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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한 용사는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된다-45화 (45/156)

〈 45화 〉 진실

* * *

이튿날 아침.

긴장한 채로 시연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후우.'

그녀들은 이야기했다.

'언니의 마음이 시키는 데로 하세요. 머리가 시킨일이 아닌, 마음이 시키는 데로요.'

'소피아의 선택으로 일어난 일은 우리들이 도와서 해결할 거니까. 그러니 소피아가 원하는 데로 하는 게 맞아.'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상관없으니 시연의 일은 내가 선택해야 하는 일이라고, 그녀들은 내 선택을 지지해주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도와준다고도 말하였다.

'우리 부인들은 항상 나를 우선시 해주네...'

언젠가는 반드시 보답해주고 싶다.

"시연아? 들어가도 돼?"

조용하게 문을 두드리고, 시연에게 입실을 허가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서 고민할게... 적어도 그린우드의 일이 끝나기 전까지만...'

지금 당장 시연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더라도 안 믿어 줄 것이다.

믿는다 해도 실종된 오빠가 죽었고, 다시 살아나서 여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꽤 충격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시연이 성격상, '언제 태국가서 잘랐어?'라고 놀릴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럴 만한 상황은 아니겠지...'

시연에게 나라는 존재를 알릴 만한 증거는 많이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가족만이 아는 것, 시연만이 알고 있는 내 비밀 등등. 수단은 있지만 아직 용기가 나질 않는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시간을 들여서 다시 친해지는 것도 해야지, 10년 만이라 어색할 거 같은데...'

"아니, 그런데. 이시연 이것은 아직도 아침에 혼자서 못 일어나나..."

시연은 아침에 약해서 지구에 있던 시절에는 자주 깨워주러 가기도 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지만, 시연이 여는 것이 먼저였다.

"어?"

"소피아? 내 방문 앞에서 뭐 하는 거야?"

"그... 그린우드로 가기 전에 이곳에서 며칠 머무른다고 들었거든. 그러니 같이 놀러갈까 해서... 그런데 일찍 일어났네?"

시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왜? 애인들이랑 데이트 안 하고? 어제 물어볼게 있어서 방 앞으로 찾아갔는데 들리는 소리가 장난 아니던데?"

'드...들었구나! 리리스! 분명히 방음이 잘 돼 있는 곳이라며?! 분위기에 취해서 했어도 들릴 줄은 몰랐지!'

얼굴이 붉어져오는 것을 느낀채로 입을 뻐끔거리고 있자, 시연은 웃으면서 나를 놀리고 있었다.

"하하하! 나는 소피아, 네가 난봉꾼처럼 두 여자를 끼고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하하. 엿듣는데, 귀엽더라?"

시연은 마치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고, 나는 얼굴 더욱 붉어지면서 말조차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두 맹수 사이에서 나는 그저 한 마리의 가여운 토끼일 뿐.

'아니?! 엿들었다고?! 그걸 다?!'

"그... 잊어 주세요..."

내 부탁과는 다르게 시연은 전혀 잊을 생각 없다는 듯이 웃고만 있었다.

"그런데 물어볼거라는 건?"

나는 화제를 바꾸려고 그녀의 용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이 익숙한 분위기를 피하려면 화제전환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 그거? 어떻게 내가 연상인걸 안거야? 난 딱히 소피아한테 나이는 말 안한 거 같은데?"

'어... 안했나? 그때부터 10년이면 스물여섯 이니까 당연히 연상이라고 한 건데...'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안한 것 같다. 그녀를 보고 나서 상당하게 당황해서 그런지 생각조차 못했었다.

"그... 나보다 많아 보여서? 하하하..."

순간 시연의 주먹이 내 정수리를 내리꽂았다.

"으억!"

☆☆☆

시연과 함께 번화가를 구경하면서 떠들고 있었다.

"역시! 역참이라 그런지 상권이 많이 발달되어 있네! 하하하..."

"..."

나보다 많아 보인다는 말에 조금 화가 난 것인지 시연은 무표정으로 말을 무시했다.

'거기선 변명할게 그것 말고는 없었다고?!'

나는 시연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어제 만났을 때처럼 찬 바람이 불었다.

'하아. 이럴 때는...'

시연은 예전에도 화가나면 자주 이런 식으로 나를 무시했었다. 그런 그녀의 기분을 풀어 주려고 단 음식을 사주기도 했고, 어리광도 많이 받아 주었다.

'여전하네... 잘 보면 어리광부리기 좋아하고, 장난치기 좋아하는데 왜 주변 사람은 시연이가 까칠하고 입이 험하다고 했을까?'

분명 험한 건 맞지만, 조금 말로 때리는 수준이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의문을 느끼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금세 빵집을 겸한 카페를 찾을 수 있었다.

"시연아. 잠깐만 따라와봐."

"어...?! 소피아?!"

시연의 손목을 잡고 빵집으로 향하면서 그녀의 기호가 바뀌질 않았기를 빌었다.

딸랑~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종소리가 들리면서 점원이 미소를 짖고 반겨 주었다.

시연을 먼저 자리에 앉혀놓고 나는 천천히 케이크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불만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어리광을 받아주던 경력이 16년, 시연의 표정만 보고도 어떤상태인지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렇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곧 있으면 투덜거리겠네... 하긴, 나이많아 보인다고 한 건 좀 화날만 했겠다...'

"점원분? 여기 초코 케이크 하나 하고, 딸기 케이크 하나, 그리고 초코라떼와 아메리카노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계산을 하고는 시연이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초콜릿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안거야?"

그녀가 눈을 찌뿌리며 물어보았고, 거기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을 해주었다.

"내 동생도 좋아했거든. 하하... 그래서 시연이 너도 좋아하지 않을까 해서."

'네가 항상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모를 리가 없지...'

속마음과 입에서 나온말은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지만, 아까 처럼 그냥 말했다가는 큰일이 난다.

"그 동생분? 그분도 좋아했어?"

"응. 항상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좋아했지, 그리고 아까는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푸훗. 아하하하하하하! 알겠어... 하하하. 정말 소피아랑 있으면 재미있다니까? 하하하하."

내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시연은 다시 웃음을 터트리며 사과를 받아주었다.

'다행히 기분이 좋아진 듯하네.'

그런 그녀를 보며 옅게 미소를 지었고,시연은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면서 물어왔다.

"그 동생이라는 분, 나랑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나봐?"

"응. 정말 닮았지,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같은 사람 맞으니까. 하하하...'

시연과 떠들면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음료와 케이크가 나와서 받아왔다.

"소피아. 그러면 동생도 소피아를 많이 좋아했겠네?"

"어... 그렇지? 티격태격해도 나름 사이좋은 남매였으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해 주었다.

시연이 놀리면 나는 반발하고, 아침에 항상 깨워주러가고, 이런 식으로 화를 내면 간식을 사주면서 풀어 주고 공부도 가르쳐 주면서 꽤 친하게 지냈었다.

"음... 그런 의미는 아닌데? 이렇게 귀여운 언니인데 동생이 가만히 내비두기 힘들었겠지. 나도 주위에서 오빠한테 접근하는 여자들 쳐 내느라 힘들었으니까."

처음듣는 소리다.

남중, 남고를 다녔고 근처에 여학교는 있었지만 나한테 접근하는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어? 그...래?"

"응. 자랑은 맞긴 한데, 나를 봐 꽤 미인이잖아? 이 유전자가 어디가겠어? 오빠가 키크고, 잘생겼고, 거기에 잘 웃어 주는 편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부드럽게 웃으면 폭 넒은 연령대의 여자들이 접근하려고 했지... 몇 번 접어 놓아도 포기 안하더라?"

시연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나는 심각했다.

분명히 시연은 학생 때 자주 싸우고는 했다.

시연한테 맞은 사람도 문제삼지 않아서 내가 대신 사과하고는 했지만, 그러고는 끝난 줄 알았다.

"오빠는 여자들에게 인기 있었고, 남자들은 그런 오빠를 보면서 질투로 접근도 안 했어. 하하. 덕분에 친구가 하나도 없었던 건 미안 했지만 말이야. 히히."

'너였냐?! 내가 친구가 없던 이유가 너였던 거야?!"

어이없게도 알게 된 진실은 매우 처참했었다.

시연은 자주 싸움을 하고 다니지만 나름 좋은 교우관계를 하고 있었고, 나는 이상하게 친구가 안 생기고 오히려 시비거는 사람이 많았을 정도였다.

'물론, 시비걸었던 놈은 이튿날에 어디선가 맞고 등교했는데... 그게 시연이가 했던 거 였네.'

자신보다 어린 여자애 한테 맞았으니, 그들도 쥐 죽은 듯이 조용했던 것이었다.

"하하... 그러면 오빠분이 조금 불쌍한데..."

내가.

여기서 진실을 들어 버린 내가 너무 불쌍했다.

"그렇긴 한데... 소피아도 예전에는 인기 없고 친구없다고 생각했지?"

"응..."

"그거 동생이 한 거야."

확실히 본인 입으로 자백을 하고 있으니 그렇겠지...

"왜... 그런 걸까? 그래도 오빠분도 연애는 해 봐야 하지 않았을까? 하하하..."

내 말을 듣던 시연은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하더니, 또 다른 진실을 이야기해주었다.

"안 돼, 안 돼. 누가 감히 내 오빠를 넘봐? 일부러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척'하면서 깨워주러 오는 거 기다리고, 오빠한테 접근하는 년들 접으면서 인기 없다고 놀리고, 오빠가 보던 야동의 취향도 파악해서 거기에 맞춰주고,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걸티 안나게조금 싸워주고, 어리광 부리면서 지냈지.오직 세상에 남자는 오빠 하나만 있어도 될 정도로 사랑하는 착하고 잘생긴 우리 오빠니까."

"푸훗! 쿨럭! 쿨럭!"

"어?! 소피아! 괜찮아?!"

들어서는 안 될 진실을...

'어...? 뭐라고?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마시던 음료를 그대로 뿜어 버린 나를 시연은 천천히 간호해 주면서 등을 토닥였다.

"천천히 마셔야지 소피아. 그래도 내가 간호사 출신이여서 나름 간호도 잘한다?"

시연이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전혀 들리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인 진실을 들어 버려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머리조차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이제 조금 다르게 보였다. 시연이 어렸을 때부터 내가 몰래 떨어져 있으면 울면서 나를 찾았고, 어리광도 조금 심했다.

이상하게 아침에도 약했었다.

어머니가 깨우러가면 죽어도 안 일어나더니, 내가 깨우러 가면 바로 일어나서 시연을 깨우는 담당은 자연스럽게 내가 되었을 정도였다.

'그 많은 격투기를 배웠던 것도 나한테 오는 여자들을 쳐 내기 위해서였나?!'

내가 사과하러 찾아간 여자들도 지금 생각해 보면 맞았는데도 이상하게 좋아했던거 같다.

미친 듯이 떨리는 동공으로 시연을 바라보았다.

"살면서 숨겨 왔던 건데, 이상하게 소피아랑 있으면 편해져서 나도 모르게 말하게 되었네? 소피아도 우리 오빠랑 닮아서 그런가?"

그녀는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 말하지 말지! 계속 숨기지!'

더욱 내 정체를 말하기 힘들어졌다.

시연이 내가 실종되고서 얼마나 힘들었는 지, 저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정체를 말해주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용기가 나질 않아서 문제였지만, 다른 큰 문제가 생겼다.

'진실을 알면 시연이도 정신적인 데미지가 생긴다! 무엇보다...'

우리 집 두 맹수.

'리리스와 미네르바랑 진실을 안 채로 만나면 전쟁이 일어난다!!!'

두 맹수와 새로운 맹수가 싸우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그사이에 가여운 회색 토끼 한 마리가 바들바들 떨고 있다.

"아! 우리오빠 야동취향도 알려줄까? 야동이 섹스를 하는 영상인데, 우리오빠 취향이 뭐냐면... 읍...!"

나는 시연의 입을 막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그만, 시연아 그만..."

'네 오빠는 한계야...!'

"그...그렇겠지... 하하. 오빠 없는 곳에서 이런 거 말하면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겠다."

눈앞에서 말하는 게 더 힘들다.

'[정신력]아, 왠지 나를 괴롭히던 네가 그리워졌어...'

"소피아. 나는 소피아랑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아! 히히히."

시연은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옅게 미소를 지었고, 나는창밖의 내 눈에만 흐린 하늘을 보면서 우리는 자리를 파했다.

☆☆☆

한동안 방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로자리아. 밖에서="" 동생과="" 무슨="" 일이="" 있었길래="" 소피아가="" 정신이="" 나가="" 있는="" 게냐?=""/>

<후후후. 카르마도="" 같이="" 있었으면="" 정말="" 재미있었을="" 텐데...="" 아깝네요.="" 그런="" 구경을="" 저="" 혼자만="" 하고.="" 후후.=""/>

두 에고웨폰은 실체화 한 상태로 신나게 떠들고 있었고, 리리스와 미네르바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언니? 혹시 마음은 정하셨나요?"

흠칫.

아까 전 시연의 정신공격이 떠올라서 그런지 조금 몸이 떨리는 기분이다.

"소피아! 급하게 정하지 않아도 돼! 무슨 일 인지는 몰라도 말하기 힘든 거잖아? 동생한테 실종된 오빠가 어떻게 됐는지 말하기 힘든 것도 이해가니까!"

<후후후. 카르마가="" 말한="" 팝콘각이="" 이런="" 거군요.=""/>

<뭔데? 본녀도="" 알려="" 줘.="" 로자리아만="" 팝콘뜯지마!=""/>

'진짜로 어떻게 하지...'

다시 그린우드로 출발하기까지 이틀.

거기에 그린우드의 일까지.

할 일을 산더미지만 머리에 어떤 생각도 나질 않고 있다.

"아아아아아..."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정말 어떡해..."

항상 있는 두통과 복통이지만 오늘은 유독 심각한 기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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