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내분
* * *
"마리아님? 요즘 안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이런, 로젤리아님. 제가 그만 티를 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마리아는 교국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단자들의 폭동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다른 동료들과 정기적으로 상황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티가 날 정도로 분노한 상태였다.
'여신교의 가르침을 틀렸다니, 어리석은 이단들이...! 권력에 미친 교황측 늙인이들이 결국에는 저를 몰아내고 여신교를 차지하려 드는군요...'
감히 어리석은 인간이 위대하신 여신님의 교리를 들먹이는 것은 이단이다.
기부금도 인력도 모두 여신님을 위해 쓰는 것인데 감사하게 받치지 못할 망정, 청렴을 들먹이다니 그것은 이단과 바보 같은 성녀를 방패로 쓴 늙은 돼지의 합작품 일 것이다.
이단심판관을 풀고, 폭동을 일으키는 이단들을 모조리 잡아넣고 있지만 심판관들의 수가 한정적이었다.
'이단들을 구휼하는 일이라고 모두 쉼 없이 일해주고 있지만, 너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까득.
"마리아님?"
"! 죄송합니다. 요즘 이단들이 들끓어서요. 하하."
"고생하시네요. 성녀의 상태는 어떤가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음을 느낀 로젤리아는 즉시 화제를 전환하였다.
"성녀님은... 능력으로는 여신님에게 간택을 받으셨으니 문제는 없고, 나머지는... 뭐. 참 순수하신 분입니다. 곧 이곳으로 보낼 것이고, 그러면 교황의 견제없이 저희들의 생각대로 교육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교황의 견제로 성녀에게 교리를 설파하기 힘들다.
교황측 사람인 성기사가 붙어 있고, 교황청에도 자신의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이나 자신들이나 결국 쉽게 손대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비열하게 민중을 이단으로 만들었군요! 교황... 대체 어디까지 타락할 셈인가요!'
하지만 결국에는 그 욕심이 화를 불렀다.
성녀는 용사파티의 일원으로서 우리측에 올 인물이었고, 자신처럼 여신의 열성적인 신도로 교육할 예정이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배를 채우게 내비 뒀을 자신이었지만, 권력에 눈이 멀어 버린 돼지는 여신교로서 해서는 안 될 이단이 되어 버렸다.
'주는 사료나 잘 받아 먹을 것이지...! 아니죠! 이건 분명 여신님의 뜻일 겁니다. 이 기회에 이단들을 축출하라는 여신님의 뜻! 아아. 여신님 대체 당신은 어디까지 내다 보신 건가요!'
여신님의 뜻.
마리아는 여전히 자신에게 편한 대로 해석하고, 그것을 여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변명했다.
'성녀님이 글리아스로 출발하면 실행에 옮기죠. 거기서 교황측 성기사도 함께 제거 하구요.'
그는 앞으로 있을 이단심판에 즐겁게 미소를 지었다.
☆☆☆
마리아가 이단들을 어떻게 고문할지 고민하고 있을 무렵, 파니아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자신의 동료들은 모른다.
평소였으면 세계수의 예언을 전달하였겠지만, 문제는 그 예언이었다.
세계가 불타오른다는 예언은 바뀌지 않았다.
단지 추가된 예언이 있었을 뿐.
그가 돌아왔다. 새로운 악이 복수귀가 되어 세계를 불태울 것이다.
'세...세계수님이 이 예언은 전달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 말하면 세계의 멸망만 앞당길 뿐이라고...!'
그, 새로운 악, 복수귀.
그것을 지칭하는 것은 하나 일 것이다.
'그 '괴물'이 살아 돌아왔어! 어떻게?! 분명 목을 베었는데!'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한들,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생각하고 엘프들은 무시할 것이다.
그들에게 엘프는 '인족'이 아니었으니까.
드워프족 괴멸의 뒤처리만 보아도 명확했다.
'대충 빠르게 치워버렸으니까!'
세계수가 없어진 엘프는 그들에게는 가치없는 이종족이다.
"? 파니아? 몸이 안 좋으신 건가요? 아까부터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로젤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보자 파니아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 성녀와 용사를 우리쪽에 먼저 보내줄 수 있어? 세계수님이 축복을 내려주신다고 하셨거든!"
거짓이다.
용사를 요청한 것은 방패라도 될까해서 요청한 거고, 성녀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세계수님이 나는 그에게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죽는다고 했어... 무서워... 시발! 시발! 시발!!!!'
다시 돌아온 그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자신이 살해당하는 모습은 똑똑히 보았다고 전했다.
"도구 하나는 아직 쓰레기라 힘들고... 하나는 좀 반항적이지만... 주종계약이 있으니까 여차하면 원하는데로 다룰 수 있겠네요. 여성쪽으로 보내죠. 남성쪽은... 그냥 쓰레기라 그린우드에 가 있는 동안 프레디경에게 더욱 심하게 훈련시키라고 하면 조금은 쓸만해지겠죠. 마리아님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로젤리아의 질문에 생각에 잠겨 있던 마리아가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군요! 빨리 보내는 게 저한테도 이득이니 교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더욱 빨리 축출할 수 있겠군요. 하하.' 하고 중얼거렸다.
'됐어! 로자리아를 가진 성녀라면 나를 죽지 않게 할 수 있을 거야!'
거기에 로젤리아가 보내는 '도구'는 전에 보았던 자신을 '에로프' 라고 부르던 이상한놈이 아닌, 쓸만해 보이던 도구가 아닌가.
반항적일지라도 아직은 대놓고 거부하지는 않는다.
주종계약은 주인이 도구들도 모르게 로젤리아로 되어 있어서 자신에게 절대복종을 하지는 않겠지만, 눈앞에 죽어나가면 살려는 주겠지.
저들은 '인족'이고, 자신은 '엘프'족.
살고 싶으면 따라야 한다.
세계수의 예언을 전달하는 전서구가 되어야 한다.
로젤리아도, 앨리스도, 마리아도 결국에는 이종족인 자신이 쓸모가 다하면 버릴 자들이다.
그러니 개처럼 따라야 살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을 예언을 전달하는 도구로만 보고 있다.
'내가 살길은 내가 찾아야지... 어떤일이 있을 때 나를 잘 안 부르는 것만 봐도 뻔해. 그의 이야기가 나오면 도와주는 척만 하겠지.'
그렇다면 자신도 중요한 정보는 숨기겠다.
비장의 카드를 숨기지 않는다면 저것들에게 버려질 것이다.
"로젤리아... 라인하르트는?"
꾸벅 졸고 있던 앨리스가 깨서 로젤리아에게 질문을 했다.
"지금은 프레디 경의 훈련을 돕고 있을 거예요. 그가 직접 요청하기도 했고, 성장속도도 빠르기도 하니까요. 정말 어디서 그런 걸 주워 왔는지... 몰아붙이면 몰아붙일수록 더 열심히 훈련 한다니까요?"
저들이 그에게 죽어 나갈 때 자신은 살 것이다.
세계가 불타올라 인족이 멸망한다고 해도 자신만은 살 것이다.
도구와 성녀에게 모든 걸 이야기하고 도망치더라도.
'반신이신 세계수님이시니까, 주종계약정도는 풀어 주시겠지. 성녀도 바보같이 착하다니까, 부탁하면 들어 줄거야.'
자신은 비굴하게 그의 발바닥을 핥아서라도 살고 싶다.
'아직 죽고 싶지 않아...'
고통스럽게 고문당하고 죽는 것은 더욱 싫다.
저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인족들.
이 자리에 없는 기사.
이미 그에게 당한 드워프.
'난 프로그처럼은 안될 거야...!'
프로그의 사체를 떠올리고, 공포에 떨면서 다짐했다.
☆☆☆
수일후
마리아는 내게 찾아와서 대뜸 그린우드로 향할 것을 명했다.
'며칠 사라져 있더니, 왜 저러지?'
그가 글리아스에 다녀왔던 것은 알고 있었다.
거기서 어떤일이 있었는지, 나를 그린우드로 가는 마차에 태웠다.
'아마도 파니아의 요청이 있었겠지.'
며칠 정도 일이 당겨졌지만,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교국 곳곳에서 민중이 일어났고 현 여신교의 반란이었으며, 반란은 곧 혁명이 될 것이다.
"성녀님, 마차 안은 불편하시지 않으십니까?"
마차를 모는 마부.
성기사와 이단심판관.
'교황과 마리아가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 보냈나?'
지금쯤 교황과 마리아는 서로를 물어뜯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반란이 나를 이용한 권력욕의 산물로 알 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서로가 반란을 잠재울 세력을 투입시키면서 민중을 사이에 두고 '역시'라고 생각했겠지. 전력을 분산시키고 민중을 죽이면서 두 세력이 싸우겠고.'
교황청은 마리아와 교황이 직접 대치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면 결국 그들도 눈치챌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민중들은 자신들을 탄압하고 죽이는 교국에게 분노하고, 더욱더 혁명의 깃발을 휘두를 것이다.
하지만 교황과 마리아는 다르다.
아직은 각자의 세력을 이용하면서 공격하고 있겠지만, 민중과 자신들의 세력이 서로를 죽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상대측이 무엇이 목적인지 의문을 느끼것이고, 그쯤에 잠시 전투는 소강 상태에 접어들 것이다.
'그때는 이미 많은 세력이 사라져 있을 거고, 나를 대응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지.'
마차 밖을 바라보자 저 멀리, 교국 쪽에서는 불길과 거기서 나오는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성녀님. 저것은 이단을 심판하고 있는 것이니, 너무 염려마세요. 후후후."
이단심판관이 미친것과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고 있자, 옆에 있던 성기사가 발끈하면서 소리 질렀다.
"이 미친자가! 그대들이 일으킨 이 사건을 보고도 웃음이 나오나!"
"권력에 미친 이단이 어딜 감히! 여신님의 이름으로 심문을 해야 하겠군요."
둘은 각자 메이스와 검을 들려고 했다.
"그만."
내가 말을 하자, 두 사람은 나를 쳐다 보면서 멈칫했다.
평소처럼 바보같이 헤실거리는 말이 아닌,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왜? 이제 시작인데. 멍청하게도 같은 편끼리 죽이고 있으니, 나는 손도 안대고 코 푸는 거지. 하하핫!"
평소처럼 존대를 하지도 않고, 웃고는 있지만 차가운 목소리.
그들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갈 할 수밖에 없다.
"성녀님... 잠시 이야기를..."
펑!
성기사가 무언가 말을 했지만, 그건 유언으로 형편없는 것이었다.
툭.
상체가 사라진 성기사의 사체가 바닥에 쓰러지고, 성기사가 있던 방향으로 손을 뻗고 있는 나를 보던 이단심판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 설마! 이단은 네년이었나?! 감히! 여신님의 인도를 받고 온자가...!"
콰직.
나는 시끄럽게 떠드는 이단심판관의 머리를 쥐어 터트렸고, 그도 성기사와 운명을 같이 했다.
"아... 앵무새도 아니고, 그리고 여신의 인도를 받은 거면 네가 맞는 게 아니라, 내가 맞는 거 아니야? 어이가 없네."
마차 안이 소란스러워지고, 마부가 걱정이 되었는지 밖에서 질문을 했다.
"안에 무슨 일 있습니까? 영 소란스러워서 말이죠."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하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무슨... 어?"
마부는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했고, 마차 문이 열리면서 세 명의 가면을 쓴 존재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얼굴없는 자들' 세 명이 새로운 마왕님을 뵙습니다."
가운데서 입을 연 가면의 여성.
데카라비아가 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데카라비아, 잘 지냈어?"
"...지금은 얼굴없는 자입니다."
쌀쌀맞게 구는 그녀를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하하... 그래, 너희는 마차를 이끌고 그린우드로 천천히 가고 있어. 나는 교국의 일을 마무리하고 바로 따라 갈게."
"존명!"
세 사람은 즉시 명령을 이행하고 떠나 갔다.
"리리스가 부하들 교육은 참 잘시켰단 말이야... 그럼 난 '친구'를 만나러 가 볼까?"
서로 물어뜯고 있거라.
'그러고 있으면, 내가 널 죽이러 갈 거니까.'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의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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