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니드호그
* * *
숲을 헤맨지 나흘째.
"배고파.."
근처의 식물들로 연명을 하였지만, 슬슬 고기가 먹고 싶어진다.
성욕을 푸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슬라임으로 빼는 거, 중독될 거 같네."
이미 많이 신세진 뿌리와 슬라임들.
어느새 정이 들어버린 것인지, 매우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래도 소피아 보고 싶다.. 이 오빠가 그러워서 눈물로 밤을 새고 있을 것만 생각하면...!"
신혁은 늘 자신에게 친절했던 소피아를 떠올리고, 정이든 뿌리를 뒤로 한 채 길을 나섰다.
"기다려라 소피아! 네가 첫눈에 반한 이 용사님이 간다!"
더욱 깊숙한 곳으로.
☆☆☆
"이상이 미친놈의 행동보고 입니다."
세계수의 생중계를 들은 파니아가 내게 보고를 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살면, 그런 생각을 하고 살까?"
"저 한테 물으신들... 저도 미친놈의 생각은 잘 모르겠습니다. 주인님."
파니아는 고개를 흔들면서 자신도 모른다고 답하였다.
내가 로젤리아의 암이라고 친절하게 대한 것은 맞다.
신혁의 성격상, 충분히 착각할 만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뿌리에 대고 연인 대하듯 '좋았어?'를 할 수 있는 건데? 도대체 얼마나 상상력이 뛰어나면 그럴 수 있는 거냐고?!"
이 부분은 내 이해의 범주를 완전히 넘어섰다.
뿌리에 슬라임을 넣고, 자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줄 수 있다.
남자라는 생물은 쌓이다 보면, 가끔 이상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으니까.
휴지심을 사용하는 경우도 자주 보일 정도로 드믄 일은 아니었다.
슬라임도 잘 보면 점성이 강한 액체형이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보통은 휴지심과 윤활제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아무리 세계수가 지성체라고는 해도, 하이엘프 한 명만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인형으로 살면서 쌓인 것이 많았는지, 파니아는 생중계를 들으면서 가끔 미친 듯이 비웃을 때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이제는 되었다.="" 그냥="" 나중에="" 저="" 부분을="" 잘라서="" 버려주게나...=""> 라는 세계수의 말들 듣고, 안쓰럽게 생각한 파니아는 엘프를 신혁이 있던 곳으로 보내서 찾으려 했지만, 또다시 늦은 뒤였다.
"거기서 더 깊숙한 곳으로 사라질 줄이야..."
조난당한 주제에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닌다.
운이 좋아서 슬라임 같이 공격적이지 않은 약한 마수만 만나고, 조금이라도 공격적인 마수는 만나지도 않았다.
'심지어 제자리에서 오랫동안 있었는데 접근도 안 했어.'
자신보다 강한 마수를 만났다면, 조금은 꿈에서 깨고 현실을 볼 수 있었겠지만, 약한 마수만 본 탓인지 신혁은 자신이 강하다고 큰 착각에 빠져 버린 것 같다.
'점점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어, 정말 위험했다면 구조를 보냈지만 그러지는 않았으니까.'
신혁의 착각이 정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을 무렵.
모든 보고를 끝마친 파니아는 조용하게 부탁을 했다.
"주인님? 이거 좀 풀어 주시면 안 되나요..? 머리에 피가 몰려서 터질거 같습니다..."
한쪽 발목에 밧줄이 묶이고, 거꾸로 매달려 있는 파니아.
나는 그런 파니아를 손가락으로 살짝 밀면서 흔들고 있었다.
"내가 왜? 네 기억을 날리긴 했어도, 감히 주인을 팔아넘긴 죄는 사라지지 않아."
밤중에 구속플레이를 했던, '그' 밧줄을 사용해서 파니아를 매달았다.
세계수의 가지 중 하나에.
하늘 같이 높은 가지에 위태롭게 매달린 파니아는 비명을 지르면서 용서를 빌었지만,
그러기도 잠시.
몇 시간 동안 거꾸로 매달린 파니아는 피가 몰려서, 이제는 비명도 못 지르고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입에서 분비물만 흘려내고 있었다.
'말을 듣는 거면, 로자리아로 회복시키면 멀쩡해지니까 참 편리해.'
성능 한 번 확실하다.
"저는 기억에 없습니다! 주인님이 지우셨잖아요! 그리고 마님들을 무슨 배짱으로 거역한다는 건가요!"
아직 좀 덜 혼난 것 같다.
"어...? 주인님? 카르마는 왜 꺼내시는 건가요.. 어어? 어?! 주..주주주인님!!! 끊지 마세요! 잘못했어요! 죽어요! 저 여기서 떨어지면 죽어요!"
"안 끊어, 안 끊어. 그냥 끝에만 살짝 자를 뿐이야, 그리고 떨어져도 안 죽어. 로자리아로 즉사는 피하도록 할 거니까."
'죽을 만큼 아프겠지만.'
<소피아님의 마력을="" 미친="" 듯이="" 잡아먹겠지만..="" 소피아님이라면="" 문제없어요!="" 헤헷!=""/>
옆에서 당당하게 엄지를 치켜세우는 로자리아 덕에, 파니아는 기껏 피가몰린 머리가 다시 하얐게 변하고 있었다.
로자리아의 상위 기능중 하나, 즉사회피.
나조차 하루에 몇 번씩 쓰지 못할 정도로 많은 마력을 잡아먹지만, 죽지는 않게 도와주는 확실한 기능이다.
'역시 'made in 여신', 누구랑 다르게 성능 한 번 확실하구만!'
"응? 아.. 로자리아가 검순이보다 성능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헤헹! 저는="" 카르마같이="" 다양한="" 기능이="" 없는="" 존재가="" 아니에요.="" 풋!=""/>
<이익!/>
언제나처럼 재미있게 노는 두 명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파니아를 괴롭히던 중에 돌연 파니아가 소리쳤다.
"?! 그게 정말입니까?! 야이 장작아! 그걸 왜 이제 와서...!"
"? 뭐야? 왜 그러는데?"
"바.. 방금, 장작이.. 그러니까 세계수님이 긴급상황을 알렸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심각한 것인지, 파니아도 당황하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미친놈의 진행경로에 니드호그가 있다고 합니다."
"...?"
우리는 파니아의 말을 이해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파니아는 그런 우리를 보고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미친놈이 이대로 가다가는 열심히 뿌리를 먹고 있는 니드호그와 마주칩니다. 대략 세 시간 정도면 마주칠 거 같다고 하네요."
'머리아파...'
두통이 몰려온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면서 신혁의 자세한 위치를 물어보았다.
"후우... 파니아, 지금 신혁이 어디 있어? 세 마수는 안 건들면 안 물어. 그런데..."
"그 미친놈이 안 건드릴리가.. 어떤방식으로든 건드릴 것 같은데요. 주인님?"
상상이 간다.
'예이! 드래곤! 분명 소녀로 변할 거야! 하렘!'
'드래곤! 용사의 검을 받아라!'
'드래곤은 용사의 탑승'용'이지! 날아라! 드래곤!'
가볍게 생각해도, 이 셋 중에 하나는 할 것 같다.
"어어억.. 파니아, 당장 안내해.."
당겨 오는 뒷목을 잡고, 순간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이 암은 내 암이 아니다. 이 암은 로젤리아의 암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리를 나섰다.
☆☆☆
한동안 신세졌던 연인과 눈물어린 이별을 하고서 세 시간가량이 지나갔다.
어디인지 모를 엘프의 마을을 찾아가면서, 숲을 걷고 있었던 중 앞쪽에서 나무를 분쇄기로 부시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여기도 쓰레기 처리장이 있는 건가?"
신혁은 궁금증을 못이기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 봤다.
"!!"
'드... 드래곤!!'
그곳에는 세계수의 뿌리를 씹어먹고 있는 거대한 드래곤이 보였다.
하늘을 가릴 듯한 거대한 날개와 전신을 뒤덥고 있는 칠흑의 비늘, 머리에는 뒤로 향하고 있는 거대한 두 쌍의 뿔과 앞으로 향하고 있는 하나의 뿔.
그리고 그 드래곤은 앞발에 자라 있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뿌리를 부시고,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콰드득.
강철도 쉽게 부실 것 같은 이빨로 뿌리를 씹으니, 과자가 부서지듯이 박살 나면서 드래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황금색 눈을 멍하니 뜨고, 세계수의 뿌리를 씹는 드래곤을 보면서 신혁은,
"무슨 더덕 씹는 것 같네..."
라고 말하고,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역시 드래곤과 만났으면 싸워 봐야지, 판타지하면 드래곤! 거기에 난 용사니까 내가 이길거고.'
용사가 드래곤을 무찌르는 건 흔한일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드래곤슬레이어를 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꼭 안 죽여도 되지, 안 죽이고 살려주면 폴리모프 소녀가 되어서 몰래 쫓아 다닐 거고...'
그러면 새 하렘멤버 탄생이다.
양 쪽에 손잡이.. 아니, 뿔이 달린 흑발에 멍한 황금 눈을 한 고스로리 미소녀가 '용사.. 좋아..' 하면서 안겨 오는 상상을 했다.
"크흐흐흐.. 쓰읍!"
흘러내린 침을 닦으면서 드래곤에게 다가가자, 드래곤은 신혁을 슬쩍 보고는 이내 관심이 꺼진 듯 뿌리를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 먼 곳을 이동할 때는 드래곤이 태워 줄 거야, 분명 '용사는 타도 좋아.. 다른 사람은 안 돼...' 라고 말하면서 설득하면 못 이기는 척 태워주겠지.'
매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계속해서 걸어갔고, 드래곤은 접근을 허락해 주는 건 거기까지 라는 듯이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이런, 이런. 부끄럼쟁이.. 솔직하지 못하고, 하아... 흑발에 멍한 황금눈, 고스로리 소녀... 합격.'
신혁의 상상의 나래를 소피아가 알았다면, '셋 다 였냐?!'라고 말하면서 뒷목을 잡고 쓰러졌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피아는 이 자리에 없었고, 신혁은 멍청하게도 드래곤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이계의 인간이여,="" 거기까지다.=""/>
"어?! 진짜 말하네?! 역시 소녀겠지! 이봐 드래곤! 나랑 한판 붙자!"
<...조금 머리가="" 이상한="" 인간이군,="" 내가="" 알고="" 있던="" 이계의="" 인간은="" 멀쩡했던="" 것="" 같던데...="" 펜릴과="" 가름에게="" 들은="" 인간도="" 안="" 저렇다고="" 들었고...=""/>
이 세계의 인간도 칠흑의 드래곤, 니드호그와 마주치면 공포로 공격하는 일은 있어도 저렇게 당당하게 싸우자는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소녀로 변해서 내 하렘에 들어와라! 겸사겸사 탑승용도 되고!"
<...? 이계의="" 인간이여,="" 혹시="" 아무것이나="" 주워="" 먹은="" 것이냐?="" 길을="" 잃고="" 허기를="" 못="" 이겨서,="" 먹는="" 것이라도="" 거냐.=""/>
니드호그는 약간 정신이 이상한 인간, 신혁을 보면서 그런 걱정을 해주었고, 자신은 평소와 같이 숲밖으로 인간을 돌려보내려고 했다.
<내가 숲밖으로="" 보내주겠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지만="" 공포로="" 공격하는="" 것은="" 참작을="" 해="" 줘도,="" 처음부터="" 공격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용서해="" 주지="" 않겠다.=""/>
니드호그는 마지막 기회라는 듯이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들어내면서 신혁에게 경고를 했다.
"드래곤 미소녀!!!"
그런다고 들을 신혁이었으면, 처음부터 혼자 실종 되지도 않았다.
"제발 좀 기절해 있어!!!"
"으헉!"
다행히 소피아는 늦지 않게 도착했고, 신혁을 발로 차서 기절을 시켰다.
"언니! 늦지 않은 거 같아요!"
"소피아! 저거 선 안 넘은 거 맞지?!"
"김신혁, 저 미친 새끼!"
"주인님! 제발 저 미친놈 좀 빨리 버려주세요! 제가 다 미쳐 버릴 것 같아요!"
니드호그는 갑자기 나타난 다섯 명의 여인에 당황을 했고, 그중 대표로 보이는 회색머리의 여인에게 질문을 했다.
<뭐... 뭐냐?!="" 이번에는!=""/>
그러자 회색머리의 여인, 소피아가 팔짱을 끼고 턱을 위로 치켜든 채 말했다.
"985 헥토파스칼 킥!"
<뭔 소리냐?!="" 아까부터!=""/>
☆☆☆
조금 전.
"오빠! 그거 꼭 구해 줘야 해?! 그냥 버리면 안 돼?!"
아직 우리를 따라오지 못하는 시연은 가마, 파니아에게 업힌 채로 신혁은 버리는 것을 강력 추천했다.
"안 돼! 너하고 신혁이, 둘 다 사라지면 로젤리아는 새로운 용사를 소환할 거야!"
신혁만 있어도 소환할 것 같지만, 아마도 로젤리아는 비교적을 이용하기 쉬운 신혁을 그대로 쓸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뭔가 죽게 두는 것도 찝찝하고..'
자주 돌봐주던 아이가 죽었다고 하면 잠자리가 편할 거 같지 않다.
그렇게 달려가던 중에 궁수인 파니아가 먼저 신혁을 발견해서 소리쳤다.
"저... 저 미친놈! 주인님! 큰일이에요!"
"알아! 나도 방금 봤어!"
신혁은 니드호그에게 검을 뽑아 들고 공격하려는 듯이 다가가고 있었고, 니드호그는 이빨을 보이며 경고하는 듯했다.
'이러다가는 늦어..! 그러면 그 방법말고는 없어!'
"?! 오빠! 잠깐만 오빠도 미친생각 좀...!"
"내게 이 거리에서 기절시킬 '확실한'방법이 있어!"
"야이 씨.. 아니, 주인님! 제발 자제 좀!"
<소피아 이="" 미친년아!="" 그대까지="" 이러면="" 어떡해!=""/>
내 생각을 자주 접한 세 명은 나를 뜯어 말리기 시작했고,
"언니! 그 방법이 뭔가요?!"
"소피아! 더 늦기전에 빨리 좀 부탁해!"
<맞아요! 소피아님!="" 지금은="" 한="" 시가="" 급해요!="" 저러다="" 죽겠어요!=""/>
내 생각을 직접적으로 처음 접한 세 명은 응원해주었다.
'3대 3, 나까지 포함하면 3대 4. 이번에는 과반수가 허락했네, 히히히.'
나는 허락과 동시에 다리에 힘을 주었고,
'이거 실제로 해볼 줄은 몰랐는데!'
"죽어라! 헥토파스칼 킥!!!"
몸을 쏘아냈다.
"어..? 언니 방금 죽으라고..."
"뭐 하십니까?! 리리스 마님! 주인님이 더 미친짓 하기 전에 빨리 쫓아가요!"
"다들! 오빠가 아직까지는 얌전할 때 빨리! 저기서 더 가면 답없어!"
"으.. 응!"
빠르게 따라오기 시작한 그녀들을 뒤로 한 채, 나는 매우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날아갔다.
'아이 신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