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101화. 첫 지령.
* * *
바람을 세차게 가르며 강철이로 변한 이서린의 머리 위에 올라탄 나와 팀원들.
지금 6팀이 향하는 곳은, 남미 국가 중 하나인 브라질이었다.
수도인 브라질리아와 굉장히 멀리 떨어진 이름도 없는 어느 외곽지역의 마을.
헬렌이 6팀에게 정해준 장소는 바로 그곳이었다.
20m가 넘어가는 이서린의 신체는 너무나도 눈에 확 띄었기에, 적당한 크기로 변한 이서린을 타고서 움직이고 있었다.
어제. 정말 오랜만에 긴 잠(기절)에서 깨어난 탐이 나를 보자마자 욕을 날려왔지만, 내 눈앞에 있는 6팀들을 보고선 짙은 침음을 흘렸다.
아니, 정확히는 이리아와 아리아.
이 쌍둥이를 보고선, 의미심장한 말을 뱉어냈다.
위험한 녀석들이다. 분명...어디선가 느껴본 기운인데...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던 탐은 "저 두 녀석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라."라는 말을 했고, 그 말이 온종일 신경 쓰여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도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거지? 아무리 봐도....
서로의 손을 꼭 마주 잡은 채, 바람에 그 가벼운 몸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이서린의 비늘을 꽉 잡고 있는 모습에서 도저히 위험함이나, 그와 비슷한 분위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쨌든, 지옥에서 함께 고통을 견디며 지내왔던 친구와도 같은 탐의 말이었기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내가 죽게 되면, 탐 그 녀석도 같이 죽게 될 테니, 이런 일로 나에게 거짓을 말할 리가 없었다.
....미켈을 먼저 노려야 하나? 일단, 쌍둥이 녀석들도 보류해둬야겠어.
그렇게 아침 일찍 아지트에서 출발해 쉬지 않고 날아갔고, 해가 완전히 지고서 땅거미가 활동을 시작할 때쯤에야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작디작은 마을을 둘러싼 거대한 나무가 빽빽히 심어진 산이었다.
저걸 집이라고 불러야 할까?
다 쓰러져가는 창고 같은 건물들 몇 개가 전부인 마을.
아니,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나 민망할 정도였다.
그때.
어깨에 이곳저곳 녹슨 듯한 농기구를 짊어지고서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누군가가 어둑어둑해진 시야를 뚫고서 걸어오기 시작한다.
저벅저벅.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규칙적인 발소리가 어느 정도 계속되고, 그 누군가가 우리의 옆을 지나치려는 찰나.
"저기요."
그를 불러세운다.
"....무슨 일이쇼?"
상당한 경계가 담긴 눈빛과 언짢은 표정을 짓고서 시비를 걸듯 대답을 하는 남성.
깊게 패인 주름과 후덕한 몸집, 잡초처럼 정리가 전혀 안 된 수염은 아주 마초적인 기질을 품고 있는 농부를 보는 것 같았다.
그의 몸에서 풍겨오는 시큼시큼한 땀 냄새로 보아, 그는 지금까지 무언가의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혹시, 이 사람을 알고 있어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사진 한 장을 그에게 들이밀었다.
그러자.
"..당신들 누구야?"
아주 낮은 저음의 목소리로 물어오는 그.
대답이 이상했다.
yes or no 라는 대답이 나올 거라는 예상과는 조금 다른 대답에 본능적으로 감이 왔다.
....뭔가 알고 있군.
헬렌은 이 마을에 가보라는 말을 했지, 정확히 이 사진 속의 목표가 어디 있다고 말해주지는 않았다.
지금부터는 순전히 우리의 추리와 추적으로 목표를 찾아내야 했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상황이 쉽게 풀리는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치고서, 그에게 적당히 둘러댈 대답을 생각하며 입을 열려던 찰나.
"....뭐, 보나 마나 그 일 때문이겠지? 정부기관에서 온 거요?"
알아서 판을 깔아주는 그였다.
"...네. 뭐, 그렇죠."
"따라오쇼. 이곳에서 밤은 위험하오. 특히나,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들을 더더욱."
시크하게 자신의 할 말만을 던지고서, 걸어가는 그였다.
그런 그를 따라가기를 잠시, 너무나도 허름한 창고와도 같은 건물에 멈춰선 그가 다 쓰러져가는 문의 손잡이를 밀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쾌쾌한 냄새, 텁텁한 먼지 냄새, 오랜 시간 축적된듯한 그의 체취,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 등등이 코끝을 자극하며 훅 들어온다.
"우우웨에엑! 냄새 이상하다구!! 정말..!!"
미켈이 자신의 목을 조르듯이 어루만지며 헛구역질을 한다.
그는 그런 미켈을 보고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서, 건물 내부의 방문을 하나 더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미켈을 잠시 흘겨보고서 그를 따라 들어간 방 안에는.
거대한 나무 테이블 위에 무언가가 허름한 천으로 덮인 채 누워있었다.
허름한 천이 군데군데 빨간색으로 물들어있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느껴졌던 비릿한 냄새는 피였나?
핏자국을 발견한 팀원들이 저마다 경계를 하며 그를 바라보았고, 그의 손이 허름한 천을 향해 움직여 벗겨내기 시작한다.
샤아아악.
"....사슴?"
허름한 천을 걷어내자, 모습을 드러낸 건 꽤나 큰 크기를 가진 수사슴 한 마리가 테이블 위에 눕혀져 있었다.
"....이것을 보여주는 이유가?"
너무나도 뜬금없이 집으로 초대하고서, 보여주는 게 사슴의 시체라니.
그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는 묵묵히 상처가 많고 투박한 손가락을 이용해 사슴의 어느 부위를 가리키고 있을 뿐.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사슴의 목.
그곳에는 엄지손톱만 한 두 개의 구멍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소량의 핏방울들이 털에 달라붙어 바짝 말라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말라붙은 건 핏방울만이 아니었다.
마치, 미라와도 같은 모습으로 삐쩍 마른 모습을 하고 있는 사슴의 시체는 죽은 지 상당히 오래된 것 같았다.
"어제, 일을 마치고서 돌아오던 중에 발견한 놈이오. 저 목구멍에 난 두 개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지."
죽은 지 한참이 된 것 같은 모습이건 만, 마치 어제 죽었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작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냥 이상한 놈한테 걸린 건가?
"그놈이오. 이 사슴을 이렇게 만든 건."
"...그게 누군데요? 아니, 그전에 이따위 사슴 사체 같은 건..."
"...모건. 그 사진 속의 꼬맹이 말이요. 모건도 그 놈에게 공격을 받은 것이오. 그리고는 실종을 당했지. 아마...끔찍한 죽음을 맞이했겠지."
아무래도, 그냥 이상한 놈은 아닌 것 같았다.
헬렌이 알려준 목표의 이름은 모건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실종이라는 단어에 의문이 마구 생겨나기 시작한다.
분명, 우리는 헬렌이 정해준 모건이라는 목표를 잡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그런데 실종을 당해,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을 거라니?
"....실종은 언제....언제 당한겁니까?"
눈빛을 보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10년...10년이 훌쩍 넘었지. 당신들이 찾는 그 사진 속의 어린 소년. 모건은 실종이 된 지, 10년도 더 넘었소."
그의 말에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낀 나는 팀원들을 불러 곧장 조용하게 내부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실종이라는 단서밖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흘리다가,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하기 위해 일미를 바닥에 갖다 대던 그때.
우리의 회의를 엿듣고 있었는지, 그가 말을 꺼내온다.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오. 그놈을 찾아낸다면...모건의 시체라도 찾아낼 수 있겠지."
그의 말에 이한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을 뱉어낸다.
"아, 씨발!! 자꾸 그놈 그놈 거리는데, 그게 도대체 뭐냐고!!! 이 빌어먹을 노인네야!!"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스윽.
손을 움직여 말없이 작은 창문 밖을 가리킨다.
"늦은 밤, 산속. 그것이 유일하게 그놈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 달이 떠 있는 그 밑에 존재하는 거대한 산을 바라본다.
"아까는 무슨 밤이 위험하다고 하더니, 이제는 이 밤에 산속을 들어가란 말입니까?"
나의 말에 천천히 손을 내린 그는 다시 허름한 천을 사슴의 시체 위로 덮으며 말한다.
"최소한의 경고는 해주려는 목적이었소. 오늘 하루 묵을 곳을 찾는다면 거실을 사용하시오. 방을 빌려주고 싶지만, 나도 이 사슴 녀석과 동침을 해야 하는 형편이니 이해해주시오."
말을 마치고서 그는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작은 침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고, 외투를 벗어 적당한 곳에 던져버린다.
"....일단 나가자."
휴식을 취하려는 듯한 그였기에, 자리를 옮길 생각이었다.
생각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당연히 산속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우리의 임무를 달성하려면 모건을 찾아 그의 힘을 빼앗아야 했고, 그가 말한 그놈이라는 녀석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길래….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는 그였지만, 그놈이란 단어를 꺼낼 때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을 숨기지는 못했다.
...원래 밤에는 산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말이 많았지만, 그건 영적인 존재나,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로 인해 흘러 다니는 말이었다.
....귀신보다 더한 새끼들도 보고 왔는데, 무슨...
"출발한다. 빨리 찾아서 끝내자고."
아무래도 밤에는 나의 여러 기관들로 인해 팀원들 중에서 내가 가장 시야 확보가 좋았기에, 앞장서서 산을 타기 시작한다.
바사락 바사락.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이 밟히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려온다.
해가 떠 있을 때와, 달이 뜬 산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 아름다웠던 풍경들은 어느새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저승과도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씨발. 끝도 없네."
이 오밤중에 산을 타기 시작한 지, 두 시간 정도가 흘렀음에도 아무런 상황이 일어나지를 않는다.
가끔씩 보이는 야행성 동물과 곤충들이 간간히 눈에 들어왔을 뿐.
그때.
"....피...새..가...나..."
아주 작은 이리아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 하루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쌍둥이들이었기에, 헛소리는 아닐 거라 생각하고는 재빠르게 【뱀의 심안】 사용한다.
『피 냄새가 나요. 그것도 아주 진하게.』
.....피 냄새? 진심인가? 전혀 안 나는 것 같은데..
일미 녀석들의 혀와 피트기관으로 인해, 꽤나 멀리 떨어진 상대방의 냄새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나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감지 타입인가? 전투 타입이 아니라?
그렇다면. 이리아와 아리아가 그동안 전투상황에서 보인 모습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지금부터는 이리아가 선두를 맡는다. 피 냄새가 나는 곳으로 안내해."
나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어대는 이리아.
이리아가 몸을 떨자 덩달아 아리아까지 몸을 떨어댄다.
"걱정하지 마. 전투가 벌어질 것 같으면 곧장 뒤로 몸을 숨겨도 돼. 그러니까 안내만 부탁해."
끄덕.
손을 맞잡은 쌍둥이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더니, 단 조금의 막힘도 없이 잘 보이지도 않고 복잡한 산길을 쭉쭉 걸어 나간다.
...역시, 감지 타입이었구나.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미끄러지듯이, 쭉쭉 걸음을 옮기며 길을 안내하는 쌍둥이들을 따라 걷는다.
이리아와 아주 한 몸처럼 딱 붙어서 움직이는 아리아를 보니, 아리아 또한 이리아와 같은 감지 타입인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간 산길을 오르며 걷자.
킁킁.
이리아가 말한 피 냄새가 나와 팀원들에게도 느껴진다.
이 냄새는 상처 속에서 흘러나온 지 얼마 안 된 아주 신선한 피 냄새였다.
바스락.
무언가가 지면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르르르...
개과 동물의 울음소리랄까, 그와 비슷한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타다다닷.
가장 선두에 있던 이리아와 아리아가 후다다닥 달려오며 나의 뒤로 몸을 숨긴다.
그리고는 그 여린 손가락을 뻗어 정면을 가리켰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형형한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두 개의 눈동자가 나와 팀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