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외전:옛 용사와 수인의 이야기
* * *
격렬하게 흔들리던 마차가 잠잠해졌다. 밤일을 끝내고 겨우 마차에서 탈출했기 때문이었다.
"히익! 변태 새끼!"
밖에서 마차의 진동을 감상하던 파니아와 앨리스, 익숙해져 버린 파니아는 쓴웃음을 짖고 간단한 마실 것을 준비했지만, 우리의 정사를 처음 본 앨리스는 변태라며 매도할 뿐이었다.
기분이 나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찬가지로 어린남자를 좋아하는 변태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네가 순수한 줄 알겠다? 오히려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소년일수록 맛있다던 네가 더 변태 아니냐?"
"그거야 당연..! 크흠! 아니, 성재... 이제는 소피아라고 부르라 했나? 내 알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성별을 바꿔서 소년들한테 먹히지는 않았다."
거참 팩트가 아프네.
"그런데, 너는 뭐냐? 원래 그런 취향이었어? 여성의 몸이 돼서, 여성에게 먹히는 거? 몰랐네, 맛있게 먹히면서 하읏 거리는 게 취향인 줄은."
아직 정신을 덜 차리고, 말로 덤비는 앨리스에게 머릿속의 지우개를 선물해주자.
파지직.
"끄아악! 하아! 하아..!"
세 번째 쯤 되니, 기절까지는 안 하는 것 같다.
기절한 후에 기억이 사라지는 것보다, 실시간으로 기억이 없어지는 것이 더욱 큰 공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음... 소피아,="" 앨리스가="" 말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남자라고="" 하니까.="" 무왕이="" 생각나는="" 구나.=""/>
"무왕?"
<음! 그대가="" 아닌,="" 본녀의="" 첫="" 번째="" 사용자.="" 용사의="" 동료.="" 수인족의="" 전사,="" 무왕이라고="" 불리던="" 최강의="" 수인이다.=""/>
"카르마! 혹시, 무왕이라는 분. 무왕 샤트룩스를 말하는 거야?"
<오! 그러고="" 보니,="" 미네르바.="" 그대의="" 성이="" 샤트룩스가="" 아니더냐?=""/>
"응! 내 선조분이야! 히히. 현재, 수인족들을 전사로서 살아가게 만들어 주신 위대한 분이야!"
용사의 동료로 있던 수인족의 전사가 미네르바의 선조라니, 신기한 인연이다.
거기에 현대의 수인족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가 아니었으면 수인족들은 전사들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살아갔을 것이다.
<음? 다들="" 무왕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눈치구나?="" 후후.=""/>
"하하... 조금은요?"
"나도 선조 님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본 사람한테 듣고 싶어, 아빠나 할아버지한테 듣기는 했지만, 오랜이야기라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서."
<그 이야기는="" 저도="" 조금은="" 보탤="" 수="" 있어요!="" 용사님의="" 동료였으니까요.=""/>
로자리아도 용사의 관한 이야기라면 기억을 하고 있으니, 많이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헤에... 전에 해준 여제의 이야기도 있었고, 나도 다른 이야기가 궁금했어. 오빠? 같이 듣자."
"남편, 나도 준비 됐어. 이 세계에 와서 잘못했다고 사과할 준비."
한 명만 다른 마음가짐으로 들을려고 하지만 모두가 카르마가 해주는 옛날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앨리스. 그대는="" 집중해서="" 듣거라.="" 그대="" 처럼="" 용사나,="" 다른="" 종족을="" 도구로="" 보는="" 자들과는="" 전혀="" 이야기니까.=""/>
"..."
<그러면. 예전에...="" 무를="" 단련하는="" 것을="" 좋아하고,="" 올곧은="" 마음을="" 가진="" 수인이="" 있었다.=""/>
☆☆☆
깊은 숲속.
"훅! 훅! 훅!"
그 숲속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친 숨소리만이 들리고 있다.
"훅! 훅! 훅!"
그 숨소리는 마치, 숨이 찰 정도로 힘든 훈련을 하는 사람에게 나는 소리와 같았다.
우리는 그 숨소리의 주인을 찾으러 이 숲에 왔다.
"훅! 훅! 훅!"
수인족 농부에게 들은 숲속 미친놈의 이야기.
'댁이 여제폐하가 소환했다던 용사유? 아따 용사라는 사람이 부실하게 생겼구먼...'
농부는 용사를 평가하듯이 훑어보고는, 이내 관심이 사라졌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억울하다, 이런 건 실전 압축 근육이라고 부른다, 군살이 없고 전투에 최적화된 근육들이다.
'음... 이곳에서 한 번도 진적없다고 하는 무투가를 찾아왔다고 했슈? 내 그딴 건 모르것고, 저 산속에 쌉박질만하는 미친놈이 하나 있기는 해유. 쌈 좀 한다는 사람을 보면 일단 주먹부터 나가고 보는 미친놈이니께 조심하슈, 척 보니께 미친 근육돼지한테 맞으면 기절하게 생겼구먼...'
아마 우리가 찾는 무패의 무투가가 농부가 말한 미친근육돼지가 맞다면, 마왕을 상대하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여제가 꼭 영입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훅! 훅! 훅!"
숨 소리가 들리는 곳에 가까워지자, 정권 찌르기를 하는 근육돼지... 아니, 근육 고양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좀 컸다.
"아까부터 이쪽에 관심이 있던데, 나를 찾아온 것이냐?"
"하하. 눈치채고 있었네, 반가워 나는 용사야. 마왕의 침략을 막기 위해 동료를 모집중이지, 이쪽은 우리파티의 힐러."
"안녕하세요. 저는 성녀라고 불리는 사람이에요. 부족하지만 용사님의 회복담당을 맞고 있죠."
성녀는 고개 숙여서 근육돼지.. 무투가에게 인사를 했고, 용사는 본인이 이곳에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네가 무패의 무투가인가?"
"음... 내가 무패는 맞지, 주먹을 단련하는 것을 좋아하니 무투가도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왜 관심이 있지?"
"우리 파티에 와줘,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강한 파티원이 필요해. 지금 세상이 멸망할 위험에 쳐해 있으니까..."
"음! 관심 없다! 용사여! 나는 단련에는 관심이 있지만,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다.
무투가는 용사의 말을 끊고,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어? 잠시만! 그렇게 쉬원하게 거절하면 어떡해?!"
"하하핫! 뭐, 시원한 것이 내 장점이지! 그래... 일단 주먹을 단련하는 자는 힘을 올바르게 쓸 필요가 있겠지..."
"그럼...!"
"하지만 난, 용사가 올바른 자인지 모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아까부터 알 수 없는 소리만을 한다.
정녕 미친근육돼지인가? 잘못 찾아온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고 있을 무렵 무투가는 자세를 잡고 용사를 노려보았다.
"올바른 자인지, 아닌지는 쉽게 알 수 있지."
"쉽게 말해 줄래? 조금 네가 정상이 맞는 건지 헛갈리기 시작했어."
"그래 쉽게라... 음! 맞짱뜨자, 용사여! 나를 이기면 용사의 말을 따르지!"
그 말을 끝으로 무투가는 용사에게 돌진하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아니?! 이 미친근육돼지가!!!"
☆☆☆
"용사... 이 수인은 무엇이냐? 왜 돈인족이 묘인족의 귀와 꼬리를 달고 있는 것이냐? 저건 그냥 근육돼지가 아니냐?"
"하하핫! 꼬맹이! 나는 샤트룩스! 무패의... 아니, 얼마 전에 용사에게 1패를 당했으니, 그 칭호도 이제는 없겠지. 그냥 샤트룩스다!"
제국의 알현실에서 정좌로 앉은 샤트룩스는 당당하게 허리를 세우고 여제에게 말했다.
"하아... 본녀가 잘못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음! 샤트룩스라 했나? 본녀는 꼬맹이가 아닌 제국의 여제, 대륙 최고의 마법사이니라."
"알겠다, 여제폐하. 이제 나도 용사와 같이 세상을 구하는 여행을 떠나려 한다! 잘 부탁하지."
샤트룩스의 앉은 키가 여제의 키와 비슷해서 동일한 눈높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본디 불경죄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지만.
여제의 명령으로 용사와 그 파티원은 여제와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어서, 기본적인 예의 정도는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았다.
딱 한 명.
"에이이잇! 네놈! 감히 여제폐하께 무슨 말버릇이냐?! 용사! 네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폐하가 신경을 써 줘도 그렇지 기본이라는 게 있다 이놈아!"
"시끄럽다, 재상 할아범. 그런 거를 일일이 신경 쓰니까, 그대가 뒤에서 꼰대소리를 듣는 게다."
재상을 제외하면.
"크헉! 폐하아아! 금시초문입니다! 누구냐?! 누가 나를 꼰대라고 부를 것이냐! 애초에 나때는 말이야..!"
"쉿. 어째서 재상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목소리가 커지는 게야. 나이도 생각해야지, 그러다 숨넘어간다. 할아범."
"크흡! 폐하가 이 늙은이를 걱정하셔서..!"
재상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만. 떨떠름한 여제의 표정으로 보건데, 그 말은 걱정이 아니라 소리 좀 줄이라는 명령이었다.
우리는 가끔씩 찾아오는 거라 상관은 없지만, 매일 같이 있는 여제로서는 귀가 굉장하게 고통받는 매일 일 것이다.
"하하핫! 숲밖의 세상도 재미있구나! 전사는 세상 경험도 하고, 강자와 대결을 하면서 우애를 다져야 하는 법! 내 첫 세상경험으로서 나쁘지 않구나!"
이제 그 고통은 우리도 받을 것 같다.
여제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측은함이 담겨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용사, 본녀가 귀 건강에 좋은 음식을 알려주겠다..."
"...고마워, ○○○○."
☆☆☆
"샤트룩스! 조금 더 빨리!"
마왕에의한 제국의 습격이 일어났다.
마왕이 위치한 곳과 제국의 위치가 맞닿아 있어서, 제국과의 충돌은 항상 있었고, 제국은 대륙의 가장 큰 방패로서 수많은 왕국을 지키고 있었다.
그만큼 전선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는 많은 평화가 있었지만...
"용사여! 어째서 마왕이 직접 나선것이냐?! 그것도 우리가 제국에서 떨어져 있을 시기에!"
마왕은 우리가 없는 틈을 타서 제국에 총 공격에 나섰고, 예상 못한 마왕의 전력에 전선은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틈은 마왕이 만들어 냈다.
마왕은 자신과 비슷한 전력을 셋이나 소환했고, 각자 말을 듣지 않고 세상에 흩어졌다.
우리는 그들의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서, 먼저 위치가 확실하게 알려진 니드호그에게 찾아갔다.
"니드호그는 당장에 큰 위험은 아니었어! 문제는 세계수의 숲의 위치가 제국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거지!"
그 탓에 우리는 제시간에 제국에 도착하지 못했고, 마수들은 이미 제국의 수도에까지 도달했다고 전해 들었다.
"용사 씨! 지금, 재상 씨한테 연락이 왔어요! 수도에 피난민들이 있으니 조금만 더 서둘러 달라고 합니다!"
"!!"
샤크룩스와 용사는 속도를 높여 갔다.
각자 전투계가 아닌 성녀와 천사족을 업고 모든 힘을 쏟아서 수도로 달려가고 있다.
제국에는 많은 종족이 살고 있었다.
습격에 전투원들은 시민들의 탈출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마수들과 싸워 나갔고. 그 덕분에 시민들은 무사하게 수도까지 피난을 할 수 있었다.
"더 늦었다가는 그 수도까지 함락된다!"
적어도 수도가 이 밤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버텨주기를.
☆☆☆
"샤트룩스와 나는 마수들의 공격한다! 다른 두 사람은 치료와 마법의 지원을 부탁할게!"
"알았다!"
불타오르는 수도의 하늘은 연기로 인해서, 달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불로인하여, 전혀 어둡지 않고 밝기만 한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
샤트룩스는 빠르게 이동해서 마수의 머리를 터트려갔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기동력과 오래도록 단련돼서, 무기보다도 단단해진 주먹으로.
"마수여!"
하나씩.
"어째서, 힘없는 자들을 공격하는 것인가!"
때로는 한 번에 여러 마리씩.
"자신의 무기를 든자가 아닌, 무력한 자들을 어째서!"
힘없는 시민들을 지켜나갔다.
거대한 파충류의 모습을 가진 마수를 처치하자, 그 마수가 공격하려 했던 모녀가 있었다.
늙은 어미와 숙녀가 된 딸이 제 어머니를 끌어안고 지키고 있었다..
"수인족인가... 음, 보호막. 여제폐하가 지키고 있었군..."
마법으로 만들어진 보호막은 용사파티가 오기 전부터 시민들을 지키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민들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담긴 보호막은 매우 단단했다.
"안심해라, 용사파티가 왔다. 이제는 우리가 지켜 주겠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인족 여인은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는 여제폐하에게 하는 게 좋겠군, 그 아이가 없었으면 피해가 더욱 심했을 거니..."
그 말을 남기고 샤트룩스는 다음 마수를 처치하기 위해서 달렸다.
보호막이 사라지기 전에 한 마리의 마수라도 더 쓰러뜨려야 한다.
"빨리 정리한 다음에 고생했을 여제폐하에게 가야겠군, 우리 꼬마 여제님 덕에 더욱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 칭찬해 줘야지..."
자신보다 용사가 칭찬해주는 것을 더욱 좋아하지만, 어쩌겠는가. 여제와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들 덕에 살아난 시민들이니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
이미 폐허가 돼 버렸지만 시민들은 살아남았다.
살 곳을 잃었지만, 시민들은 살아난 것에 대한 기쁨탓인지 서로를 부둥켜 안으면서 기뻐했다.
숲속에서 수련만 하고 싸움만 할 때는 몰랐던 기쁨, 누군가를 구한다는 것의 기쁨은 용사와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새로운 감정이었다.
"수련말고도 기분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말이야.. 하하핫! 마치 근육이 늘어나는 것이랑 같은 수준의 행복이구만!"
무너진 건물들은 다시 세우면 된다.
하지만 무너진 생명은 다시 세울 수는 없다.
"우리 꼬마 여제 님은 어디에 있을까? 흠흠! 이 정도 규모의 보호막을 쳤으면 여제폐하라도 마력고갈이 일어났을 것인데..."
평소 같았으면 '이익! 전사여! 꼬마 취급하지 말거라!" 라고 말하면서 나타났을 여제가 보이지 않았다.
용사와 합류해서 찾았지만, 기사도, 시끄러운 재상도, 여제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도망쳤을리는 없다, 가장 먼저 전선에 뛰어갔을지언정, 무력한 시민들을 버리고 사라질 인물들이 아니었으니까.
"용사여, 어디 짐작 가는 곳이 있는가? 재상영감 소리만 들어도 금방 위치를 알 수 있을 진데..."
"미안, 샤트룩스. 나도 아직 찾지 못했어..."
그때, 어두운 표정을 한 성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두 분... 이쪽으로..."
"음? 성녀여, 무슨 일인가? 누가 괴롭혔나? 왜 이리 표정이..."
"샤트룩스 씨, 여제폐하를 찾았습니다. 단지..."
천사족은 입술을 깨물면서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를 잃어 버린 것처럼.
용사와 샤트룩스는 불안한 기분이 들어서 성녀와 천사족이 알려 준 곳으로 뛰어갔다.
성녀는 우리를 따라왔지만, 천사족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통곡을 해 버렸다.
성녀가 안내한 곳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놓여 있었다.
근처에 있는 시민들은 감사 인사와 누군가를 부르며 소리쳤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슬픔에 사무쳐서 뭉개졌다.
흰 천이 시신들을 가렸다. 하지만 시신들은 멀쩡하지 못했는지, 천에 그들의 피가 묻어 나왔다.
"이... 이 사람들은.."
용사의 물음에 성녀는 대신해서 대답했다.
"제국의 최후의 기사들, 여제폐하의 친위대, 성에서 근무하던 귀족과 문관들, 재상 님, 그리고..."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지켰다.
그들이 보이지 않던 것은 제 목숨들을 받쳐서 생명을 지킨 것이다.
누구하나 빠짐없이, 모두를.
성녀는 한 시신으로 걸어갔다.
다른 시신들과 비교해서. 아니, 시신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깨끗한 시신한테로.
성녀가 그 시신의 천을 조심스럽게 걷었다.
"!!!"
거기에 누워 있던 것은 여제였다.
자고 있는 것처럼, 매우 편안한 표정이었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는 여제는 이미 삶을 달리 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주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성녀가 무언가를 말했고, 용사는 힘없이 여제에게 걸어가면서 중얼거렸다.
여제에게 다다른 용사는 그녀를 끌어안고 용서를 비는 것만 같았다.
'늦어서 미안하다.' 용사의 그 말이 정신을 다시 일깨워줬다.
우리는 늦은 것이다.
우리가, 자신이 늦었기에 이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전사라는 자가, 용사라는 자들을 대신해서 이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샤트룩스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쾅!
자신에 대한 분노를 풀지 못해서 애꿋은 바닥에만 화풀이를 했다.
"어째서 여제폐하 같은 분이 죽어야 했나! 대륙을 위해 쉬지도 않고 일했던 아이인데! ...어째서..."
'어째서 이들이...'
정신이 몽롱해진다.
어두워지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썻지만, 주위에서 쓰러지는 소리들과 함께 샤트룩스의 시야도 어두워져만 갔다.
'무슨 일이... 아아... 미안하구나... 꼬마 여..제 님... 우..리가..'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 생각을 끝으로 샤트룩스의 시야는 암전이 되었다.
☆☆☆
제국이 무너지고, 수 개월.
제국의 방패로 버티고 있던, 수많은 왕국들에는 위기가 닥쳐왔다.
제국이 있기에 안일하게 있던 것이 화근이 되었고, 용사파티는 더욱 바쁘게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샤트룩스. 혼자서="" 청승맞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느냐?=""/>
"음? 카르마인가? 하핫! 운치 있다고 해야지... 그리고 이런 달밤이면 가끔 그날이 떠올라서 그렇다."
<그날? 아아...="" 제국이="" 무너진="" 날="" 말하는="" 것이냐?="" 본녀가="" 그대들에게="" 온="" 그날.=""/>
샤트룩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달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것이 기억이 나지만... 꼬마 여제님은 기억이 나질 않아.. 잊어서는 안되는데, 마치 기억에 누군가 낙서를 한 것처럼 떠오르질 않는 구나."
때문에 샤트룩스는 달이 밝은 밤이 되면 혼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했다.
자신이 지키지 못한 어린아이를, 이제는 기억에서 조차 지키지 못한 아이를 떠올리려고 애쓰면서.
<음... 본녀는="" 나중에="" 와서="" 여제라는="" 자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른다,="" 용사에게="" 물어보면="" 매우="" 슬픈="" 표정을="" 하고="" 본녀를="" 쓰다듬길래="" 이제는="" 안="" 물어보려고="" 한다.=""/>
샤트룩스도, 성녀도, 천사족도. 모두가 여제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했다.
그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그녀를 떠올리려면 누군가 방해하는 것처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존재자채를 지우려고 하듯이...
'용사는 기억하고 있는 듯이 보였지...'
한없이 단련된 손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단련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만들어져 간 손.
이제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완성된 손.
다시는 늦지 않기 위한 손.
'어째서 늦지 않으려는 것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마음 한구석에는 더 이상 늦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헌데, 샤트룩스.="" 그대="" 같은="" 근육돼지가="" 이제는="" 무왕이라고="" 칭송="" 받으면서="" 전사들의="" 우상으로="" 대우된다고="" 하지?=""/>
'근육돼지라...'
그리운 이름이다.
어느 그리운 아이가, 자신을 처음 봤을 때 불렀던 것 같은 그리운 이름.
"하하핫! 나는 그저 정정당당한 전투를 선호했을 뿐이라고? 그리고 누군가를 구하는 것이 좋을 뿐이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든지 이룰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다음이 오면, 이번에는 절대로 늦지 않고 지킬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주먹을 쥐고 맹새했다.
☆☆☆
"크헉! 쿨럭!"
"용사 님!!!"
함정이었다.
마왕이 함정을 파서 용사파티를 공격했다.
마수에게 포위 되어 있는 용사파티, 목숨이 끊어지기 전인 용사.
"성녀... 용사를 살릴 수 있나?"
"가능은해요! 하지만 시간이..! 그리고 이런 위험한 곳에서는 힘들어요!"
"그렇군..."
샤트룩스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음... 시간은 내가 벌겠다. 탈출은... 사방이 포위돼서 힘들겠구만! 하하핫! 너희는 그저 달려라, 천사족은 날아서라도 용사의 무게를 줄여. 성녀는 그를 업고."
천천히 눈을 감으면서 자신들을 포위한 마수들에게 한 걸음 씩 다가섰다.
"너희의 등 뒤는 내가 맡지."
"!! 샤트룩스 씨!"
샤트룩스는 자신에게 소리치는 천사족을 바라보았다.
"하핫! 천사족! 이 중에서 용사와 너희를 무사히 탈출 시킬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성녀를 돌아봤다.
"성녀여! 이중에서 용사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적어도 자신은 아니다.
천사족 처럼 마법을 사용해서 탈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녀처럼 치료에 능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성녀는 로자리아로 사망한지 얼마 안 된 목숨이라면 살릴 수 있지...'
자신에게 있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단단한 주먹과 극한으로 단련된 몸 뿐이었다.
"천사족, 라파엘이여. 네가 멸족당한 천사족을 부흥시킨다고 하지 않았나? 자네마저 죽으면 대륙에서 천사족은 완전하게 사라지는 것이네."
마음이 평온해진다.
"성녀여, 자네도 사랑하는 이를 지켜야하지 않나? 어서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네."
이번에는 늦지 않을 수 있다.
"카르마, 어째서인지,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정이 갔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겠지만... 이제는 알겠어."
그래, 이 아이가.
"이번에는 늦지 않게 지켜 주마... 먼저 가서 용사를 치료해라, 마수무리를 막고 나서 나도 탈출할 것이니.."
아마도 탈출은 불가능하겠지...
부상은 용사만이 아닌, 자신도 당했다.
이미 속 안의 장기가 전부 뒤틀려 있었다.
멀쩡한 척을 하며 서 있지만, 금세 생명의 불이 꺼질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의미 있는 죽음을 택하리라.'
동료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모두들 내 마지막을 직감한 것인지,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하하핫! 왜들 그런 표정을 짓고 있나? 이 샤트룩스는 무왕이다! 모든 전사들의 우상이며, 용사파티의 방패!"
"쿨럭! 샤트..룩스..!"
거친 피를 쏟으면서도 눈에서 빛을 잃지 않은 용사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렇기에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해 주었다.
"모두를 지키는 자다."
"샤트룩스 씨... 부탁드리겠습니다.."
"흐윽! 샤트룩스 님... 부디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부인 분과 갓 태어난 아들이 기다라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하하핫! 그렇지! 이번에 이름을 지어 준 아들이 참으로 귀엽더군! 제 어머니를 닮아서 다행이야!"
그날 구해줬던 수인족 여성과 사랑에 빠져서 결국에는 그 결실이 맺었었다.
'우연히 다시 만날 줄이야... 아니, 운명이라고 해야 되나?'
자신은 마지막이 될지라도, 시대는 나아간다.
'우리아이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작은 소망과 함께.
"자! 전력으로 탈출해라! 모두는 내가 지킨다!"
한평생을 단련해온 주먹을 휘둘렀다.
포위된 곳에서 모두를 탈출 시키려면 한 곳이라도 뚫어야 했다.
"달려라아아!!"
포위를 뚫어도 모두의 등 뒤를 지켜야 한다.
"나는! 무왕 샤트룩스! 전사들의 우상이며! 용사파티의 방패다!!!"
몰려오는 마수 때들을 향해서 소리쳤다.
해일과도 같은 마수에게서 동료를 지킨다.
나는 무왕이다.
☆☆☆
<그날 무왕이="" 막아준="" 덕에="" 용사파티는="" 무사하게="" 탈출할="" 수="" 있었지.=""/>
<용사 님의="" 상태가="" 심각해서,="" 그날="" 첫="" 번째="" 기적을="" 사용했지만,="" 빠르고=""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었어요.=""/>
미네르바의 선조, 무왕 샤트룩스의 이야기는 끝을 맞이해 갔다.
아마도 그의 끝은.
<본녀들은 모든="" 힘을="" 추스르고="" 무왕을="" 지원하러="" 갔느니라,="" 하지만="" 조금="" 늦어버렸지...=""/>
<그래도 그는="" 무왕이었어요.="" 그="" 수많은="" 마수를="" 쓰러뜨리고,="" 시신들의="" 산에="" 고고하게="" 앉아서="" 최후를="" 맞이="" 하셨어요.=""/>
"으허엉! 선조 님!"
"아니! 도대체 왜! 흑!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세상을 지켜나간 분이 있는데 수인족이 박해 받아야 했나요!"
"오빠? 그냥 깔끔하게 세탁하면 안 돼? 아니, 세탁도 힘들어 헌 옷 수거함에도 들어가기 힘든 게 이 세계의 인족같아.."
"남편... 역시, 나도 이 세계에 온 것 자체를 잘못한 것 같아... 용서를 비는 의미로 저기 인간들이 사는 땅에 살짝 브레스 몇 번 쏴도 돼?"
잘 꾸며진 옛날이야기가 아닌, 당사자들에게서 나온 진실들.
인족에게서는 수인족은 없었다.
무왕 샤트룩스는 수인족이 아닌, 인족이었다.
만약 무왕의 이야기를 수인족에게 들었다면, 그 이야기는 인족과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자, 앨리스. 넌 무왕이 수인족이었다는 것, 알고 있었니?"
"...그건 몰랐어, 아마도 그 정도의 역사서는 왕궁의 비밀서고에나 존재할 거야."
그렇겠지, 용사파티의 전설에는 민간에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와 진실을 담은 역사서가 있을 것이다.
전설을 이용할 시에 사람들을 선동하기 쉽고, 조금만 꾸미면 금세 미움 받는 공공의 적이 완성되는 것이니까.
"인족의 윗대가리들은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 공포정치가 아닌, 공공의 적을 만든 것이지. 민중의 돌을 대신 맞아줄 존재들을 만들면, 자신들이 어떤짓을 해도 저들 탓이라고 말하면 되거든."
살며시 앨리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틀렸나? 앨리스?"
"...맞아, 로젤리아는 그것을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왕국의 왕족이나 귀족들도 어느 정도는 쉽게 이용했어."
하루를 먹고살기 힘든 민중은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 죽는 것은 자신들이 되니까.
정치에 정신을 파는 건, 높으신 분들이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민중들도 억압당하기만 하면 분노하고, 봉기를 일으키지. 그렇기에 윗대가리는 처음에는 좋게 나가면서 서서히 적들을 만들었을 거고.'
"진실이 담긴 '역사'는 보관하고, '이야기'는 꾸민다. 사람들로 해서, 역사가 아닌 꾸며진 이야기를 진실로 믿게 한다. 아둔한 자들은 높은 사람이 말한 것이니 진실로 믿고..."
수백 년간에 만들어진 바보들과 적.
"그들은 편안한 삶을 살아간다, 그렇지? 이상하게 고분고분한 앨리스 씨? 너도 평민출신이라서 그런가? 아니지, 너도 사람을 실험도구로 생각했으니 같은 죄지."
이제부터 지워지는 기억들은 인지가 되는 기억들.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공포.
"이 마왕 님은 네가 오래도록 저항하기를 바라, 쉽게 항복하면 그 뒤부터는 빠르게 지워나갈 거니까."
곧, 인족의 역사서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기억을 유지하는 앨리스가 필요하고, 그녀를 이용해서 마법국을 뒤흔들 것이다.
'너희가 좋아하는 선동으로, 너희가 만든 쉽게 속는 대중들 만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내 흥미가 쉽게 사라지지 않기를... 응? 앨리스."
'그러고 보니, 가름도 나를 찾았는데... 어디를 먼저 가야 하나?'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더 늘려 버렸다.
이러니 항상 일을 만든다는 소리를 듣는 것인가.
아직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니까, 혼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로자리아, 지금="" 소피아의="" 생각이="" 얼굴에="" 나온다고="" 알려줄까?="" 소곤소곤.=""/>
<늦었어요, 카르마.="" 다른="" 분들은="" 벌써="" 한숨을="" 쉬기="" 시작했는걸요?="" 소곤소곤.=""/>
'혼나겠네, 소곤소곤이라고 말해도 안 들리는 건 아닌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