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93화. 이서린 스카웃.(2)
* * *
또다시 키스타령을 하며 분위기를 한 번 전환한 미켈은 폴짝폴짝 뛰듯이 내 앞으로 다가왔고, 나와 한설화를 번갈아 보며 묻는다.
"흐으응..설마 둘이 사내 연애하는 건 아니지?"
미켈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한설화였기에, 내가 직접 나서서 그 사실은 전면부인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 분위기 파악 못 해?"
인상을 찡그리며 미켈을 향해 말하자, 자신의 뒤꿈치를 바짝 들어 올리며 나의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대는 미켈.
"저기. 있잖아. 있잖아. 오빠야말로 분위기 파악 못 해? 그렇게 큰 소리로 팀을 부정하는 소리를 내뱉은 것도 그새 잊어버린 거야?"
말을 마치고선, 뒷짐을 지고서 지그시 나를 바라보는 미켈.
한설화의 "팀이니까."라는 말을 듣고선 그 후에 소리쳤던 말들을 뜻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인 악연이 있어서 그런 것뿐이다. 너희들을 부정하는 의미는 아니었으....씨발. 뭐, 알아서 마음대로 생각해라. 쯧."
미켈의 말에 움찔해 나도 모르게 사과 아닌 사과를 하다가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나의 말에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여준 덕분에, 제법 흉흉했던 분위기가 풀어지는 것 같았다.
"자!! 그럼, 여기서 이제 간단한 자기소개나 하자구!! 계속해서, 야! 너! 이렇게 부를 순 없잖아? 그럼 미켈이부터 먼저 할게!! 안녕, 난 미켈이야! 좋아하는 건 키스고, 싫어하는 것도 키스야!"
자신의 소개를 마치고선 두 눈을 깜빡이며 팀원들을 둘러보는 미켈.
그러자..
"한설화."
아주 짧은 한설화의 소개를 필두로 녀석들의 입이 움직인다.
서로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남은 한 손으로 자신들의 모자를 벗는 두 녀석.
스르륵.
모자가 흘러내리듯이 벗겨지며 녀석들의 얼굴이 드러난다.
"......꼬, 꼬맹이...?"
처음에는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었기에, 작은 체구로 보아 당연히 여자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웬걸, 확실히 여자처럼 이쁘장한 외모의 중성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으나, 남성임이 확실한 둘이었다.
여성이나 아이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새하얀 피부에, 그와 상반되는 아주 짙은 검은색의 머리칼, 부끄러운 듯 붉게 물들인 얼굴, 작은 체구, 쉴 새 없이 떨리는 눈동자.
녀석들의 나이는 많이 쳐줘야, 고등학생 정도로 보일 정도로 굉장히 앳된 중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둘 다 말이다.
아주 판박이를 박아놓은 듯한, 둘의 모습에 내 입에선 절로 그 단어가 튀어나왔다.
"...혹시 쌍둥이냐..?"
끄덕 끄덕.
"설마 미성년자는 아니지..?"
끄덕 끄덕.
"..남자...맞지..? 둘 다?"
끄덕.
"말은 할 수 있냐?"
끄덕.
내가 말을 붙이는 와중에도 단 한 번도 나의 눈을 마주 보지 않고서,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쌍둥이였다.
덜덜덜덜.
서로 붙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하아...이름은? 최소한 이름이라도 알려줘야 할 거 아냐?"
이름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흠칫 떨어대는 쌍둥이.
그리고는 그래도 다른 녀석보단 아주 조금...정말 미세한 차이로 체구가 좀 더 큰 것 같은 녀석이 손가락으로 벽 한쪽을 가리킨다.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이 돌아가는 나와 팀원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벽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다...지...주..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힘겹게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거나, 낯을 많이 가리는 것 같았다.
....안 되겠네. 내가 직접 알아봐야지.
【뱀의 심안】을 이용해 녀석의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너무나 작고 끊기며 들려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그 말이 또렷하게 들려온다.
쳐다보지 말아 주세요.
"모두 5초만 녀석들에게서 시선을 거둬. 다른 곳을 쳐다봐."
귀찮게 왜? 라고 물어오는 이들 없이 나의 한마디에 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린다.
"...저는 이리아..제 동생은..아리아에요..."
여성인지, 남성인지 전혀 알 수가 없을 만큼 중성적인 미성이 들려온다.
"...하아...그래. 수고했다."
고작, 녀석들의 이름 하나를 듣는 것에 기력이 통째로 빨려 나가는 것 같다.
마지막 남은 인원인...버릇없는 개.
처음부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던 녀석이 모자를 벗고서 그 일그러진 얼굴을 드러낸다.
하늘색과 파란색의 그 중간 사이의 색과 높디높은 하늘을 담은 듯한 머리칼과 눈동자, 숫사슴과 같이 탄탄하면서도 날렵한 근육을 가진 몸, 짜증으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 특히나, 나와 같이 가로로 길게 찢어진 그 눈매는 보는 것만으로도 양아치라는 단어를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씨발!! 뭘 봐!!! 병신!!! 한심한 새끼들!!"
아무래도, 내 예상을 전혀 빗나가지 않은 상당히 거친 입버릇을 가진 녀석 같았다.
주위에 있는 모두를 노려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모습이 꼭 인간들에게 잡혀 온 한 마리의 야생동물 같았다.
하나같이 어딘가 한군데씩 나사가 빠진 것처럼 행동하는 녀석들의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려왔기에, 서둘러 이 유치한 자기소개를 끝내려 입을 열었다.
"됐고, 자기소개나 해. 다 필요 없고 이름만 알면 되니까. 빨리 끝내자고..."
하지만 돌아온 건, 내가 원하던 답이 아닌 사나운 야성이 들끓고 있는 맹수의 으르렁거림이었다.
"..좆까. 씨발...병신!!"
빠직.
머릿속에서 핏대가 벌떡 서는듯한 소리와 함께 나 또한 녀석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너나 좆까. 씨발같은 새끼야."
"좆까! 병신새끼야."
"너나 좆까라고, 입에 걸레물은 새끼야."
"병신!!"
"능지 박살 난 새끼가."
단 한마디도 지지 않고서 녀석의 말을 맞받아쳤다.
"씨발!! 누구 마음대로 대장이야. 난 너 같은 좆밥새끼 인정한 적도 없는데!! 병신새끼야!!"
"이 병신 같은 능지 박살 난 새끼야. 너 같은 새끼 인정 따위 좆도 필요 없는 거 너만 빼고 다 알아. 이 개 같은 새끼야."
어떻게 된 게, 제대로 된 새끼가 한 명도 없었다.
.....씨발. 제임스새끼...폭탄새끼들을 전부 이쪽으로 밀어 넣은 거였냐..
이제야 이해가 된다.
6팀을 바라보던 다른 팀원들의 껄끄러운 눈빛들이.
계속해서 거친 욕설을 주고받다 보니, 다른 팀원들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나둘씩 방을 빠져나갔고 결국엔, 나와 이 녀석만이 남았다.
씩씩.
"나중에, 제대로 서열정리 해줄 테니까, 지금은 임무에 집중한다. 알았냐, 리암...아니, 이한."
내 입에서 자신의 영어 이름과 한글 이름이 튀어나오자,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한.
"...좆까..씨발."
이미, 분위기가 흐트러졌고, 흥이 깨져버렸는지 욕설을 내뱉고서 거칠게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가는 이한.
"응. 너나 좆까. 병신아."
그렇게 우리들만의 방식대로 자기소개를 끝내고서, 각자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밤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밤이 찾아오자, 팀원들을 이끌고서 이서린이 일하고 있다는 사창가가 위치한 어느 뒷골목으로 들어선다.
아무래도, 사창가를 주된 손님은 남성들이었기에, 미켈과 한설화를 데리고서 그곳에 들어가는 건 그림이 좀 이상하다고 판단한 나는 두 사람에게 근처에 머물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뭔가, 아무리 봐도 미성년자 같은 앳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쌍둥이들까지 데려가는 게 못내 찜찜했지만, 본인들이 성인이라고 말하니 더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세 사람을 데리고 앞장서 Paradise란 글귀가 적힌 간판을 내걸고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화아아아아.
들어가는 순간 코끝을 찌르는 여러 가지의 향수 냄새에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겉모습과 마찬가지로 들어선 내부에도 오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쉽게 말해, 오래된 인테리어, 군데군데 얼룩진 무언가의 흔적들은 이곳이 그렇게 잘나간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
강남의 유흥가가 아닌, 서울 어느 외곽지역의 유흥가처럼 말이다.
내가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다급하게 달려 나오며 나를 맞이한다.
혹시라도, 내가 내부의 모습에 실망해 발길을 돌리는 것을 막으려는 것처럼.
"아이고...어서오십셔. 저희 업장을 말씀드리자면 이 리펄스 베이에서도 뭘 아는 사람들에게는 입소문이 아주 자자하게 퍼진...."
"됐고, 얼굴부터 보도록 하지."
녀석의 말을 잘라내고서, 대뜸 본론을 꺼내었다.
"허이구. 화끈하시네요. 나이도 젊으신 것 같은데...어디 부잣집 도련님이라도 되시는가?"
힐끔힐끔 내가 걸친 옷들과 시계를 바라보며 침을 삼키는 녀석.
나와 팀원들은 현재, 몬스터의 유니폼인 코트를 벗어두고서,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기에, 녀석이 두 눈에 불을 키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걸친 모든 것들은, 모두 값비싼 명품이었고, 이 모든 것들은 DMG 녀석들이 옷장 안에 준비해두었다.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녀석의 뒤를 따라, 건물의 내부 깊숙한 곳으로 걸어가자 검은 정장을 쫙 빼입은 거구의 사내들이 군데군데에서 자리를 지키며 서 있었다.
......가드 녀석들인가?
"이쪽으로 오시죠. 여기 있는 이쁜이들은 저희가 자랑하는 최고의 미녀들로 한 번 그 맛을 봤다 하면, 절대로 잊지 못해 무조건 다시 찾아오게 된다는...."
녀석이 뭐라 떠들던, 말던, 지금 그의 말소리가 나에게는 전혀 들려오지 않는다.
....어, 없다... 그 종이에 적힌대로라면...분명 이곳이 맞는데..?
어림잡아도 스무 명은 넘어 보이는 아리따운 여성들이 팬티와 브래지어만 입은 채, 유혹이 가득 담긴 미소를 우리에게로 보내오고 있었다.
"...어머, 이 오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도 잘생긴 게 엄청 티가 나는데? 호호."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나의 턱을 쓰다듬으며 빨간색의 브라와 팬티를 입은 여자가 말한다.
"..어머, 어머, 웬일이야. 정말. 여기 이 오빠 몸이 장난이 아니네? 운동 열심히 하나 보다. 후훗."
이한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교태를 부리던 여성에게 이한이 무언가의 말을 내뱉었다.
"좆까. 씨발년아. 병신!!"
"........!!!!"
이한의 반응에 황당해하고 있던,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고 온 녀석이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려던 찰나.
나는 재빠르게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서, 그의 가슴팍에 꽂아두었다.
"...대신 사과하지. 화가 많은 녀석이라.."
이서린을 찾아내기 전, 괜히 일을 벌여 이 뒷골목에 경계심을 심어주어선 안 됐다.
"..흐, 흠흠...뭐, 그,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번만큼은 특별히 제가...."
녀석이 헛기침을 하며, 툭 하고 삐져나온 지폐를 완전하게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는 그 순간.
끼이이익.
화장실로 보이는 곳에서 낡은 문을 열고서 누군가가 깨끗하게 헹궈진 대걸레를 들고서 나타났다.
".......!!!"
".......!!!"
....차, 찾았다...이서린.
나는 힐끔 뒤를 돌아보며, 세 사람에게 신호를 보낸다.
곧 세 사람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화장실의 청소를 끝마친 듯한 이서린을 아주 쓸모없는 무언가를 보는듯한 눈으로 쳐다보는 녀석에게 묻는다.
"..저 여자로 하지. 가능하겠지?"
나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저, 저년...아, 아니, 저 여자 말입니까?"라고 되묻는 녀석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얀색 머리카락에 대한 패티쉬가 좀 있거든. 내가."
씨익.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며 두 눈에 끈적한 욕망을 가득 담아내기 시작했고, 곧 내 연기에 홀딱 넘어간 녀석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서린이 들고 있는 대걸래를 뺏어 들더니, 말한다.
"...흠흠..귀, 귀하신 분이니..잘 대접해 드려라. 너, 너 같은 것의 처음을 받아주시는 인자한 분이시니까."
녀석의 말에 깜짝 놀란 이서린은 나를 두려운 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푸석푸석한 머릿결,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깡마른 몸, 지독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만 같은 그 모습은 내가 찾던 이서린의 모습과 제대로 일치했다.
히죽.
불안에 떠는 이서린을 보며 말한다.
"뭐 해? 안내 안 하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