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99화. 세 개의 집단.
* * *
제임스가 건넨 봉투에 들어있던 종이에는 아주 간략한 내용이 담긴 글자가 적혀있었다.
시간: 내일 오전 9시.
장소: DMG 제 3 지부.
내용: 각 팀장들은 3계급 인원들에게 첫 지령을 내리는 내일, 모든 팀원을 데리고 제 3 지부로 집결할 것.
너무나도 짧은 내용의 글.
"...3계급이 뭐지...?"
나도 모르게 새어나간 혼잣말에 미켈이 씨익 웃음을 짓고는 대답한다.
"으흐흥~ 그건 말이야. 우리를 뜻하는 의미야. 아니, 우우우음....뭐랄까? 앗! 그래. DMG의 뜻을 품고서 들어온 신입들이란 느낌일까나?"
"....신입?"
"응! 히히힛.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냥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실력 있는 신입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 같더라구!"
실력 있는 신입을 3계급이라 부른다라...
"그럼 우리 밑으로도 계급이 있겠군? 실력 있는 신입들이 있으면, 그와 반대로 실력이 없는 어중이떠중이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으히히~ 정답! 우리 밑으로 두 단계나 낮은 계급이 존재하고 최하층에는 슬레이브(노예)라 불리는 녀석들이 있어.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구~? 우리는 녀석들에게 꽤나 고급인력으로 취급받는 것 같으니까! 히힛."
빈약한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말을 하는 미켈을 내버려 두고서 이서린에게 이 내용을 팀원들에게 전달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 게이트에서 사냥을 하려했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은 미켈과 나의 명령을 받은 이서린이 사이좋게 이곳을 빠져나간다.
".....넌 왜 안가냐?"
"...알잖아."
아직 만족을 하지 못한 듯한 이한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자, 결국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들어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적당히 해."
"...물론이지. 딱 2층 한 번만 전부 죽여버리고 끝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
적당히란 말의 뜻을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이한이었다.
※
다음날 아침 8시 55분.
아지트의 1층 홀에는 정확히 42명의 인원들이 모여 제임스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55분인데 전혀 출발할 생각은 안 하네.
내용에 적힌 대로라면, 9시까지 3 지부에 도착해야 하건만, 어찌 된 이유인지 제임스는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다른 녀석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약간의 초조한 기색을 보이며 제임스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이제 출발해야겠어. 헬렌."
말을 하며 옆에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헬렌을 바라보는 제임스.
끄덕.
고개를 끄덕인 헬렌은 곧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허공에 10초가 넘는 시간 동안 말을 뱉어냈고, 헬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옥의 무저갱과 같은 검은색의 포탈 하나가 생겨났다.
그 모습에 얼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몬스터의 팀원들에게 천천히 제임스가 입을 연다.
"DMG 녀석들이 지내는 구역은 아무나 갈 수 없다. DMG 녀석들에게 인정받은 누군가에게 그곳과 연결된 포탈을 열 수 있는 권한을 받아야지.
물론, 헬렌은 DMG 녀석들에게 인정받은 인원 중 하나다. 헬렌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 구역을 맘대로 드나들 수 없다."
....그렇다면...헬레은 DMG 녀석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인데...도대체 왜 이 팀에 합류해 DMG 녀석들 배신하려는 거지?
그런 생각과 함께 어쩌면, 헬렌은 이중 첩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는 나의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이따위 팀은 사라져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1팀이 먼저 포탈 속으로 몸을 밀어 넣자, 차례대로 2, 3, 4, 5팀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나와 6팀의 차례가 되었다.
곧 새까만 어둠 속을 향해 몸을 던졌고, 메슥거리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잠시 온통 새까만 벽과 천장으로 이루어진 어떤 건물의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미친....장난이 아니구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새까만 천장과 벽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새까만 벽으로 착각했던 것은 검은색의 긴 코트를 입고 있는 수많은 인원들의 옆모습과 뒷모습이었다.
.......이게 도대체 몇 명이야? 어림잡아도 300은 넘겠어.
300명의 인원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코트에 달린 커다란 모자를 깊게 푹 눌러쓰고 있었기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개개인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모두 개성이 넘쳤지만, 결이 같은 것 같았다.
짙다 못해 아주 새까만 악의가 드러나는 기운을 풀풀 휘날리며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모두가 똑같은 녀석들처럼 보였지만,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코트 뒤에 그려져 있는 문양이 달랐다.
머리가 4개 달린 용의 검은 그림자와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는 우리와는 달리, 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거꾸로 뒤집힌 붉은색의 십자가의 문양이 그려진 코트를 입고 있는 녀석들.
왼쪽으로는 하얀색 인간의 머리 해골이 그려져 있는 녀석들.
그리고 방금 이곳에 도착한 우리들의 앞으로는 우리와 같은 4개의 목을 가진 용의 문양을 등 뒤에 새기고 있는 녀석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내가 녀석들의 등 뒤에 새겨진 문양을 주의 깊게 지켜보자, 제임스가 슬쩍 다가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와 같은 문양을 등 뒤에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같은 팀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저 녀석들은 DMG의 충성을 바친 녀석들이니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건, 그렇고. 우리와 다른 문양을 새기고 있는 녀석들은 누구지?"
나의 말에 좌우를 번갈아 보던 제임스가 나름대로 자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거꾸로 뒤집힌 십자가를 등 뒤에 지고 있는 녀석들의 집단 코드는 악마, 등 뒤에 해골을 지고 있는 녀석들은 망령, 마지막으로 우리는...괴물이다."
"우리는 괴물이란 집단 코드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몬스터란 팀이란 얘기지?"
"맞다."
대충 이해가 갔다.
저 악마, 망령, 괴물이란 코드를 가지고 있는 집단들은 각각 100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된 것 같았는데, 그중 몬스터의 인원 42명은 제외하고선 모두가 DMG에 충성을 다하는 녀석들이란 소리.
그때.
300명의 인원 앞으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저벅저벅.
아주 절제된 발소리가 들려오길 잠시, 검은색의 긴 코트가 아닌 로브를 입은 40대의 중년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매서운 눈으로 노려본다.
"2계급에 속한 괴물의 일원 중 하나인 김성진이다."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와 같은 문양을 가지고 있는 괴물의 일원이란다.
"2계급과 3계급의 차이는 뭐지?"
어제 미켈이 얘기해주지 않았던 3계급 위의 계급에 대해서 제임스에게 물어보자, 제임스는 미간을 한 번 좁히고선 작은 한숨을 내쉰다.
"DMG에는 총 5개의 계급이 있다. 4, 5계급은 그냥 총알받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슬레이브는... 무시해도 좋다. 3계급부터는 DMG에 있어 꽤나 중요한 인력자원이다."
"그래서? 차이가 뭐냐고."
"...3계급은 말 그대로 싹수가 보이는..재능이 있는 신입들이 속해 있는 곳이고, 2계급은 DMG의 정예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위에 1계급은 실질적으로 이 DMG를 이끌어가는 수뇌부라 할 수 있다. 물론, 1계급 위에 존재하는 녀석도 있지만."
"DMG의 수장을 말하는 거냐?"
끄덕.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성진이 바로 본론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분이 너희의 힘을, 실력을 보고 싶어 하신다. 원래대로라면 첫 지령은 최소 30명 이상의 인원이 함께 움직여야 하지만...그 분께서 너희들을 꽤나 좋게 봐주셨다. 특히나...리펄스 베이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을 말이지."
김성진이 잠시 말을 끊고서 이쪽을..아니, 정확히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다.
그에 따라, 저절로 다른 녀석들의 시선까지 나를 향해온다.
수근수근.
"...뭐야? 그 테러...BUG 새끼들이 일으킨 거 아니었어?"
"....씨발. 괴물새끼들이 점수를 따다니..."
"..그나저나.. 저 새끼...걔 아냐? 사이버인가, 사이비인가 하는 그 놈?"
"....뭔가 분위기가 변한 것 같긴한데....맞는 거 같기도 하고..."
수많은 말소리가 들려왔고, 아주 각양각색의 반응들이 흘러나왔다.
괴물이란 코드를 가진 집단들은 아주 흐뭇한 미소로 나와 몬스터의 팀원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몬스터 팀원들은 뻘쭘한 얼굴을 한 채 서 있었다.
미켈은 좀 더 반응을 보여달란 듯이, 양손을 두 귀에 갖다 대며 그 반응을 즐기고 있었고, 이한은 이쪽을 쳐다보는 녀석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눈 깔아!! 씨발!!" 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덜덜덜덜...
이서린이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수많은 시선에 공황장애를 일으키며, 쉴 새 없이 눈동자를 떨어댄다.
"...무, 무서워요....이, 이대로라면 부, 부정을 타서...저, 저 때문에 여러분까지 부, 부정을 당하는..."
이 정도면 중증 수준이었다.
...역시, 태어나던 순간부터 받아온 학대의 영향인가? 아니, 트라우마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어.
이서린이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털썩 바닥에 주저앉자, 녀석들은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 이제는 말에다가 조롱을 섞기 시작했다.
"수준 알만하군. 저딴 녀석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거야?"
"저년은 이곳보단 정신병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크크큭."
이서린을 조롱하는 말이 들려온다.
근데, 참 이상한 건 우리를 바라보며 말을 내뱉는 건, 오직 망령 녀석들 뿐이었다.
악마 녀석들은 모두가 아무런 말도 없이 침묵을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볼 뿐.
스윽.
천천히 손을 움직여 바닥을 짚고 있는 이서린의 왼손을 살포시 쥐었다.
덜덜덜..
여전히 강한 떨림.
"...사, 사이비씨...?"
그녀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이서린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움직여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의 모양을 조금씩 바꿔 간다.
내가 원하는 모양이 완성되자, 나는 놀고 있는 반대쪽 손을 이서린의 손 모양과 똑같이 만들고서 망령 녀석들을 향해 쭈욱 뻗었다.
"....이, 이건.....!!"
이서린의 놀란 음성과 주변에서 서 있던 몬스터의 팀원들이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와 이서린의 손가락이 만들고 있는 모양은 바로 였다.
히죽.
"좆까. 씨발같은 새끼들아."
히죽이는 미소와 함께 녀석들에게 엿을 날려주자, 곧 조소가 잔뜩 걸려있던 망령 녀석들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때.
"병~신!! 씨발!! 뒈져!! 이 좆밥새끼들아!!"
이한이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양손을 쭈욱 뻗어 쌍엿을 날린다.
....그렇지. 잘한다 이 새끼. 다 조져버려!
이한의 그런 행동에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뿌듯함에 더욱더 진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이한의 뒤를 이어 미켈까지 가세해 "좆을 까시오! 좆을 까!" 라는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폴짝폴짝 뛰어댄다.
그러자 망령 녀석들이 온몸에서 음산한 기운과 함께 짙은 살기를 흘려내기 시작하자, 재밌다는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김성진이 한순간 아주 강한 기운을 내뿜으며 상황을 종결시킨다.
김성진의 기운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기운을 거두어들이는 망령 녀석들이었고, 악마 녀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이내 우리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크크큭... 그 분께서 눈여겨 볼만 하구나. 3계급의 인원들은 당장 내일부터 사냥을 시작해라. 사냥에 성공한 혼들은 사냥을 주도한 팀의 팀장이 보관하고 있도록. 빼앗은 신수의 혼과 고대의 혼은 최소 2년 후에 봉인석에서 꺼내 개방을 할 수 있으니, 잘 보관해야 한다. 이상."
김성진은 말을 마치고서, 바로 돌아서려다 다시 한번 나를 짧게 쳐다보고는 그대로 왔던 길로 돌아가 버린다.
그렇게 되자, 이곳에 남은 인원들이라고는 3계급이라고 불리는 DMG의 루키들.
터벅터벅.
누군가...아니, 녀석들이 이쪽을 향해 걸어온다.
끼에에에엑!!!
마치, 유령의 성에서나 들려올 법한 귀곡성과 음산한 기운을 풀풀 휘날리며 말이다.
녀석들이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몸에서 저절로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이름값 제대로 하네. 악귀 같은 새끼들."
이쪽을 향해 스르륵 미끄러지듯이 다가오는 녀석들의 얼굴은 악귀 그 자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