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인 아카데미의 NTL 왕이 되다-85화 (85/102)

〈 85화 〉 84화. 지옥, 그 끝에서.

* * *

­ 또옥. 또옥.

맑은 물방울이 우둘투둘한 천장에서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낸다.

사람들에게 관광이 허용된 인위적인 동굴이 아닌, 제각각 다른 크기를 가진 뾰족한 종유석이 어지럽게 널린 그 동굴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동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동굴의 깊숙한 곳에는 넓은 공터와 같은 장소가 있었는데, 그 주변에 생겨난 뭉툭한 바위 따위에 앉아있는 수많은 인원들이 있었다.

어림잡아도, 30~40명은 될 듯한 인원.

그들은 모두, 얼굴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모자(후드)가 달린 로브와도 같은 긴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 코트의 뒤, 즉, 코트를 입은 인원들의 등 뒤에는 머리가 4개 달린 용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모두가 코트에 달린 커다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기에, 정체를 알 수가 없었지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내 무언가의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드디어 녀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중심에 앉아있는 5명의 인원들 중 누군가가 입을 열자.

­ 끄덕.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들.

"저번 L.A 습격으로 인해, 이제 전 세계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지. 그에 맞춰 우리에게도 지령이 떨어졌다."

"크크크큭...드디어 우리도 활동을 개시하는 건가?"

"이만한 인력을 모아놓고 무작정 대기라니, 하마터면 뛰쳐나갈 뻔했다고..큭큭."

지령이라는 말에 대부분이 따끔따끔한 기운을 피워올리며 모자 밑으로 드러난 입가를 쭈욱 찢으며 미소를 짓는다.

"조용."

제일 먼저 입을 열었던 누군가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나섰고, 곧 그의 말이 동굴을 울리자 순식간에 장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이봐, 제임스. 그 지령이라면...그걸 말하는 거 맞지?"

누군가가 말을 하며 자신의 모자를 벗었고, 곧 그의 얼굴이 드러난다.

황금빛의 약간 곱슬기가 있는 머리칼과 푸른 눈을 가진 그의 외모.

그는 바로 제임스와 함께 몬스터 1팀에 소속된 루이스였다.

루이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제임스.

"맞다. 지금부터 우리는 고대의 혼과 신수의 혼의 사냥을 시작한다."

기이한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며 동굴을 가득 채워나간다.

제임스와 루이스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팀, 몬스터는 팀원 모두가 DMG에 소속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소속이 되어있을 뿐, 그들 DMG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자신들이 실천하고자 하는, 아니 자신들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상을 위해 그들의 힘을 보호막으로 삼아 이용하기 위해 DMG에 스스로 몸을 던진 자들이었다.

또 이들이 이렇게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만남을 갖는 이유는 자신들의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자신들을 감시하는 DMG 녀석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다.

그 예로, 몬스터의 팀원 중에서 특별한 능력을 갖춘 누군가가 이 동굴 전체에 무음의 결계를 쳐놓은 상태였다.

그녀가 이 결계를 거두지 않는 이상, 그 어떤 누구도 아무런 소음이나 소리를 잡아낼 수 없을 것이다.

DMG 녀석들과는 가는 길이 비슷했지만, 그 끝에 있는 목적은 전혀 달랐기에 적당히 방패로 삼고서 기회를 본 뒤에 거사를 치를 계획.

혹시나 만약에라도, DMG 녀석들이 자신들의 계획을 알아차린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제임스였다.

이곳에 있는 인원 모두가 경험치는 조금 딸리지만, 세계 각국에서 한가락은 한다는 녀석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 많은 인원이 몬스터란 팀에 합류하게 된 이유는 그들 모두가 싸움에 미친 전투광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인간성이나, 양심, 죄책감 등등은 그들의 미친 투기와 호승심 앞에선 아무런 짝에도 쓸모없는 그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제임스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2팀, 3팀, 4팀, 5팀의 리더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래대로라면, 각 팀마다 따로 움직여 행동하겠지만, 첫 실전에 대해 불신으로 가득 찬 그 녀석들은 일종의 테스트를 거치려는듯 해. 모두가 함께 움직이라는 지령이 내려졌다."

제임스의 말에 또 한 번 분위가 술렁이며 반감을 드러내는 이가 생겨나자.

"잊지 마라. 우리는 철저하게 놈들을 속여야 한다. 첫 지령부터 반감을 드러내며 제멋대로 움직이면 녀석들에게 신뢰를 얻어내기란 불가능하겠지. 그렇게 되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절대 오지 않을 거다."

­ 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더는 대놓고 반감을 드러내는 이는 없다.

"시간은 2주 뒤, 장소는....스타포스 국립 아카데미, 목표는..."

천천히 DMG 녀석들에게 받은 지령을 읊조리던 제임스는 별안간 찬란한 황금빛이 동굴의 내부를 가득 채우자 말을 멈추고선 누군가를 바라본다.

"..제, 제임스!!! 저, 저 빛은..."

"...알고 있다. 저 빛은 분명...."

제임스와 루이스의 시선이 향한 곳은 검은색의 긴 생머리를 가진 여성이자, 자신들과 같은 1팀에 소속된 헬렌이었다.

그녀가 두 눈에서 황금빛을 흩뿌리는 상황은 단 한 가지였다.

.....무언가의 미래를 보고 있군.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두커니 서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미래를 내다본 헬렌이 맑은 땀으로 흠뻑 젖은 채 거친 호흡을 내뱉는다.

헬렌의 두 눈은 이미 황금빛이 사라졌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던 헬렌이 입을 연다.

"...후우....계획을 수정하는 게 좋겠어요."

계획 수정이라는 말에 제임스의 미간이 좁혀진다.

.....계획을 수정해야 할 만큼 강한 적이 나타난다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이유가 뭐지? 헬렌? 우리가...아니, 이토록 많은 우리 팀원들로도 감당할 수 없는 녀석이 나타나기라도 하는 건가?"

마음속은 초조함으로 물들고 있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묻는 제임스의 말에 헬렌은 작게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건 아니에요."

헬렌의 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킨 제임스를 대신해 루이스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그럼? 뭐 때문에 그러는 건데? 뭐, 운명의 낭군님이라도 찾아낸 거야?"

루이스의 말에 정색 아닌 정색을 하며 대답하는 헬렌.

"....영입 건입니다."

뜬금없는 헬렌의 말에 당황한 건, 제임스와 루이스 둘뿐만이 아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헬렌. 이미 우리의 팀은 완벽하다고. 이만한 전력이면 1세대의 거물들을 죽이는 것도 가능할 텐데?"

루이스가 자부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하며 주위의 녀석들을 바라본다.

"....선이 0 악이 100, 그런 수치는 처음 봐요. 그는 우리와 같은 악(?)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 따위가 아니에요. 그는...그는...악(?)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예요."

그녀의 말에 곳곳에서 헛숨 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에 있는 인원들은 모두 헬렌이 보는 선악 수치를 통해 선별되었다.

그리고 그 선별된 인원들 중에서도 악(?)을 행함에 있어, 전혀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팀이었고, 이 팀원 중에서 가장 높은 악의 수치를 가지고 합류한 녀석도 선이 19 악이 81이었다.

"호오....그 놈 그거 참...인재네..."

진심으로 감탄을 하며 말을 하는 루이스.

"무력은? 악의 수치가 높다고 하더라도 결국, 중요한 건 무력이다."

제임스 역시 놀랐지만, 이내 눈빛을 가라앉히며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최소.. 팀장급.. 한 팀을 충분히 이끌어 갈 수 있을 정도예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요."

".......!!!"

.....데려와야 했다. 아니, 데려와야 한다.

제임스의 머리를 울리는 단 한 가지의 생각.

"좋아. DMG 녀석들에게는 루이스, 네가 잘 말해 둬. 좋은 물건이 잘하면...아니, 100% 들어올 거라고."

그의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쉬는 루이스였지만, 이내 "맨날 짬 처리냐." 라고 툴툴대고선 고개를 끄덕인다.

"첫 사냥은 불발로 돌아갔지만...대신, 팀원 모두가 신입을 영입 하기 위해 움직인다."

제임스의 말에 불발된 첫 사냥에 실망감을 내비치던 인원들이 언제 그랬냐는듯 씨익 웃는다.

"...이거 아주 기대가 되네. 악(?) 그 자체인 녀석이라니, 생각만 해도 온몸이 짜릿짜릿하다고...큭큭."

"그러게 말이야. 어떤 놈일지 아주 궁금해 죽겠어."

"헬렌, 시간과 장소, 그리고 후보자의 신상은 어떻게 되지?"

제임스 또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고.

"시간은 10일 뒤, 장소는....아카랜드, 목표의 이름은...사이비입니다."

"..........!!!"

사이비, 옐로우게이트의 영웅이라 불리며,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찬양을 받는 그 젊은 영웅.

그가 목표라는 말에 동굴 내의 인원들의 입꼬리가 쭈욱 찢어진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도 더 재밌게 돌아가겠는데?"

누군가 그리 말했고, 곧 그의 말은 모두에게로 퍼져나가며 같은 생각을 심어준다.

"..영웅에서 악당이라..."

왠지 너무나도 든든한 동료가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제임스였다.

세계에서 가장 춥다는 지역인 북극의 바람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한의 한기가 온몸으로 침투하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한다.

"으,으으, 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지옥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한기에 온몸이 얼어붙다 못해, 온몸이 붓기 시작했고 그 정도를 뛰어넘어 점점 불어나며 몸이 팽창되기 시작한다.

­ 크, 크아아아아악!!!!! 이, 이 미친 새끼야!! 너, 너 때문에 내가..으으으으 딱딱딱딱..!!

머릿속에서 탐의 원망어린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곧 녀석도 나와 똑같이 그저 "으으으, 으으으" 하는 소리를 낼 뿐, 그 어떠한 말도 들려오지 않는다.

마치, 몸에 바람을 넣듯 점차 팽창되던 몸이 곧 터질 것처럼,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으으으..."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아니, 나오지 않았다.

혀는 이미 수천 개의 실금이 가 부숴져 내려 지옥의 찬바람에 휘날려간 지 오래였다.

정말, 그냥 기절이라도 해서 얼른 이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건만, 이놈의 지옥은 절대로 정신을 놔버리게 두지 않았다.

기절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맨정신으로 이 지옥 같은 경험을 끝내야 하는 것이다.

그 순간.

­ 쩌저저정. 파치이잉!

풍선 인형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몸이 터져나가며 얼어붙은 근육과 내장, 속살들이 쏟아져 나간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미 나의 몸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잔해들은 붉은색의 얼음결정이 되어 주변에 떨어져 내렸고, 그 잔해들을 제법 커다란 붉은 연꽃 모양을 만들어내었다.

"...으....으으..."

그러자.

【팔한지옥의 마지막 지옥인 마하발특마(????)의 모든 지옥을 끝마쳤습니다.】

【육도윤회의 모든 시련은 통과하셨습니다.】

【시련의 보상으로 육도윤회의 힘이 주어집니다.】

【제 1도 지옥도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 2도 아귀도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 3도 축생도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 4도 수라도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 5도 인간도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 6도 천상도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육도의 힘을 터득해, 사용할 수 없는 능력치가 삭제됩니다.】

【능력치 마력이 삭제됩니다.】

【능력치 도력이 삭제됩니다.】

【능력치 마력이 삭제되어, 하급 독 속성 마법이 자동으로 삭제됩니다.】

【육도의 힘을 터득해, 새로운 능력치가 주어집니다.】

【능력치 육도력이 생성됩니다.】

【제 1도 지옥도를 터득함에 따라, 고유 능력 【지옥안】이 생성됩니다.】

【제 4도 수라도를 터득함에 따라, 고유 능력 【수라의 육체】가 생성됩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길고 긴 길라의 음성이 드디어 끝이 나고.

붉은 연꽃의 모양을 만들어내며 터져나간 육체의 잔해들이 한데 모여들며 새로운 나의 육신을 만들어낸다.

그 기묘한 감각에 몸을 맡긴 채, 초점이 잡히지 않는 정신을 일깨우기 시작한다.

.....드디어....드디어.....

오랜 시간, 지옥의 고통을 숨을 쉬는 매 순간마다 느껴서 그런 것일까?

너무나도 평화롭고 고통한점 없는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 아닌 꿈만 같았다.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떠돌았을까, 사실은 이 모든 게 한낱 꿈이 아니었을까, 지금 이 순간도 어느 지옥에 빠져 환상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한 생각이 자꾸만 머리를 맴돌았다.

그때.

어느새 육신의 복원이 끝났는지, 머리를 슥 들이밀며 나를 바라보는 일미 녀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꿈은 아닌 것 같네.

일미 녀석들의 시야로 보이는 내 모습을 보고선, 확신했다.

지금 이 순간은 절대 꿈이 아니라는 걸.

새하얀 머리칼, 뱀과 같이 쭉 찢어진 날카로운 눈, 차가운 인상의 느낌을 강하게 주는 외모,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내 얼굴이 맞았으나,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반듯한 이마 한가운데 세로로 누운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눈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마치,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군가의 모습과 상당히 닮았다.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대한민국의 신수, 삼목구(三??)의 크리쳐를 가진 그녀…. 언젠가 한 번 보았던 그 모습과 흡사했다.

물론, 그녀의 이마에 생겨난 세 번째 눈은 상당히 고귀하고 청명한 느낌을 주었고, 내 이마에 생겨난 세 번째 눈은 그것과는 반대로 보기만 해도 절로 두려움이 일어나게 만드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또한, 내 왼쪽 손등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팔열지옥의 고통을 떠올리게끔 만드는 커다란 붉은 연꽃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고, 반대쪽 오른쪽 손등에는 그와 대비되는 푸른색 연꽃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멍하니 새롭게 변한 나의 모습을 지켜보는 도중.

몇 년...아니, 몇 십년...아니, 백 년....?

내가 느끼기로는 영겁과도 같은 시간을 함께하고 똑같은 고통을 느끼며, 모든 시련을 끝내게 된 오늘까지도 매 순간순간에 나에 대한 온갖 욕설을 퍼붓던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야 이 놈아!!!

­ ....이, 이게 정신 안 차려? 이 미친 새끼야!!!

­ 허허...이거 아주 넋이 나갔네. 나갔어. 꼴 좋다.. 한심한 놈.

녀석의 목소리에, 몽롱함에 취해있던 정신이 화들짝 놀라며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큭큭... 뭐래, 울보 새끼가... 매초 마다, 아프다고, 뜨겁다고, 춥다고 징징거리던 새끼가...주둥이도 놀리고...많이 컸네?"

­ 히죽.

견디질 못할 고통에 이따금씩 정신이 나가버려 실성한 웃음 흘리던 것을 제외하고서, 정말..정말..오랜만에 자의적인 미소가 지어진다.

...정말로 끝이야. 정말로 버텨냈다고..

"하, 하하하.....큭...하하하하하!!!"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팔대지옥을 모조리 끝마쳤다는 걸.

­ ...지, 진작에 미친놈인 건 알았지만....무서울 정도로 미친 또라이 새끼였구만?

그렇게 한참을 이 지옥이 떠나가라 웃어대던 난 깊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탐(?)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 부우우욱.

내 오른쪽 손바닥에서 새까만 그림자 덩어리가 흘러나오더니,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검은색의 슬라임이 튀어나온다.

­ 히죽.

"...뭐? 한심한 새끼...? 미친놈....?"

왼손을 딱밤 자세로 만든 후, 그 슬라임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탐을 향해 조준한다.

탐은 안간힘을 쓰며 나의 몸속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이제는 진짜 나의 힘에 불과한 녀석은 결코 내 의지를 거슬러 몸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 ...이, 이거 놔라... 지, 지금이라도 나를 돌려보내 준다면....기, 긴 세월을 함께한 정으로 요, 용서해줄 테니...

"그동안은 이 고통 속에 허우적대느라, 교육을 못 시켜줬다만....이제 서열 정리는 제대로 해야지..? 안 그래? 따까리?"

도발적인 나의 말에 아직도 누가 주인이고, 종인지 분간을 못하는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 ...네, 네 이노오옴!!! 따, 따, 따까리라고 불렀겠다!!! 겨, 결코 네 놈을 용서치....크허어억!!

­ 팍!!!

녀석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날아간 딱밤이었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짧은 신음을 내뱉은 탐이 두 눈을 감고서 녹아내리듯이 퍼진다.

기절한 탐을 다시 몸속으로 돌려보낸 난 이제 좀 조용해짐을 느끼고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아주 오랜 시간, 나와 이 지옥을 같이 보낸 탐은 이미 나의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만약, 녀석이 내 몸속에 있지 않았더라면, 난 정말 이 고독하고도 고통스러운 지옥을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미우나, 고우나, 생사를 함께 하며 같은 시간을 보내온 녀석은 어느새 내게 있어서 중요한 무언가가 되어있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서열 정리는 확실히 해야지. 어디서 개새끼...아니, 슬라임 새끼 주제에 기어오르려 들어?

"길라야."

스트레칭을 끝낸 난 아주 오래된 것만 같은...자욱한 먼지가 덮인듯한 낡은 기억 속에서 내가 이곳에 왔던, 와야만 했던 이유를 떠올리고선 길라를 불렀다.

【네.】

­ 씨익.

"나가자. 더 많은 업보(??)와 죄악(??)을 쌓으러."

【5초 후에, 팔대지옥에서 벗어납니다.】

이 지옥의 시련을 끝내고 나서 얻은 육도의 힘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더는 이곳에 1초라도 더 발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더이상 멍청하게 운명이나, 남들에게 휘둘리지도, 비굴하게 굴지도, 겁먹은 개새끼처럼 굴면서 짖지 않아.

특히나, 이병찬과 그 빌어먹을 새끼를 옹호하는 신이란 새끼들...

­ 빠드드득.

이제는, 그들에게 내가 지옥을 보여줄 차례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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