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맹세
* * *
"오랜만이네."
삼손이 찾아왔다. 정확하게는 미리 악마성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네, 삼손씨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나요?"
"아가씨도 대충은 눈치챈 것 같구만, 대결을 해서 이긴다면 거인족도 따른다고 했지."
역시나.
골리앗의 지능을 빼다밖은 현족장은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골리앗도 단답형으로 대답할 뿐이었지, 의외로 생각은 깊었다.
'종족을 맡길 수 있는 자인지는 대결로 판단하겠다고 생각한 거겠지.'
단지 단답형으로 대답해서, 고집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일 거다.
"아가씨, 출발은 사흘 뒤로하세나, 나는 도와주겠지만 손주놈은 아가씨가 설득해야 할 거야."
"네, 예상은 했었고, 이 정도까지 도와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삼손이 아무리 선선대의 족장이라고는 하나, 현 족장은 다른 인물. 일족의 일에 조언은 할 수 있으나, 선택은 할 수 없다.
'그건 월권이니까, 삼손씨도 현 족장인 손주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겠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종족을 이끄는 족장의 권리이자, 책임. 섭정도 불가하고, 모두가 일족을 맡기기에 문제없다고 생각한 자를 족장으로 추대한 것이다.
남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족장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오르지도 못할 것이고, 그렇다고 조언조차 듣지 않고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살아가는 독재자는 다른 이들에게 끌어내려진다.
그렇기에 바보 같아 보여도 족장이란 자는 현명하고, 우직하며, 부족원들로 부터 신임받는 자 오를 수 있는 자리였다.
'왕권의 세습과는 다르지, 벨제부브의 경우는 완전하게 왕권 세습인 거 같지만, 거인족과 수인족은 인정받은 자가 족장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으니까.'
단지 그것이 세습처럼 보였을 뿐.
"족장이 부족을 이끄는 형태는 다양하니까요. 리우스씨 처럼 이끄는 자가 있는 가 하면, 현 거인족 족장처럼 이끄는 사람도 있는 것이겠죠."
"...이해해 주어서 고맙구나, 뭐 내가 볼 때는 아가씨면 손주도 쉽게 따를걸세. 그럴 리는 없어 보이지만, 설사 아가씨가 지더라도 협력은 할 것이야. 아가씨가 어떤자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단지..."
삼손은 눈을 감고, 한차례 숨을 고르면서 말을 이었다.
"손주는 골리앗을 한합으로 베어넘긴 그 검을 보고 싶은 거겠지, 결국에는 손주도 뼈 속까지 전사니까."
"알겠습니다, 현 족장에게 보일게요. 제 검으로 제가 어떤자인지를..."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삼손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럼 사흘 뒤에 보게나, 아가씨."
그러면서 전보다 늘어난 내 아내들을 훑어 봤다.
"에잉.. 내 손주놈도 시커먼 남정네들한테 인기 있지 말고, 아가씨처럼 여인에게 인기가 있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꼰대 기질이 있을 거 같은 대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어.. 리리스? 미네르바? 혹시 삼손씨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거.."
"네, 언니. 삼손씨의 최대의 약점인 여자를 후리려고 저런 식으로 다녀요."
세상에나.
"소피아, 삼손아저씨가 저 모습으로, '누나아아.'하고 다가가면 어른 여성은 꽤 많이 넘어가."
네상에나.
이 일은 알지 못한 거로하자.
삼손의 명예... 아니, 솔직히 저기서 여지껏 쌓아 올린 이미지가 한 번에 무너 졌지만, 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기억에서 지우자.
"오빠, 난 어린애를 건드는 인간들은 이해가 안 돼. 것모습이 어린아이 처럼 보여도, 그건 범죄야 범죄."
범죄급으로 스토킹하시는 분이 말이 많다.
"시연아? 내 어린 시절 모습은? 아니면 현재의 내가 어려진 모습은?"
"...쓰읍! 하아. 침흘렸네..."
나는 예비 범죄자에게서 한 걸음 벗어났다.
"남편의 남자시절 어린모습, 사진이라고 하는 걸로 봤어. 깨물어 주고 싶었어."
그리고 옆에 있는 또 다른 범죄자 닉스.
'네가 깨물어 주면 죽지 않니?'
"아... 확실히 언니의 그 모습은 못 참지..."
"응응, 소피아가 어린남자의 모습으로 '누나아아'하고 안기면 참기 힘들 거 같아."
고개를 끄덕이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두 아내.
"오빠? 쇼타콘은 쇼타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사랑하게 된 게 쇼타인 거야."
또 눈이 맛이 가 버렸다.
"시연아! 그거 범죄자 마인드! 범죄자 마인드!"
그건 자기 합리화시키는 범죄자나 하는 생각이다. 제발 참아줬으면 좋겠다.
☆☆☆
아내들의 몹쓸 생각을 꾸짖고, 그런 건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한참을 가르치고 있을 무렵에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소피아님, 마님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식당으로 가시죠."
먼저 출발한 우리와 다르게, 수인족 마을에 남아 있던 데카라비아의 목소리였다.
'언제 출발한 거지?'
[전이]로 오는 방법도 있으니까 문제는 없지만, 우리도 도착한지 수 시간도 안 지났다.
어떻게 우리가 도착한 시간때에 맞춰서 도착한 건지 모르겠다.
'이동시간은 대충 알 수 있지만, 이미 시녀일을 할 준비까지 다 끝난 거 같은데.'
"소피아언니, 리리스언니 집도 밥 맛있어? 빨리 먹어보고 싶다. 히히."
그래,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응, 레이나. 여기도 맛있어, 이제 먹으러 갈까?"
"응!"
레이나가 이리도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우리는 문을 열고,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의 뒤쪽에 데카라비아와 파니아가 따라오면서 설명을 이었다.
"소피아님의 저택 지하에는 악마성 저택과 수인족 저택을 이어 주는 [전이] 마법진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두 곳을 편하게 이동하시라고 만든 마법진이며, 마력만 불어넣으면 가동되는 반영구적인 마법진입니다."
과연 저택과 저택을 이어 주는 마법진이 있으면 편할 거 같다. 거기에 반영구적인 마법진이면 재료비만으로도 상당한 금액이 들어갔을 진데, 우리를 배려해 줘서 설치해준 어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
"우리가 도착할 때 즈음에 완성 되었나보네?"
"예, 소피아님이 악마성에 도착하는 것보다 빠를 것 같으면 미리 알려드릴려 했습니다만, 엇 비슷한 시간이 되어서 말씀 못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하하.. 죄송할 것까지야..."
정중하게 사과해 오는 데카라비아에게 쓴웃음을 지우면서 만류했다.
정말로 죄송할 필요는 없었다. 나름 아내들과의 여행도 재미있고, 레이나에게도 세상구경을 시켜줘서 좋았으니까.
데카라비아에게 맡겨 두었던 파니아까지 모이니, 상당하게 인원수가 되었다.
'나와 아내들, 실체화한 두 명, 시녀 한 명과 노예 하나인가...'
시녀는 우리와 자주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가는 곳에는 대부분 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데카라비아는 신출귀몰하게 어디든 다 있었네?'
심지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우리의 뒤처리로 나중에 출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 데, 도착은 먼저해서 할 일들을 미리 준비까지 해 놓았다.
지구였으면 얼마를 들여서라도 데려갈, 최고의 비서이자 시녀가 아닐 수 없다.
'설마 리리스의 우수함은 전부 데카라비아고, 리리스는 역시...'
"언니? 혼나고 싶으세요?"
"아니요, 죄송합니다."
우리 아내들은 날이 갈수록 눈치가 좋아진다.
리리스도 충분하게 우수하고, 똑똑한 지능형 사천왕이었다. 단지 내가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때려 부셨을 뿐이고, 다른 사람이었으면 넘어서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아! 맞다. 목걸아?"
<예, 왜="" 그러신가요.="" 소피아님?=""/>
"너, 혹시 잘려 나간지 오래된 부위도 고칠 수 있어?"
<뭘 그="" 정도로,="" 당연하죠.="" 죽은="" 것만="" 아니면="" 완벽하게="" 고칠="" 수="" 있고,="" 죽었어도="" 윤회에="" 들어가기="" 전의="" 영혼이라면="" '기적'을="" 사용하는="" 걸로="" 살릴="" 수도="" 있어요.=""/>
로자리아는 정말,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듯한 표정을 하면서 대답했다.
"역시, 누구와는 다르게 할 수 있는 게 많이 있네."
<그 누구가="" 누구냐!="" 소피아!="" 누구냐고="" 물었다!=""/>
그 누구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지만 나는 무시했다.
<무시하지 마라!=""/>
"데카라비아? 잠깐만 이쪽으로..."
"예, 무슨 일이신가요."
나는 데카라비아를 불렀고,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서 시킬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목걸아?"
<음... 이="" 정도는="" 쉽다="" 못해서="" 기별도="" 안="" 가요.="" 소피아님의="" 마력이="" 워낙="" 많아야죠,="" 후후.="" 비아님?=""/>
로자리아가 손을 뻗고, 데카라비아에게 닿았다.
순간 손끝에서 자그마한 빛이 일어나더니, 곧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 데카라비아의 뿔이 있던 자리와 날개가 있던 자리로 가서 안착했다.
그리고.
"어...?"
데카라비아가 손으로 자신의 '뿔'을 만졌다.
그녀의 '날개'가 움직인다.
"어.. 뿔이..."
항상 평온했던 데카라비아의 눈이 흔들렸다.
사슴과 같은 뿔이 자라났고, 그녀의 등 뒤로 자그마한 날개가 자라났다.
"예전부터 우리를 도와주느라 고생해서, 뭐 보답할게 없을 가 했는데... 마음에 들어?"
<흐흥! 카르마는="" 이런="" 거="" 못하죠?="" 걸="" 보고="" '우수'하다고="" 하는="" 거예요.="" 이="" 애완검!=""/>
<으그그그... 애완검은="" 하지="" 마라...=""/>
자신의 우수함을 어필하면서 카르마를 놀리는 로자리아와 그런 로자리아를 보면서 분해하는 카르마.
그런 두 사람을 무시한 채로, 자신의 뿔과 날개를 매만지고 있는 데카라비아.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평소의 평온하고 담담한 표정을 버린 채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데카라비아를 바라보며, 따듯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리...리리스님... 저.. 뿔이... 흑!.. 나.. 날개가!"
리리스도.
"후후, 정말 다행이네. 예전부터 항상 미안해 했었는데, 나를 따라와서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정말 다행이야 비아."
미네르바도.
"소피아가 좋은 일을 했어, 봐바 리리스도 울고 있는 비아를 안아 주면서 위로해 주잖아?"
시연도.
"오빠는 역시 사람의 마음을 잘해아려 준다니까. 아! 이제는 앉아서 우네, 비아가 저렇게 오열하는 거 처음 봤어."
닉스도.
"남편은 역시 상냥하다. 항상 모두를 위해서 움직이니까, 항상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 줘."
레이나도.
"우와! 비아언니! 다행이에요! 그리고 뿔이 사슴처럼 예쁘고 머리처럼 예쁜 갈색이에요!"
모두가 미소를 짖고 있다.
본인은 인족에 잠입할 때는 편하다고 했지만,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는 뿔과 날개가 있던 시절이 그리웠을 것이다.
'지저국에 있을 때, 거울을 보면서 뿔이 있던 자리를 만지는 것을 봤거든.'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렇게 주저앉아서 오열하고 있는 데카라비아를 리리스가 달래주었고, 우리는 잠시동안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정말 잘 됐어.'
조용하게 미소 지으면서.
☆☆☆
"크흠! 여러분, 실례했습니다."
주저앉아서 오열할 것이 부끄러웠던 건지, 데카리비아는 헛기침을 하면서 다시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눈은 이미 퉁퉁 부었지만.'
말했다간 아내들의 눈초리를 받을 거 같아서 마음속으로만 담아 두었다.
"소피아님."
데카라비아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당신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가슴에 댄 채로 충성을 맹세했다.
"?!! 아니, 나는 그런 걸 받으려고 한 게 아니고..?!"
"저는 본디 리리스님의 전속 시녀로,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깜짝 놀라서 만류하는 나를 무시한 채로 그녀는 말을 이었다.
"부디, 제 충성을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 데카라비아는 당신의 검이 되고, 방패가 되며, 당신께 받은 이 갚을 수 없는 은혜를 갚으려고..."
"..."
"평생을 충성하겠습니다."
"하지만... 데카라비아는 리리스의 시녀이자 비서였고..."
"그 업무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제 소중한 리리스님이니까요. 하지만 이제 마님들의 시녀장이고, 소피아님의 비서입니다."
그녀는 말싸움에 자신있는지, 토씨 하나 틀린 말없이 맞는 말만 따박따박 했다.
"그래도, 충성의 맹세라니. 조금 과하지 않아? 나는 평소에 도움받은 것의 보답으로 한 건데..."
"충성의 맹세를 한 것과 제 최우선이 소피아님이 되었을 뿐,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안 받아 주신다면 맹세를 거절 당한 한심한 존재로 낙인 찍히겠지요. 그러면 그냥 자결하겠습니다."
담담하고 평온하게 협박한다.
안 받아주면 죽어 버린다고.
"언니, 언니. 고집부리는 비아는 못말려요. 저래보여도 고집하나는 알아 주거든요."
리리스가 귀에 소곤소곤 이야기하지만 정말 곤란했다.
'아니, 충성의 맹세라니?! 뿔하고 날개정도로?! 물론 본인은 정도로가 아닐 수 있지만?!'
<...소피아, 그대가="" 저지른="" 일이다,="" 받아들여라.=""/>
<어머나, 카르마.="" 아직도="" 삐졌나요?="" 제가="" 너무="" '우수'해서?="" 후후후!=""/>
<흥!/>
두 사람은 아직도 장난을 치고 있는 둘을 무시하면서 데카라비아를 바라보았다.
'하아...'
"데카라비아."
"예, 소피아님."
"정말로 이전과 달라지는 건 맹세를 한 것뿐이야, 리리스와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그대로 여야만 해."
내 말에 데카라비아는 조금도 고개를 숙여가며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을 파니아를 제외하고는 마님들 모두 소중하고 명령하면 따라야 하는 그런 분들입니다."
"그래... 데카라비아, 네 충성을 받을 게. 하지만 정말로 이전과 달라지면 안 돼."
"감사합니다, 소피아님."
나는 이날 데카라비아 라는 우수한 비서를 손에 넣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