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98화. 버릇없는 개의 마지막 자존심.
* * *
이한이 정신을 차린 건, 그날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가끔 "미안해. 형."이라는 의미 모를 말을 내뱉던 이한이었다.
녀석은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몸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봤고, 곧 나와 눈이 마주친 이한은 "씨발…." 이라는 욕설을 내뱉고선 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떨구었다.
마지막 순간에 모든 걸 쏟아붓듯이 들어온 공격을 미리 생각해두지 않았더라면, 지금 침대에 쓰러져 있는 건 나였을 것이다.
처음처럼 나를 바라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며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 거친 입버릇만은 여전했다.
나를 마주하기가 껄끄러운 듯 보이자, "몸이 회복되면 찾아오겠다."라는 말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나자 "…. 꺼져...씨발."이라는 말을 내뱉는 이한이었다.
여전한 이한의 그런 모습에 나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몇 번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고작, 나에게 한 번 꺾였다고, 그 짐승같이 포악한 성미가 한순간에 순한 양과 같이 변했더라면 되려 내가 이한에게 엄청난 실망을 했을 것이다.
내 팀에 나약한 녀석 따위는 전혀 필요 없었다.
또한, 그 욕설이 나에 대한 시기와 질투, 인정할 수 없음에 우러나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약함과 패배, 끝내 나의 몸을 건드리지 못했다는 분함에 자신에게 내뱉는듯한 느낌이 강하게 풍겨왔었기에 씨익 미소를 보여주고서 이한의 방을 나왔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자 방 안에서만 머물며 몸의 회복을 하고 있던 이한이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고, 곧장 나를 찾아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마법을 쓰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을 텐데?"
이미, 이한이 나를 찾아와 이런 종류의 질문을 해올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던 나였기에,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전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이한이 이를 한 번 갈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2주 전만 해도, 너에게 지금과 같은 강한 기운이 흘러나오지는 않았어.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안에...."
결국, 목이 마른 자가 우물을 파게 되어있었고, 그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듯 이한이 물어오자 중간에 녀석의 말을 잘라낸다.
"강해졌냐고?"
"............"
"알고 싶어?"
"........씨발...쯧."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지, 욕설과 함께 고개를 돌려버리는 이한.
나에게 패배해서 예전의 그 불과 같은 호승심과 패기를 잃지 않은 것은 아주 좋은 일이었지만,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야 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마지막 남은 야성마저도 다시는 고개를 들어 올릴 수 없도록 철저하게 교육을 해야만, 훗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 번 다신 나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지 않으리라.
"네 입으로 말해."
"...뭘 말하라는 건데, 씨발.."
"네가 듣고 싶어 하는 그거. 네 입으로 말하라고. 내가 베풀 수 있는 호의는 여기까지다."
나는 정말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뒤돌아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꽤나 긴 시간을 기다려줬음에도 녀석에게서는 그 어떠한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쉽지만, 넌 여기서 끝이다.
나 역시 힘도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지키는 녀석에게 더 이상 볼 일은 없었다.
지옥을 빠져나오는 순간,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던 나조차도 자존심을 애써 외면하며 몬스터에 합류를 한 상황이었기에, 끝까지 뻣뻣하게 구는 이한의 태도의 눈살이 찌푸려진 것이다.
"...병신. 그렇게 잠꼬대로 강해져야 한다고 지껄이더니, 순 구라였네. 고작 네 복수를 향한 집념이 이정도밖에 안 된다면 내 쪽에서 거절하고 싶다고."
저벅저벅.
이한을 등지고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며 걸어가고 있던 그때.
온갖 처참한 마이너스적인 감정과 수분기가 잔뜩 섞인 이한의 어떠한 말이 들려온다.
히죽.
이한이 정신을 잃어 기절해 있을 때, 녀석의 기억을 읽어보며 알아냈던 녀석이 꿈꾸는 복수를 살짝 끄집어내자 곧장 반응이 온다.
복수.
그것이 바로 이한의 트리거이자, 역린이었다.
"좋아. 그렇게 부탁한다면 어쩔 수 없지. 잘 들어, 딱 한 번만 말해줄 거니까. 내가 그 빠른 시간 안에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렇게 그날 밤, 내가 만들어낸 게이트 속에서 【수라의 육체】를 부여받은 인원이 두 명이 늘었다.
이한과 이서린.
나에게서 모든 것들은 전해 들은 이한은 처음에는 거짓말하지 말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내가 자신을 계속해서 바라보자 결국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서린에게는 거의 부모와 같은 존재가 된 나는 가볍게 이서린에게 【수라의 육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아주 조금 들려줬을 뿐이었는데, 그녀는 대뜸 "할게요."라는 말을 내뱉었다.
정말로 내가 "날 위해 죽어줘."라고 말한다면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기쁜 얼굴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서린이었다.
그런 모습에 오히려, 내 쪽에서 이서린이 부담스러워지는 상황이었다.
이제 두 사람은 나의 품으로 완전히 들어오게 된 인원들이었고, 두 사람을 굳이 비교하자면...
이서린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도구와 같았다.
마치, 총처럼 내가 방아쇠를 당기기만 한다면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나의 명령을 수행할 뿐인 도구.
반면에 이한은, 아직 야생성이 남은 흉포한 들개와도 같았다.
화를 내기도 하고, 가끔은 통제가 불가능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나의 명령 한마디에 목표의 목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결국은 죽음으로 몰아갈 야생의 들개.
할 수만 있다면, 6팀 전원 완벽하게 나의 품으로 몰아넣고 싶었지만, 아직은 과도기였다.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미켈과 도저히 용서를 할 수 없는 한설화.
마지막으로 전투상황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움츠린 모습을 보이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이리아와 아리아.
이 네 사람에게 무턱대고 【수라의 육체】를 줄 수는 없었다.
제임스의 다음 지령이 떨어질 때까지는 무한 대기였기에, 이한과 이서린을 데리고서 내 방 속에 있는 게이트에서 사냥을 시작했다.
아직 성장력이 1인 두 사람에게는 1층과 2층에서 적당한 곳을 골라 성장을 하라는 말을 남기고서 난 3층으로 이동해 오크들의 시체를 이용해 거대한 산을 쌓아 올렸다.
처음에는 갑자기 너무나도 약해져 버린 몸에 적응하지 못하던 이한은 얼굴을 와락 찌푸리며 "씨발...이거 사기 먹은 거 아냐?"라고 소리쳤지만, 곧 성장력이 조금씩 성장함에 따라 그런 말들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제껏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미소를 지어 보이지 않았던 이한은 입이 귀에 걸릴 만큼 쭈욱 찢어진 미소를 지으며 1, 2층의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서린은 평생 전투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1층의 몬스터들을 상대함에도 아주 신중하게 생각하고 움직였지만, 운동신경이라고 전혀 없었던 이서린은 "우울해요…. 역시 저 같은 건…." 이라는 말과 함께 또다시 자신에게 비관적인 상태로 돌아갔다.
그런 그녀를 위해, 그녀에게 다가가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굳이, 인간의 형태를 유지해서 싸울 필요 없어. 너에게는 진짜 무기가 있잖아."
신체강화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서린이 인간폼으로 싸운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사실이었지만, 이런 쪽에는 전혀 아무런 경험도 없는 이서린이었기에 최대한 천천히 세세하게 그녀에게 조언을 해준다.
곧 자신이 거대한 용과 같은 모습을 한 강철이의 모습으로 한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린 것을 떠올린 이서린이 신체강화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속도로 1, 2층의 몬스터들을 아주 잿더미로 만들고 다녀버린다.
그 탓에, 이한이 이서린에게 "저리 안 꺼져! 이 씨발년아!!" 라며 자리싸움을 하는 광경이 몇 번 내 눈에 들어왔다.
괜히, 신수의 혼, 고대의 혼과 같은 소리를 내뱉는 게 아니라는 걸, 이서린을 보며 아주 처절하게 느꼈다.
몬스터들의 리젠 시간이 그녀의 사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폭발해버린 이한이 이서린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그 둘 사이에 개입해 싸움을 중재한 뒤,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하며 게이트에서 그 둘을 게이트에서 데리고 빠져나왔다.
"...씨발!! 이 욕심 많은 년이 내 자리를 뺏었다고!!! 씨발!! 대장도 봤잖아!!!"
【수라의 육체】의 대한 성능을 직접 느낀 이한은 어느 순간, 나를 찾아와 "진심으로 고맙다. 이런 기회를 줘서."라는 말을 내뱉었는데,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나를 대장이라고 불러왔다.
그 모습을 보니, 레드문에 있는 오소리가 떠올라 잠깐 기분이 묘해졌지만, 오소리 역시 지금 이 시각에도 열심히 게이트에서 성장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죄..죄송해요...저, 적당히 한다고 한건데....죄, 죄송...."
"캬아아아악!!! 씨발!!! 병신!! 그 말이 더 열받는다고!!!"
이서린이 두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힌다.
이이상 둘을 내버려 둔다면, 안 그래도 낮은 이서린의 자존감이 더욱 떨어져 더욱더 우울한 상태가 될 것이다.
"...그쯤 해둬. 너도 봐서 알겠지만, 이서린은 특별한 케이스야. 그런 크리쳐를 가지고 있다면 이정도 힘은 당연해."
".....씨발. 평범한 크리쳐를 가지고 있는 새끼는 서러워서 살겠냐...쯧."
이렇게 크리쳐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 이한의 크리쳐는 절대로 무시당할 성질의 그것이 아니었다.
이한의 크리쳐는 전기뱀장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에서 원소를 다루는 생물이 있다면 얼마나 있을까?
이한 역시, 굉장히 희귀하고 특별한 크리쳐를 가졌지만, 용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강철이라는 크리쳐 앞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뿐이리라.
아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이한은 이서린의 크리쳐를 부러워하기보다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고유 능력들을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전기뱀장어라는 특별한 크리쳐를 가진 이한이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은 딱 1개.
바로, 양날의 뇌(雪)라는 고유 능력 한 가지였다.
그랬기에, 이한의 전투방식은 꽤나 단순했고,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몸에 조금씩 무리가 갔다.
실제로 전기뱀장어도 사냥을 하거나, 포식자로부터 방어를 할 때,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출력량의 전류를 방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적정한 선의 전류를 방출해냈다.
물론, 죽음의 위기를 느끼면 최대 출력량의 전류를 방출해 자신과 포식자의 생명을 동시에 끊어놓기도 했지만.
전기 뱀장어의 최대 출력량은, 1000볼트 이상의 전기를 방출해냈는데, 사람은 100볼트의 전기에 감전이 되기만 해도 기절할 정도였다.
만약, 성인 남성이 1,000볼트의 전류. 즉, 1 A(암페어)의 전류에 0.3초만 감전되어도 조직이 손상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전기뱀장어의 특성과 아주 흡사한 능력인 양날의 뇌(雪)는 말 그대로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출력량을 넘기게 되면, 아주 빠르게 몸에 무리가 가며 심하면, 이한 역시 전기에 감전돼 쇼크사를 할 수도 있었다.
이한에 대한 생각을 마친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서린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고서 방문을 열어 두 사람과 함께 빠져나가려던 찰나.
끼이이익.
누군가가 내 방문을 먼저 열고서 말을 걸어온다.
"흐으음. 요즘 셋이 부쩍 친해진 것 같네? 응? 혹시. 셋이서 키스라도 하는 걸까나? 으흐흥."
미켈이 왼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동그란 원을 만들고 오른쪽 손으로는 검지를 활짝 펴 그 원안에 집어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묻는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싸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미켈의 모습.
방 안에 있는 게이트를 들킬까, 재빨리 이한과 이서린을 문밖으로 밀어내고서 나 역시 방을 빠져나와 문을 닫았다.
"...헛소리 하지 말고. 무슨 일이야?"
최대한 주의를 돌리기 위해 미켈에게 바로 본론을 물었다.
그러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나와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미켈이 검은색 편지 봉투와 같은 무언가를 건넨다.
"제임스가 보낸 거라구. 각 팀장에게 전달하라고 말이야. 그나저나 많이 아팠나 봐? 서린이가 눈물까지 흘리는 것 보니까? 뭐 그곳 말고도 엉덩이도 둘이서 같이 쑤쎴..."
"좆까!! 씨발...내가 왜 이딴 욕심 많은 년이랑..."
미켈의 말에 이한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반박했지만, 이미 내 관심은 그들에게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이서린의 스카웃 이후, 거의 한 달 만에 떨어진 지령.
각 팀장에게 전달하라던 그 심상치 않은 검은색의 봉투를 천천히 뜯어낸다.
....이건....? 드디어.... 그 녀석들을 보게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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