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잠깐의 휴식
* * *
울려버린 리리스에게 사과하면서 겨우 진정시킨뒤 현재 위치에 대하여 물어 본다.
"리리스? 그런대 여기는 어디쯤이야? 안에 있는 물건들을 보면 버려진 오두막은 아닌 거 같은데?"
조금 먼지가 쌓인 것을 제외하면 최소한의 생활용품을 갖추고 있다. 내가 지금 누워 있는 침대도 좁기는 하지만 한 명이 눕기에는 충분한 크기이다.
"이곳은 글리아스 왕국의 숲 속이에요, 디퍼루드쪽 국경 근처에 있어요,"
국경에 위치해 있다면 저주받은 대지 만큼은 아니여도 어느 정도 경계가 삼엄할 것이다. 그렇다면 빠른 시일에 안전이 확보 될 만한 장소로 이동 할 필요가 있다.
'리리스가 있더라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로는 짐만 될 거야, 무리하면 움직일 수야 있겠지만 억지로 움직이는 것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게 좋겠지.'
내가 생각에 잠겨 있자 리리스는 추가적인 정보를 준다.
"이곳에 환각 마법이 걸려 있어요. 이 오두막을 찾기도 힘들고 근처에 오면 이 오두막을 피해서 가게 끔 해 놓았어요, 안전이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그렇다면 조금 휴식을 할 수 있겠네, 한동안 여기서 있어야 할 거 같아 저주받은 대지로 가는 건 좀 더 미뤄야겠어."
인족의 땅보다 마수의 평균적인 강함이 높은 저주받은 대지에서 지금 같은 몸 상태로는 힘을 되 찾는 게 더욱 늦어지고 말 것이다. 차라리 움직일 수 있을 때 가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리리스, 몸을 좀 회복하자 안전을 확보 할 수 있는 곳에서 쉬어야 빨리 회복할 거 같아. 불확실 한 것보단 조금이라도 확실한 선택을 해야 하니까."
"언니? 그거라면 제가 살ㄷ..."
리리스가 말을 멈추고는 무언가를 생각한다.
"언니? 그럼 간병할 사람과 수발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시 겠네요?"
그...렇겠지? 비명을 지르며 혼자서 움직이는 것보단 누가 수발을 들어 주는 게 편하고, 리리스가 혼자서 하기 불편해서 그런가?
'하긴, 사천왕이었던 자가 병수발이라니... 자기 부하에게 이런 잡일을 맡기고 싶겠지...'
"혹시 불편해? 아니면 내가 혼자하거나 네 명령이라면 이런 잡일이라도 절대복종할 부하 한 명 까지는..."
"아니요!"
강하게 부정하는 리리스.
혹시 잡일을 거부하는 부하들인 건가? 아니면 내 존재에 대해 밝힐만한 부하가 없는 건가?
'후자가 맞다고 볼 수 있겠지, 나도 한 명 정도만 허용하려 했지만 리리스가 신용해도 내가 신용하는 건 아니니까.'
"잡일이라니요! 간병을 빌미로 언니를 만질... 이 아니라, 언니를 도와주는 건데 당연히 제가 해야지요. 잡일이 라니 그런 말씀마세요."
상냥하게 웃어 주며 내 손을 잡아준다.
"그래? 고마워."
아무래도 내 착각인 거 같다. 리리스가 이렇게 도와주는 걸 좋아 하는지 몰랐네.
"그럼, 부탁할게."
나는 미소로 감사를 전한다.
☆☆☆
"언니! 식사가 다 됐어요!"
리리스가 간단한 음식을 준비한다면서 주방에 가고 금세 음식을 만들어왔다.
"응, 일어날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하자 리리스가 만류한다.
"언니! 제가 해드릴게요. 가만히 계세요."
"아니, 그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리리스가 음식을 탁자에 내려놓고 내 상체를 세운뒤 등 뒤에 두꺼운 베개를 놓는다.
"언니는 몸 회복이 우선이시라구요. 최대한 빨리 회복하셔야죠?"
이 정도로는 차이 없을 거 같은데...
"알았어..."
<소피아, 그대는="" 리리스의="" 말을="" 잘="" 들어야="" 할="" 거="" 같구나.=""/>
시...시끄러워.
어느새 탁자에서 자신의 스프를 퍼서 먹는 카르마를 흘겨봐주고 나는 수저에 손을 뻗는다.
찰싹!
"아야! 리리스?"
내 손등을 친 리리스를 보며 의아함을 내비춘다.
"언니? 제가 먹여드릴게요."
아니, 스프도 못 떠먹을 정도는 진짜 아닌데???
하지만 리리스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지 빠른 회복을 주장 하면서 수저를 빼앗아 갔다.
"언니, 자 아앙~"
리리스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이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로 스프를 내민다.
이거 평범하게 부끄러운데! 누가 먹여 주는 게 이렇게 부끄러운 거였어?!
내가 조금 머뭇거리고 있자 리리스는 살짝 재촉을 한다.
"아앙~"
이거 안 하면은 계속 이럴 거 같아! 그게 더 부끄러워!
매도 먼저 맞는 게 났다고 했나?
옛 조상님들의 말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말에 공감하며 입을 벌린다.
"아...아앙."
알맞게 식은 스프가 입안으로 들어 왔다.
'맛있네. 혀가 데이지 않게 알맞게 식어 있어서 불편하지도 않아.'
리리스가 얼마나 신경 써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자, 다시. 아앙~"
...이거만 아니면.
<소피아, 이건="" 그대가="" 말한="" 팝콘각?="" 그것인가?="" 그="" 팝콘이라는="" 간식을="" 먹으면서="" 구경하고="" 싶구나.=""/>
시끄럽다고!
다시 입을벌려 리리스가 주는 스프를 먹는다.
"카르마님? 팝콘이 뭔가요?"
카르마와 대화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스프를 떠먹여 주는 걸 보아 보살피는 기술이 수준급인걸 알 수 있다.
<소피아가 용사="" 시절에="" 이야기해주었느니라,="" 버터에="" 노란옥수수="" 알갱이를="" 볶으면="" 되는="" 간단한="" 간식이라고,="" 무언가="" 구경할="" 때="" 최고의="" 간식이라="" 했느니라.=""/>
...리리스? 왜 '아앙~'을 안 하면 안 먹여 주는 거야? 그냥 내가 먹을까?
...눈으로 압박하네... 그냥 먹어야지...
"나중에 만들어 드릴게요. 카르마님."
<와이! 리리스가="" 해준="" 음식은="" 맛있느니라.="" 필시="" 간식도="" 맛있겠지,="" 꼭="" 해다오.=""/>
'너 뭐 안 먹어도 되잖아!'
검 주제에 식탐이 매우 강한 카르마를 뒤로 한 채 스프를 다 먹으니 리리스가 입을 닦아 주었다.
"그럼 정리하고 있을게요. 언니? 먹고 바로 누우시면 안 돼요?"
네...
식기를 정리하러 간 리리스의 말을 듣고 앉아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생각한다.
'이번에는 내가 판단을 잘못했어, 환생하고서 처음으로 복수대상의 협력자를 보았더니 예상외로 감정조절이 안 됐어.'
왜?
복수는 지금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다만 평소와 같이 계획을 짜서 움직이는 게 아닌 즉흥적으로 투력과 마력을 융합시켰다.
'그 결과가 지금, 이상태이고.'
지금까지는 [정신력]이 급격한 심정변화 같은 판단을 흐릴 만한 일을 잡아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정상적인 작동을 하였다.
작동은 하였지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분노와 광기가 있었다.
'의심되는 건...'
새로운 고유 능력.
'가려져 있던 그 고유 능력이 의심되, 이건 자세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어.'
자칫하면 그 고유 능력 때문에 일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지금은 휴식을 하며 고민해 봐야지.'
리리스가 정리가 끝났는지 팝콘을 들고 돌아왔다.
?
'어떻게 만든 거지? 저거 옥수수도 팝콘용 옥수수가 따로 필요한 거로 아는데?'
카르마의 설명을 듣고 만들었다기에는 설명이 빈약했다.
'나도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아니었는데 검순이 설명을 듣고 만들었다고?'
가능한 건가?
"카르마님? 한 번 설명을 듣고 만들었는데 맞을지는 모르겠어요."
<대단하구나! 리리스="" 잘="" 먹겠느니라.=""/>
"언니도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내게 팝콘을 권하며 먹여 준다.
'팝콘 맞는 거 같네, 간단한 요리여도 그 설명을 듣고 만들었다고?'
"응, 팝콘 맞아."
<리리스는 정말="" 가사를="" 잘하는구나,="" 분명="" 좋은="" 아내가="" 될="" 것이다,="" 아!="" 설탕="" 뿌린="" 것도="" 맛있다.=""/>
팝콘을 옴뇸뇸뇸 먹고 있는 카르마와 달리 나는 추억에 잠겼다.
'이거를 다시 먹게 될 줄은 몰랐네, 내가 할 줄 몰라서 이제는 못 먹을 줄 알았는데.'
그리웠다.
이제 다시는 갈 수 없고 돌아가 수 있어도 '내'가 아니게 되었다.
적어도 고향의 추억을 이런 식으로라도 느끼고 싶어서 내 세계의 음식을 만들어 보려 했지만 요리를 배워 본 적 없는 내게는 무리였었다.
'포기했는데...'
"리리스."
"네?"
"고마워."
진심을 담아서 이야기했다.
옛 추억을 되찾아줘서.
"나중에 종종 내가 말하는 음식도 만들어 줄 수 있어?"
그리운 고향의 기억을 떠 올리게 해주어서,
"물론이죠! 한번 해볼게요!"
이제는 보지 못하는 곳을 보여 주어서,
"고마워, 리리스."
고마워.
"헤헤."
"그럼 다 드시고 씻으실까요? 지금 물에 몸을 담그는건 무리일 거 같고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 드릴게요!"
...에?
'네?'
"저기... 리리스씨? 지금 되게 감동적인 부분 아니었나요?"
왜죠?
"하지만 언니, 몸에 묻은 피가 많이 굳었다구요? 닦지도 않고 그냥 주무시려 하셨나요? 아까는 급한 대로 눕혔지만 주무실 때는 깨끗이 하고 주무셔야죠."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기는 한데.
'왜 하필 지금...'
<소피아! 그대="" 말이="" 맞구나!="" 이런="" 구경하면서="" 먹으니="" 한층="" 더="" 맛있구나!=""/>
옴뇸뇸뇸 먹던 팝콘을 뭉텅이 씩 집어먹는 카르마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시끄러워!
☆☆☆
리리스가 먹여 주던 팝콘을 최대한 천천히 먹었지만 결국 그 시간은 다가왔다.
"저기... 리리스 이건 정말 내가 할게."
제발요.
형! 아니 누나, 제발요.
"언니?"
웃고 있지만 웃지 않고 있어! 왜 눈으로 압박하냐고!
눈으로 욕만 안 했지, 좋게 이야기할 때 말 들으라고는 하고 있다.
"윽... 그...저 정말 부끄러워서 그러는 데 내가 할 게..."
참아 말하지 못한 진실을 전하지만 리리스는 다시 한 번 반박한다.
"언니? 아까도 말씀드렸잖아요? 지금 언니는 회복이 우선이에요, 그리고 여성으로 산 기억이 사라진게 아니라 그대로 있다 면서요? 20년간 여자로 사셨고 여자끼리인데 뭐가 부끄러우신가요?"
맞는 말이긴 하다.
맞는 말이긴 한데, 틀린 말도 없긴 한데!
"그... 내가 살던 시골에는 나랑 동년배가 없어서 같이 뭔가를 해볼일도 없었고... 전생의 기억이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뭔가 더 부끄럽고..."
리리스는 이내 한숨을 쉬더니 협의점을 집어 준다.
"휴우, 그럼 언니 등만 닦아 드릴게요. 뒤돌아 있으니 등만 보이고 앞은 다른 수건으로 가리고 있으시면 되잖아요? 그리고 등은 닦기 힘드시니까 제가 닦아 드릴게요."
그러면 조금 괜찮을 것이다.
"...응."
"그럼 뒤로 돌아보세요."
나는 그 말에 뒤로 돌아 등을 보여 준다.
"역시 천천히 허들을 높여야..."
작은 목소리로 뭔가 들렸다.
응? 잘못 들었겠지?
"리리스? 방금 뭐라고했어?"
착각이겠지?
"아니요? 아무 말도 안했는데요?
착각일 거야...
"언니, 그럼 상의를 벗어 주세요."
"응..."
스륵.
리리스의 말에 상의를 벗어 맨살을 리리스에게 보여 준다.
'전에 옷가게 점원때도 그랬지만 타인에게 맨살을 보여 주는 거 상당히 부끄러운 행위네...'
리리스가 건넨 수건으로 앞을 가리자 얼굴이 달아 오르는 게 느껴졌다.
"언니, 정말 건강하고 깨끗한 피부시네요, 후후"
'부끄러워요! 말하지 말아 주세요!'
마음속으로 외침이 목까지 넘어왔지만 애써 참았다.
잠시 따듯하면서 젖어 있는 수건이 등에 다았고 그곳을 중심으로 작은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꺄악!"
작게 비명이 나오고 젖은 수건으로 부드럽게 등을 쓸어 내린다.
"흐읏! 읏!"
참을 수 없는 작은 신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기분이 이상해진다.
'이거 좀 기분이...'
누군가가 등 뒤를 닦아 준다는 행위에 부끄러우면서도 이상한 감각을 느끼던 중 리리스가 그것의 끝을 고했다.
"언니? 다 닦았어요. 후후 귀여우셔라."
마지막 말에 정신이 돌아오고 엄청난 수치심 몰려왔다.
'아아아악! 내가 뭔 소리를 낸 거야?! 그리고 원래 이런 거야?! 누가 만진다는 게 이런 거야?!'
전혀 다르지만 부끄러움에서인지 [정신력]이 신나서 구경 중이었는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다를 거란 생각을 못 하고 있다.
"아...알았어 나머지는 내가 할게!"
움직여서 고통스러운 것도 잊어 버리고 허겁지겁 앞부분을 닦으면서 열이 오른 것이 부끄러운게 아니라 따듯한 수건으로 몸을 닦은 탓이라고 애써 외면 한다.
어느새 팝콘을 다 먹고 실체화 한상태로 까무륵 잠든 카르마를 보며 애들한테 보여 줄 장면은 아니었다며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는 와중에 리리스가 말한다.
"후후, 언니? 다 나을때까지는 제가 등을 닦아 드릴게요"
웃으며 사형을 선고하는 리리스가 정말로 악마족이 맞다고 내 세계의 악마와 다르지 않다면서 생각한다.
'빠...빨리 나아야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