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신혁
* * *
신혁을 기절시키고 니드호그와 대치했다.
내 등장에 많이 당황한 듯한 니드호그는, 나와 신혁을 번갈아서 보고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정말로 아까부터="" 뭐냐?!="" 저="" 이계인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요즘="" 인족은="" 정상이="" 없는="" 건가?!="" 아니면="" 저게="" 정상인건가?!=""/>
말이 심하다.
"니드호그, 방금 건 사과해 줄래? 내가 가끔은 흥미 위주로 움직이는 경우는 있어도 저 정도는 아니니까."
'나도 파충류한테 성욕을 느끼지는 않았어!'
니드호그가 인족과 유사한 모습으로 변한모습을 본 것도 아니고, 그런 소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리리스의 [변신]조차 인족을 베이스로만 변환이 가능하고,종족자체가 바뀐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적도 없다.
[다형체]라면 종족도 변환가능하지만 결국에는 마법이라, 해제가 가능하고 색적에도 걸릴수 있다.
<...그렇겠군, 내가="" 보아도="" 방금="" 건="" 조금="" 심했다고="" 생각된다.="" 사과하마.=""/>
니드호그의 사과에 고개를 끄덕였고, 니드호그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래 인족이여,="" 너는="" 어째서="" 이곳에="" 찾아왔나?="" 혹시="" 저="" 이계인을=""/>
"맞아, 그대로 있었다가는 큰 사고를 칠 것 같았거든..."
이미 사고는 친 것 같지만, 아직은 수습이 가능할 것이다.
'아마도...'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은 넘어가 줄 수 있을 까?"
<어째서지? 너에게="" 저="" 이계인이="" 무엇이길래="" 나를="" 찾아와서,="" 일을="" 수습하려="" 드는="" 거냐.=""/>
"맞아요, 언니. 저도 전부터 이상했어요. 어째서 저 용사를 챙겨 주시는 건가요?"
의문을 느끼는 것은 리리스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신혁이 로젤리아에게 고통을 안겨 준다고 해도, 우리에게도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
신혁의 행동에 질리고, 무시하고 사고를 치더라도 내버려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마도지만... 신혁이가 저렇게 변한 건 내 탓일걸?"
"소피아 탓이라고?"
미네르바가 되물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을 이었다.
"내가 아직 지구에 있을 때, 가끔 어린 신혁이를 돌봐 준 적이 있었어."
맞벌이 부부였던 이웃은 자신들의 아들을 혼자두기에 불안해했고, 그렇다고 신혁이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던 것도 아니었다.
다행히도 옆집에 살던 우리는 어느 정도 따르는 분위기였기에 특단의 조치로 나와 시연에게 가끔 신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공부하는 학생에게 미안하다면서 용돈도 많이 챙겨 주었고, 나도 공부하다 머리를 식힐겸 해서 잠깐동안 신혁을 돌봐주고는 했다.
"문제는 내가 머리식힌다고, 신혁이랑 가끔 만화나 보면서 지낸적이 많았거든. 하하하..."
물론 신혁에게 만화같은 것을 봐도 현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잘못했다가는 불우한 학창 시절이 되니까.'
자신은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충고한 것이지만, 신혁은 달랐던 것 같다.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이 세계가 지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만의 상상 속에 빠져, 현실에서 눈을 돌리기에는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만화나 게임 같은 세계였으니까.
'나는 이곳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인지 꽤 오래 지났지만, 나도 초반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더 이상 자신이 알던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돌봐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도 그의 기행을 볼 때마다, 저러는 것이 혹시 자신의 탓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오빠, 그건 김신혁 저놈이 이상한 거야. 이런 세계에 왔다고 현실과 상상을 구분 못하게 되는 건, 저놈이 이상한 거지 오빠 탓이 아니야."
시연의 말도 맞는 말이지만, 자신도 그랬기에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알아,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이야."
내가 그를 도와주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내가 처음으로 이곳이 현실이라고 깨닫게 된 게 타인의 죽음을 본 후 였나?'
더 이상 그가 현실을 혼동하든, 혼동하지 않든 내가 해 줄 수 있는 도움은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책임져야지..."
내 책임은 여기가 끝이다.
☆☆☆
<알겠다. 인족이여,="" 저="" 이계인의="" 무례는="" 넘어가지.=""/>
다행히 니드호그는 내 설득을 들어주었고,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고마워, 그런데 안 넘어갔으면 어쩌려고 했어?"
<그건... 잠깐="" 실례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니드호그는 내 가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 잠깐만! 왜 갑자기?! 숨결 때문에 간지럽잖아!"
"야! 검정도마뱀! 우리 오빠한테 뭐 하는 짓이야!"
"언니? 그냥 죽이죠."
"리리스 말이 맞아, 우리도 나눠서 맡는 소피아 냄새를 감히!"
아내들이 날카로워지니 빨리 좀 떨어져 주었으면 한다.
'저거 봐, 파니아는 벌써부터 겁먹고 숨었잖아. 너만 숨지 말고 나도 같이 숨자.'
<역시, 인족.="" 소피아라고="" 했나?="" 혹시나="" 해서="" 맡아="" 봤더니="" 맞는="" 것="" 같군.=""/>
혼자서 냄새를 맡더니, 혼자서 수긍했다.
날카로워진 아내들을 어떻게 감당하라는 건지, 이유라도 설명을 해줘야 그나마 이해라도 해 줄 것 같다.
'아닌가? 내 냄새를 맡은 이유같은 건 중요하지 않은 건가?'
그녀들의 눈빛이 '반드시 저 도마뱀을 죽이겠다'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검정도마뱀이라니,="" 나는="" 암청색="" 비늘이다.="" 숲이="" 어두워서="" 그렇지="" 빛="" 밑에="" 있으면="" 밤하늘="" 같이="" 예쁜="" 비늘이="" 반짝인다.="" 주의하도록.=""/>
'도마뱀은 상관없는 건가?'
"아니, 냄새는 왜 맡은 건대?! 혼자만 수긍하지 말고 말을 해 줘야 알 거 아니야!"
<그건... 음..="" 계속="" 고개="" 숙여서="" 말하는="" 것도="" 불편하군..=""/>
순간 니드호그에게서 밝은 빛이 흘러나오면서,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점점 작아진 빛은 이윽고 사람의 크기로 변하고는 사라져갔고, 그곳에는 완벽한 '인족'소녀가 있었다.
"음... 이 크기면 올려다봐야 하나? 변하는 모습은 종족말고는 선택할 수 없으니 원... 펜릴은 왜 이러고 사는지.."
흑발, 아니 암청색의 긴 생머리와 황금색의 눈을 가진 소녀.
소녀는 조금 멍하게 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하였다.
"펜릴한테 들었다, 네가 환생한 이계인이라고... 만나면 잘 좀 대해 달라고 말이다. 그러니 안 넘어가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본적도 없는 펜릴이 어떻게 내가 환생한 걸 아는지 중요하지 않다.
그늘진 얼굴로 웃고만 있는 리리스, 굉장히 놀란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는 미네르바, 그리고 죽은 눈을 하며 중얼거리는 시연.
세 아내의 상태가 더욱 중요했다.
"저.. 저는 바람 안폈어요.."
<자의식과잉이다, 소피아.=""/>
<카르마. 아닐="" 수도="" 있어요.="" 여자를="" 상대로="" 페로몬을="" 뿌리고="" 다니는="" 소피아님이니까요.=""/>
'제발 닥쳐! 더 심각해지잖아!'
☆☆☆
<정말로 타종족으로="" 변하는="" 것이="" 가능했을="" 줄이야..="" [다형체]나="" 리리스의="" [변신]과는="" 완전하게="" 다른="" 것="" 같구나.=""/>
<그러게요, 카르마.="" 어쩌면="" 저기="" 정신이상자가="" 본능에="" 가깝게="" 암컷을="" 노린="" 것이="" 제대로="" 작동한="" 듯싶네요.=""/>
"두 분, 지금은 그것보다 주인님이 큰일 난 거 같은데요?"
니드호그는 인족 외에도 다양한 수인족, 악마족, 심지어 동물들까지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다시 인족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기본적인 겉모습은 변하지 못하지만 종족은 변할 수 있다고 했나? 안 보여줬어도 상관은 없었는데...'
아내들은 나를 껴안으면서 니드호그에게서 떨어뜨렸고, 니드호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저쪽도 본능인="" 것="" 같다.="" 소피아에게="" 접근하는="" 여자는="" 질투하고="" 보는="" 말이다.=""/>
<두 개="" 더="" 남았으니까요.="" 넷="" 까지는="" 가능하겠다.="" 싶은="" 거죠.=""/>
"두 분, 이제 그만하시는 게... 마님들이 더욱 무서워지고 있습니다."
다음에 파니아는 한 번 잘못했을 때 용서해주자.
왠 일로 맞는 말만 했고, 두 명도 말리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조용히 해 줘! 너희가 떠들면 점점 더 강하게 조여 온단 말이야!'
하지만 카르마가 처음 말했던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변신마법인 [다형체], 폴리모프 마법은 종족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지만, 디스펠당하면 풀리는 '마법'이다.
고유능력인 [변신], 인족 베이스의 종족이라는 한계는 존재하지만, 리리스가 해제하지 않는 이상에 풀리지 않고, 색적도 안 당하는 유용한 능력이다.
'니드호그가 보여 준 건 '마법'도 '고유능력'도 아니었어, 이계의 기술중 하나인가?'
만약 펜릴도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행방조차 알 수 없는 것도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니드호그?"
"왜 그러지?"
"펜릴이 어떻게 내가 환생한 걸 아는 거야? 그것도 전 용사라는 것을."
아내들의 질투심에 잠깐은 넘겼지만, 확실하게 집고가야 할 문제 중 하나 였다.
내 생각이 맞다면, 지금 마왕군 쪽에서 내가 정체를 말한 인물 중, 변화한 펜릴이 있다는 소리니까.
"펜릴이 말하지 말라고 했다. 말하면 물어 버린다고... 늑대주제에 그렇게 변해서는..."
"그러면 질문을 바꿀게."
그건 나중에 물어보면 될 일이다.
그리고 본인이 말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니,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물어봐야 할 것이다.
'만약에 말하는 것이 싫은 것이었으면 실례니까...'
"변한상태에서 원래 종족과 다른 타 종족의 아이를... 컥! 으어억! 모두들 그런 의도가 아니니까! 힘 좀...!"
부모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리우스와 달리 삼손, 벨제부브, 사투르는 내가 정확한 부모를 모른다.
'가능성이 있는 건 세 사람이니까, 그 사람들이라면 후손이 강한 것도 있고.'
그러니까 힘 좀 풀어 줬으면 싶다, 슬슬 숨쉬기가 힘들어지니까.
"가능하다. 펜릴은 다른 이름으로 살고는 있지만, 타종족과 자식을 봤으니까."
그렇다면 분명, 그 셋중 하나가 확실할 것이다.
그들의 협력을 약속 받았으니, 펜릴 본신은 아니어도 강력한 아군이 생긴 것이다.
"알았어, 그럼 한 가지만 더 부탁할게."
"음... 말해라, 들어주겠다."
나는 니드호그를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짖고 말을 이었다.
"깽판쳐줘, 히히히히."
"?"
내 말을 들은 니드호그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신혁을 가르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신혁이를 도와주로 온 건 맞지만, 같은 진영은 아니야. 정확하게는 적대 세력이지."
"그런데?"
그동안 신혁 때문에 머리아팠던 일이 많았다.
우리는 다시 저주받은 대지로 넘어가기에 그를 돕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쌓인 것을 풀지 못하고 가면 너무 억울할 것이다.
시연을 로젤리아에게 다시 보낼 수 없고, 신혁도 데리고 가자니 사고만 치는 무능한 아군이 될 것 같아서 두렵다.
그러면 신혁을 로젤리아에게 주고, 그녀의 무능한 아군이 되게 하자.
용사소환의 코스트를 생각하면 쉽게 버리지는 못 할 것이다.
'시연이가 있다면, 버릴 가능성이 더 높지만.'
"용사 시연과 성녀 소피아는 니드호그에게 덤벼든 신혁을 구하려다가 사망했고, 파니아가 겨우 신혁만을 구출했다."
그런 식으로 꾸미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족령에서 퇴장, 그리고 신혁은 욕먹고 구르지만 버리지 못하는 용사.
"그게 내가 생각하는 신혁이에 대한 소소한 복수야."
'미안하지만 신혁아. 형이 쌓인 게 너무 많이 있다. 조금 굴러라.'
거기에 현실을 직시하면 좋고.
"알겠다, 있는 힘껏 파괴하지. 내 밥집을 반파시키면 되는 것이냐?"
"그래."
☆☆☆
"으헝! 헉!"
신혁은 기절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폭신한 침대, 상당히 좋아 보이는 실내.
이곳은 글리아스 왕성내부에 있는 신혁의 방이었다.
"뭐야? 내가 왜 여기 있어? 방금까지 엘프의 숲에 있었는데..."
"깨셨습니까, 신혁님."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 그곳을 돌아보자 프레디가 신혁을 간병하고 있었다.
'왜 이게 있어? 시연누나랑 소피아는 어디 있고...'
프레디를 본 신혁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표정을 구겼고, 시연과 소피아를 찾아서 방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이 방에 있는 건, 프레디와 신혁뿐.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야, 프레디. 시연누나랑 소피아는 어디 있어?"
결국에 프레디에게 물었고, 프레디는 잠시간 신혁을 지켜보고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 하아... 아무것도 모르십니까? 시연님과 성녀님이 어떻게 된 지를..."
신혁은 프레디의 말에 생각에 잠겼다.
'분명...'
"아! 그 미소녀 드래곤! 드래곤이랑 싸우고 있었는데? 그 뒤로는... 뭐에 맞았는지 기억이 안 나."
신혁의 말을 들은 프레디는 분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깐 따라와라..."
나름 존대해주던 것도 잊은 채로 방금 깨어난 신혁을 끌고 갔다.
"어...어?! 야!"
☆☆☆
왕성밖이 소란스럽다.
마치 시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뭐 하는 거지... 왕이 비리라도 저질렀나...?'
"밖에 소리가 들리나?"
"아니, 자세히는.. 근대 왜 반말이야!"
"내가 너한테 존재를 해 줘야할 이유를 모르겠군... 그럴 가치도 없고."
프레디의 차가운 눈빛에 신혁은 입을 다물었다.
"일단 나는 성녀님을 뵙지 못했지... 사체조차 찾을 수 없었으니까.."
'사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밖의 민중은 교국의 국민이다."
교국의 국민이 왜 글리아스에서 시위하는 것일까,거기에 사체는 또 무슨 소리고.
그런 생각을 하던 신혁은 프레디를 보면서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했다.
"시연님과 성녀님은... 네가 덤벼든 니드호그에게서 너를 구출하려다가 사망하셨다. 파니아님이 너만을 겨우 구출하셨지."
'사망해? 누가? 시연누나하고 소피아가?'
신혁은 프레디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들은 것인지, 그를 쳐다보면서 되물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렇게 물어보려 했지만, 프레디가 갑자기 휘두른 주먹에 의해, 이어나가지 못하였다.
쿵.
"아악..."
프레디에게 맞은 신혁은 몸이 날아가면서 벽에 부딛쳤고, 얼굴과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외마디 비명만을 지를 뿐이었다.
하지만 고통이 가시기도 전에, 프레디는 성큼성큼 다가와서 신혁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이봐, 쓰레기. 네 미친짓에 시연님과 성녀님이 사망하셨다고. 심지어 세계수의 숲도 많은 부분이 파괴 되었지.."
프레디는 들어 올린 신혁을 창쪽으로 데리고 갔다.
"어...어?! 뭐 하는 거야! 이거 놔!"
"밖의 소리가 들리나? 교국 사람들의 버팀목이였던 성녀님이 사망한 것에 분노한 자들의 목소리가? 전부 너를 끌어다 죽이라 하더군..."
"히익!"
프레디는 다시 신혁을 바닥에 던졌다.
"지금은 로젤리아 왕녀님께서 겨우 막고 있지, 쓰레기."
"ㅇ..왜."
여전히 차갑고, 더욱 차가워지는 눈빛.
마치 혐오스러운 무언가를 보는 그런 눈이었다.
전까지만 해도 프레디는 신혁을 안타깝다는 듯이 보고는 했다.
언젠가는 바뀌겠지, 언제쯤 열심히 하시려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지금은 그저 한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쓰레기, 네가 최강이라 불리던 용사 이성재라도 되는 줄 아나?"
이성재.
왜 자신이 아는 이름이 프레디의 입에서 나오는 것 인가.
10년 전에 실종된 그 사람의 이름이 프레디에게서 나왔다.
같은 사람인 건지, 아니면 동명이인 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맞다는 기분이 든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길래, 니드호그에게 싸움을 걸 수 있지? 멍청하면 용감하다 이런 건가?"
"나... 나는.. 그러니까..."
알고 있었다.
시연이 자신을 싫어 하던 것쯤은.
소피아도 상냥하게 대해 주지만, 어딘가 이상하게 보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같이 있던 다른 여자들도 자신을 혐오하듯이 바라보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증명하고 싶었다.
자신은 용사라고 불렸으니까, 드래곤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함을 증명하면 자신을 달리 볼 것 같아서.
'만화에서는 주인공들이 항상 다 이겼는데...'
그 사람의 말이 떠오른다.
'신혁아? 형이 충고하는데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건 상관없어, 취미가 있는 건 좋지. 누가 네 취미를 뭐라고 하겠어? 뭐라고 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열심히 좋아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니까 무시해도 돼, 그렇다고 현실과 혼동해서는 안 돼. 그건 상상 속이고 이곳은 네가 있는 현실이니까. 만화처럼 좋게 풀리지 않을 거야.'
이 세계에 왔을 때는 생각했다.
그 사람이 틀렸다고, 이런 상상 속에나 있던 세계가 존재했다고.
자신은 만화속 주인공처럼 승승장구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은 내가 있는 현실이었다.
자신이 무모하게 니드호그에게 싸움을 걸어서 시연과 소피아가 죽었다.
자신을 구하려다 사망했다.
'나 때문에...'
"우웁!"
현실이 보이고 있다.
이곳은 게임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세계가 아니었다.
자신은 이 세계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냥 평범한 이십 대의 청년이었다.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십 대 청년.
'용사님? 앞으로 당신이 보아야 할 세상은 이런 세상이 될 겁니다. 이곳은 당신을 위해서 만들어진 세상이 아니니까요.'
자신은 그 사람의 말도, 마리아의 말도 무시하면 안 됐다.
'그렇다면, 적어도 두 사람이 나 때문에 죽지는 않았어...!'
시야가 흐려지고 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앞이...
"하아... 신혁님. 당신이 바뀌길 빌겠습니다. 당신을 구하려다, 돌아가신 두 분을 위해서라도..."
프레디는 그 말을 끝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울면서 사과하고 있는 신혁을 두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