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이이제이
* * *
성녀로서 활동을 시작한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성녀님. 오늘, 교황님이 만나기를 청했습니다."
내 호위로 선정된 성기사가 다가와서 일정을 알렸다.
"그런가요? 교황님은 처음 뵙네요. 성기사님 안내 부탁할게요."
"네, 성녀님."
과거에 만나 보았던 교황은 어딘가 겁이 많아 보이고 살집이 조금 잡혀 있던 사람이었다.
'교국이 이 꼬라지가 났는데 그 아저씨라고 멀쩡할까...'
보름 동안 지켜보았던 교국의 상태는 심각했다.
비단 기부금들만이 아닌, 축복을 가장하여 아녀자를 성폭행하는가 하면, 가난한 집에 찾아가 기부금을 걷고 내지 못하면 감옥에 보내서 여신에 대한 감사함을 모른다며 기부금을 낼 때까지 가둬놓기도 했다.
'성폭행건은 검순이가 염화로 조사내용을 알려 줄때 들었지...'
<거기에 여신님은="" 종족을="" 차별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어요.="" 여신님의="" 피조물이="" 아닌="" 마수를="" 제외하고=""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바라지도="" 않던="" 인신공양이라니...=""/>
염화를 하던 로자리아가 울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나도 미네르바에게 제물로 받쳐지던 수인을 구출했다고 들었을 때는 참기 힘들뻔했어...'
그들에게 인족을 제외한 모든 종족은 짐승일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짐승'을 제물로 받친 것이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사람들이 말라가면, 성직자들은 더욱 살을 찌워간다.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면, 그들이 믿음이 부족한 것이라며 매질을 한다.
고아원을 가장하고어린아이들을 사고 판다.
마음씨 좋은 사제를 연기하는 노예상.
아이를 후원한다는 명목으로 구매해가는 매매자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에게는 죄였으며, '사람'으로서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악'이었다.
'내가 구했던 세상은 평화가 아닌, 암덩이를 주었던 거지...'
그들에게 평화와 안녕은 부패와 나태를 안겨 주었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에 눈을 돌리고, 여신을 방패로 어떤것도 듣지 않는 나태함.'
<평화와 욕심이="" 낳은="" 죄악이지요.="" 소피아님이="" 말하던="" 시절만="" 보았어도,="" 제="" 용사님은="" 분노했을="" 거예요.=""/>
첫 번째 용사.
그는 레비아탄을 죽이고, 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기를 막기 위해서 저주받은 대지의 중심부에 자신의 육신을 희생했다고 했다.
'목숨 받쳐서 구해 놨더니, 수인은 짐승으로, 악마족은 여신의 미움을 받은 악으로, 거인과 용족은 마수 취급을 했으니 분노 할 만 하지.'
그 외의 마왕군들도 인족의 선동과 박해로부터 도망나온 종족들 뿐이었다.
윗사람의 명령에 익숙해진 무지한 자들은 그저 생각을 포기하고, '악'이라 단정 지으면 '악'이라 믿으며 박해했다.
<조금만 생각하면="" 당연하게="" 알="" 것을...!=""/>
'익숙해진 거야.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그들은 나중에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드리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말이야...'
"성녀님. 교황님이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지요."
"네. 성기사님 수고하셨어요. 후후후."
나는 성기사에게 '성녀'처럼 웃어 주며 감사를 전했다.
'사상교육을 끝마친 지도자들은 말한마디 만으로 사람을 조종하기 쉽거든.'
이들처럼.
☆☆☆
방 안으로 들어가자, 덩어리 하나와 이제 청년을 넘었을 것 같은 네 명의 중성적인 소년사제들이 보였다.
'비계?'
<살덩이?/>
나와 로자리아는 비슷한 감상을 하면서, '교황'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사제복장에 온갓 보석과 장신구들로 치장한 육즙이 흘러내리는 무언가였다.
<소피아님... 저="" 구역질나요...="" 저건="" 아니지요.=""/>
'맨눈으로 보는 나는? 저거 안 본 눈 어디 안파나? 교황청에서 팔면 잘 팔릴 거 같은데...'
기름진 고기를 씹던 덩어리가 나를 보며 말을 했다.
"부히... 그대가, 부히... 성녀인가?"
<소피아님! 신기해요!="" 살덩이가="" 말을="" 다하네요!="" 저는="" 잠깐="" 시야를="" 차단할게요.=""/>
'어?! 야 목걸아 도망치지 마! 로자리아? 로자리아야? 저런 끔찍한 것을 나 혼자서 상대하라고?! 야!'
"성녀여? 부히..."
"엇! 네!"
육즙이 흘러나오는 덩어리. 교황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네, 아직 부족하지만 성녀로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자 교황은 나를 품평하듯이 훑어보던이 입을 열었다.
"부히, 이 정도면... 부히."
품평하던 눈을 이 덩어리에게서 도망친 괘씸한 로자리아로 찌를 뻔했지만, 강력한 의지로 겨우 버텨 냈다.
"어... 그... 교황님?"
"부흠! 그래, 이리로 오게나. 부허. 부허."
"꺼... 아! 아니! 어찌 제가 교황님 곁으로..."
싫어요.
"아니, 부허. 내가 말만 조금, 부허. 많이 해도 숨이 차서 그러네. 부허. 이쪽으로 오렴. 부히."
"아하하... 이제 겨우 성녀로서 발걸음을 시작한 제가 어떻게 교황님에게 다가가나요. 하하하..."
안 돼요.
"븜... 그럼 내가 가지. 부히. 들거라."
"아...아니! 그러실 필요는!"
하지 마세요.
교황의 말이 떨어지자, 옆에 있던 소년사제들은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교황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끄어어어어억!!""""
목에 핏줄이 터져 나갈 듯이 기합을 지르며, 교황을 들고 이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사색이 되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고, 얼굴이 붉게 터져 나가는 소년사제들을 보면서 동정했다.
'정말 하지 마세요... 저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크흡!'
쿠웅!
소년사제들이 교황을 내려놓자 묵직한 소리가 들렸고,
"다니엘 사제님!!! 정신 차리세요! 쓰러지시면 안 됩니다!"
"허...허리가... 스테파노사제님... 저는 틀린 것 갔습니다... 아아... 저기에 여신님이 마중나오신 것 같아요..."
"다니엘 사제님!!!! 사제님이 빠지시면 '저걸' 셋이 들어야 합니다!!!!"
"아하하..."
"부힝... 예쁜 사제는 구하기가 힘든데 연약해서 문제야. 부힛."
나는 그들의 신파극을 보다 못해서, 로자리아를 이용한 성력으로 사제를 치료해주고 교황의 말을 들었다.
"안 돼!!!!!"
"""아자아아아아!!!!!"""
'하하... 지랄도 참 풍년이다.'
☆☆☆
교황의 말을 요약하면 이런 말이었다.
내가 떠날것은 약 보름 뒤이고, 향하는 곳은 용사들이 수련중인 글리아스.
거기에 요즘 교국의 시민층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도 했다.
평소에도 불만을 토로하는 인물들은 잡아 넣기는 했지만, 요즘은 여신에게 불경한 자들이 늘어서 점점 감당이 안 될 지경까지 이르기 시작했다고, 때문에 내 신변을 생각해서 본래 세 달의 교육 기간을 한 달로 줄여서 실전에서 경험을 쌓게 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황청의 높으신 분들도 서로 의심하기 시작했지."
교황을 만나고, 내 방에 돌아와서 카르마와 염화를 했다.
<음. 리리스와="" 미네르바가="" 이곳저곳에서="" 노력하고="" 있느니라.="" 하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조금만="" 씹을="" 거리를="" 주면="" 시민들은="" 서로="" 교국과="" 성직자들을="" 물어뜯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만큼 쌓인 게 많은 거지. 내가 살던 세계도 상사같은 자신의 윗사람을 까는걸 좋아했어."
이 문제는 어디를 가나 똑같았다.
사상교육이 끝난 자들도 소수이면 공포로 인해 입을 다물고, 그 인원이 다수가 되기 시작하면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것은 달콤한 사탕을 받은자들부터 시작했다.
"한 번이라도 편안함과 안락함을 경험한 자들은 그것을 잊지 못하는 법이거든."
처음은 기본적인 기부금을 받고, 어떤자들은 기부금을 대신 내주면서 봉사를 했다.
그런 것을 받아본자들은 생각한다.
이 사람은 이런데 저들은 왜.
그런 생각이 혼자였다면 말을 하지 못하지만, 여럿이 되면 이야깃거리가 되고 자연스럽게 불만으로 이어진다.
"거기에 조미료를 첨가하면, 사람들은 찬양하기에 이르지."
<그렇더구나. 리리스가="" '성녀님은="" 상냥하셔서="" 기본적인="" 기부금도="" 받기="" 싫어하시지만,="" 교황청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받으시는="" 거다.'라고="" 하니까="" 서로="" 동의="" 했다는구나.=""/>
사람의 이미지는 상대적인 것이기에 비교적으로 좋은 건, 해석하기에 따라서 굉장하게 달라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괞찬겠느냐?=""/>
"뭐가?"
<사람들이 그대를="" 치켜세우고="" 교황청을="" 깎아내리고="" 있다.="" 그대한테="" 피해는="" 없는="" 것이냐?=""/>
"응. '나'한테는 없어."
<그대한테는?/>
"응."
그들이 처음 왔을 때부터 한 감시. 내 일상을 방에 있을 때 빼고는 마리아가 항상 붙어 있고, 교황측 사람인 성기사도 붙어 있다.
"내가 한 건 그저 치료와 축복을 내렸을 뿐이거든, 내가 아무짓도 안했다는 건 그들이 제일 잘 알고 있어."
기부금을 더 받으라고 하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하면, 그쪽들도 할 말이 없다.
방의 감시와 도청마법은 처음 왔을 때부터 중요한 정보가 넘어가지 않도록 조작을 해 놓았다.
"지금 나는 방안에서 자는 거로 보일걸?"
<하지만 누군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않았겠느냐?="" 그들이="" 멍청이도="" 아니고="" 이런="" 상태면="" 무언가="" 있다고="" 생각할="" 것인데...=""/>
그렇다.
단지 그 대상이 내가 아닌 서로일 뿐.
"내가 나타나고, 그런 일이 생겼어.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난 아무것도 안 하고 시키는 것만 하지. 그럼 그들은 무엇을 의심할까?"
"그래, 검순아. 그들은 서로가 나를 방패로 자신들을 공격한다고 생각할 거야. 그리고 서로 물어뜯는 자멸이 시작되는 거지."
다른 무언가를 방패로 삼는 것은 그들의 특기니까.
여신님의 뜻대로.
그저 그들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변명거리가 그들을 의심하게 만든다.
저 나태하고 스스로 생각을 못 하는 시민들이 직접 한일이 아니다.
저 스스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시키는 것만하는 나태한 성녀가 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마리아는 자신의 지위와 대중적인 위치를 시기한 교황이 저지른 짓이라 생각할 것이고, 교황은 교국 전체를 먹으려는 마리아가 한 짓이라 생각하겠지."
평화로워지고 나태해진 그들은 내가 오기 전부터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권력에 취해서 더욱 강한 권력을 찾고.
마약과도 같은 평화에 무언가를 할 의지를 잃고.
욕심에.
여신이라는 좋은 변명거리를 이용해서.
"'권력에 취한 욕심쟁이가 감히 여신의 사도인 나를 배제하려 한다.' 그렇게 의심하고 있는 그들은. 시민들이, 민중이 '지금의 교단은 틀렸다. 여신님의 가르침은 이것이 아니다. 부패한 여신교를 무너뜨리고, 청렴한 성녀님을 대표로한 새로운 여신교를 창설해야 한다.'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이제 의심은 확신이 되는 거지."
<권력마저 모자라서="" 이제="" 교리까지="" 뒤집어="" 엎으려고="" 한다며,="" 서로="" 칼을="" 겨누기="" 시작하겠군.="" 그대는="" 단순한="" 허수아비라="" 생각할게고.=""/>
"응."
마리아를 주축으로한 이단심판관과 광신도들.
교황을 주축으로한 주교들과 권력자들.
"그들은 서로를 잡아먹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눈치챘을 때는..."
말 잘듣는 허수아비에게 불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말 잘듣던 민중에게 불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해석이 달라진 여신교가 탄생하겠지."
민중에게서 새롭게 탄생한 여신교가.
<음! 그렇구나="" 소피아.="" 그런데="" 왜="" 아까부터="" 본녀의="" 동생은="" 저리="" 서럽게도="" 우는="" 것이냐?=""/>
<으허어엉허엉어어엉! 잘못했어요!="" 허어엉!="" 카르마아아아!="" 아니="" 언니이이이!="" 소피아님="" 좀="" 설득해="" 주세요!="" 허어어엉!=""/>
내 옆에서 무릎을 꿇고 벌을 서고 있는 로자리아를 봤다.
"하지 마 검순아. 저건 비곗덩어리에게서 혼자 도망친 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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