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어머니는 강하다
* * *
리우스의 협력을 약속 받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 되어 있다.
프로그 정도면 혼자서도 가능하겠지만, 마리아하고 파니아 까지는 소수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 정도는 리리스나 미네르바의 협력으로 가능해 하지만...'
로젤리아까지 간다면 대규모 전투가 일어나겠지. 그들이 한 명씩 죽어 나가면 바보가 아닌 이상에 노려지는 것은 자신들이라고 눈치챈다.
'그러면 자신들을 보호하는 것에 더욱 집중 할 거야.'
그러면 소수의 인원으로도 부족해질 수 있다.
본인들끼리 뭉치면 더욱이 견고한 방패를 손에 넣을 것이다.
'썩어도 용사파티의 일원들이니까, 관건은 많이 뭉치기 전에 하나 씩 죽여나가는 거야...'
단순하게 죽이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
'가장 고통스럽게, 절망을 안겨 주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빠르게 전생의 힘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대...'
"내일 데이트 기대된다~ 그치 리리스?"
'왜 이렇게...'
"응! 미네르바! 빨리 언니랑 옷 보러 가고 싶어!"
'된 걸까?'
"저기... 두 사람? 난 지금 회복이 우선이야, 그런 거에 신경 쓸 시간 없어."
우선순위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무슨 소리신가요! 언니! 그런 거라니요!"
지금은...
"맞아 소피아, 그런 거라니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지금...
"그리고 싸울 때 편한 옷도 많이 있어, 구경가자~"
지...
"그래! 사위며느리! 전투며 회복도 좋지만 가끔은 휴식도 필요하다. 쉼 없이 달리다간 넘어진다고?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 일상을 즐겨 보게나, 자네는 지금 무언가에 쫓기듯이 달려가고 있어, 하루 정도는 쉬어 보게나."
'이 아저씨, 아까 대화 이후로 사위며느리 같은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고 있네.'
하지만 정곡이다.
다이너영지에서의 난동과 호수에서의 건으로 이미 마왕에 대한 이야기가 인족령에 퍼졌을 것이다.
'곧 마왕군에게도 퍼지겠지...'
쉬고 있을 시간은 없다. 그리 생각해 왔고 그걸 리우스는 간파하였다.
<소피아여, 본녀도="" 같은="" 의견이다.="" 그대는="" 지금="" 너무=""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그러다간="" 쓰러진다.=""/>
아직 '친구'들에게 복수하지 못했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하고 있다.
"언니, 머리를 식히는 것도 필요해요."
"맞아 소피아, 내일 하루는 아무 생각 말고 쉬자. 전투복도 볼 겸 우리랑 놀러가면 안 돼?"
'다른 사람들을 걱정시켰던 건가?'
어째서?
내가 조급하다는 걸 어떻게 안 걸까?
리리스도 나랑 같이 지낸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미네르바는 전부터 나를 좋아했다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건 오늘이 처음이다.
'이곳에서 나랑 정말 오래도록 알고 지낸 건 카르마 뿐인데...'
어째서 알고 있나? 어떻게 알고 있나?
'금방 알 정도로 조급했던 걸까? 아니면 그녀들이 나를 잘 관찰하던 걸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도 알 정도로 조급했다는 거겠지.
"알았어, 내일은 쉬자."
자그만하게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자 미네르바와 리리스는 환하게 웃어 준다.
"언니! 그러면 내일은 온종일 쇼핑이에요!"
'?!'
"응! 소피아 내일은 같이 쇼핑하면서 놀자!헤헤"
'잠깐만 그건 쉬는 게 아니지?!'
<소피아, 포기해라="" 내일은="" 아마="" 사냥보다="" 더="" 힘들="" 것이다.=""/>
어째서?
어째서 내일은 평소보다 더 피곤 할 거 같은가?
"사위며느리! 일단 미네르바가 저런 식으로 보여도 수인족의 공주네, 방은 셋이 함께자도 넓을 것이야 내가 보증하지! 하하하하! 셋이... 아니 카르마양도 더하면 넷이겠군. 밤새 떠들며 사랑과 우정을 다져 보게나!"
'지금부터 피곤한 거였구나...'
내가 그걸 몰랐네.
☆☆☆
아침이다.
오늘 쇼핑라는 이름의 고행길이 있다는 걸 알고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니... 내 머리를 가슴에 파 묻은 리리스와 내 팔을 안고자는 미네르바 때문에 못 잔거지만...'
똑똑.
방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고 있다.
'이 집에서... 노크?!'
노크라는 개념이 있는 집이었던가, 미네르바를 보면 그런 것 모르고 자란 거 같다만.
잠시 후 방문이 열리더니 흑발의 긴 생머리의 미인이 들어 왔다.
"어머나, 벌써 일어나셨네요. 그이에게 들었어요. 제 딸의 남편 되시는 분이라고..."
제 딸이라니 누구를 말씀하시는 걸까, 저기 부드러워 보이는 미인과 내 팔을 잡고 주무시는 이 말괄량이와는 닮은 점이라고는 흑발과 고양이 귀뿐이다.
특히 흉부가 가장 안 닮았다.
미네르바는 저 넓은 초원과도 같다면 저 여인은 거대한 산맥과도 같다.
'잘하면 리리스보다 클 거 같은데?'
"어머나, 그렇게 보시다니 이건 그이 거랍니다. 미네르바도 분명 저처럼... 죄송해요. 희망을 가지기엔 이미 성장기는 지났네요. 저는 미네르바의 어미되는 메티스라 합니다. 우리 사위님? 잘 부탁해요. 후훗"
메티스는 웃으며 자신의 딸에게 가망이 없을 선고하고 용건을 전했다.
"사위님 얼굴 한 번 보고 싶었어요.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식사하러 내려 오시죠, 오늘은 할 일이 많을 거 같네요."
"네...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리우스가 자세한 상황을 말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모른척해주는 건지 메티스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일어나야겠지... 미네르바! 리리스! 일어나 메티스씨가 식사하러 내려오라고 하셔."
아직 실체화를 풀고 자고 있는 카르마는 무시한다.
"언니... 이대로 조금만 더..."
리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더욱 파 묻고 있다.
'하...하지 마!!'
"우응... 소피아? 누가 왔다고??"
아직 잠에서 덜 깬 것인지 미네르바는 하품을 하며 물어 본다.
"메티스씨. 방금 오셔서 식사하러 내려오라 하셨어."
그 말에 미네르바는 눈을 번쩍뜨고는 일어났다.
"!!! 누가 왔다고?! 엄마?! 크...큰일이다! 소피아 나 먼저 내려갈게!"
그렇게 말하고는 미네르바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달려 내려갔다.
"? 리리스 미네르바는 왜 저렇게... ?"
리리스조차 사색이 된 얼굴을 하며 일어나고 있다.
"어...언니, 빨리... 빨리 내려가죠... 메티스님이 여기까지 오신거면 많이 늦었어요. 더 늦기전에!"
'? 리리스도 그렇고 미네르바도 그렇고 왜 그러지? 상냥해 보이시던데?'
"리리스 왜 그러는데?"
먼저 방을 나서려던 리리스를 불러세워 물어 본다.
"언니, 이 집의 실질적인 주인은 리우스씨도 미네르바도 아닌 메티스님이에요. 그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히익! 먼저 내려갈게요. 언니!"
그 말을 남기고 리리스는 성급히 방을 나섰다.
'무슨...'
나도 천천히 방을 나서며 식당으로 내려갔다.
☆☆☆
식당에 내려가자 나를 제외한 모두가 모여 있었다.
상석을 기준으로 메티스, 리우스, 양손을 공손히 모으고 긴장하고 있는 미네르바와 리리스.
'응? 상석에 메티스씨가 앉아 있네?'
"어머나, 사위님 이제 내려 오셨네요."
온화하게 웃고 있는 메티스를 보며 살짝 소름이 돋았다.
"제 옆에 앉으실래요? 물어볼것도 많이 있구요. 후훗"
"메티스... 그 처음부터 사위며느리에게 그런 시련은..."
"리우스? 불만이신가요? 그리고 사위며느리라니 그런 표현을 하시면 안 되죠? 사위면 사위, 며느리면 며느리 둘 중 하나만 하세요."
"네!"
호탕하던 리우스가 겁먹은 강아지처럼 벌벌떨며 대답한다.
'???'
나는 천천히 메티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사위님? 혹시 느긋한 걸 좋아하시나요?"
"아니요!"
나도 모르게 대답하며 빠르게 메티스의 옆자리에 가서 앉는다.
"그리고 미네르바?"
"네! 엄마!"
"요즘 늦잠이 심해진 거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기 힘드니?"
못 일어나면 일어나게 해 줄까?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들린 거 같은 기분이다.
"아니요!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아침 일찍 일어날게요!"
"그래 이제 25살이지 않니? 혼자서 해야지?"
"히익! 흑, 으으 네..."
미네르바는 울상이 되며 대답한다.
"리리스도 잘 지낸 거 같아서 다행이로구나."
"네! 메티스님도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리리스조차 긴장하니 나도 긴장하게 된다.
"사위님?"
"네...네! 메티스씨"
"대답 한 번으로 충분해요."
"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무언가 거역 할 수 없는 기분이다.
"사위님? 메티스씨가 아니라 장모님이나 어머님으로 불러 주시겠어요?"
"네? 아니... 아직 생각해 본다고 했지..."
"어머, 우리 미네르바가 마음에 안드시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히익!'
웃고 있다.
분명히 온화하고 자비로운 미소로 웃고 있지만 웃고 있는 게 아니다.
"아닙니다. 그... 아직은... "
"알겠습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저는 사위님이라고 부를테니 마음이 허락하면 부르세요."
내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안 걸까? 아니면 벽을 세웠다는 것 안 걸까? 내 마음이 받아드릴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이 이야기하였다.
'하나하나 꽤뚫어 보여지는 기분이야.'
"그래서 사위님?"
"네!"
"제 딸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어제 그이에게 물어봤지만 본인이 말하지 않는 다면 이야기할 수 없다며 괴롭... 아니 타일러도 말해 주지 않았거든요."
'아저씨, 말하지 않았구나.'
죽은 눈을 하고 있는 리우스를 보며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 했다.
말해도 되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비밀은 새어 나간다.
이건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죽음의 진실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어서 결국에는 새어 나갔다. 그럼 지금은?'
지금 새어 나갔다가는 많은 계획이 틀어진다.
언젠가는 '친구'들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은 이르다.
메티스에게 이야기해도 되는 것인가?
리우스에게 수인족의 협력을 약속 받았다. 그건 이해의 일치, 공동의 적에 대한 협력 관계 일 것이다.
'그럼 메티스는?'
리우스의 아내이며, 미네르바의 어머니.
그녀가 내 정보를 쥐고 인족에게 말한 것인가?
'그녀도 수인이다. 하지만 인족의 앞잡이가 아닐 거란 보장은 어디서 하지?'
미네르바를 쳐다본다.
"소피아, 엄마는 믿어도 돼. 내가 보장할 게 엄마는 소피아를 배신하거나 팔아넘길 그럴 사람이 아니야. 믿어 줘..."
미네르바가 간절한 표정으로 요청한다.
믿어 달라고.
그 말에 속아 등 뒤에 칼이 박혔다.
그 말을 믿어 배신 당했다.
'마왕군에도 협력자가 있었을 거야...'
협력자가 없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일이 쉽게 풀렸다.
'마왕군의 높은 자리에 있던자 겠지...'
그게 리리스인가?
미네르바인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누군가인가?
지금은 알 수 없다.
내가 다시 누군갈 믿어도 되는 것인가?
'부하'로 벽을 세웠다.
믿지 않으려 했고,
배신해도 잘라내면 된다며 '부하'라는 이름의 벽을 세웠다.
어차피 완벽하게 신용하고 있지 않으니 '부하'로 되었다고 애써 위로 했다.
"후우."
'부하라고 아예 안 믿으면 누가 날 따르겠어?'
"메티스씨, 저는 전생에 용사였고 '친구'들에게 배신당해 죽었다 다시 살아나서 마왕이 되었어요."
나는 나를 알고 있는 또 한 명의 사람을 만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