는 보고가 맞군. 그 거대한 몸뚱어리조차 찾지 못하고 놓쳤으니."
"어머, 니드호그라, 세계수의 숲에서 사라진 니드호그가 마법국에 나타났다구요? 이건 위기 상황이지요. 안 그런가요, 이반 왕. 후후후."
로젤리아는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이반에게 말했다.
"만약, 니드호그가 마법국의 어딘가의 위치에서 나온다면 제 라인하르트를 빌려드리죠, 마왕과 같이 있다는 니드호그의 등장이면, 필시 마왕도 이곳에 있을 거니까요."
협상의 기회로 보고 있었다.
앨리스가 없는 디퍼루드는 니드호그와 마왕에게 대처하기는 힘들 것이기에 내린 판단.
'잘하면 이 회담의 승자는 우리 글리아스가 되겠군요. 후후.'
하지만 로젤리아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반의 눈은 거절을 표시하는 듯한 차가운 눈빛이었다.
"역시, 너는 짐과 같은과야. 결국에는 인족의 평화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니까, 거기에 네 기준에서 벗어나면 같은 인족이어도 잔혹해질 수 있지."
"예? 지금 무슨.."
"필요 없다. 이 나라의 전력이 앨리스만 있는 것도 아니고, 회담은 다음에 이어나가도록 하지."
그는 마치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회담장을 나서고 있었다.
"전원, 나라의 손님이 돌아가는 길을 정중하게 모셔라. 어이! 일어나서 안내해라."
"?! 이반 왕! 지금, 이시국에 저를 내 쫓으시는 건가요?!"
"음? 짐은 분명히 회담은 다음에 이어간다고 했다. 이런 시국이니까."
마지막으로 로젤리아를 흘겨보고서, 이반은 회담장에서 완전하게 사라졌다.
"이반 왕!!!"
☆☆☆
"소피아,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어? 왜?"
마탑의 상공에 도착한 나는 앨리스를 데리고 지상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를 붙잡는 프레디에 의해서 잠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마탑의 실체도 직접 눈으로 보려고 합니다. 올리비아에게는 인체실험이 가지 않았지만, 마탑의 높은 직위의 마법사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고 했으니까, 부탁드립니다."
프레디의 말에 앨리스가 어깨를 움츠렸지만, 내가 그의 입장이었어도 같은 판단을 했을 것이다.
눈앞에 높은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전부 뒤집어 엎었을 거니까, 오히려 아직 침착을 유지하는 프레디가 더욱 대단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수인족을 노예로 한 사실을 알았을 때도 전부 뒤엎었다.
"그래, 직접 마주하고 판단하려고?"
"예, 설사 당사자들에게 들었다고 해도, 실제로 그 진실을 마주하는 것만큼의 올바른 판단을 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나와 닉스는 적의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고민을 하는 것이다.
이곳에는 아직 깨어나지 못하는 신혁과 전투원이지만, 근접전투에서는 약한 올리비아, 그리고 부상에서 회복했다고 말하는 아버지.
그들이 걱정되고 지키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닉스가 지키고 있기에 문제없다. 그래서 나와 함께 진실을 목격하러 간다.
"네가 목격한 진실이 이번 만이 아닐 거야, 이번이 처음이었으면 고민도 없이 나를 믿지 않았겠지."
"예, 이번에 들은 것처럼 심각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수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약쟁이 건도 있고, 마검이 한 말도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각오를 마친 눈이군, 단지, 마지막 선택을 하기 전에 한 번만 더 확인하고 싶은 거야.'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눈이었다.
'헤에... 마음에 드네.'
그에게 손을 내밀면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좋아, 따라와. 그 눈을 보니까, 네 선택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아 보인다. 네가 직접보고 두 사람에게 알려 줘."
"예, 알렉스에게 속아서 많이 흔들려 본지라... 이제는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저는 제 신념을 믿습니다, 소피아."
자신이 한 말이 조금 부끄러웠던 것인지, 얼굴을 붉히면서 내민 손은 맞잡았다.
<캬아아악! 숫컷!="" 내="" 남편="" 손을="" 함부로="" 잡지="" 마!=""/>
"꺄아악! 프레디! 왜 부끄러워하는 거야?! 손 같은 건 내가 얼마든지 잡아줄 수 있고, 더한 것도 해 줄 수 있는데!"
두 여성의 분노에 우리는 당황을 하면서, 빠르게 이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소피아! 빨리!"
"알았어! [BLINK]!"
역시, 프레디의 고생길도 훤히 보인다.
☆☆☆
시야가 급변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인족령의 모든 마법사가 노리는 마법사의 보물섬.
마탑.
마법의 진리를 보기 위해 모인 마법사들이 세운 탑이며, 현재는 타락해서 인체실험에까지 손은 댄 미치광이들의 집합소이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이곳에도 말단들은 그 사실을 몰라, 보통 연구는 어느 정도 마쳐서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 자들이 손대는 금기니까."
그것이 산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든, 사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든 한 번씩은 발을 걸치게 된다.
마탑에서 오래도록 연구를 지속하면 자연스럽게 변한다고 했다.
'올리비아도 이곳에서 몇 년을 더 연구했다면, 그렇게 변했을 수도 있다고 했지.'
그 말을 들었던 올리비아는 매우 기분이 나빴던 것인지, 모두 당신들과 같다고 생각하지 말라며 경멸하는 표정으로 독설을 내뱉었다.
"내 연구실은 꼭대기에 있어, 거기에 내가 연구한 자료들이 있고, 로마노프의 연구실은 조금 더 아랫층. 내가 알고 있으니까 알려줄게."
"그가 여기 있다는 보장은?"
"아마도 있을 거야, 그 아이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구실에서 연구만을 하고 있으니까."
앨리스는 유유히 마탑의 입구로 걸어갔고, 문에 손을 가볍게 올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황한 앨리스는 다시 손을 가져다 대었고, 역시나 문은 조용했다.
나와 프레디는 어떠한 말도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더욱 당황해서 우리와 문을 번갈아 보면서 문을 열려고 애를 썻다.
"소피아, 분명히 앨리스의 마력이면 입구는 그냥 열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응... 생각해 보니까, 앨리스는 지금 마력 없어."
앨리스도 손목의 마도구를 깨달은 것인지, 다시 우리에게 달려왔다.
"그... 소피아."
"안 돼, 다른 방법으로 들어가면 되지."
"응..."
인증된 마법사만을 받아들이는 마탑은 그만큼 보안에 철저했고, 개인의 마력을 지문처럼 입구에서 인증해야, 비로소 마탑의 문은 개방이 된다.
'지저국에도 같은 것이 있었으니까 원리는 알지.'
내 마력도 문에 등록 되어 있지만, 단순하게 열어도 안쪽에서는 소란이 일어날 것이다.
'개전의 봉화를 피울 거니까, 되도록이면 소란스럽게.'
수많은 마법사가 두드리는 마탑이기에 인증받지 못한 마법사들의 난동도 많이 있다.
그만큼 마탑의 외벽은 온갓 방어 마법을 두르고 있어서,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작은 상처조차 낼 수가 없고, 마탑이 세워진 이후에 그 누구도 파괴하지 못한 문이었다.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말이지... 오랜만에 모두들? 내게 '확실한' 방법이 있어."
"소피아, 그게 어떤방법입니까?"
"하아... 미안해, 내 죄가 너무 큰거 같아..."
<앨리스! 뭐="" 하는="" 게냐?!="" 당장="" 뺨을="" 때려서라도="" 말리거라!=""/>
<꺄아악! 소피아="" 님,="" 제발="" 이제는="" 지겨워요!=""/>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남자는 그 어떤 소리를 듣더라도 꼭 해야만 할 때가 있다.
카르마를 높이 치켜들고 즉시 역수로 바꾸면서 천천히 등 뒤로 그 위치를 옮겼다.
양쪽 다리를 넓게 벌리면서 검신에 많은 투력과 마력을 섞어갔다.
"후우... 역시 융합도 외부의 무기에서 섞으면 몸에 부담은 없네, 신체능력의 향상은 없지만 한 번의 강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겠어."
<끄아아악! 본녀가!="" 본녀가="" 죽을="" 거="" 같다!="" 하지="" 마!="" 소피아,="" 제발="" 그만해!="" 본녀,="" 아파="" 죽어!=""/>
카르마의 투정은 가볍게 무시한 채로 그녀의 검신에 '융합'된 힘을 '압축'해 갔다.
<무시하지 마!=""/>
'남자의 필살기다...'
"아방..."
카르마의 주변의 대기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점점 압축되어가는 힘에 공간의 자그마한 일그러짐이 일어나며,마탑에서도 이상을 느낀 것인지 잠깐동안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쳤다.
'그대로 열었으면 좋았을 걸? 마법사야, 어디 아무 데나 통신을 날려 봐라. 널리널리, 모두가 알도록.'
이곳에서 마왕이 개전을 알렸다고.
검 끝으로 바닥을 긁으면서 쓸어 올리듯이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마탑을 이제까지 압축한 힘을 전부 쏘아냈다.
"스트○슈!"
콰아아왕!
'아이 신나! 역시 필살기명은 외쳐야 제맛이지! 히히.'
마탑이 세워진 이후에 단 한 번도 부서진 적 없다는 마탑의 입구는 커다란 먼지와 함께, 그 오랜역사의 종막을 맞이했다.
한참을 올라간 기분에 정신을 못 차리는 피해자 1을 제외한 두 사람은 안심한 듯한 한숨을 내쉬었고, 프레디는 눈을 빛내면서 방금의 검술을 바라보았다.
"자, 이제 들어갈까? 역시 화려한 게 좋아, 히히!"
<하지 마아아...="" 본녀가="" 하지="" 말라고="" 하면="" 제발=""/>
"응? 미안 검순아, 아직 남자의 필살기는 하나 정도는 더 남아 있어."
<흐어엉./>
미안, 하지만 이건 못 참아서.
"알았어, 다시는 안하지 않을게."
<한다는 소리지="" 않느냐?!=""/>
당연한 소리를.
내 주 무기라는 처지를 한탄하는 카르마를 쥔 채로 쉬원하게 개방된 마탑에 발을 들였다.
'오늘 마탑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