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모의전
* * *
"소피아~ 아침이야~ 일어나~"
아침, 침대에서 눈을뜨자 미네르바가 나를 깨워주고 있다.
'아침...'
어제의 히드라사건 이후로 너무 한 가지 정보만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잘난 듯이 떠들었지만 그녀들이 나보다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었고 앞으로는 의견교환도 해볼까?'
눈을 뜨고 생각에 잠겨 있자 미네르바가 다시 한번 부른다.
"소피아?"
"응. 미네르바, 일어났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좋네~ 소피아의 자는 모습 귀여웠어!"
평소에는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귀엽다니 실례이다. 지금은 여자가 되었지만 전생은 각 잡혀 있는 몸에 군살 하나 없는 상남자였다.
'그놈들 때문에 상대적 오징어가 되었지만 분명 잘생겼을 거라고...'
"미네르바. 자는 모습이 귀엽다는 건 무슨 소리야?"
"리리스한테 들었어! 소피아가 자는 모습은 평소와 다르게 상당히 귀여우니까. 일찍 일어나서 한 번 봐보라고!"
정말 해맑은 미소다.
해맑은 미소로 귀엽다고 평가 당하니, 전 남자로서 기분이 이상해진다.
'적어도 멋있다 해 줬으면...'
"미네르바? 그거 구경하려고 깨운 거야?"
"그것도 있지만, 약속 안 잊었지?"
'약속.'
무엇을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약속을 한 게 있었던가?
'결혼하자던 건 아직 생각해 본다고 했는데? 뭐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있자, 미네르바 볼을 부풀리며 말해준다.
"소피아... 오늘같이 대련하기로 했잖아... 너무해..."
시무룩해 하는 미네르바를 달래려,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과를 한다.
"미안. 미네르바, 깜빡했어 약속이라니까. 다른 게 떠올라서 말이야, 하하"
"다른 거?"
"그...그런 게 있어! 모의전! 그래 모의전은 언제쯤 할까? 오후가 좋으려나?"
"응! 난 아무때나 좋아! 소피아가 오후가 좋으면 그렇게 하자!"
'후우. 다행이 잘 회피했어! 리리스라면 어떻게든 얼버무리겠지만, 미네르바는 그러기 힘들 거 같아...'
"그런데 다른 건 뭐야?"
미네르바의 귀가 앞쪽으로 향하면서 매우 궁금하단 표정으로 말해주기만 기다리고 있다.
'이...이거! 알고 있는 건 아니지?! 어떻게 도망치지?!'
미네르바를 보며 당황하는 사이에 메티스가 와서 미네르바를 찾는다.
"미네르바?"
메티스의 목소리에 미네르바는 화들짝 놀라며 내 등 뒤로 숨었다.
"어..엄마?! 나 내려갈려고 했어! 진짜야! 그치 소피아?!"
'나 한테 화살을 돌리지 마! 저기봐! 나 쳐다보잖아!!'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로 공포를 불러내는 메티스를 보면서 나조차 변명아닌 변명하게 되었다.
"그... 메티스씨?! 잠깐 일어나서 미네르바랑 대화하느라 생각을 못 했어요! 금방 내려가려 했어요!"
그러자 메티스는 웃는 얼굴에 변화도 없이 말한다.
"사위님? 저는 다 같이 하는 가족 식사에 늦는걸 제일 싫어해요. 부디 제가 '혼'내지 않게 해 주세요?"
'무...무서워 메티스씨 무서워!'
평소에 얼마나 혼이 난 건지 미네르바는 벌써 죽은 듯한 눈을 하고 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내려갈게요. 아 맞다. 세 명이서 부부공동작업 하고 있을 때는 특별히 용서해 드릴게요. 사위님? 후후후."
마지막에 살짝 간과할 수 없는 말을 전하고 메티스는 유유히 내려 갔다.
"...미네르바."
"응."
"내려가자..."
"응."
☆☆☆
오후가 되자 미네르바는 대련장으로 안내 해주었다.
"언니? 주위에 방어 마법은 걸어 두었어요. 정말 투력만 사용하시고 싸우실 건가요?"
"응, 마법전은 나중에 너랑 할 거야 둘 다쓰는 것도 좋지만 한 가지씩 사용하는 게 성장이 더 빠르더라."
미네르바와 모의전이 아닌 진짜 전투였다면 둘 다 사용하거나 위기 때는 융합이라도 사용했지만, 지금은 모의전. 서로 목숨까지는 노리지 않으니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껴서 미네르바에게는 투력만 쓴다고 했다.
"미네르바. 미리 말하지만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실망하거나 그러면 안 되?"
"응, 알았어. 그래도 소피아는 소피아니까 나보다 약하다면 내가 지켜줄 거야. 히히."
그렇게 말하고 미네르바는 자신의 장비정검을 마무리한다.
"그럼, 준비..."
나는 카르마가 아닌 날이 서지 않은 훈련용 검을 들고 미네르바에게 겨눈다.
"시작!"
리리스의 신호음과 동시에 미네르바의 몸이 엿가락처럼 길어졌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보기도 힘들겠지.'
흑뢰.
그녀의 빠른 속도와 압도적인 기교로 보는이로 하여금 검은 번개와도 같다고 해서 불려진 이름.
미네르바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검을 횡으로 베었지만, 미네르바는 이미 공중으로 회피한 상태였다.
'!!!'
미네르바는 공중에서 몸을 회전하고 양손의 단검을 내게로 휘두른다.
한쪽의 검을 막고 나머지 한쪽을 발로차서 튕겨 내지만 미네르바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자세를 바꾸어서 이번에는 땅쪽에 붙어 공격을 시행한다.
'빌어먹을 [곡예기동]!!!'
미네르바의 곡예와도 같은 움직임의 바탕이 되는 고유 능력, 전생에 용사시절에도 가장 다양한 패턴의 공격을 구사해 1대1 대인전에서 성가신 상대였었다.
그 후로도 미네르바와 수차례 합이 이루졌고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미네르바가 입을 열었다.
"소피아는 거짓말쟁이, 검무는 크게차이 없잖아."
"그것도 차이가 심해졌으면 큰일이지. 내 검술의 바탕이 되는 것인데."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달려가 공격을 시도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검로가 이어지며 미네르바의 상반신을 노리지만 미네르바는 그걸 피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 돌진해서 미끄러지듯이 흘려보내려 했다.
"안타깝지만, 미네르바."
즉시 검로를 변경해서 아래로 내려가던 검의 방향성이 위쪽으로 바뀌었다.
"내가 이긴 것 같네."
검이 미네르바의 목앞에서 멈추었다.
"윽. 항보옥! 소피아! 약해졌다고 하더니 전혀 아니잖아..."
서로 무기를 거두면서 이야기한다.
"아니 미네르바도 전력으로 싸운 건 아니잖아? 투력만으로는 전력으로 덤벼오는 미네르바를 이기기는 힘드니까."
"그래도 소피아, 검술은 조금만 가다듬으면 이전보다도 좋아질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신체의 골격이 달라져서 그런지 기교면에서는 더욱 성장의 가능성이 보였다.
"응, 자 다시 한번해 보자. 많이 싸워 봐야 익숙해질거 같으니까."
"응!"
☆☆☆
과거에 난 존경하던 사람과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마왕과 용사로 서로 적대하고 공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사이에서 선택하지 못하고 유유부단하게 있다가 결국에는 두 사람 모두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내가 선택을 했으면 달라 졌을까?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결과가 바뀔 가능성이 있었겠지.
존경하는 사람과 사랑하던 사람을 모두 잃고 슬픔에 잠겨서 두 사람은 전사로서 명예롭게 싸우다 죽은 것이다. 위로해보았지만 가슴속에 남아 있는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가 인족령에 잠입 해 있던 친구에게 끔찍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용사는 살해당하였다고.
동료에게 살해당해 사망하였고 그 뒤 사체까지 인족의 욕심에 의해 사용 되었다고.
끔찍했다.
그들은 사랑하던 사람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서 그 사람을 모욕하고 죽어서도 편하지 못하게 이용했다.
눈물이 났다.
소리내며 울고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지만 가슴속의 공허함은 더욱 커져만가고 있었다.
그렇게 공허함이 채워지지 못하고 또 몇 년이 흘러 친구가 돌아왔다.
오래도록 못 본 친구를 보면 이 공허함이 채워 질까 하여서 먼저 찾아가 마중을 갔지만 친구의 옆에는 인족이 서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은 인족이.
처음에는 경계를 했지만 소중한 친구가 대려온 자이니 믿을 만한 자이겠지.
나는 자기소개하고 있었지만 인족과 친구는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인족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고양아 나는..."
이제는 듣지 못하는 그 사람이 불러 주던 방식으로.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아니 그녀에게 안겨 있었다.
많이 바뀌었지만 사랑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
영원히 가슴속의 공허함으로 남을 거 같았던 그 사람이 돌아왔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반가움에.
행복함에.
안도감에 계속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내 안에 숨겨왔던 마음을 그녀에게 전달 했다.
"그럼 나를 아내로 받아들여 줘"
그녀는 많이 당황한 거 같지만 이번에도 전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전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더 이상 일어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행복했다.
불과 수일이지만 사랑하던 그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다시만난 그녀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예전처럼 행동하는 거 같지만 마치 세상 모든 것을 거부하고 믿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동료에게 배신당한 기억 때문일까.
나의 어머니에게 대화 할 때도 무언가를 판단하고 있었다.
불안 했다.
이대로 그녀가 아무것도 믿지 못하고 계속 달라져 갈 것만 같았다.
"소피아, 엄마는 믿어도 돼. 내가 보장할 게 엄마는 소피아를 배신하거나 팔아넘길 그럴 사람이 아니야. 믿어 줘..."
간절했다.
그녀가 믿어 줄 사람이 있기를 기도했다. 자신이 아니어도 좋고 친구여도 좋다. 다른 누군가여도 상관없으니 그녀가 계속 어둠 속으로 가지만 않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
다행이 그녀는 어머니를 믿어 주었고 자신을 이야기하였다.
어머니는 그런 그녀의 상태를 알아 차린 것인지, 그녀를 안고 위로 했다.
그녀가 이곳은 마음 편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그녀가 조금씩이나마 마음을 열어 주어 배신당하고 상처 받을리 없는 그런 행복한 곳이라 여겨 주었으면 좋겠다.
혼자서 힘들면 친구랑 같이 노력하면 된다. 친구도 그녀에게 마음이 있는 거 같으니 같이 노력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천천히 다가가다 보면 언젠가는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 줄 것이다.
오늘도 그녀에게 다가가자.
마음속에서 웅크리고 세상을 거부하더라도 친구랑 같이 다가서서 안아주고 마음을 보여 준다면 그녀는 언젠가 나에게, 친구에게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마음을 열어 줄 것이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먼 길이지만 나에게 소중한,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히히, 소피아~"
"미네르바! 가슴에 얼굴 좀 비비지마! 흐읏! 잠깐만!"
나보다 커진 가슴은 조금 괘씸하지만.
나의 소피아에게 다가가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