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성녀
* * *
교국 대신전안.
'이곳은 여전히 깔끔해 보이네...'
조그마한 먼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얀 복도.
'광신도들이 나오는 이유가 인테리어를 이런 식으로 하니까 그렇지.'
"깔끔하고 아름답지요?"
"네? 아... 네, 그러네요. 하하하..."
내 앞에서 걷고 있던 마리아가 웃으면서 말을 건다.
"성녀님. 로자리아는 어떻게 찾으신 건가요? 대륙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저도 찾지 못한 것인데..."
그 질문은 의심인지,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온 것인지. 이쪽을 돌아보면서 보여주는 미소가 의미심장했다.
"아! 마리아님. 그게... 꿈속에서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분이 나타나서 알려주셨어요. 이 목걸이를 들고 교국에 찾아가라구요. 혹시, 잘못한 건가요...?"
내가 로자리아를 바라보며 울상을 짖자, 마리아는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아니요! 잘못이라니요. 오히려 잘하셨습니다. 역시 여신님의 인도가 있었군요. 분명 성녀님의 꿈속에 나타나신 분은 여신님이 틀림이 없을 겁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하는 마리아를 보고,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다시 웃는 표정으로 돌려 놓았다.
'이런 큰일 날뻔했네... 여신에 미친놈이라서 변명으로 통할 줄은 알고 있어도, 막상 직접보면 어이없단 말이야...'
"그런데 마리아님? 저희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축복의 방과 치료실입니다."
"축복의 방하고 치료실이요?"
'그런게 있었나? 치료실은 성력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던 곳이라서, 알고는 있었는데. 축복의 방은 처음듣네?'
"궁금하신단 표정이시군요. 치료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네."
다쳤지만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서민들을 위해서 견습성기사나 견습사제가 봉사활동으로 치료를 해주던 곳.
'으로 알고 있는데...'
"기본적인 기부금만 내면, 누구나 와서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죠. 물론 저나 교황님 같은 분도 추가적으로 기부금을 내면 치료해드립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하게 '기본 기부금에서 조금 더 받는 건 내탕금이 되니, 노력해 보세요.'라고 말하였다.
"?"
<무슨! 성력은="" 여신님이="" 돈을="" 받으라고="" 내려주신="" 게="" 아니에요!=""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쓰라고="" 안배라구요!=""/>
'로자리아.'
염화로 대화를 하던 로자리아가 버럭화를 내고, 나는 그런 로자리아를 불러서 진정시켰다.
<소피아님?! 이름으로...!=""/>
조금 진정하는 방식이 다른 것 같지만 지금은 신경 쓰지 말자.
'네가 이야기했던, 레비아탄과 싸운던 시절은 정말로 종족간의 차별과 박해가 없던 거지?'
<네, 그때는="" 마수한테="" 살아남기="" 급급했으니까요.="" 거기에="" 아직,="" 여신님이="" 세계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던="" 때="" 였어요.="" 성직자들은="" 여신님의="" 말씀을="" 따르고,="" 그="" 가르침을="" 행했죠.="" 지금="" 같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멋대로="" 하진="" 않았어요.=""/>
여신이 아직 성직자들에게 계시를 내릴 수 있던 시절.
마수의 지배자로 인하여. 천사족등, 수많은 종족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던 시절.
그때는 특정종족을 악으로 분류하지 않았고, 모두 여신의 피조물로서 세상을 살아가던 시절이라 했다.
'내가 용사를 할 시절에도 기부금을 가장한 치료비는 받지 않았는데...'
"성녀님?"
"네? 아니요! 그럼 기부금을 안내신 분들은 치료를 받지 못하는 건가요?"
마리아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해주었다.
"그렇죠, 성녀님. 저희도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물론 정식 신도로 고행길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무상으로 치료해드리고 있습니다. 하하."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3년간 여신에게 기도하며, 대륙을 돌아다니는 그거?'
보통, 신전에 와서 치료를 받는 서민들은 큰 중상을 입은 사람들이다.
간단한 감기로 치료를 받기에는 돈이 아깝고, 크게 다쳤을 때에 일반 치료소에 가는 것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런 중상자에게 고행길에 오르라는 건.
'돈 없으면 그냥 죽으라는 소리지...'
로자리아가 염화로 소리를 지르지만 마리아에게 들릴일은 없다.
'목걸아.'
<.../>
'좋았어! 조용해졌다!'
"그럼, 축복의 방은 뭔가요?"
"말 그대로입니다. 축복을 내려주는 곳이지요. 거액의 기부금을 필요로 하지만. 뭐 받는 사람들은 최소한 자작이상의 귀족들이니, 일반인들은 받을 일은 없습니다."
'축복도 돈주고 파네?'
부패했다.
이미 교국도 상당부분 부패했다.
'마리아도 여신의 가르침이라고 변명해서 상당 부분을 뜯어갔겠지...'
그는 항상 그런 식으로 변명했다.
여신을 방패로, 기부를 가장한 약탈을 자연스럽게 했으며, 그 피해자들의 원망은 고스란히 용사인 나에게로 왔다.
'생각하니까, 또 화나네. 세계의 모든 것은 여신님의 것이라면서, 남의 것을 함부로 가져가고. 뭐라고 하니까 이해도 못한 표정을 짓고...'
원래 미친놈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같이 다니던 여행을 다니던 때의 그는, 딱 말이 통하지 않는 순수악 그 자체였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도 이해 못 하는 순수함. 거기에 더욱 부패하였으니까...'
<네, 저도="" 지금의="" 여신교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시키는="" 대로="" 할="" 게요.=""/>
'그래, 나도 떨어진 곳에서 보니까. 모든 것이 올바르게 보이기 시작했어, 그때는 단순하게 세계를 위해 미움받는 걸 감수 하는 줄 알았지...'
그들은 역시 한 번 불타오를 필요가 있다.
☆☆☆
"오오오오오!!!!"
실체화한 로자리아가 축복세례를 뿌리고 있자. 기다리고 있던 귀족들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단하군요! 지금까지 받았던 축북중에서 당연 최고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추가기부금을 내야하겠는데요. 허허허."
"성녀님이 나타났다고 해서 조금 기대하고 와보았는데... 이건 기대 이상입니다. 하하하하!"
<어린양들이여 당신들의="" 앞날에="" 여신님의="" 안배가="" 있기를...=""/>
"오오오오오오!!!!!"
염화로는 온갓 불평을 다하고 있지만, 다행히도 겉으로는 성녀였던 시절을 잘 연기하는 것 같다.
"실체화를 보기전에는 살짝 의심을 했는데, 제가 여신님의 안배를 못 알아보고 미련 했던 거 같습니다. 성녀님. 하하."
"저도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걸요. 그리고 의심하실만 하죠. 증거도 없이 그저 같은 모양의 목걸이를 들고온 사기꾼일 수도 있으니까요."
마리아의 말에 내가 만면의 미소로 화답하자.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자책했다.
"아니요, 성녀님. 강한 성력이 느껴지고, 많은 사람이 확신을 했지만 저는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서 의심을 했나 봅니다. 여신님... 부디 이 어리석은 종에게 용서를..."
"아니에요. 마리아님. 저도 성력으로 사람을 돕고, 나중에 용사님들을 따라가며,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 생각해요. 거기에 의심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죠. 저는 오직 증명만 할 뿐..."
"성녀님..."
<성력은 무슨!="" 전부="" 제가="" 하고="" 있잖아요!="" 소피아님의="" 마력을="" 받아서="" 성력으로="" 치환="" 하는="" 것도="" 하는데!="" 거라고는="" 마력창고="" 말고는="" 없으신="" 분이!=""/>
'목걸아?'
<또 목걸이라고...!="" 저는="" 로자리아="" 라는="" 훌륭한="" 이름이...!=""/>
'너, 혹시 에고웨폰도 금이 가고 부서질 수 있다는 거 아니? 모르면 알려줄까?'
<.../>
'옳지, 잘하네. 목걸아, 검순이처럼 나랑 생사고락을 함께한 것이 아니라서, 너는 아직 그러면 안 된다?'
<우으으으..../>
'미안, 장난이야. 울려고 하지 마...'
<헤헤.../>
"오오오오!!!! 에고웨폰의 미소는 마치 옛시절에 존재했다는 천사족 같구려!!!"
"이것이 성녀님의 힘이구나!!! 용사님이 두 분에 성녀님까지!!! 마왕같은 것은 두렵지도 않다!!! 하하하하하!!!!"
그들은 염화의 내용을 모른 채, 귀족들은 자신들끼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하. 성녀님? 그러면 치료실도 가시죠."
"네! 마리아님!"
☆☆☆
"아아아..."
나는 치료실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연출했고, 밤이 되어서야 겨우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소피아님? 방이라고="" 그렇게="" 풀어져도="" 되는="" 거예요?="" 도청마법이라도="" 있으면...=""/>
"응. 있어, 도청마법. 내가 효과를 비틀어서, 이런 대화는 전혀 안 들리지만..."
"처음부터 있었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낮에 그렇게 나랑 떠든 거야?"
로자리아도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크흠! 그런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어도="" 되는="" 건가요?=""/>
'회피했네...'
분위기를 억지로 전환한 로자리아는 내가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끈것에 대한 질문을 했다.
"응, 돼. 아니, 오히려 필요해. 나를 성녀취급을 해도 결국 인지도는 없거든. 힘을 증명하고, 내 존재를 각인시키지 않으면, 개혁은 어려워."
<어째서죠? 제가="" 있는="" 것만으로는...=""/>
"안 돼. 너만 있는 내가 떠드는 건, 그저 어린여자가 멋모르고 망상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하기 쉽거든. 하지만 내 힘을 보고, 내 힘을 맹신하는 무리가 생기면..."
세력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 이 신전의 무리처럼 광신도가 생기면, 그들은 두 눈과 귀를 막고, 자신이 믿는 존재가 하는 말에 맹신하게 돼."
<그래서 아까="" 추가="" 기부금을="" 거절하신="" 거군요.="" 이왕이면="" 기부금="" 전부를="" 거절하시지...=""/>
"그건 힘들지, 시간이 지나면 모를까. 지금처럼 뒷배하나 없을 때는 규칙에 따르는 게 나아."
'추가 기부금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있으니까...'
신전에 전달되는 기부금 이외에는 전부 거절을 해 놓은 상태였고, 기부금을 내던 사람들의 표정은 선망의 시선으로 바뀌었었다.
"평소에 조금이라도 더 뜯어가려던 사람들 중에서 기본만 받는 사람이 생기니 얼마나 착해 보여? 원래 나쁜놈만 있으면 보통인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되는 거야."
<그렇다고, 신전="" 외부의="" 여론은="" 어떻하시려구요?="" 가만히="" 있으면="" 더="" 오래="" 걸리실="" 거="" 같은데요?=""/>
로자리아의 말에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해주었다.
"리리스와 미네르바가 있으니까. 히히. 그녀들이 외부에서 여론을 조작하고, 일정시기가 지나면 사람들을 선동할 거야."
<...어?/>
우리가 따로 행동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것은 빠른 시일에 교국의 안과 밖을 뒤 흔들기 위함이다.
"우리 집 아내들은 일을 참 잘한다고?"
지금쯤 그녀들은 성녀님이 신전에서 가장 뛰어난 축복을 내렸노라고, 소문을 낼 것이다.
<어어어어?/>
"내일부터 바빠지겠네! 사실, 아까온 귀족중에 한 명이 리리스가 [변신]을 쓰고 잡입했던 인물 중에 하나라고? 악마족이라고 성력에 약한 게 아니라 참 다행이네! 하하하!"
악마족이 여신이 만든 피조물중 하나 일 뿐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우리랑 다르지 않는 사람이니까.'
☆☆☆
"리리스! 혼자만 소피아랑 만나고, 치사해!"
미네르바는 귀족저를 난장판으로 만들어가면서 리리스를 쫓았다.
"헤헤헤! 안타깝지만 미네르바! 나는 [변신]이 있어서 잠입하기 쉽지롱~ 아아. 수녀복을 입은 언니의 모습도 아름다웠어... 헤헤헤!"
"이익!"
그런 미네르바를 피하면서 어린아이처럼 놀리고 있었다.
<으휴. 두="" 사람="" 다,="" 정말="" 친한="" 친구="" 사이라지만="" 소피아가="" 없을="" 때는="" 어린아이들이="" 노는="" 것="" 같구나.=""/>
카르마는 고개를 흔들면서 <소피아가 있으면,="" 성숙한="" 여성과="" 애교많은="" 여성의="" 모습을="" 보이면서...="">라고 중얼거려다.
"카르마님?"
<오! 비아.="" 오랜만이로구나.=""/>
"네, 지금 본체를 닦아 드리려고 왔습니다."
리리스의 보조로 따라온 그녀의 부관.
데카라비아가 검을 손질할 도구를 들고 나타났다.
<으으음... 그거="" 안="" 하면="" 돼?=""/>
"무슨! 검은 손질하지 않으면 녹이 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대는...=""/>
평소에는 우수하고 깐깐한 비서지만, 그녀가 광물과 식물에 대할 때는,
<이상하잖아./>
"오해이십니다, 카르마님. 저는 하아. 단지 카르마님의 차갑고 신비로운 몸체를 손질하고 싶을 뿐입니다! 하아."
눈은 이미 맛이 가버렸지만, 정작 본인은 눈치채지 못하였다.
<아니야. 본녀는="" 자동수복있어...=""/>
카르마는 데카리비아를 피하면서 뒷걸음질을 쳤지만, 자신이 실체화한 몸과 검인 본체가 다르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
"아아아... 카르마님의 검신... 대체 어떤 광물을 쓴걸까... 스으으읍. 하아아. 향도 특이하고 아아아. 좋아..."
카르마의 본체에 다가간 데카라비아는 검신을 어루만지고, 냄새를 맡으면서 맛도 보았다.
<우으으으. 소피아아아아...=""/>
"잡았다! 리리스!"
"잠...! 아하하하하하! 미네르바 간지러워! 아하하하하!"
"이익! 복수다! 소피아를 혼자만 본것에 대한 복수야!"
"할짝. 아아아아! 카르마님! 정말 맛볼 때마다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신비한 광물이야!"
<빨리 돌아와...="" 우으으.="" 그대가="" 없으면="" 여기가="" 감당이="" 안="" 돼...=""/>
카르마는 그 정신이 나갈 거 같은 혼돈속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눈물을 글성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