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83화. 변화하는 세계. (2부 시작.)
* * *
지옥.
흔히들 말하는 지옥은 육도중 하나인 지옥도의 팔대지옥이 대표적이었다.
팔대지옥에는 팔열지옥, 팔한지옥이 존재한다.
팔열지옥은 말 그대로, 아주 뜨겁고 강한 열기로 죄인에게 벌을 주는 지옥이었고, 총 8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각 층마다 16개 이상의 소지옥이 따로 존재하며, 그 숫자를 모두 합치면 총 138개의 지옥이 이곳에 떨어진 죄인들을 반겨주었다.
팔열지옥과는 반대로 팔한지옥은 아주 차갑다 못해, 온몸이 성둥성둥 잘려 나갈 것만 같은 극심한 한기로 죄인들을 벌하는 지옥이었고, 팔한지옥 역시, 각 층마다 16개 이상의 소지옥이 존재하고 있다.
※
새까맣게 타들어 가 거뭇거뭇하게 변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뼈들로 이루어진 높은 경사를 가진 벼랑 끝.
그 벼랑 끝에 서 있는 누군가는 바로 나였다.
화르르르륵!!
아무리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그 끝을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따금씩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지옥의 불길만이 그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반겨준다.
...크으...폐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아...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이 정도라니...
덜컥 겁이 난다.
화르르륵 거리는 지옥의 불소리에 담긴 망자들의 비명이 더욱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절로 뒷걸음질이 쳐지려는 찰나.
빠드득.
이곳에 들어오기 전 다짐했던 나의 목표를 떠올리고선 완전한 벼랑 끝으로 나 자신을 몰아세웠다.
【육도윤회의 시련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덜덜덜덜..
애써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니, 끄덕이기 직전.
크, 크아아악...이, 이 열기는..!!
나의 몸에서 추방되어, 뒤졌던가, 어디론가로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던 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온다.
시련을 바로 시작하려는 마음을 잠시 멈춰 세우고선, 녀석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그것도 내 몸 안에서 말이야."
사,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인간! 빌어먹을...."
"뭔 소리야? 살아있는 게 아니라니...? 그럼 네가 뒤지기라도 했다는 거야?"
이죽거리며 말을 하자, 녀석은 고함을 크게 한 번 지르더니 잔뜩 빈정이 상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내 이름은 탐(?) 모든 걸 집어삼키는 존재이자, 식탐(??)의 재래(??)이다. 즉 나와 같은 힘을 가진 네게.....크윽...빌어먹을....삼...삼켜졌다는 이야기...다.
뒤로 갈수록 소리가 작아지더니, 끝에 가선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이듯 말하는 녀석.
"삼켜졌다면...나의 일부가 됐다는 소리겠지?"
....크으윽....그, 그렇다... 세상을 집어삼킬 위대한 이 몸이 고작 일개 인간 따위에게.....수모도 이런 수모가 없다!!
만약,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녀석의 존재가 상당히 껄끄러웠을 테지만, 이 험난한 가시밭길을...아니, 지옥의 불로 달구어진 쇠꼬챙이 밭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지금, 나름대로 말동무가 생긴 것 같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또한, 나와 상당이 비슷한...아니, 녀석의 말대라면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탓에 편견을 벗어던지고 녀석을 받아들이니, 무척이나 오래된 친구를 보는듯한 그리움마저 느껴진다.
"뭐, 됐어. 내게 흡수가 됐다면, 나의 종으로써 잘 살아가도록 해."
네, 네 이놈!!!! 조, 종이라고 했단 말이냐!!! 아, 아니...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 얼른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라.
크게 흥분하며 소리를 지르더니, 또다시 저자세로 나오면 태세를 바꾸는 녀석.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 그건....내,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이 지옥을 빠져나왔는데!! 또, 또다시 이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란 것이냐!!
싱거운 이유였다.
피식.
"그거 참 안 됐네. 난 꼭 이 지옥에 떨어져야 하거든."
허, 헛소리!! 이 지옥은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그런 만만한 곳이....
"어차피 나는 언젠가 이곳에 또 한 번 와야 해."
...그, 그게 무슨...
"이번 시련으로, 지옥의 시련과 고통을 받으며 내 업보(??)와 죄악(??)을 모두 씻어내게 되면....그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이거든. 지금의 업보(??)와 죄악(??)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피로 얼룩진 삶을 보낼 테니까. 지옥에 다시 오게 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냐?"
나의 말에 말문이 턱 막힌듯, 잠시간 말이 없던 녀석은.
....미, 미쳤군...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친놈이야..
"뭐, 좋았으면 추억, 나빴으면 경험 아니겠냐. 좋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귀한 경험했다고 치자."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겁에 덜덜 떨리던 혼자였을 때와는 달리, 탐이라는 말동무가 생기자 그 두려움과 겁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 같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추억도 경험도 함께 쌓는 거지."
그, 그만둬라!! 이, 미친 인간아!! 아, 아니 이 미친 새끼야!!
"길라. 지금부터 시련을 시작한다."
씨익.
입가에 진한 미소를 피워올리고 난 뒤, 더이상 내디딜 곳이 없는 허공을 향해 몸을 던진다.
그리고는 양팔을 최대한 크게 벌린 뒤, 나의 몸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었고, 나 자신 스스로가 인간 십자가가 되어 나의 모든 업보와 죄악을 짊어지고서 불지옥으로 가라앉는다.
머릿속에선, 여전히 탐의 원망 어린 절규가 들려왔지만, 이내 나를 마중하기 위해 뛰쳐나온 시뻘건 화염을 두 눈에 가득 담는다.
앗 뜨거!! 뜨거워 죽겠다고 이 망할 인간놈아아아!!!!
※
아카랜드와 그 주변의 일대를 집어삼킨 옐로우게이트가 출현한 지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1년이란 시간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보스몬스터의 무력을 뇌리속에서 씻어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인류는 더욱더 훈련과 수련에 매진하며 앞으로 상대해야 할 몬스터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착실하게 힘을 쌓아갔다.
특히나, 그 옐로우게이트의 생중계를 보던 수많은 사람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헌터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뒤바뀌어버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 중에서, 단연, 사망자 수 1위를 해마다 찍고 있는 헌터란 직업은 사람들이 동경하고 선망하는 직업이자, 꺼리는 직업 1순위였는데, 그 옐로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저마다 용기를 내고서 헌터란 직업에 발을 들이밀기 시작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헌터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그 사람들의 목표는 고작 헌터가 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영웅.
그 옐로우게이트 사건에서 탄생한 영웅, 사이비.
비록, 마지막 보스에게 제물로 바쳐져 살아 돌아오지 못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사이비가 옐로우게이트에서 보여줬던 활약을 잊지 않았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비를 영웅으로 받들었다.
한편에선, "너무 오바하는 것 아니냐", "적당히 올려치기 해라." 등등의 목소리를 내며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또한 존재했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살 수는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저 그러려니 했다.
1년 전까지가 딱, 그냥 헌터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적당히 게이트를 돌아다니며 적당히 벌고 적당히 살아야겠단 생각을 가졌다면, 지금은 바야흐로 헌터가 아닌, 그 위에서 모두를 내려다보며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영웅을 목표로 하고 있는 헌터 히어로 시대가 열린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최고라 일컬어지는 세 아카데미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바로...
각각 골드문과 블루문의 1학년 서열 1위였던 표지안과 이진하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레드문으로 전학을 가버린 일.
그로 인해, 골드문과 블루문의 이사장인 신지헌과 김현철이 화들짝 놀라며 두 사람을 만류했지만, 끝내 그 두 사람을 막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레드문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옐로우게이트의 영웅인 사이비가 다니던 아카데미인 것은 물론이고, 다른 두 아카데미의 톱들까지 합류한 상황이니, 레드문 아카데미가 대한민국 최고의 아카데미로 발돋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표지안과 이진하를 보고선 배신자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했는데, 그런 사소한 일을 신경 쓸 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헌터를 목표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국내뿐만이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많은 해외의 인원들까지 세 아카데미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유하고 있는 레드문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해서 솟구쳐 올라갔다.
물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헌터가 되고, 영웅이 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일은 너무나도 좋은 일이었지만, 세상일이 그렇듯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었다.
그 그림자란, 바로..
지금껏 음지에서 몸을 숨겨 은밀하게 움직이며 세력을 모으던 세력들이 드디어 세상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세력의 이름은 DMG.
데빌(devil), 몬스터(monster), 고스트(ghost)의 앞 글자를 하나씩 따서 만들어진 그 세력의 목적은 하나였다.
마신을 불러내어, 세상을 마신의 통치 아래 두고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 것.
등장과 동시에 미국 L.A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DMG는 그 한 번의 등장만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몬스터나 게이트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악(?)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두 번째 그림자, 버그.
DMG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버그가 출현했다.
여기서, 버그는 게임 속 오류나 버그를 뜻하는 그런 버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버그(BUG)라는 DMG와 상당히 흡사한 면모를 갖추고 있는 집단을 말한다.
DMG 녀석들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들의 목적인, 마신, 통치, 피로 물든 세상을 강하게 어필했다.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기란 힘들었지만, 그 어필 하나만으로도 어떤 놈들인지 대충은 짐작이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이 버그란 녀석들은 그 속을 도통 알 수 없는 아주 악질적인 집단이었다.
두 집단은 각각 단 한 번의 테러만으로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지만, 사람들은 DMG보다 버그 쪽을 더욱더 훨씬 증오하며 두려워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테러, 습격, 살인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 그래봤자 두 집단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녀석들인 건 마찬가지였다.
버그 녀석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상대방이 일반인이든 헌터든 여자든, 아이든 가리지 않고 죄다 죽여버리는 아주 악질적인 녀석들이었다.
그런 무차별 살인을 일으키는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두려움의 대상이 된 버그였지만, 실질적인 그들의 무서움은 따로 있었다.
그 무서움이란, 버그 녀석들이 사용하는 힘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처음 보는 힘을 사용한다는 것.
힘의 결은 비슷한 듯 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달랐다.
각각 가지고 있는 동물의 힘을 사용하는 라이칸, 수인들과는 다르게, 그들이 사용하는 크리쳐의 힘은 바로 벌레였으니까.
버그 녀석들은 동물의 힘이 아닌, 곤충.
즉, 벌레의 힘을 사용했기에,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힘에 수많은 헌터들이 그들과 맞서다 장렬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수많은 인원들이 헌터와 영웅을 꿈꾸며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었지만, 새로운 어둠이 나타나 그 미래를 자꾸만 망가트리려고 한다.
수많은 헌터와 영웅.
비슷한 듯, 다른 두 개의 세력.
희망을 꿈 꾸는 자와 세상의 종말을 바라는 자.
짐승과 벌레.
수많은 이들이 대립하며, 당장에라도 전쟁이 발발해 수많은 피를 쏟아낼 것만 같은 세계는 지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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