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95화. 이서린 스카웃.(4)
* * *
리펄스 베이 해변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어느 동네에 있는 작고 허름하다 못해, 낡아빠졌다라는 말과 퍽하고 잘 어울리는 다 쓰러져가는 집 앞에 도착한 나는 어느 집 지붕 위에 올라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향해가고 있는 깊은 밤이었다.
그 야심한 시각에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도망쳐온 자신의 딸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펼치는 이서린의 친모가 내 눈에는 몬스터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와 전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너!! 너!! 내가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퍼억! 퍽!
"..죄, 죄송해요..흐, 흐으윽..."
"빨리! 빨리 돌아가!! 이 더러운 년아!! 어서 가서 돈이나 벌고 오라고!!"
짜악! 퍽! 퍽!
매서운 따귀와 주먹이 쉴 새 없이 이서린에게로 쏟아졌지만, 이서린은 친모의 다리 한쪽을 붙잡고선 연신 "죄..죄송해요.."라는 말을 내뱉으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 커다란 소음에 군데군데 있던 낡은 집들에서 몇 명의 주민들이 빠져나와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려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더욱더 강하게 손아귀에 힘을 주며 구타를 하는 이서린의 친모였고, 더욱 격앙된 목소리가 그 입에서 터져 나온다.
"너! 너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네가!! 네가!! 내 인생을 망쳐놨어!! 이 더러운 년!! 창녀 같은 년아!!!"
거친 말을 내뱉으면서 점점 감정이 끝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는지, 근처에 있던 빗자루를 집어 들고서 사정없이 내려찍듯이 휘두르기 시작한다.
퍼억! 퍽! 퍽!
"...죄, 죄송해....끄으으윽..."
진심으로 죽이려는 것인지, 그 빗자루의 손잡이는 집요하게 이서린의 머리만을 노려왔다.
이윽고.
빠아아악!
지금껏 들려왔던 소리와는 조금 다른 소리가 들려오고, 이서린의 몸이 축 늘어진다.
"허억..허억..!! 도, 독한 년!! 감히 어디다 손을 대고 지랄이야!! 지랄은!!! 부정타게시리."
그리고는 바닥에 한 번 침을 뱉고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본 나와 팀원들의 눈길이 절로 이현석에게로 향한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나의 물음에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며 대답을 피하는 녀석.
shaaaaaaa...
일미의 얼굴이 그의 얼굴을 쫓아가며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그러자.
"아, 알았다고...!! 씨...씨발...저, 저 녀석은 저주받은 녀석..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다."
"...저주?"
"....그, 그래..저, 정확히는 저주는 아니지만...저 녀석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마, 말한다고..."
확실히, 이서린 본인조차도 자신과 함께 있으면 부정을 탄다고 말했었지….
"제대로 말해. 네가 알고 있는 거 모두 다."
"...크, 크윽..저 녀석은 내 여동생의 딸이야...딸이긴 한데....태어나서는 안 될..."
shaaaaa..!!
"히, 히익!!! 여, 여동생이 어릴 적에 가, 강간을 당했었어!! 그, 그리고 그 강간으로 인해 저, 저 녀석을 임신했던 거고!!! 보수적인 우리 집은 결코, 여동생을 받아들이지 않았고...결국 여동생은 부모님에게조차 버려진 거야....그, 그래서 저 녀석을 향한 증오에 미쳐버린 거고..."
대충, 이해가 되었다.
왜 이서린의 친모가 그토록 이서린을 못살게 굴며 혹독한 학대를 해왔는지.
"....그럼 말이야..부정을 탄다...부정을 탄다는 소리는 무슨 소리지..?"
"...그, 그건..여, 여동생의 부탁으로 이서린에게 접근하는 모든 녀, 녀석들을 우리가...죽여서...사고사로 위장을 했....."
"...그래서 이서린의 곁에 있는 자들은 모두 부정을 타게 되서 불운하게 죽어 나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철저하게 고립이 됐던 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떨어대는 녀석.
"...쓰레기 새끼들이구만. 죄라면, 네 여동생을 강간했던 녀석에게 물어야지. 애꿎은 녀석한테.."
나의 말에 녀석이 다급하게 몸을 버둥대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 근데 부, 부정을 타는 건 확실해..!! 처, 처음에는 우리가 만들어낸 소문인 줄 알았는데...저, 정말로 이서린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갖가지 사고를 당하거나, 갑자기 몸이 아파오는 등등의 일들이 일어났다고!! 너, 너희들도 웬만해선 절대로 여, 엮이지 않는 게 좋..커헉!!"
자신의 조카를 향해 악담을 퍼붓는 녀석의 뒷목을 강하게 후려쳐 기절시켰다.
"가자. 신입 맞이하러."
이현석의 말에도 영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팀원들을 향해 말을 하고서, 지붕에서 내려와 죽은 듯이 쓰러져있는 이서린을 향해 다가간다.
"야. 야. 일어나봐."
이서린의 몸을 툭툭 건들며 말하기를 몇 번.
"...으, 으음...허, 허억!! 죄, 죄송해요...어, 어..? 다, 당신은..."
떨리는 눈동자를 내게 고정한 이서린.
"...왜 그러고 살냐?"
"....아, 안 돼요.. 저, 저랑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부, 부정 타실...."
이서린이 말을 마치기도전에, 나의 얼굴을 그녀의 얼굴을 향해 들이밀었고, 그녀의 떨리는 숨이 내 입술에 닿는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왜? 나도 너에게 다가온 누군가처럼 뒈져버릴까 봐, 걱정돼?"
"...어, 어...그게...그러니까...부, 부정을..."
휘이이이잉
어디선가 밤바람이 불어왔고, 이서린의 얼굴 피부에 돋아난 각질이 그 바람을 타고서 어디론가로 흘러간다.
천천히 이서린의 푸석푸석한 머리칼과 그 피부를 쓰다듬듯이 쓸어내린다.
"..꼴이 이게 뭐냐, ...긴말 안 할게. 우리의 동료가 돼라. 그렇게 되면, 네가 말한 그 부정 같은 건 얼마든지...아니, 그보다 더한 것도 받아줄 테니까."
고개를 떨구는 이서린.
"...그, 그런....저, 저 같은 게..무슨..."
그간 받아온 학대의 영향인지, 매우 낮은 그녀의 자존감이 자꾸만 그녀의 손목을 붙잡는 것 같았다.
씨익.
"그럼...이건 어때?"
".......?"
"어차피, 이 썩은 동네에 머무르면서 사창가를 전전하면서 몸을 팔 거라면, 그 대신에 나에게 영혼을 팔아보는 건? 물론, 절대 후회하게 만들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지."
죽어있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흑..흐흑...어, 어째서...도대체...왜 저 따위를...."
"내게는(우리에게는) 네가 꼭 필요하니까."
그 말이 무언가의 트리거가 됐을까?
파아아앗.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성의 말이 끝나자, 평생 자신을 속박하며 억압하던 그 무언가가 깨져나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이서린이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갖 멸시와 증오, 분노, 후회, 살심을 밥 먹듯이 받아오며 살아왔던 이서린은 그냥...그냥. 자신이란 존재는 이런 감정들을 받아내는 쓰레기통과 같은 운명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항할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다. 그런 목적으로 태어난 줄 알았기에.
누군가에게 다정함이나 따스함을 받아본 적이 없어도 서운해하지 않았다. 이 세상은 원래 이렇게 차가운 줄만 알았기에.
자신을 원하는 간절함이나 필요함을 느껴본 적이 없어도 슬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안도했다. 자신으로 인해 부정을 타는 사람이 생기지 않았기에.
하지만, 지금 이 순간...그 생각이 처참히 깨져나가며 새로운 생각이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한다.
그의 말대로 왜 이러고 살았을까.
20년간 묵혀왔던 무언가가 마침내 그녀의 안 속에서 꿈틀거리며 세상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던...아니, 화를 낼 수 없었던 비참한 인생을 살아오던 20년간의 생활이 떠올랐다.
....어째서!! 내가!! 왜!!!
온몸을 잠식하듯이 빠르게 퍼져나가는 그것은 바로 화(火), 바로 천불과도 같은 아주 단단하게 농축된 화(火)였다.
....뭐, 뭐야...갑자기 왜 이래...
자신의 말에 거의 넘어온 듯한 모습을 보이던 이서린이 갑작스럽게 엄청난 기운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소름 돋는 미소와 함께 눈물을 흘려대자 당황스러움이 나를 덮쳐온다.
그 기운이 어찌나 흉포하고 살벌한지, 나와 팀원들 모두가 절로 한 발짝 물러나며 이서린을 떨리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원…. 알아봐야겠군.
눈에 힘을 집중시키고서, 【뱀의 심안】을 사용한다.
【이름: 이서린】
【나이: 20】
【크리쳐: 이무기(상위 단계로 진화중)】
【특성: 신체강화】
【속성: 불(火)】
【힘: B】 【민첩: B】
【마력: B】 【체력: B】
【고유 능력: 부정(不?)】
"............!!!"
믿을 수 없는 이서린의 상태창 정보에 절로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이, 이무기라고....?
이 몬스터의 들어온 목적이자, 이병찬과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큰 용과 관련된 그 무엇 중 하나인 이무기.
씨익.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난다.
....그래. 꼭 남자로 환생한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녀석의 모습을 알고 있는 건, 극히 일부니까.
생각을 마친 뒤, 손을 뻗어 이서린의 기억을 읽어내, 그녀가 환생한 이병찬이 맞는지 알아보려던 찰나.
눈앞에 떠 있던 이서린의 상태창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이름: 이서린】
【나이: 20】
【크리쳐: 강철이】
【특성: 신체강화】
【속성: 불(火)】
【힘: A】 【민첩: A】
【마력: A】 【체력: A】
【고유 능력: 부정(不?), 천불, 용린(?),폭풍(?風), 낙뢰(雪), 우박(雨?)】
이무기의 상위 종중 하나인 강철이로 탈피를 한 이서린이었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벌어진 입에서는 마치 독을 품고 있는듯한 보라색의 불꽃이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고 있었고, 푸석푸석했던 머리칼과 피부과 반지르르 윤기를 머금었으며, 앙상하게 말라 있던 몸이 보기 좋은 입체감을 선보이며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
또한, 이마 끝에는 사슴의 뿔과 비슷한 두 개의 뿔이 돋아나 있었고,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 그 사이를 찢고서 튀어나온 하얀색의 용과 같은 꼬리 그 끝에는 보라색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딱 하나, 눈 밑에 존재했던 검은색의 짙은 다크써클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화가...나요...화가...크으윽..."
나와 같이 세로로 길게 찢어진 보라색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우는 이서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사이코메트리】
내 손끝에서 들어오는 그녀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서, 아주 세심하게 살펴보기 시작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유아기, 청소년기를 지나 오늘 나를 만나게 된 그 날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을 살펴본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이병찬의 환생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의 삶은 온통, 심각한 학대와 무시, 고통과 체념으로 가득 찬 끔찍한 기억의 덩어리였다.
......쯧. 괜히 못 볼 꼴만 봤네.
지금 그녀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화가...나요...너무 화가.....미쳐버릴 것 같아요..흐흐흑..."
20년간 묵혀있던 그녀의 한과 화가 터진 것은 물론이고, 천불과도 같은 화에 물들어 악룡, 독룡이라 불리는 강철이의 특성을 물려받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울고 있는 이서린의 머리를 손으로 가볍게 안고서 내 어깨에 기댄 후, 그녀 귓속의 현재로선 그녀가 마다할 수 없는 한 가지 솔깃한 내용이 담긴 말을 뱉어낸다.
"..네 손으로 정리해. 너의 화(火)의 근원이 되는 것들 말이야."
부르르르.
한차례 몸을 떨던 이서린이 내 몸에 기대고 있던 얼굴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선,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이윽고, 집 안에서...
"너! 너!! 이곳이 어디라고 들어와!! 이 더러운 년....꺄, 꺄아아악!!!! 끄으으으윽..."
한차례 욕설이 들리더니, 곧 무언가에 의해 숨이 막히는듯한 친모의 고통 어린 신음이 들려온다.
쿵.. 쿵. 쿵.
쩅그랑...
각종 식기가 떨어져 내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기를 잠시.
끼이익.
낡은 집 문을 열고서 이서린이 빠져나왔고, 바닥에 쓰러져 기절해 있는 이현석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리고는 손바닥에서 주먹만 한 보라색의 불꽃을 만들어내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현석을 향해 던져버린다.
화르르륵..!!
"크, 크아아아악!!!! 뜨, 뜨거우!! 으아아아악!! 사, 살려줘!!!"
불길에 몸이 휩싸이며, 커다란 소리를 질러대는 이현석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로소, 7명의 인원을 채워 완전체가 된 6팀의 팀원들과 나는 그저 멀뚱히 불길에 타들어 가는 이현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이현석이 경악과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잿더미가 되어갈 때 쯤.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서린이 나의 왼쪽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대어온다.
"전에..부정도 그보다 더한 것도 받아준다는 말은...진심이신거죠...?"
"물론. 임무를 끝냈으니, 모두 아지트로 귀환한다."
물론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우리 팀에 들어오기로 마음을 먹었고, 환생한 이병찬도 아니었다.
미켈의 말에 따라, 이서린이 족히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새하얀 비늘을 가진 용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고, 팀원들이 차례대로 그 위에 올라탄다.
이서린의 몸에서는 보라색의 불꽃이 군데군데에서 일어나고 있었지만, 팀원들에게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팀원들이 모두 올라탄 것을 확인한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이서린이 생활했던 집 안으로 들어간다.
혹시라도 누군가 있을 수도 있었고, 증거가 될만한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서.
한차례 집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살피던 나는 좁은 거실에 쓰러져있는 이서린의 친모 시체를 보았다.
고통과 놀람으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
....그러니까, 왜 엄한데다 화풀이하고 그래. 당신 벌 받은 거야.
내 나름대로의 애도를 표하며 집안을 빠져나오려던 찰나.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시체에 다가가 왼손에 꽉 쥐고 있는 그 무언가를 알아보기 위해 그녀의 주먹을 강제로 펼쳐보았고.
"....그래도..꼴에 엄마다 이건가?"
그녀의 손에는 연고와 대일밴드 몇 개가 쥐어져 있었다.
처억.
집을 빠져나와 대기하고 있는 팀원들을 따라 이서린의 머리 위로 올라탄다.
후우우우웅!!!
곧 엄청난 바람의 저항과 함께 하늘 높이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고, 이서린의 거대한 아가리에서 보라색의 불꽃이 뿜어져 나와 자신이 살아왔던 동네를 향해 뿜어진다.
화아아아악!!!
화르르르륵!!!
주민들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거대한 불길에 의해 모든 게 삼켜져 간다.
복잡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서린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서 앞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고, 나는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연고와 대일밴드를 허공을 향해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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