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외전:옛 용사와 여제의 이야기
* * *
"음? 아가씨, 왜 그렇게 못 서 있는가?"
"알면 다쳐요, 삼손씨..."
그 밤뒤로 사흘이 지나고, 아침에 삼손이 마중을 나왔다.
'정말, 그 뒤로 계속 놓아주지 않을 줄은..!'
닉스의 죽어도 살리는 이계의 마법 탓에, 나는 끝까지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내들은 어째서인지 윤기가 흐르고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나는 지금 서 있기도 힘들다.
'소피아는 힘들어요! 쫌만 쉬게 해주세요...'
아내들에게 필살의 애교를 떨면서 애원했지만, 오히려 불난집에 부채질을 해 버린 꼴이 되어서 벗어나지 못하고 좀 전에서야 침대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파니아는...'
사흘만에 다시 만난 파니아는 공손한 자세로 온몸을 떨면서 겁에 질려 있었다.
데카라비아한테.
계속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만을 반복하고 데카라비아가 바라보면 작게 소리지르면서 더욱 큰 소리로 반복했다.
'뭔일이 있던 거지...?'
나에게는 어떤짓도 안하기에 상관은 없었지만, 한 번은 보고 싶다.
'아니, 봤다가는 내 정신 건강에 해로울 거 같아.'
"삼손씨, 출발할까요?"
"그... 그래, 출발하지."
퀭한 눈으로 미소 지으면서 거인족의 마을로 출발하기를 권했다.
한동안 집같은 무거운 곳에는 발을 들이기가 싫어질 거 같다.
☆☆☆
"소피아언니! 카르마언니가 옛날이야기해 줬어!"
"그래?"
우리는 거인족으로 향하는 동안 편하게 가라는 벨제부브의 호의에 마차를 타면서 이동했다.
마차를 끄는 것은 말과 거리가 먼 마수였지만, 나름 힘 있는 마수이기에 쉽게 지치지 않고, 약한 마수는 접근도 안했다.
'사실 닉스 덕에 저 마수들도 도망치려고 했지만.'
최강급 마수가 아내로 있는 집단에 어느 마수가 접근하랴, 심심하지만 레이나에게 위험한 일은 없으니 다행이다.
"검순아, 적당하게 수위조절 했지?"
<걱정 말거라,="" 잔인한="" 장면은="" 뺐고="" 옛="" 용사이야기만="" 했다.=""/>
카르마에게 속삭이듯이 이야기했고, 들은 대답도 사실 조금 걱정이었다.
'잔인한 것만 뺀거 아니야?'
자신도 모르게 정답을 맞추었지만, 좋아하는 레이나를 보면서 상관없겠지 라면서 넘겼다.
그러고 보면 자신도 초대용사의 이야기는 잘 모른다.
'전설로만 들었고, 자세한 건 모르니까.'
초대용사와 관련된 책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있던 당사자만큼 정확하지는 못할 것이다.
"검순아, 나도 좀 들려줄 수 있어? 거인족 마을에 가는 동안은 조금 심심할 거 같아서."
<음! 알겠다.=""/>
카르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 멸망한="" 제국의="" 이름없는="" 여제가="" 있었다...=""/>
☆☆☆
"어? 여긴 어디.. 분명 나는 차에 치일 뻔했는데.."
한 남자가 알현실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폐하! 성공했습니다!"
"음! 역시 본녀다! 마왕이 마수를 소환했던 것을 응용해서 소환진을 만들었지만, 멋지게 성공했느니라!"
남자는 폐하라고 불린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잘란채 하듯이 콧대를 높이 세우며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아이.
화려한 금발에 벽안을 하고 있고, 머리에 쓰고 있는 관은 황제를 상징하는 것처럼 휘양찬란했다.
단지, 그 아이가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가 아니었다면 위대해 보였으리라.
"꼬마야, 여긴 어디니?"
"꼬마라니! 무엄하도다! 본녀는 이 제국의 여제이자, 대륙 최고의 마법사다!"
화려한 복장과 휘양찬란한 관은 충분하게 위치를 설명해 주었지만, 말하고 있는 당사자가 어려서야 아이가 크게 보이려고 발돋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그래. 꼬마야, 그래서 여기가 어디라고?"
"이익! 꼬마 아니라니까!"
☆☆☆
"오! 용사여! 잘 지냈는가? 본녀도 같이 모험에 따라가고 싶지만 제국을 지켜야 해서... 미안하네..."
여제는 시무룩하게 말했고, 용사는 그런 여제를 보면서 미소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제님이 지원해준 덕에 안심하고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이익! 용사여! 편하게 부르라 허락하지 않았느냐!"
"후후후, ○○○○님이 너무 귀여우셔서 그래요."
용사는 여제를 보면서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고, 성녀는 미소 지으면서 여제를 위로했다.
"하하, ○○○○도 제국을 위해서, 또 대륙을 위해서 잠도 아껴가면서 노력하는 거, 잘 아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알았지?"
"..응, 헤헤... 본녀는 오라버니가 있었으면 용사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응! 꼭 용사같은 사람이여야 해."
용사도 여제를 친동생처럼 아꼈다.
마왕이 대륙을 침공하고, 선대황제는 먼저 전장에 앞장서서 사망했다.
그 탓에 형제도 없이 어린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대륙을 위해 잠조차 아껴가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불과 여덟이라는 나이에 아비를 여이고 황제에 올라서, 열 살이라는 나이에 전무후무한 천재 마법사로 용사를 소환했다.
그저 마왕의 마법을 해석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여제가 용사를 소환하지 않았으면 사고를 당했을 거기에 도왔지만, 지금은 이 아이를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륙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모험을 하고 있다.
"하하핫! 용사여! 자네는 어찌 여제폐하를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가! 원래 이 나이 때는 더욱 어른처럼 보이고 싶을 때라고! 음하하핫!"
그러는 저 수인족 전사가 더욱 어린아이 취급이었다.
"이익! 전사여, 그대가 더욱 어린애 취급이다!"
"으음? 그렇군 아하하핫!"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용사여."
여제의 부름에 용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았다.
"둘이 어디까지 갔느냐? 성녀랑 그렇고 그런사이라는 것은 만인이 아는 사실일 진데..."
"쿨럭! 크흠! 그건..."
"어머나! 우후후후, ○○○○님? 그건 나중에 좀 더 크시면 알려드릴게요. 후후후."
여제의 말에 깜짝 놀라서 사래가 들린 용사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인 성녀.
"으음... 본녀도 다 컸는데..."
그런 둘을 보면서 시무룩해 하는 여제.
이런 평화가 길게 이어지길 바라였다.
☆☆☆
"폐하! 도망치셔야 합니다!"
마수의 습격으로 인해 불타오르는 제국의 수도.
"곧 용사님께서 도착하실터이니 부디 폐하만이라도...!"
"본녀는 이 제국의 여제다! 그런자가 제국을 내비두고 도망이라니!"
마왕이 직접 습격에 나섰다.
마왕으로서는 제일 골치가 아픈 제국.
마수만 보내는 것보다, 자신이 나서는 것이 더욱 쉽게 처리가 가능하다 생각한 것이겠지.
"거기에 본녀는 대륙 최고의 마법사다. 본녀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제국을 지킨단 말이냐."
여제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폐하!!!!"
천천히 걸어간다.
'이게 본녀의 마지막이로고... 용사, 오라버니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 그전까지는 본녀가..'
"본녀가 제국을... 대륙을 지킬 것이다!"
여제가 든 지팡이에서 마력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제국이 무너지고 있다.
수도가 불타오르고 있다.
하지만.
"폐하!!!!!"
여제가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
용사가 구해 줄 때까지 버티도록,
누구하나 다치지 않게,
마지막 생명까지 쥐어짜서,
사람들을 보호했다.
공격할 수도 있었다.
여제는 마수들을 공격해서 몰아 낼 수도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 나갔을 것이다.
"이러면 누구하나 다치지 않고 구할 수 있느니라... 수도가 망가져도 복구하면 그만이다, 제국이 망가져도 살 길은 있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을 경우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
"지켜야하는 건 사람이니라... 사람들을 지켜야 비로소 제국을 지키고, 대륙을 지키는 것... 껍데기만 남아버린 제국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끊임없이 마력을 쏟아 낸다.
마수들은 사람들을 공격했지만, 여제의 보호에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졸리구나...'
이대로 마력을 끊어도 여제의 보호는 유지 될 것이다.
'만약이란 것이 있으니까...'
마력이 끊겼다가 누군가 다치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되니까.
계속해서 마력을 쏟아 냈다.
이윽고 마수들이 눈치채서 여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악! 폐하... 소인은 폐하를 먼저 보낼 수는 없습니다... 쿨럭! 그러니, 끝까지 버티셔야 합니다.."
여제의 측근들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날렸다.
기사도, 문관도, 재상조차 여제를 지키기 위해 마수를 막았다.
'본녀는 참으로 복된 사람이로고...'
자신에게 과자를 주며, 예뻐해주던 기사들.
바쁜업무에 툴툴거리면서도 열심히 일해주던 문관들.
여제를 친손녀처럼 소중하게 대해준 재상.
그들이 여제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받쳤다.
"미안하구나... 그대들의 귀한 목숨을 받쳐가며 구했건만..."
여제의 뺨을 타고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졌다.
무너져 내리는 제국을 보면서, 한 명의 사람이라도 더 살기를 바라면서.
최후의 생명까지 쏟아 냈다.
'아... 용사여... 오라버니... 마지막으로 보고 싶구나..."
여제를 지킨자들 덕에 마지막까지 사람을 지킬 수 있었다.
제국이 무너지더라도 목숨받쳐서 구한자들 덕에 사람들은 살 수 있을 것이다.
"폐...하.. 흑..!"
쓰러져가는 제국의 최후의 여제.
털썩!
그날 대륙에서 가장 번성했던 제국은 마왕의 습격으로 멸망했다.
하지만 제 목숨을 받쳐서 사람들은 구한 여제에 의해, 피해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녀를 지켰던 자들과 여제를 제외하고는.
☆☆☆
"흐윽! 늦어서 미안하다... 미안해.. 지켜 주지 못해서..!"
마수의 습격으로 제국은 폐허가 되었다.
그 가운데 목숨을 받쳐서 사람들은 구한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시신은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목 놓아울면서 그들을 애도했다.
그중에서 가장 깨끗한 시신은 정중앙에서 모두의 애도를 받았다.
"죄송해요... 여신님의 기적이 무슨 소용인가요..! 어찌! 여신님! 어찌하여 이런 아이를 그렇게 빨리 데려가셔야 했나요!"
성녀가 허공에 소리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적을 사용해서라도 살리려 했지만, 이미 여제의 영혼은 윤회에 들어가 있었다.
이제는 살릴 가능성조차 없다는 소리였다.
쾅!
수인족 전사가 바닥을 내리쳤다.
"어째서 여제폐하 같은 분이 죽어야 했나! 대륙을 위해 쉬지도 않고 일했던 아이인데! ...어째서..."
그 이유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용사도, 성녀도, 전사도, 살아남은 사람들도 제국과 대륙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아이가 죽어야 했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미안하다... 동생처럼 여겨 놓고... 오라버니라 불렸으면서...!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어째서 울고="" 있는="" 것이냐?=""/>
"!!"
<어째서 본녀를="" 안고="" 울고="" 있는="" 것이냐?=""/>
털썩!
사람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숨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단순하게 잠에 든었을 뿐일 것이다.
그것보다.
"○○○○!!!"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본녀는="" 카르마,="" 업보검="" 카르마니라.=""/>
여제, 용사가 안고 있던 여제의 시신이 눈을 뜨면서 이야기했다.
<그대는 누구냐?="" 그대가="" 여신이="" 말했던="" 본녀의="" 상용자인가?=""/>
"○○○○! ○○○○!!"
용사는 기뻐하는 것인지, 아니면 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저 카르마를 꽉 껴안고 있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이번에는...!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 줄게!"
<으음... 잘="" 모르겠지만,="" 힘들었겠구나.="" 사용자여="" 본녀가="" 위로해주마.=""/>
카르마는 서럽게 울고 있는 용사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위로를 해주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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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본녀와="" 초대용사의="" 첫="" 만남이었느니라!="" 에고웨폰의="" 탄생은="" 세상에="" 내제된="" 영혼의="" 정보를="" 지우는="" 과정에서="" 모두가="" 잠이들지만="" 용사는="" 그럴="" 수가="" 없어서="" 마주칠="" 수="" 있었지!=""/>
에고웨폰의 영혼은 거기에 내제되었는 영혼의 정보를 존재만 남겨두고 이름이나 생김새를 세상에서 지워 버린다.
그런자가 존재했다는 것만 남도록, 내제된 영혼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으허어엉! 카르마언니! 여제님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슬퍼요! 흐어엉!"
레이나를 시작으로 마차 안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흐엉! 저도="" 용사님의="" 기억만="" 남아서...!="" 여제님은="" 용사님이="" 이야기해주신="" 걸로만="" 알고="" 있어서...="" 흐헝!="" 죄송해요!=""/>
<본녀도 용사에게="" 들은="" 것이니라,="" 제국의="" 멸망과="" 같이="" 탄생해서=""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흑, 언니... 이야기가.. 너무.. 흑!"
"여신 나쁜년! 어떻게..! 여제의 기록을 세상에서 지울 수가 있어! 허응.. 소피아아.."
"오빠아아.. 용사의 이야기란 거 슬픈거 말고는 없어? 으으.. 오빠도 그런 거 아니지? 흐으.."
"이 세계에와서 죄송합니다. 이 세계에와서 죄송합니다.."
...
'어... 이거..'
"검순이 이야기지?"
<음? 본녀와="" 여제의="" 이야기다만?=""/>
"그래.. 모르면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제가 카르마 같지만 눈치 못챈거 같으니 내비두자.
'본인이 원하던 용사와의 모험도 할 수 있었으니까... 잘 된 건가..?'
"크흡! 음... 저기 거인족의 마을이 보이네."
'이제왔군.'
거인족을 산하에 둘 시간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