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세계수의 숲
* * *
"저기... 누구시죠?"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남자가 문 안쪽을 보려고 고개를 들이밀지만, 나는 그걸 막으면서 화를 내고 있다.
"누구신데 왜 여자들만 있는 방을 막 들여다보려고 하는 건가요!"
"어? 아니 그게.. 여기 시연누나방 아닌가요? 여기라고 들었는데..."
이 남자가 어째서 시연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꽤나 무례하다.
'그리고 어떻게 안거지? 뭐 하는 놈인데 시연이를 찾는 거야?'
"저기... 그런데 너 예쁘네? 너도 내 하렘에 들어 올래?"
"?"
'뭐요?'
내가 잘못 들은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들은 것인지,이 앞에 있는 남자는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작업을 걸고 있었다.
"내가 지금 하렘 모집중인데, 네가 들어오면 세 명째야. 시연누나랑 성녀, 그리고 너까지 세 명."
"???"
머리가 좀 아픈 사람인 것 같다.
원래 아픈 사람은 괴롭히는 거 아니라고 했다.
언제부터 시연이 이 환자의 하렘멤버였는지 모르겠고, 성녀라고 하는 것을 보면 나를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 나도 이 처음 보는 남자의 하렘에 들어갔다고 하는 알 수 없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나보고 들어오라고? 아니 뭔 소리지? 내가 언제부터 두 명이 된 거지? 이 미친놈은 뭐고?'
표정이 점점 썩어들어가는 것이 느껴지지만 이 환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고 있었다.
"예정자 중에 마법사도 있고, 왕녀도 있어! 하하하! 특별히 너는 세 번째 하렘멤버로 해줄게! 무려 용사파티의 하렘이라고! 아하하하하하!"
용사파티라고 하면서 처음듣는 하렘에 들어가게 생겼다.
"?"
'용사파티?'
이 남자는 용사파티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는 것은 시연과 같이 소환된 용사라는 소리이다.
'어... 그러면 로젤리아 밑에 있는... 아무리 로젤리아라도 이거는 좀...'
"아! 용사님이셨군요! 어서 오세요! 여기가 시연이의 방 맞아요! 헤헤헤. 처음 뵙겠습니다. 교국에서 성녀로 불리고 있는 소피아라고 해요!"
나는 방문을 활짝 열어, 이곳에 찾아온 또 다른 용사를 만면의 미소를 띄우면서 맞이 해주었다.
행복하다.
저기 좀 머리가 아파보이는 용사가 로젤리아의 밑에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 신나!'
☆☆☆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서 방에 찾아온 용사를 맞이 했다.
우리가, 정확하게는 시연이 머무르고 있는 방을 두리번거리면서 구경하고 있었고, 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야 김신혁, 너. 어떻게 내방은 찾아온 거야?"
"아! 누나! 같이 온 기사한테 물어봤어요."
"쯧!"
시연은 혀를 차면서 용사, 신혁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신혁? 어디서 좀 들어 본 이름인데... 아!'
지구에 있던 시절에 가끔 돌봐주던 그 꼬마의 이름이 김신혁 이었던 거 같다.
"저기 시현아? 저 사람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야?"
"맞아, 옆집살던 그 꼬마."
나와 시연이 작게 속삭이고 있자, 신혁은 우리를 제외한 다른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그녀들에 대한 것도 물어보고 있었다.
"거기 두 사람이 성녀, 그러니까 소피아의 호위예요? 그럼 계속 같이 다닌 거죠?"
"네? 맞아요. 저희는 계속 언니랑 같이 다니려고 해요."
"언제 봤다고 벌써부터 소피아라고..."
신혁은 그런 그녀들을 보면서, 어떤 전투를 주로 하는 지 물어보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그건 마치 취조하는 듯 했지만, 신혁의 표정과 조금 전의 문 앞에서의 발언으로 보건대, 또 하렘멤버 어쩌고 할 것이다.
'이건 좀...'
기분이 나쁘다.
누가 내 애인에게 작업을 거는 것을 직접 목격해서 그런지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잠시동안 그녀들의 조사를 마친 신혁은 의자에서 일어났고,
"아즈아아아아! 하렘멤버 떴다!!! 이게 용사파티지!!!"
그런 말을 하면서 환호했다.
"옆집누나! 성녀! 거유마법사! 빈유여전사! 한 번에 네 명이나 생겼다!!!"
무언가 수상한 주사를 만들어낸 시연과 자신의 단검을 든 미네르바를 말리지 않았다면 신혁은 이 자리에서 사망했을 것이다.
☆☆☆
"용사님들! 이제 곧 그린우드 입구에 도착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마차로 가기 힘드니 엘프의 안내를 받아서 가셔야 할 겁니다."
기사의 말에 우리는 마차에서 내렸고,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수해를 바라보았다.
"우와... 저기 오빠? 그런데 어디에 세계수가 있다는 거야? 숲은 울창하지만 세계수라고 불릴 만한 큰 나무는 안 보이는데?"
시연은 눈앞의 수해를 보고는 그렇게 질문을 했다.
지구에 있었다면, 절경이라고 불릴수 있는 나무의 바다를 보고 감탄함과 동시에 거대한 세계수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겼을 것이다.
"그거? 중심은 마법으로 은신한 거고 뿌리는 눈앞에 있잖아."
"눈앞에?"
시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되물었고, 그런 그녀에게 기사가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이 거대한 숲이 하나의 나무입니다. 전부 세계수님의 뿌리에서 자라난 '조그마한 가지'들과 그로 인하여 생겨난 수해가 엘프들의 왕국, 그린우드입니다."
기사의 말에 시연과 신혁은 매우 놀란 표정으로 다시 한번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뿌리에서 자라난 '가지'만으로도 일반적인 '나무'보다 거대했다.
그런 가지가 모여 있는 수해가 전부 하나의 나무에서 나온 것이다.
'놀랄 만 하지... 나도 처음 봤을 때는 깜짝 놀랐으니까...'
"우와... 무슨 가지가 바오밥나무만하네... 이러면 세계수 자체는 얼마나 큰거야...?"
"푸훗!"
신혁의 발언에 나도 모르게 뿜었지만 그가 표현한 것이 정확할 것이다.
가지 하나조차 그 정도로 거대했으니까.
그런 가지를 보면, 세계수의 크기는 쉽게 상상이 가질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저는 이만 글리아스로 돌아가겠습니다. 곧 엘프가 마중나올 것이니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기사는 마차를 끌고 돌아갔고, 우리는 이곳에 남아서 엘프를 기다리며 간단한 대화를 시작했다.
"저기 언니? 저 용사. 제 말대로 좀 꿈속에 빠져 사는 거 같죠?"
"응. 예전에 돌봐줄 때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몸은 성장했어도 정신은 어린 나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런 어른을 보게 된 기분이다.
"그래도 소피아한테 작업걸고 짜증나. 우리를 멋대로 자기 여자로 보면서 건들려고 하고."
미네르바는 좋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은 리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린우드로 향하던 도중에 시연은 그에게 몇 번이나 화를 냈지만, 그는 단순하게 '츤데레 좋네...'하고 좋아할 뿐이었다.
'사실 좋게 말해서 화났다고 한 거지, 그건 거의 욕이었는데.'
내가 몇 번이고 말리지 않았다면 신혁은 이미 약물중독이나, 독살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같이 있으면 머리아프고 답답하지만... 그게 로젤리아한테 있을 걸 생각하면 참 좋게 보이지...'
그 덕에 나는 신혁에게 잘 웃어 주면서 친절하게 대했고, 그는 그걸 내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받아들인 모양이다.
안타깝지만 그건 신혁의 큰 착각이다.
그가 내 쪽의 사람이었다면 벌써 뒷목잡고 쓰러졌을 일이지만, 뒷목은 내가 아닌 로젤리아가 잡는다고 상상하면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별 이상한 짓, 머리에 꽃밭이 만개한 짓을 해도 깔깔대면서 박수 칠 수 있다.
나에게 손대려고 하면 시연이 알아서 걸러 주니, 나로서는 그저 그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오빠. 그래도 저거는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도 저거 과외해주고 옆집에 살면서 돌봐주기는 했는데 이곳에 오고 나서는 더 심해졌어."
신혁을 이름으로 불러 주긴 했던 시연은 이제 '이거', '저거'등으로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부르기 시작했다.
"가만히 두자, 시연아. 어차피 가끔 돌봐주었어도 가끔이었어, 내 옆에 두기에는 뭔가 싫다."
저렇게 자신만의 착각에 빠져 사는 신혁을 보면, 걱정은 되지만 결국에는 조금 놀아주던 옆집 꼬마에 지나지 않아서 큰 관여를 하지 않게 된다.
'성장하는 모습도 못 봤고, 거기에 저러면 저럴 수록 로젤리아가 고통스러워할 생각하니까 참을 수 있어야지.'
수해 입구에서 '에로프'를 외치는 신혁을 보면서 더 열심히 하라는 응원만하고 싶어진다.
"저기 용사님? 그런데 '에로프'는 무슨 뜻인가요?"
나는 신혁에게 다가가서 에로프에 대해서 질문하자, 그는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오! 소피아! 좋은 질문이야! 지구에서 엘프는 야한종족이거든! 서큐버스와 비슷할 정도로 말이야."
내가 지구에서 사라져 있는 동안 엘프의 개념이 많이 바뀐 것 같다.
"거기에 여기사도 전부 변태지! 만약 여기사가 '큭! 죽여라!'라고 말하면 '당장 날 엉망진창으로 범해 줘!'라고 말하는 거라고."
그 말이 그런 뜻인 줄은 처음 알았다.
내 언어영역이 부족한 건지, 그의 해석이 특이한 건지 잘 모를 정도로 자신만의 상상에 빠져 사는 것만 같았다.
"마왕도 여자라는데, 마왕도 내 하렘멤버로 확정됐어! 여자마왕은 자고로 용사의 암컷이라고 불리지! 난 모두의 기둥서방이 꿈이야! 하하하하하!"
"..."
전부터 궁금했지만 왜 내가 자꾸 하렘멤버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본직이 마왕이지만 인족령에서는 성녀로 속이고 있었다.
하지만 정체를 모른다고 저런소리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자 앞에서 저런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니까, 정체를 알아도 당당하게 할 거 같은데.'
전에도 '성녀(??)는 역시 성녀(??)지!'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얼굴에 깐 철판은 오히려 감탄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렇군요. 하하하..."
아무리 그의 기행을 즐겁게 볼 수 있어도 대상이 내가 되면 조금 꺼려진다.
☆☆☆
그런 그의 기행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을 무렵, 두 명의 엘프가 찾아와서 우리를 맞이 했다.
"반갑습니다. 성녀님, 용사님들. 저희는 여러분의 안내를 맡은자들 입니다."
"반갑습니다."
두 명의 엘프는 모두 남성이었고, 그것에 실망한 신혁은 엘프들에게 거리를 두고 내가 대신 그들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이 안내해주시는 분들이군요."
"그렇습니다. 이곳이 세계수님의 숲이라고는 해도 일부는 마수가 나오고, 최악의 경우는 그 니드호그를 만날 수도 있으니 저희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채식주의인 니드호그는 건들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다.
마수가 나와도 조금 위협이 되는 것들은 엘프들이 사냥을 한다.
'이 수해에서가장 무서운 건 길을 잃어버리는 거지...'
세계수의 숲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길을 잃기 쉬웠다.
혼자서 숲에 들어갔다가 영영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자주 있었다.
운이 좋아서 엘프들에게 발견되거나, 밖으로 빠져나간 사람들은 다신 이 숲에 얼씬도 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내부를 지녔으니까.
'그것도 엘프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고, 노예사냥을 나섰다가는 시체도 못 찾는 존재가 되니까 함부로 못 건들지.'
"뭐냐? 그 여자용사와 성녀만 오는 것이 아니었나? 왜 저 미친놈도 같이 온 거지?"
엘프들의 뒤쪽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고, 거기에는 다른 두 엘프보다 더욱 긴 귀를 가진 하이엘프가 걸어왔다.
장수종족인 그녀는 몇 년이 지났어도 전혀 바뀌지 않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 그대가 성녀인가? 반가워, 나는 파니아 그린우드. 전 용사파티의 정령궁수이자 하이엘프지."
'미네르바를 미리 변장시키길 잘했네...'
신혁이 보기전에 변장을 시켰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가 본 이후면 제대로 변장도 못시키고 파니아에게 들켰을 것이다.
내 손을 잡으면서 반겨 준 파니아에게 시연이 날카로운 말투로 떨어뜨렸다.
"귀쟁이. 좀 떨어지지? 지금 누구 손을 잡고 있는 거야?"
"하! 여전히 입이 더럽군, 아! 그런가? 암고블린은 그게 보통인가? 내가 몰랐네."
"귀가 길쭉해서 그런가? 옷걸기 편해 보이네. 아니면 손잡이라도 되는 거니?"
"고블린이 사람말도 하고 신기하네? 엘프의 귀는 손잡이가 아니란다, 고블린."
"아는 말이 고블린 말고는 없나 봐? 조금 다채롭게 말할 수 없어? 어휘력이 많이 딸리니? 딸리는 게 가슴크기만 그런 줄 알았는데 어휘력도 딸렸네."
"파니아님! 진정해 주세요!"
"시연아! 그만! 진정하자, 진정!"
두 사람의 말싸움에 엘프들과 나는 서로를 말리고 겨우 진정을 시켰다.
"성녀님 저희는 파니아님을 감시할 테니, 성녀님은 용사님을 감시해 주시죠. 갈 길이 먼데 이러다가 크게 싸우겠습니다."
"네."
말에 가시를 달고 사는 두 사람이 만났으니, 그녀들을 감시하지 않으면 엘프들의 말대로 큰 싸움으로 번질 것이다.
"시연아? 잠깐만 참자? 부탁할게."
"오빠? 부탁을 들어 주면 뭐 해줄 건데?"
시연은 내게 작게 이야기하면서 대가를 요구했다.
내 부탁은 다 들어 줄 것 처럼 굴어도 시연은 항상 어떤것들을 요구했다.
물론 정말로 다 들어 줄 것이다. 단지 그녀는 내가 골란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 대가가 없어도 못이기는 척 들어 줄 것이다.
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으니, 시연은 다시 한번 작게 속삭였다.
"같이 목욕하는 거면 참을게, 먼저 사과도 하고. 흐흐흐."
"...넷이면..."
"알았어, 다른 두 사람이면 상관없어."
둘 만 있으면 무서운 일이 날것만 같아서 리리스와 미네르바도 같이 할 것을 조건으로 걸었고, 의외로 쉽게 허가 되었다.
"그런데 오빠? 전처럼 셋을 상대하려고?"
"어...망했..."
시연은 사색이 된 나를 스쳐가면서 파니아에게 다가갔다.
"뭐지 고블린? 아직 할 말이 남았던가..."
"내가 먼저 사과할게, 귀쟁이. 아니, 파니아라고 했던가? 서로 적당히 하자고? 어차피 한동안 얼굴보고 지내는 데, 우리가 싸우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니까."
"...그러지, 나도... 아니, 세계수님도 용사들이 필요해서 부른 거니, 나도 사과하지."
다행히도 그녀들은 서로 사과를 하면서 타협을 하였다.
"역시 시연은 대단하네요. 즉시 언니와 목욕권을 따내고."
"응, 보고 배워야지. 자연스럽게 네 명이 함께하는 걸 유도했어."
많이 친해진 두 명의 아내들도 그런 시연에게 감탄하고, 나는 그저 어떤일을 당하게 될지 두려움에 떨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