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91화. 미켈(2) (6팀)
* * *
그 혀에 새겨져 있는 글귀를 보자 온몸이 오싹오싹 거리며 머릿속에서 위험을 알리는 경종이 마구 울려댄다.
그 순간.
타앗.
작은 체구를 가진 탓에, 자세가 불편한지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서 나의 허리를 두 발로 감싸 양손으로 나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자신이 편한 자세를 잡는 미켈이었다.
나의 턱을 잡아당기며 나의 머리를 밑으로 끌어내리던 전과는 달리, 이제는 나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미켈의 얼굴이었다.
"...키스....하자..?"
부끄러운 듯, 옷 소매로 자신의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말을 내뱉던 미켈이 별안간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소매를 치워버림과 동시에 나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주르르륵.
토옥..토오옥...
날카롭게 돋아난 이빨들 사이로 침이 흘러 내려와 미켈의 턱을 따라 나의 입으로 떨어져 내린다.
벌어져 있던 입속으로 미켈의 침이 떨어지자, 내 입속에서는 조금 전에 느꼈던 머스켓의 향기가 알싸하게 퍼져나간다.
달콤하다.
너무나 가벼웠다.
마치, 한시아의 고유 능력인 【운명】이 발동되기 전과 같은 한시아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한 미켈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나의 얼굴을 박살 내려는 그 죽음의 키스를 자연스럽게 받아줄 뻔했다.
미켈의 침은 다정함이나, 나에 대한 욕구가 만들어내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끈적이면서도 달콤한 맑은 침은 맛있는 먹잇감을 눈앞에 둔 포식자들이 흘려대는 그것과 상당히 비슷했다.
휘리리릭.
퍼뜩 정신을 차린 뒤, 일미를 이용해 가냘픈 미켈의 허리를 감싸고서 그대로 벽을 향해 던진다.
쐐애애액.
바람의 저항을 받으며 날아가던 미켈의 몸에서 공기가 잘려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공중에서 제비를 몇 바퀴 돌아 가볍게 벽을 박차 지면에 톡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는..
"꺄아아아악!!! 뭐야 뭐야 뭐야..으흐흐흥..벌써 부터 속박 플레이야? 꺄아아..어쩜 좋아..히힛.♡"
아무리 마지막 순간에 미켈의 얼굴에 한시아가 겹쳐 보여 적당히 던졌다지만, 너무나도 손쉽게 착지를 하는 미켈을 보고 있으니 정말로 내가 팀의 이름과도 똑같은 괴물들의 소굴에 들어왔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진다.
"....됐고, 얼른 안내나 해."
입가에 묻은 미켈의 침을 소매로 닦아내고서, 떨어져 있는 가방을 주워 어깨에 걸친다.
"으흐흥~ 좋아. 시간은 많으니까. 히힛."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새빨간 혀를 이용해 입술에 묻은 자신의 침을 닦아내며 진한 아쉬움을 토해내는 미켈.
그러더니, 곧 작은 체구와 마른 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빵빵한 엉덩이를 씰룩이며 앞으로 걸어 나간다.
왠지 모르게. 그 검은색의 돌핀 팬츠가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나였고, 미켈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3층 복도 끝에 있는 어느 방문 앞에 도착한 미켈은 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히죽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그 방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히죽거릴 때 이런 느낌을 받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지만, 작게 고개를 젓고는 방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던 찰나.
끼이익.
내게 배정된 방 반대편 쪽에서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서 휘적휘적하며 걸어 나온다.
딱 봐도 헌 성깔 하게 생긴 그 녀석은 처음 보는 내 얼굴을 보고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내 옆에서 히죽거리고 있는 미켈을 바라보자 "으, 으음...." 하는 침음을 내며 슬쩍 뒷걸음질을 친다.
그리고는 아침부터 재수 없는 걸 봤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선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뭐야, 왜 저래?
확실히 미켈을 보고선, 얼굴을 찌푸린 녀석이었다.
....사이가 안 좋은가?
나 역시, 미켈과의 첫 만남에서 그녀가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었기에, 이 안내가 끝나면 그녀와의 연(?)을 무시할 생각이었다.
그 타이밍 마침 지금이었다.
"이제 그만 가지 그래? 확실하게 방 안내받았으니까."
"뭐, 어때? 오빠가 원한다면, 방 안에서 우리 둘이서 할 수 있는 그런 일도, 미켈은 할 수 있다구? 뭐, 예를 들면 키스라던가? 키스라던가? 키스라던가? 히히힛.♡"
"...미친년..."
같은 말을 세 번 이상 반복하는 미켈을 지나쳐 문고리를 확 돌리고선 그대로 방으로 들어간다.
왠지 모르게 뒤에서 묘한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재빠르게 방문을 닫던 찰나.
아직 덜 닫힌 방문 사이로 기이한 눈빛을 보내오던 미켈이 두손을 자신의 엉덩이 근처로 가져가 뒷짐을 지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
"좀 이따 봐. 오빠~ 으흐흥."
쾅.
방문을 거세게 닫는다.
....지랄도 풍년이다. 이년아.
속으로 욕을 내뱉고는 고개를 돌려 방을 둘러본다.
....뭐, 별다른 건 없네.
레드문 아카데미에서 사용하던 개인 숙소와 다를 게 없었다.
적당한 사이즈의 침대, 책상,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샤워실.
지금 이곳이 레드문 인지, 몬스터란 녀석들의 아지트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침대에 다가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꾸욱 누르며, 복잡한 심경을 털어내려는데….
똑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온다.
....노크..? 누구지...? 내 방을 찾아올만한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런 의문을 가지고서, 침대에 푹 기대어 드러눕고 싶어 하는 몸을 움직여 문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끼이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오고...
".......!!!"
"..방 구경은 잘했어? 오빠?"
씨익.
미켈이 양손을 뒷짐을 지고 있던 상태 그대로 나를 반기며, 말을 걸어온다.
"...너...뭐 하자는 거야? 설마 진짜 방 안에서 키스라도 하려는 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하고 있는 도중에, 미켈이 말을 싹둑 자르며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오른쪽 눈을 살짝 밑으로 내리며 죽음의 키스라는 글귀가 적힌 그 새빨간 혀를 쭈욱 내민다.
"바~보~ 오빠는 아주 머릿속이 야한 생각으로 가득 찼구나? 키득키득. 내가 맡은 안내는 오빠를 방에 안내하고서 다시 제임스에게까지 돌아가는 것 까지거든? 오빠도 참, 웃기다니깐? 뭐, 오빠가 정말로 원한다면 키스 정도는 해줄 수 있지만 힛.♡"
...당했다.
"하아...알았으니까, 앞장서. 그 좆같은 주둥아리 놀리지 말고."
콰앙.
거칠게 방문을 닫고선, 어서 안내하란 듯이 미켈을 노려본다.
"네~ 네~ 갑니다~ 간다구요~"
키득거리는 웃음을 멈추지 않은 채, 소풍을 가듯이 펄쩍펄쩍 뛰며 앞으로 나아가는 미켈.
그 모습을..아니, 정확히는 엉덩이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는 미켈이 입고 있는 돌핀 팬츠를 바라보던 난 왠지 모르게 미켈에게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이 강하게 왔다.
....그나저나 뭔가 느낌이 되게 닮았네. 뭐, 분위기는 완전히 틀리지만.
쭉쭉빵빵한 한시아가 아닌, 예전의 그 겁 많고 소심했던 가냘픈 한시아의 모습을 떠올리고선 피식 미소를 지었다.
미켈을 따라, 다시 거의 모든 인원이 모여있는 1층의 홀에 도착한 나는 내 귀로 들려오는 말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내 앞에는 제임스가 자신의 손에 들린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글귀를 읽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저 녀석....아니, 미켈을 데려가라 이 말이지?"
"그래."
촤르륵.
간단한 대답과 함께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녀석의 손과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좀 이따가 보자고 했잖아."라고 말하는 미켈.
"...그리고 저 뒤에 있는 녀석들이 내 팀....6팀에 배정받은 나와 같은 신삥들이고?"
"맞다."
제임스의 대답에 고개를 돌려 미켈의 뒤에서 각양각색의 느낌을 풍겨오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신입이라는 타이틀이 퍽 하고 어울리는 녀석들은, 느긋하거나, 삐딱한 자세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팀원들과는 달리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었다.
...괜찮았다. 나 또한 오늘 막 들어온 신입이었고 같은 처지였으니, 하지만....
"마지막 팀원 한 명은 내가 팀원들을 직접 이끌고 가서 스카웃을 해와라?"
"그래. 녀석들의 지령이다. 너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들에게 너에 대해 꽤나 후한 점수를 줬거든. 우리가."
그다음은 알아서 생각하라는 듯, 말을 아끼는 제임스.
요컨대, DMG라는 녀석들에게 나에 대해 후한 칭찬을 했고, 그 말을 들은 DMG의 녀석들이 나의 실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밑도 끝도 없이, 확인하려 드네?"
빠드드득.
아무래도 수많은 것에 의심이 많은 족속들인 것 같았다.
"좋아. 씨발. 까라면 까야지. 위치는? 목표는 누군데?"
녀석들이 나를 직접 스카웃하러 왔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녀석들과 같이 나의 팀인 6팀에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될 누군가에게 스카웃을 하러 가야 했다.
"그렇게 화내지 않아도 돼.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위치는 홍콩이다."
"...홍콩? 중화권 사람인가?"
나의 말에 제임스가 페이지를 넘기던 손가락을 움직여 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너와 같은 한국인, 이름은 이서린. 신수의 혼을 가진 녀석이다. 자세한 건 직접 알아보도록 하고, 지금 당장 출발해."
제임스는 말을 마치며, 종이로 이루어진 검은색의 봉투를 내게 휙 하고 던진다.
터억.
검은색의 봉투를 받아든 나는 작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미켈과 그녀의 주변에 서 있던 녀석들에게 다가가 "지금 바로 출발한다."라는 말을 하고서 녀석들을 바라본다.
몬스터에 소속된 인원들이 검은색의 긴 코트를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녀석들은 모두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그 얼굴을 볼 수가 없었지만, 나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으흐흐흥...자, 여기 오빠 옷."
미켈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자신들이 입은 것과 똑같은 코트를 들이밀었고, 내 손은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내, 입고 있던 레드문 아카데미의 제복 상의를 바닥에 벗어던지고서, 코트를 입는다.
"...출발. 인사는 가면서 한다."
팀원들을 가로질러 앞장서 대저택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내 뒤를 따라 6팀에 배정된 팀원들이 쫓아온다.
오늘 막 들어왔지만, 한 팀의 리더가 되어 자신들의 팀원들을 이끌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사이비의 모습을 지켜보던 제임스에게 곁에 있던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봐. 제임스. 저 팀 정말 저대로 괜찮은 거야?"
그의 이름은 파이슨.
몬스터란 팀에 존재하는 6개의 팀 중에서 제임스가 직접 이끄는 1팀에 소속되어 있는 상태였다.
"...글쎄.. 안 괜찮겠지."
제임스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파이슨이었다.
오늘 들어온 사이비가 이끄는 6팀에 소속된 인원들은 모두 어딘가 하자가 있는 인원들이었다.
원래는 이 몬스터란 팀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인물들.
스카웃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으나, 무언가의 문제로 스카웃을 포기했던 하자가 있는 인물들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 한 명, 단 한 명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그렇게 스카웃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던 이들이었지만, 사이비가 몬스터에 합류하게 되자 제임스와 각 팀의 수장들이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이들을 모두 데려온 것.
그리고는 그들 모두를 사이비가 이끄는 6팀에 밀어 넣었다.
그랬기에, 6팀을 보는 다른 팀원들의 눈길은 그다지 곱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몬스터에 합류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같은 팀원의 얼굴을 먹어 치워버린 미켈은 모두에게 있어 기피 대상이었다.
특히나, 미켈의 몸을 음침하게 바라보던 남자들에게는 더더욱.
물론, 얼굴을 뜯어먹힌 녀석이 미켈의 몸을 더듬으며 성적인 희롱을 한 것은 죽어 마땅한 일이었지만.
"...뭐, 알아서 하겠지. 헬렌이 인정한 순수 악(?) 그 자체인 녀석이니까. 적어도 악(?)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자들에게 휘둘리진 않겠지."
"...마, 만약 휘둘리게 된다면...?"
파이슨의 질문에 제임스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창밖을 응시한다.
그리고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임스가 읽고 있던 책을 탁하는 소리와 함께 덮는다.
"간단한 일이야. 스스로의 자격을 증명해 보이지 않는다면…. 여태껏 그래왔듯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되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