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만남
* * *
"이봐, 소피."
"네, 선배님."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안내를 해주었던 드워프가 말을 걸어왔다.
"자네가 우리 공방에 들어온 지도 일주일이 넘었나?"
"네, 그 정도는 된 거 같아요."
"그래, 일주일이면 아직 잡일이나 할 때이긴 하지. 자네도 선배들이 하는 것보고 배우게나, 그런 거로 배우는 거지 일일이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게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이곳에 온 지 일주일째, 아직 허드렛일만 하고 무언갈 만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도 그게 편하기는 한데, 심부름이라고 밖으로 나가기도 편하고...'
이 공방에는 드워프만 존재하고 인족은 나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면 파격적인 대우라고 하겠지만, 프로그는 주로 음흉한 목적으로 데리고 온 것으로 보인다.
'생각하니까 또 소름 돋네.'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자, 다른 드워프가 찾아와 심부름을 시킨다.
"소피! 나가서 철주괴 좀 주문해놔! 하는 것도 없는 인족이면 이런 거라도 미리해놔야지! 굼뜨기나 해서는!"
"네, 선배님. 지금 다녀올게요."
'아... 귀찮네... 그건 그렇고, 두더지들 이름 외우기 힘드네. 다 똑같이 수염만 덥수룩해서는 좀 개성 있게 생기지...'
나는 최대한 천천히 제련소로 갔다.
☆☆☆
제련소에 주문을 넣고 돌아온 나는 프로그에게 찾아갔다.
"스승님? 안에 계신가요?"
"음? 소피, 무슨 일이냐?"
"그게... 여쭈어 볼게 있어서요..."
"음! 그래 어서 들어와라."
조금 전까지도 술을 마시고 있었는지 방 안에는 빈 술병들과 방금 딴거 같은 술병이 있었다.
'거기에... 술 냄새도 나고...'
늘어져 있다.
현재는 세 번째 마왕의 존재가 알려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습은 전장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던 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늘어져 있었다.
'안일하네, 자신들이라면 이기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도구를 전장으로 던지려는 것인가?'
자신을 도구로 이용하던자들이니 그것도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다.
"크흠! 그래, 소피. 무슨 일이냐? 혹시 이 스승님이 보고 싶어 못 참았던 것이냐? 하하하!"
'말 같지도 않을 소리를!'
주먹을 쥐고 억지로 웃는 표정을 만들어서 겨우 찾아온 목적에 대하여 말할 수 있었다.
"스승님, 그것이 아니라 스승님이 만드셨다던 그 '검'을 한 번 보고 싶어서요."
"음? 그 검? 아... 그것을 말하는 것이냐? 그건 왜..."
프로그는 내 말에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요! 다른 건 아니고... 그... 스승님이 만드신 검은 세공도 훌륭하다고 들어서요. 세공사를 목표로 하는 사람으로서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해서요. 안 돼나요?"
나는 프로그의 팔을 잡고 간절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부탁했다.
"안 돼요?"
"크흠! 가능하지! 제자가 성장을 위해 스승의 작품을 보고 싶다는데, 못 보여주는 스승이 어디 있나! 하하하하!"
"감사해요! 스승님!"
활짝 웃으면서 대답하자 프로그는 계속해서 헛기침을 한다.
"그럼! 따라오거라, 소피."
"네, 스승님."
☆☆☆
프로그를 따라가자, 나온곳은 어두운 지하실.
만들어진 무구를 보관하는 곳이다.
"자, 소피. 이쪽으로 오너라."
프로그의 안내를 받으며 보관고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고, 그곳에는 또 다른 거대한 문이 하나가 있었다.
"하핫! 보이느냐! 소피! 이 문은 내가 동료인 앨리스에게 직접의뢰해서 만든 보관고라고? 보관고랑 문은 내가 만들었지만 여기에는 무려 현자의 마법술식이 새겨져 있네! 하하하!"
'앨리스...!'
프로그의 말은 사실인지 매우 고도의 술식들이 새겨져 있었다.
"밖에서는 등록자가 아니면 열 수도 없다고? 그리고 방어계통 마법도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파괴도 못 해! 하하하!"
프로그가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이건... 자랑할 만하네... 그냥 들어왔으면 한참 걸릴 뻔했어...'
앨리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위의 마법들을 때려 박은 것인지 이 방만은 지저국에서도 최고로 견고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이곳의 등록자가 용사파티의 동료들이란 것이 아쉽지만, 공주님이 안 뺏어간게 어디야? 안 그래! 하하하!"
'정말, 로젤리아한테 안 뺏긴 거 하나만큼은 잘한 거 같네...'
"그럼 들어가자고 소피."
프로그가 문을 열고 방 가운데에 홀로 장식 된 검을 보았다.
내 몸.
나를 '소재'로 사용한 검.
프로그의 '욕심'.
프로그가 아까부터 무언가 자랑하듯이 떠들고 있지만, 귀에는 들려오고 있지 않고 있다. 그저 '성재'의 육체를 사용하여 만든 검에 시선이 고정되어 세상과 단절 돼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오로지 세상에 저 '검'과 '나'말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내'몸이 어두운 호수에 잠겨 가는 듯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나를 호수에서 꺼내 주었던 것은 프로그의 '어떤'말이 들리고 부터다.
"...깝게도, 심장은 못 써서 말이야. 그것도 소재로 썻으면 더 강력한 무기가 완성됐을 텐데... 뭐 그래도 머리카락이나 피의 일부는 몇 명한테 나눠줬지."
"...어? 지금 뭐라고..."
"응? 못 들었나? 소피. 심장은 앨리스가 재료로 사용했다고, 몇 명의 협력자한테는 신체 강화나 연금술 재료로 머리카락과 피를 넘겼고 소피야, 내가 왜 너한테 이런 걸 말해 주겠니. 나는 네가 참 마음에 드는구나. 하하하! 나에 대해서는 천천히 생각해 보려무나."
'내 시체를 '이것'만 쓴게 아니었어.? 심장은 앨리스가 가져가고 머리카락과 피는 영약하고 연금술의 재료로?'
몸이 떨린다.
끔찍하다.
이들은 얼마나 자신을 '도구'로 이용해야 했던 걸까.
그저 '성재'는 이들에게 사냥에 쓰이던 '도구', 사냥이 끝나고는 부시고 잘게 쪼개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용했다.
참기가 힘들어진다.
'그냥 지금 당장...!'
그때 보관고 문이 열리고 드워프가 달려와 소리쳤다.
"스승님! 큰일 났습니다!"
"? 왜, 이리 호들갑이야! 뭔데!"
"왕국 천장의 마법석이 빛을 잃었습니다.! 지금 그것 때문에 조사단이 몇 명 파견 됐는데 그 사이에 마족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뭐?! 마족?!"
"예! 전부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빨리 도와 주십시오! 용사파티시지 않았습니까!"
"잠깐! 여기가 제일 안전해! 그리고 가면이면 아마도 악마 리리스의 직속부대 일 것이다! 그러면 나 혼자도 힘들어! 난 여기서 동료를 부르고 소피를 지킬꺼니까 너는 딴데 가 있어!"
"스승님! 잠시만...! 야 이 쓰레기 새끼야!!!!"
소식을 전하러 온 드워프와 프로그가 싸우지만 프로그는 그를 밀고 이 방의 문을 닫았다.
"휴우. 소피야 떨고 있구나. 많이 놀랐느냐? 괜찮다. 이 프로그님이 너를 지켜 주마! 그리고 여기서면 동료들에게 통신할 통신구가 있어! 당장 지원요청하면 된다. 하하하!"
"저 수정구?"
나는 이제서야 장식대에 수정구가 같이 있는 걸 보고는 그것을 가르키며 프로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래, 그 수정구로 통신하지. 걱정 말고 있거라, 내가 지원을..."
나는 프로그의 말을 끊고 수정구를 부셨다.
"?! 무슨 짓이냐!"
'아... 리리스가 정말 최고의 타이밍에 일을 시작해 줬네, 나중에 상으로 어떤 부탁이든 하나는 들어 줘야지...'
"무슨 짓인지 뭘 물어 봐? 네가 그것들이랑 통신하면 곤란해지니까 부신거잖아? 딱 보면 몰라?"
"설마! 네년 마족이었나! 내가 너 하나쯤은 가볍게!"
프로그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크악!!!!"
"어? 아... 이런... 나도 모르게 눈 하나를 터트렸네? 그래도 일단 하나는 남아 있으니까... 상관없겠지?"
프로그는 터져 버린 왼쪽 눈을 부여잡고 고통 속에 신음을 한다.
"리리스만 상을 주기에는 미네르바도 열심히 했는데... 그냥 미네르바도 주지 뭐."
그렇게 중얼거리고 터져 버린 눈알 조각을 감상하다가 바닥에 던져 버린다.
"에잉, 더러워. 그건 그렇고 프로그. 넌 하나도 성장을 안 했네. 아니, 오히려 퇴행한 건가?"
숨을 몰아쉬던 프로그는 나를 보면서 질문했다.
"네..네년은 무엇이냐? 마치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그 말에 나는 안경과 가발을 벗었고.
"나? 마왕이면서 너희들이 죽인 '친구'야."
광기어린 미소로 대답해주었다.
"오랜만이야, 프로그. 같이 마왕과 싸운 이후로 처음이지?"
보고 싶었어.
"너희가 너무 보고 싶어서 다시 살아 돌아왔어. 너는 나를 안 보고 싶었니?"
☆☆☆
"미네르바!"
리리스는 소피아가 시킨일을 끝내고, 다시 지저국으로 돌아왔다.
"리리스! 소피아가 말한 '어둠이 내려올 때'가 지금을 말하는 거였어?!"
작전을 실행하기 전, 소피아는 '지저국에 어둠이 내려올 때 습격을 시작한다.'고 말하였었다.
그 말을 이해한 리리스는 즉시, 지상의 마법석이 있는 곳으로 가서 파괴를 시작했고.
'일주일이 넘어서 겨우 파괴했어요... 초대용사가 만든 마법석이라 그런지 오래되었어도 이만큼이나 걸리다니... 너무 늦은 게 아니면 좋겠네요..."
"미네르바, 내 부하들이 곳곳에서 게릴라 전을 펼칠거야. 우리는 그틈에 느슨해진 왕궁을 습격할 거고."
"알았어! 가자! 미네르바!"
"응!"
미네르바와 같이 왕국 쪽으로 달려가고, 리리스는 마법을 준비하고 있다.
'언니가 복수를 하는 중에 저희는 최대한 지저국을 무너뜨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복수를 하시고 지저국을 무너뜨리는 수고를 안겨 준다.
"미네르바! 최대한 많이 파괴해야 해! 안 그러면!"
"알고 있어, 리리스. 소피아를 따라가려면, 소피아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열심히 해야 되."
'정말, 내 친구는 가끔 어려 보여도 똑 부러지는 면이 있네요.'
"응, 미네르바. 언니는 우리를 방해라고 생각하시거나 두고 가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자신들이 소피아의 버팀목이 되기 위해서는,
'언니를 어둠 속에서 홀로 외롭게 두지 안게 하려면 의지가 되는 '가족', '부부'로서 노력을 해야 해요.'
미네르바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소중한 존재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달려 나간다.
"언니... 이곳은 저희가 맡을 테니까. 언니는 걱정 마시고 원하시는 일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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