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다가오는 죄값
* * *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 우리는 아버지에게 도착했다.
'아까보단... 진정 된 건가?'
진정인지, 아니면 분노가 한 바퀴를 돌고 차분해진 것 인지 모르겠다.
다만,
'친구라고 믿었던 자에게 배신당한 충격은 쉽게 진정 될 일이 아니지...'
나만 해도 그랬다.
아내들 덕에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지금도, 그들에게는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으니까.
"소피아.. 우리 딸... 한 가지만 물어보자, 혹시 그날 일을 기억하니...?"
"..네, 아버.. 아니, 아빠. 방금 전에 떠올렸지만, 기절하기 전에 상황은 기억해..."
"..."
잠시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미 구겨져서 본래의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보고서만이 아버지의 손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을 굴렀다.
"..소피아.. 그러면.. 그러면, 네 어머니를 죽인 놈들은.."
"맞아, 그놈들이야. 기사단장은 내가 죽였지만... 지부장은.."
"알겠다. 소피아, 그놈은 이 아버지가 끝내마..."
"응..."
아버지는 여지껏, 그 일이 '마족'의 소행으로 만 알고 있었다.
일부는 맞지만, 주동자는 인족. 인족이 마족을 보다 쉽게 사냥하기 위한 사건 조작이었다.
'거기에 내가 사라지고, 그놈에게 찾아갔지, 믿고 있던 '친구' 였으니까.'
하지만 그자는 사건에 가담했고, 자신의 아내를 죽인자. 지금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그에게 분노하고 있다.
"소피아, 인족령에가면 레이나는 위험하다. 수인이니까, 귀와 꼬리를 마법으로 숨긴다해도 색적에 걸리면, 그 아이가 위험해진다."
"알았어, 적어도 내가 맡는 것이 덜 위험하겠지."
아버지가 인족령에 데려간다고 해도, 리리스의 [변신]이나, 닉스의 변화가 아니면 결국에는 들킬 위험을 안고 가게 된다.
그런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맡는 것이 위험 부담도 없고,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 수고도 덜 것이다.
'효과가 떨어지면 다시 시전해야 하니까, 그럴 때마다 레이나에게 갈 순 없는 노릇이고.'
"일단, 레이나에게도 전하자."
"그래, 옆에서 지켜 주기로 했건만.."
우리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자책하는 아버지를 위로하면서 레이나가 있는 곳으로 갔다.
☆☆☆
"싫어! 아빠랑 갈 거야!"
"레.. 레이나? 아빠는 지금 위험한 곳에 간단다? 무서운 인족령에 가니까, 레이나가 위험해서 언니랑 있는 거야. 절대로 레이나랑.."
"싫어.. 소피아언니랑 있는 것도 좋지만.. 아빠랑 있는 게..."
나는 레이나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면서, 나랑 같이 가기를 권했지만. 레이나는 완강하게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그렇다고, 저렇게 거절하면 조금은 상처받는데...'
울먹이고 있는 레이나를 보면 마음이 약해지지만, 상처 받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레이나. 아빠가 지금 나쁜 아저씨를 혼내주러 가는 거란다. 그런데 그런 나쁜 아저씨가 레이나에게 무서운 짓을 할 수도 있어요. 아빠는 우리 레이나에게 그런 무서운 경험을 다시 격게 하기 싫구나, 부디 소피아언니랑 있어 주지 않으련?"
"..."
아이에게는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기껏 의지할 만한 어른을 만났는데, 금세 떨어져야 한다는 것은 매우 무서운 일이었으니까.
"아빠... 오랫동안 떨어져야 돼..?"
"금방 혼내주고 다시오마. 소피아언니랑 지내고 있으면, 아빠가 나쁜 아저씨를 금방 혼내주고 올게요. 그러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려 줄 수 있니?"
"...응, 아빠. 대신 돌아오면 꼭 레이나랑 있어 줘야 해?"
"하하. 알았다, 원하는 만큼 있어 줄게."
"응!"
아버지는 레이나를 쓰다듬으면서 웃어 주었고, 레이나도 아버지에게 웃어 주면서 받아들였다.
시원스럽게.
'언니... 이거는 진짜 상처 받는데... 하하. 아직 아빠가 더 좋을 때니까, 이름도 주고, 부모도 되어 주었는데 아빠가 좋을 만하지...'
저기서 나를 보며 '이거 봐라, 이게 너와 나의 차이다.'라는 표정으로 비웃고 있는 아버지만 아니었어도 덜 상처 받았지만, 레이나에게 있어서는 아마도 아버지가 제일 믿음직한 어른 일 것이다.
나는 두 번째 여도 좋으니...
"미네르바언니! 언니한테도 감사하다고 꼭 말해 주고 싶었어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빠를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히히!"
"아니야, 언니는 레이나가 이렇게 밝아진 것만 해도 좋은 걸?"
레이나는 미네르바의 다리를 끌어안으면서 감사 인사를 전했고, 미네르바도 미소로 답해주었다.
'그 미네르바는 레이나를 구해 줬으니까... 세 번째여도..'
"닉스언니! 또 둥둥해 주세요!"
"응, 자 업히자?"
닉스는 레이나를 업어 주고, 날개를 만들고는 공중에 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적은 속도와 낮은 고도로 비행하면서 레이나와 놀아 주었다.
"..."
해맑게 웃으면서 닉스와 놀던 레이나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으허어엉! 레이나! 소피아언니가 미안해! 아빠랑 떨어뜨려 놓으려고 한 거 미안해! 허엉! 미워하지 말아줘!"
그러고는 무릎 꿇고 빌었다.
엉엉 울면서.
<소피아, 추하다.="" 그대가="" 뒤로="" 밀린="" 것은="" 그대탓인데,="" 어쩌겠느냐?=""/>
<쉿! 카르마,="" 그럴="" 때는=""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이="" 좋아요.=""/>
시끄럽다, 내 천사 레이나에게 미움 받는 게 얼마나 아픈일 인지 모르면 조용히 좀 했으면 좋겠다.
"하하하... 언니.. 카르마님의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오빠, 이제는 내 기분 좀 이해하지? 아니, 조금은 다른가?"
달라도 심하게 다르다.
"레이나아아아!"
☆☆☆
아버지는 레이나와 눈물어린 이별을 하면서, 인족령으로 향했고, 우리는 삼손이 있는 악마성으로 향하기 전에 리우스부부에게 왔다.
"사위님? 집은 어떠셨나요? 거기에 레이나에게 위험한 곳으로 향할 일이 있으면 저에게 미리 말씀해주세요. 그때는 제가 맡아드릴게요."
"하하... 집은 감사해요, 편안하게 있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레이나는 과연 저랑 떨어질지는..."
아내들에게도 순서가 밀린 것에 질투해서 인사를 하러오는 내내 레이나를 꼬옥 끌어안고 있었다.
카르마는 계속 추하다고 했지만, 나를 놀리는 것에 화가 난 아내들에게 간식금지령을 받아서 입을 다물었고, 레이나를 양보 안 하는 내 모습에 쿡쿡 대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장모님이라지만. 레이나가 은근히 가족이랑 같이 있는 걸 좋아하지까, 역시 장모님보다는 나겠지?'
아닐 거라 생각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보다 더 오래알고 있던 메티스에게 갈 것이라는 거를 알고 있었다.
"응! 나중에 메티스아줌마 한테 갈게요! 그래도 지금은 소피아언니랑 있을 거예요!"
감사하게도 위험해 질 수 있을 때는 메티스의 곁에 있겠다고 말하였고, 지금은 무려 나랑 있겠다고 했다.
'행복하다.. 내 천사가.. 어? 잠깐, 아줌마라고?'
우리 천사님은 사실 겁이 전혀 없는 게 아닐까, 감히 저 위험한 메티스에게 아줌마라니. 아줌마 소리가 나오자마자, 자리를 피한 리리스, 미네르바, 시연.
메티스의 친구인 닉스를 제외하고는 슬쩍 자리를 피했다.
'동년배 아줌마인 닉스도 언니라고 불렀는 데..!'
"남편? 혼나."
"응..."
아내들의 패시브인지, 내 마음속 독백을 잘 꽤뚫는다.
나는 다시 메티스의 안색을 살폈지만, 다행히 그녀도 레이나는 용서가 되는 건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아이에게까지 화를 내지 않아요. 사위님? 그리고 표정에 생각이 들어나는 것, 고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후후후."
메티스도 생각을 눈치챘다.
거기에 들어난다니, 주위의 사람들이 대단한 거다.
나는 티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면 모를까.
"그러면, 도망친 세 명은 나중에 혼내고, 리우스, 당신? 당신도 조금 더 숨으면 아웃이에요?"
"네! 제가 건방졌습니다!"
나는 리우스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분명 저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지금 리우스의 모습은 평소의 내 모습과 같았으니까.
'처음에는 잡혀산다고, 생각했지만... 살기 위한 발악이었구나... 리우스씨. 아니, 장인어른. 나중에 맛좋은 술 좀 사다드리겠습니다.'
'고맙구나, 사위며느리... 프라이드, 그 친구도 불러 주게... 말이 잘 통해서...'
'네...'
어느새 눈으로도 대화가 통하게 된, 잡혀 사는 남편의 측은한 대화였다.
가끔 내가 아내인지 남편인지 헛갈리지만, 밤일을 빼면 분명 남편이다.
☆☆☆
"스승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 프레디! 자네 왔는가? 하하하! 턱걸이지만 영웅급에 도달한 것 축하하네! 역시 천재는 천재인가, 내가 아는 사람도 천재소리를 들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어! 하하하하!"
"전부,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다이너백작령 학살사건으로부터 수개월, 경이적인 속도로 성장하던 프레디는 잠깐동안 시간을 내서 알렉스를 만나러 왔다.
"그래! 이리 와서 앉게나, 분명 바론도 지금의 자네를 보면 매우 기뻐할 거야! 지금의 자네라면 영웅급을 뛰어넘는 것도 시간문제야! 하하하하!"
알렉스는 프레디를 옆에 앉히고는 술을 따라 주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뒤였지? 바론의 장남."
"예, 이번에 휴식을 신청한 것도 마르스의 졸업식을 참석하려고 신청했습니다. 라인하르트님은 지금 같은 시기에도 흔쾌히 허락해 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인족령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성녀와 한 명의 용사가 죽었다.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로, 니드호그의 분노에서 또 한 명의 용사를 구출하려다. 결국에는 사망을 했다.
"그 용사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적어도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을 희생시켰으면 바뀐게 있겠지?"
그는 한동안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죄송하다는 소리만 반복했을 뿐, 식사조차 거부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검을 잡고 스스로 훈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뒤에 성녀님의 위령비에 데려가 달라고 했죠."
신혁은 위령비에 가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겠다고 했다. 성녀가, 민중이 그를 용서하지 않아도 몇 번이고 용서를 구하고 세계를 구하겠다고.
"소피아가 자신을 구했던 것처럼인가..."
거기에 성녀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차갑고 한심하게 바라볼 때, 유일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친절했던 사람이라고 전했다.
'물론, 나에게도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전했지.'
그와 과거의 내가 겹쳐보였기에 가능한 행동이었지만, 그때는 소소하게 기뻤다.
"음? 소피아라고 했나? ...그러고 보니 성녀님의 이름이.."
"예, 소피아라고 했습니다. 붉은 눈에 회색머리..."
순간 마왕이 떠올랐지만, 여신에게 선택되어 로자리아를 보유한 성녀가 마왕일리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붉은 눈에 회색머리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청렴하고 자애롭다고 전해 들었죠."
청렴하고 자애롭다.
정말 전설에 등장했던, 성녀와도 같다고 했다. 세상을 위해서 제 한 몸 바치고, 타인에게 축복을 내렸던 성녀.
민중에게 사랑받고, 그녀의 사망 소식에 거의 모든 교국인들이 분노했을 정도로 사랑받던 성녀.
그 때문인지, 한 번 소화되었던 민중이 다시 들고 일어나, 부패한 교국을 무너뜨렸다고 했다.
성녀를 본받고, 여신에게 하사 받은 성력을 아낌없이 배풀자, 모든 존재를 사랑하라.
그런 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스승님. 성녀님의 이름은 어째서 물어보신겁니까."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던 알렉스는 잠시동안 프레디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전에 내가 말한 지인있지 않나? 그 친구가 수개월 전에 자신의 딸 좀 찾아 달라고 부탁했네."
그러던 알렉스는 술을 한 번에 들이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 친구 딸의 이름도 '소피아'야, 머리도 회색이고 눈도 붉은색이지."
"그럼...!"
"아마도이지만, 성녀가 등장했던 시기도 그 뒤로 좀 지나서였고, 여기서 여자 혼자서 단신으로 교국에 갔다고 한다면, 얼추 시간도 맞겠지."
"하아.."
프레디는 머리를 붙잡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되도록이면 그 용사랑은 안 마주치게 해야겠어, 아내랑 사별하고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었거든."
또다시 신혁이 친 사고를 수습하러 가야 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아니, 그곳에 신혁을 보낸 자신의 잘못도 있으니까.
'지금은 노력하시니까.. 그러니까...'
"그 지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마르스에게 찾아가기 전에 한번 만나 뵈어야 할 거 같습니다."
"자네가? 그렇군, 그 용사의 동료라서 그런가?"
"예..."
프레디는 담담하게 긍정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자네, 스승으로서 충고하나 하지, 전의 일도, 지금 일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게나. 전의 일도 자네가 직접 죽인 게 아니지 않나? 나도, 바론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그 친구한테 곧 온다고 편지가 왔으니까, 마르스의 졸업식을 참석하고 오면 얼추 맞을 거야."
"...예,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께서도 그런 일이 있던 건가, 아무리 필요한 일이라지만..'
어째서 후회조차 없을 수 가 있는 건가.
인족을 위해서 라고 해도, 마족과 결탁한 자들이라고 해도.
가능한 것인가.
아직 자신은 모르겠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들이 정말로 마족과 결탁한 자들이었는 지 의문을 품었다.
존경하는 스승님이기에 믿었고, 그의 말을 따르려 했다.
하지만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았다.
교국에서 소리치던 민중들, 파괴되어 버린 세계수의 숲, 자신을 희생해서 용사를 지킨 성녀.
정말 자신이 맞는 걸까.
정말 스승이 맞는 걸까.
정말 인족이 맞는 걸까.
'물론 학살을 벌인 마왕은 쓰러뜨려야 하지만.'
"스승님, 제가 정말 스승님을 믿어도 되는 겁니까..?"
"음? 하하하! 벌써 그런시기인가?"
알렉스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술을 따랐다.
"프레디, 가끔 의문을 느낄거야. 지금 하는 것이 맞는 건지, 자신이 가는 길이 맞는 건지."
다시 한번 술을 넘긴다.
무언가에서 벗어나려는 듯이.
어떤 두려움을 떨치려는 듯이.
'그런가... 스승님도 후회는 없다고 하시지만, 결국은 후회하시는 거야, 나처럼 자신을 위로하면서...'
"이 모든 건 인족의 평화를 위해서라네, 앞으로 의문도 생기고 벽도 마주할 거야. 그럴 때는 인족의 평화만을 생각하게."
"예,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을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프레디는 고개를 숙이면서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 의문을 어떻게 대처하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야. 그리고 사내놈이 뭐 이리 축 쳐져 있나! 자! 다시 한 잔 받게!"
"예, 감사합니다."
프레디는 술을 받으면서 생각한다.
'인족의 평화, 내가 가져와야 하는 건 인족의 평화..!'
후회나 속죄는 그 다음이 되더라도, 지금은 인족의 평화를 생각해야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