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동행
* * *
"프라이드 님은 어떤 일이 있어서 다이너령에 가시는 겁니까?"
프레디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질문했다.
'어떤 일이라...'
친구라고 믿었던 자.
등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
자신의 등에 칼을 꽂았던 자.
"오랜 친구를 보러 가는 길이지, 그 친구에게 알려줄게 있거든."
술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그러는 자네는 어쩐일인가?"
"저는 마탑에 가는 중간에 스승님을 만나 뵈러 들르려고 합니다."
"자네 같은 사람을 심부름꾼으로 쓴다라... 아주 대단하신 분인가 보군. 하하하."
겨우 턱걸이라고는 하나, 영웅급 기사다.
어디서 심부름꾼으로 쓰일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적당한 크기의 영지라면, 기사단장이나 부단장으로 모셔가야 할 인재니까...'
자신이 용병으로 영웅급에 도달했을 때도 이곳저곳에서 데려가려고 연락이 자주 왔었다.
'소속되는 것이 싫어서 전부 거절했지만.'
"중요한 일이라서 말입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릴수 없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제가 가는 거겠지요."
"그래, 그래. 거기까지는 알려주지 않아도 되네. 나도 그리 염치없지 않네, 이 친구야. 하하하!"
"하하..."
프레디라는 이름 외에는 제대로 들은 것은 없다.
단지 그와 같이 행동하게 된 것은 나름 말이 통하고, 대화를 하면서 속을 다스리려는 이유에서 였다.
잠깐의 동행이기에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고, 또 그도 자신의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간단한 가족이야기나 할 뿐이었지.'
딸 자랑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소피아가 혹시 자신에 대해서 말할 일이 있으면 인상착의는 조금 바꿔서 이야기하라고 했지.'
어쩌다, 성녀로 잠입해서 인상을 유추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거기에.
'다이너령은 소피아가 날뛰었던 곳이니까.'
입을 잘못놀려서 딸의 일을 그르칠 수도, 자신의 일도 그르칠 수도 없다.
어느 누가 그들과 연관되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기에 함부로 판단 할 수 없다.
'소피아는 내가 분노로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네 아버지는 그리 쉽게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단다.'
용병일을 하는 사람 중에 다혈질이 많다고 하지만, 자신은 뛰어난 유연성을 가지고 차분하게 검을 휘둘렀던 사람이다. 당장에 진실을 알았을 때는 분노 하였지만, 지금은 알렉스를 어떻게 속여서 복수할지만을 생각하고 있다.
"프레디, 자네도 유연성을 가져 보면 어떤가? 물론 이미 잡혀 있는 검술을 바꾸라는 것은 아닐세, 하지만 너무 정석적이야.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자에게는 자네 검로가 쉽게 보일걸세."
"유연성... 말입니까? 혹시 그게 프라이드 님께서 말씀하신 경험의 차이 입니까?"
"그렇지."
"흠..."
제 검의 문제점에 대해서 고민에 빠졌는지,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표정을 하고 말이 없어졌다.
"여행 도중이라면, 내가 대련이라도 해주겠네. 나도 적당하게 경험을 쌓아가고, 자네도 쌓고 서로 좋지 않은가?"
"예,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프라이드님."
그리고 술잔을 부딛치며, 밤을 지세웠다.
☆☆☆
"프라이드 님! 준비 되셨습니까?!"
검을 바르게 쥐고 있던 프레디가 질문했다.
'허허... 저 친구 참...'
"이보게, 프레디? 자네는 적에게도 준비가 되었냐고 물을 것인가?"
이른 아침부터 프레디는 대련을 청했고, 자신은 그에게 실전과 같이 대련 할 것을 일러두었다.
그런데.
"하하하.. 죄송합니다. 습관이 돼서..!"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를 하는 프레디에게 달려갔다.
검과 검이 부딛치는 소리가 울렸지만, 제대로 막지 못했던 프레디는 자세가 무너졌고 자신은 그대로 그의 다리를 걸고 넘어뜨렸다.
"실전에서 적은 기다려주지 않네, 방심하면 안 되지."
"...명심하겠습니다."
내 검술은 좋게 말하면 유연하고, 다채롭지만.
나쁘게 말하면 검술이 아닌 싸움에 가까웠다.
용병 일을 하면서 스스로 검을 읶히고, 단순하게 휘두르는 것에 가깝다 보니 유연하지만 때로는 주먹이나, 다리를 사용해서 제압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이 친구는 누군가에게 배운 '기사'로서의 검이지만, 나 같은 검술을 쓰는 사람과의 겸험이 적어.'
그렇기에 검을 못 쓰게 된 경우나, 공격이 막혔을 때의 대처법이 적었다.
"용병들 중에는 나 같은 검을 쓰는 경우가 많아, 돈이 있는 사람은 어디 도장에 들어가서 배우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마구잡이식으로 검을 휘두르니까. 대충 베기만 한다면 좋다는 식일세."
상대가 마수여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마수라면 피한다는 개념을 읶힌다. 물량으로 덤벼들기라도 하면 배운대로 휘두르기도 어려워지니까.
때로는 검이 아닌 다른 것으로 공격해야 하기도 했다.
"모든 전투가 '기사'의 결투와는 다르다. 규칙을 정하지도 않고, 명예도 없지. 보니까 자네는 실전은 적게 하고 훈련으로만 그 경지에 도달한 것이겠지?"
실전도 기사들과의 결투가 대부분이었을 거다.
"예, 그렇습니다..."
"하아... 천재는 천재구만, 실전이라는 것은 말이야, 훈련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도 튀어나오는 법일세. 자네에게 검을 가르쳐 준이가 언제쯤 실전같이 가르쳐 주려 했는 지, 모르겠지만, 조금 늦은 감이 있지. 아니, 자네가 너무 빠른 것이거나."
거기에.
"검에 망설임이 있어, 마치 사람에게 휘두르기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분노도 담겨 있고, 자네 일이니 어떤일이 있었던 지는 물어 보지 않겠네. 하지만 망설임을 떨쳐 내지 않으면, 그 망설임은 자네를 찌르게 될 거야."
"충고, 감사합니다."
실력은 출중하나, 압도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인재.
경험만 충분하다면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천재.
"역시 후회하면 안 되는 것이겠지요..."
"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후회는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일세, 자네는 사람이기를 포기하려는 건가?"
굳은 표정을 하고서 엄하게 말하였지만, 맞는 소리였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한다.
후회속에 얽매여 살면 안 되지만, 후회, 반성이 없이 살아가는 건 인간이 아닌 짐승이나 하는 짓이다.
'이 친구를 가르친 게 도대체 누구길래...!'
프레디의 동공이 떨리고 있었다.
"하아... 개인사를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조금 뜸을 들이고 그를 바라보았다.
떨리는 동공 속에 담겨 있는 망설임, 후회, 자책.
"어떤일이 있었는가?"
젊은 사람을 저렇게까지 몰고간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 같다.
☆☆☆
"...일단 물어보지, 정말 그날 무고해 보이는 사람을 직접 벤 것이 아닌가?"
"예... 저는 다른 이들을 말리기는 했지만, 그들은 제 말을 듣지 않고, 마법사의 말만을 들었습니다."
'알렉스만 처리하고 돌아가려 했건만.'
예상외로 베어야 할 것이 많은 것 같다.
"후회하게."
"!!!"
"반성하게, 속죄하게. 용서를 구할 사람들은 없지만, 끝까지 속죄하게."
'그 누구도 속죄하려 들지 않으면 자네라도 해야지.'
평소에는 그에게 사람 좋은 여관주인아저씨 같이 대하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진지하며, 엄한 표정으로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잊어선 안 되네, 망각은 축복이지만, 저주와도 같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들과 잊혀져서는 안 될 것들을 상관없이 망각시키니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생명을 죽인 것에 대한 후회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그런 것들을 끝까지 되네이고, 잘못을 알고 있어야 한다.
"절대로 익숙해져서는 안 되네, 후회로 검에 망설임을 달고 살것 같으면 검을 내려놓게. 다만 후회하고 속죄해도 자네의 심념이 있다면 검을 들게, 검을 들어서 그들의 목숨을 등에 이고 살아가게."
무고한 이가 되었든, 무고하지 않은 이가 되었든 검을 들게 되면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생명의 수확이다.
자신이 누군가의 생명을 가져갔다는 것을 망각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마수와 같은 괴물이 된다.
"언제나 사람에게는 책임이 따르며, 그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것들에서 멀어지는 것과 같은 거네."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세상에 더 없을 괴물이 되어 갈 것이니까.
"프라이드 님...!"
"자네의 목숨을 위협하는 적에게는 검을 휘두르되, 후에는 그를 죽였다 라는 것을 인식해야 된다. 절대로 살인에는 익숙해져서는 안 되니까 말이야."
"그러면 저는..!"
"87명."
과거에 내가 수확한 생명의 숫자.
"내가 용병을 하면서 베어 버린 도적, 강도, 산적들의 수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던 악인들이었다. 그렇다고 잊어서 되는 숫자가 아니다."
내 손으로 베어 버린 악인들, 마수들을 사냥하던 자신이 마수랑 다를 바가 없는 자들을 베어 넘긴 적들도 많았다.
그들이 먼저 자신에게 무기를 휘두른 적도 있었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자들이라도, 자신은 쓰레기가 아니니까.
"기억해야만한다, 프레디여."
자네도 사람으로 신념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
"음. 이제는 조금 진정 되었는 가?"
"예.. 조금은 진정 되었습니다.."
그 뒤로 프레디는 말없이 조용하게 눈물만을 흘렸다.
자신에게 들은 말에 깨닫게 된 것인지 모른다.
막지 못한 것의 후회일 수도 있다.
어떤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가슴이 쉬원하게 뚫린 것 같은 표정으로 내가 내민 물을 받아 마셨다.
누구나 잘못은 한다.
그 잘못을 뉘우치냐, 아니면 익숙해지냐에 따라서 사람으로 남을지, 짐승이 될지 정해지는 것이다.
'이 친구는 사람으로서 남아 주었으면 좋겠군...'
"프라이드 님."
"음? 왜 그런가?"
프레디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리를 숙여 인사해 왔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래도록 고민하던 것이 해결 되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자신 때문에 희생된 사람을 생각해서 라도 바뀌어야 한다고 충고를 한 주제에, 정작 제 자신은 그 일로 희생된 사람을 외면할 뻔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저는 제 자신에게만 자비로운 짐승이 되었을 겁니다. 희생된 사람을 등에 이고 가겠습니다. 힘들어서 주저앉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끝까지 걸어나가겠습니다."
'다행히 이 친구는 돌이킬 수 없는 곳에 간 것이 아니었구만.'
"그리고 언젠가 제 일이 끝나면 그들에게 속죄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자신을 질책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가 더 이상 나락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만난 지 얼마 안 된 인연이지만, 인연이다.
엇나갈 수 있는 젊은이를 올바른길로 인도하는 건, 먼저 삶을 살은 사람들의 몫이다.
"프레디, 잠깐 뿐이라지만 우리는 동행하는자들이다. 동료같은 거지, 동료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언젠가 자네도 동료를 바른길로 이끌게."
"예."
나는 다시 검을 쥐면서 그에게 말했다.
"자, 다시 대련이나 하지. 아직 시간은 많이 있다고?"
"하하하..."
옅게 웃던 프레디가 내 다리를 걸었다.
"?!"
"유연성... 이었던가요? 배운대로 해봤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 이 새끼가?'
배우는 것도 빠르고, 바르기까지한 천재새끼다.
나 프라이드는 치졸한 어른으로서 온 갓 잡기술을 써가며 그를 열 번 정도 더 넘어뜨린 후에 만족한 듯이 대련을 끝냈다.
"하하하하! 프레디, 내 동행이여! 아침 식사를 하고 다이너로 향하자꾸나! 아하하하하!"
만약 소피아가 이 장면을 보았으면, '역시 난 아빠 딸인 거 같아.'라고 말했을 것이다.
"크흑...! 제 존경 돌려주시죠..!"
"아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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