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떠나는 길
* * *
별빛이 내리는 밤.
나는 모든 장비의 점검을 마친다.
<소피아, 다시="" 인족령으로="" 가는="" 것이냐?=""/>
"응, 내일. 슬슬 가야지?"
인족령.
다시 그곳으로 간다.
약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미네르바, 리리스와 모의전을 하고 셋이서 마수를 토벌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 달 동안의 훈련으로 어긋나 있는 감각에는 익숙해졌어.'
힘은 전부 돌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저주받은 대지의 중심부로 가면서 마수를 토벌한 덕에 적정선까지 왔다.
'혼자였다면 더 오래 걸렸겠지만, 솔직히 이거는 리리스하고 미네르바의 도움이 컸지...'
대인전도 그렇지만 약해진 상태로는 홀로 상대하기가 까다라운 마수도 걱정없이 토벌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한 '친구'정도는 만나러 갈 수 있다.
'아직은 전면전보다는 함정에 빠뜨려서 죽이는 게 쉽겠지.'
무엇보다 속았다는 걸 알았을 때의 '친구'들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다.
행복하다.
너무나 행복해서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내가 첫 번째로 만나러 갈 '친구'는 단순해서 속이기 쉽고 절망을 주기도 쉬운 '친구'.
'프로그, 우선은 너다.'
"언니? 저희도 준비 다 되었어요."
리리스의 말에 뒤를 돌아보자 악마족의 상징인 뿔과 날개를 가린 리리스하고 귀와 꼬리를 숨긴 미네르바가 보였다.
"소피아? 정말 이런 거로 못 알아볼까?"
미네르바 쪽을 보자 동그란 안경에 긴 머리의 하늘색 계통의 가발을 쓰고 볼을 부풀리고 있다.
'저거 습관들었나 본데?'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사람의 눈과 기억은 의외로 단순하거든 생긴 것의 전체를 기억하기보다는 특징적인 몇 부분을 기억해서 그 부분만 바꿔도 알아보기는 힘들어."
눈을 살짝뜨고는 내 손길에 머리를 맡긴 미네르바가 물어온다.
"그럼 리리스는?"
"나는 활동할 때 가면을 쓰고 활동했으니까. 그리고 몇 년 전이긴 해도 이제부터 상대할 자는 우리를 본 사람들이야, 나는 [변신]이 있지만 미네르바는 아니잖아? 변장은 해야 되."
"치, 알았어..."
"미네르바? 혹시 나한테 화난 거 있니? 요즘 나한테 살짝 너무한 거 같은데?!"
"내가? 아닌데?"
내가 봐도 요즘 미네르바는 리리스한테 틱틱대고 있는 거 같긴 하다.
<질투구나 질투,="" 친구라고="" 둘이="" 나누는="" 건="" 인정한="" 듯싶지만="" 속으로는="" 독점욕도="" 생기는="" 모양이구나.=""/>
"..."
쓸데없는 소리였다.
"나도 눈색정도는 구분하기 힘들게 하려고 내 모습을 본 생존자들이 겉모습을 전했어도 직접 본 거랑은 다르니까."
"그럼 이제 잘까? 출발은 내일이니 아침에 메티스씨에게 인사드리고 갈려면 일찍자는 게 좋을 거 같아."
인사를 안 하고 가기에는 후환이 너무 두렵다.
리우스는 상관없지만 전에 미네르바가 혼나는 걸 보고는 절대로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다.
'목소리는 높이지 않았지만, 웃고 있었지만 지켜보는 나조차 공손하게 만드는 위압감이었어, 앞으로 나는 절대로 장모ㄴ... 아니 메티스씨를 화나게 하지 말아야지.'
일주일 전에 미네르바와 리우스가 신나서 난리 치다가 메티스의 소중한 화분을 깨먹고 리우스는 그대로 도주, 미네르바는 잡혀서 혼이나다 결국에는 울면서 잘못을 빌었다.
'리우스는 아직도 집에 못돌아오고 있지... 분명 그 화분이 두 사람이 연애도 시작하기 전에 리우스가 직접 준 선물이라 했던가?'
그 일은 내가 장난식으로 장인어른이라 불렀다가 일어난 사고라서 같이 혼날 뻔했지만 나는 앞으로 꼬박꼬박 장모님이라 부르는 걸로 타협을 보았다.
'거기에 리리스도 자기도 잊지 말아 달라며 꼭 미네르바랑 같이 아내로 지낼 거라며 때를 썻지...'
결국에는 그날 밤에는 리리스의 성희롱과 나를 껴안고 안떨어지려는 미네르바에게 시달려서 잠도 제대로 못잤다.
"사위님? 안 주무시는 건가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고양이가 오셨네...
"이제 자려 했어요, 그런대 장모님은 왜 이 시간에 외출복인가요?"
"후후, 일주일 정도면 많이 참았어요. 이제는 붙잡으러 가야죠, 인사는 내일 받을게요. 그럼 편히 주무세요. 후후."
여전히 웃는 얼굴로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하시는 대단한 분이시다.
'아저씨...'
<잘못했을 때는="" 빠른사과가="" 답이거늘,="" 어찌="" 도망쳐서="" 죄값을="" 늘리는="" 건지...="" 소피아,="" 너는="" 두="" 사람과="" 결혼하거든="" 저러지="" 말거라.=""/>
나는 리우스에게 애도를 표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무시는 하지="" 말거라!=""/>
☆☆☆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집을 나서며 메티스와 그녀의 손에 쥐여 있는 리우스의 머리를 보며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했다.
"네, 잘 다녀오세요."
이 집에서는 오랜기간 집을 나설 때는 반드시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남겨야 한다고 했다.
'무사히 다녀오라는 메티스씨의 바람이 담겨서 생겼다고 했던가?'
내가 소환되기 전에 어머니한테도 다녀오겠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결국에 나는 돌아가지 못했고 죽음을 맞이했다.
다시는 보지 못하고 설사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해도 이제는 다녀왔다고 할 수조차없게 되어 버렸다.
'아직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려나? 환생을 하고서는 모친이 없고, 어머니는 지구에 계신 한 분 뿐이네.'
그래서인지 다녀오겠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이 나쁘지 않다.
"언니? 처음은 지저국인가요?"
"응, 가자."
언더그라운드로.
☆☆☆
"마법사님."
"음, 자네... 그래! 프레디! 그래서 무슨 일인가?"
같이 조사임무를 나온 마법사가 아직 프레디의 이름을 기억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프레디는 한숨만 쉬고 말을 이었다.
"조사단원들에게 야영자리를 마련하게 시키겠습니다. 예상보다 늦어졌지만, 내일이면 도착할 거 같아 오늘은 이 자리에서 휴식하는 것이 좋다 생각합니다."
늦게 된 원인은 주로 이 마법사가 시간을 잡아먹어서 그렇지만 조사임무의 지휘관이면서 상급자인 마법사에게는 뭐라 할 수 없는 일이다.
"음... 그러지 내가 쉴 텐트도 같이 만들어 놓게."
"...예, 알겠습니다."
'계급이 깡패네, 자기는 하루 종일 마차 안에서 있었으면서.'
상급자의 갑질에 조사 대원들은 모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자신만이라도 대원들을 위로해가며 신경 써 주어야 한다.
프레디는 야영이 결정난 것을 전하러 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찾아갔다.
"모두 주목! 오늘 야영은 이곳에서 하기로 결정 났습니다. 그리고 마법사님께서 자신의 텐트도 만들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이야기를 전하자 아니나 다를까 조사 단원들에게 또다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 마법사는 도대체 하는 게 뭐랍니까?!"
"글쎄... 마차 안에서 똥오줌 만들기? 하하하하!"
"맞네! 똥오줌 만들기!"
프레디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원들을 진정시킨다.
'하긴 틀린 말도 아니지, 마차 안에 있다가 식사 때와 볼일 볼 때만 나오니까 다들 저러지.'
"자자 진정들 하시고, 다 같이 시작합시다!"
대원들은 웃고 떠들며 야영 준비를 하고 있던 중옆의 병사가 다가와 프레디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대 기사님?"
"왜 그러십니까?"
"기사님은 항상 우리를 도와주시고, 꼬박꼬박 존대말을 써 주시고 하시는데 어째서 그러십니까? 대부분 저 마법사 만큼은 아니여도 이렇게까지는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저도 말을 타고 이동하는데, 걸어서 이동하는 단원들을 도우지 않으면 어떻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단원들이 덜 힘들면 그거로 좋습니다."
"크~~~ 정말 모든 기사들이 기사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반이라도...
자신도 불과 얼마 전에는 이러지 않고 대부분의 기사와 비슷하게 행동했고 오히려 저 마법사와 가깝게 놀고 쉬는 걸 좋아했다.
'그런 나한테 반이라도 라니...'
"저도 얼마 전까지는 저 마법사보다는 아니여도 비슷하긴 했습니다."
"기사님이요? 설마요, 저희를 도와주시고도 시간이 남으면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시는 분이."
"제가 이렇게 조금이나마 성실해 질 수 있었던 건 기사의 표본 같던 분을 만나서 였습니다."
시민들을 탈출시키고 마왕을 상대했던 기사단장, 그리고 선배들.
그들을 보았고 잃어 보았기에 전우의 소중함과 자신의 한심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 대단하신 분인가 봅니다. 그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역시 단장쯤?"
"예, 단장은 맞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셨어요."
"어? 앗 죄...죄송합니다. 그런 의도로 물어본 것이 아닌데..."
"괜찮습니다. 그분은 정말 최후까지 기사 다운 분이셨거든요."
프레디는 웃으며 병사에게 괜찮다며 전하고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기사단장의 이야기를 한다.
"평소에 말이 많으셨던 분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 단원들을 생각해서 행동하셨죠. 그리고 최후는 도시의 시민들을 탈출시키고 마지막까지 시민들을 위해서 싸우다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걱정해주고 선배들과 함께 시민을 지키다가 죽었다.
'정말 기사의 표본같던 분이지...'
"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분 이름이..."
"바론, 바론 니아스 기사단장님이 십니다. 저는 다이너령 마왕습격사건에 운이 좋아 살아남은 자 입니다."
"이런... 죄송합니다. 아픈 곳을 건드렸네요."
고개 숙여 사죄하는 병사에게 프레디는 손사래를 치며 만류한다.
"아닙니다! 이러지 마세요. 아니면 그렇게 죄송하시면 단장님 이야기나 들어 주시겠어요?"
기사단장의 이야기와 선배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때면 프레디는 자신도 모르게 바론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한다.
"네, 실례가 안 된다면요."
"저야 좋죠! 그러니까 단장님이 어떤분이 셨냐면요..."
그렇게 떠들고 있더니 병사가 하나둘씩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프레디는 그리운 옛 일을 추억하며 밤을 지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