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80화. 진실.
* * *
새까만 어둠.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의 손을 들어 올려도, 그 손이 내 눈앞에 있는지, 멀리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어두운 칠흑만이 이곳에 존재했기에.
...분명, 녀석이 말을 끝냄과 동시에 나를 공격해 왔었는데...설마..그 한 번의 공격에 내가 죽은 건가? 아무런 반항조차 못 하고..?
피식.
반항이라니, 참 웃겼다.
녀석의 말 한마디에 수백 명이 넘는 인원 중에서 그 어떤 이도 반항이 아닌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게 떠올랐으니.
「호오...역시 예삿놈은 아니었군. 아직도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니.」
그 녀석의 목소리...!!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아니, 뒷걸음질을 쳤나?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끼지도 않으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순간.
씨익하고 녀석이 웃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엄청난 고통이 몸 내부에서부터 느껴진다.
"...크, 크으으으....으아아아아악!!!!!"
생전 처음 겪어보는 엄청난 고통에 비명이 자존심을 내팽개치고서 찢어져라 터져 나온다.
D2 지역에서 마주쳤던 커스로치들이 아주 작은 크기로 변해 내 몸속에 있는 혈관이란 혈관은 모조리 뜯어먹는 것 같았다.
발끝과 손끝부터 시작된 그 이질적이면서도 모든 걸 갉아먹는 듯한 고통은 나의 오장육부를 지나쳐 목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곧 혀의 감각과 후각, 이미 완전히 점령당한 시각까지도 빠르게 먹어 치우기 시작한다.
"으으...으으아아아악!!!!! 으아아악!!!!"
분명, 온몸이 터져나가라 비명을 지르고 있음에도 나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이젠 청각까지 완전히 먹어 치워 버린듯하다.
.....씨발!! 씨발!!! 씨바아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건데!!!!
아무도 듣지 않을, 나 자신에게 조차 들리지 않는 원망 어린 말들을 뱉어낸다.
그때.
「그렇게 원망 마라. 죄 많은 인간아. 나 또한 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상황이지만, 이상하게도 녀석의 목소리만은 아주 또렷하게 들려온다.
아니, 이건 들려오는 게 아니라, 머릿속을 울리는 것이었다.
빠드드득.
...나의 마음을 알고 있다며!!! 씨발..씨발... 근데 왜 그렇게 쳐 웃고 있는 거냐고....이 씨발같은 새끼야!!
나를 이해한다며, 안타까운 듯 말하는 그 목소리에는 확실한 비웃음이 담겨있었다.
....왜, 왜 하필 나인데....씨발...왜 하필 나냐고...고대의 혼인가, 그, 그 녀석도 있었잖아!!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모든 건 운명의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이니.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난 것도, 네가 나와 상당히 비슷한 기운을 가진 것도 전부 운명 안에 포함된 작은 일에 지나치지 않을 테지.」
녀석의 진한 비릿한 조소가 담긴 목소리가 머리를 울려댄다.
.....지랄....지랄 하지 마...씨발..!! 누구 좋으라고 이딴 좆같은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좆까, 씨바아아알!!! 죽여버릴 거야!!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진심이었다.
녀석의 힘과 이제 머리끝으로 치닫는 고통을 실시간으로 느끼면서도, 진득한 살기를 피워올리며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너무 분해하지 마라. 네가 말한 그 뭣 같은 운명은 내가, 아주 잘 사용해줄 테니 말이야.」
이번엔 달랐다.
여태 말속에 조롱과 비웃음을 담아내 말을 하던 녀석이 그것과는 너무나도 차원이 다른 무언가의 감정을 담은 채 말해왔기에.
그 감정이란,
살기, 탐욕, 광기와 같은 성질의 그것이었다.
어떻게든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의 힘이 뇌까지 뻗어나가는 걸 말리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였다.
한 줌의 모래로 이루어진 악에 받친 의지가, 너무나도 흉포한 의지를 가진 해일을 막아낼 수는 없었기에.
콰콰콰콰쾅!!
머릿속이 폭발하는 소음과 함께,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져간다.
그리고 그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들려오는 녀석의 말.
「이걸로 끝이군. 마지막 선물이라면,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을 알려주지.」
.....지랄...한..
사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무언가의 단어를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았다.
「너의 죄악은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니더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죄악까지 같이 뒤집어쓴 것과 같이 말이야.」
:,,,,,,,!!!"
......그, 그게 도대체...무슨...
더이상 녀석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 대답해!! 이 새끼야!! 그게 도대체 무...무...슨...
아아. 아직 들어야 할 말이 남아있는데....더는 의식을 붙잡아 둘 수가...
이렇게 정신이 완전히 블랙아웃이 되기 전까지 나의 머릿속과 심장에는 경악, 후회, 분함, 억울함 등등이 활개 친다.
...끝이다.
지쳤다.
도저히 이 녀석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모든 걸 받아들이며 조금씩 밀려오는 나른함과 평안에 몸을 맡기던 그 순간.
"아직 안 죽었으니까, 그만 눈 좀 뜨지 그래?"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어디선가 들어본....
".......!!!"
그놈이었다.
자신을 신이라고 말하며, 나를 이 차원으로 이동시킨 그 신이란 녀석.
그의 존재를 깨닫게 되자, 온통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던 이곳이 거짓말처럼 밝아지며 본래의 색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드러난 이곳은 좀 전과는 다르게 온통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장소가 되었다.
마치, 내가 처음 신이란 저 녀석을 만났던 그곳과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리고 그런 장소에는 나와 그 녀석이 우두커니 서 있는 상태.
처음 만났던 꼬마의 모습을 한 신이란 녀석이 나를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나, 난 분명...녀석에게 죽어가고...아니, 죽었을 텐데...."
"정확히는 죽을 뻔했지. 아니, 죽기 직전이었지."
녀석은 깊게 착 가라앉은 눈빛을 보내며 말한다.
첫 만남에서 보였던 그 어린아이 특유의 분위기가 아주 깔끔하게 사라진 녀석을 보고 있자니,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 상관없나. 일단은 내 목숨을 구해줬으니.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차례인가...?"
낮은 내 목소리에 녀석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아주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 말은 참아줘. 조금 뒤면 넌 나를 아주 죽이고 싶어 할 테니까."
녀석의 말에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무슨 소리야? 내가 널 왜 죽여? 아니, 애초에 한낱 인간의 불과한 내가 널 어떻게 죽...."
말을 끊는 녀석.
"쉿. 우선은 제대로 된 정식인사를 해야겠어."
녀석이 말을 끝내자마자, 환한 빛이 녀석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고, 이내 빠르게 빛이 사라지며 좀 전의 꼬마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이 아닌 보라색의 머리카락과 아주 흰 피부를 가진 미녀가 내 눈앞에 나타난다.
"정식으로 인사하지. 보복과 징벌의 여신인 네메시스다."
신이란 녀석...아니, 자신을 네메시스라 소개한 보랏빛의 미녀는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하얀색의 로브를 살짝 들추고선 작게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에 꽤나 당황했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었기에 곧장 그녀에게 묻는다.
"인사는 됐고, 이제 말해 봐. 왜 내가 너를 죽이고 싶어 하게 되는지."
그 말에 입술을 살짝 깨문 네메시스는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연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내가 너에게 모습을 보이는 건 좀 더 네가 성장을 하게 됐을 때의 일이지만, 지금 당장 네가 죽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 거야."
"...생색내는 거야? 고맙단 말이 듣고 싶어? 네 입으로 거절했을 텐데?"
"물론, 아니야. 다만, 우리가 미리 설립했던 계획이 운명의 뒤틀림으로 인해 틀어진 상황이야. 그로 인해 지금 네가 죽을 위기에 처한 거고."
"우리...? 신이란 녀석들이 너만 있는 게 아니었나? 또 운명의 뒤틀림은 뭘 말하는 거지?"
나는 순간적으로, 한시아를 만나 다짐을 했을 시, 겪었던 운명의 대격변을 생각하고선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한 내 모습에.
"...맞아. 네가 생각하는 그거. 뭐,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다른 이유는 뭔데?"
"운명의 뒤틀림으로 인해서, 그 속에서 태어나선 안 될 존재가 태어나고 말았어. 그리고 그 녀석은 지금 내 눈앞에 있지."
네메시스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자, 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
"...나를 말하는 거냐?"
"아니, 네 속 안에 있는 그 녀석. 그 녀석의 이름은 탐(?). 원래대로라면, 태어나서도, 태어날 수도 없는 존재였건만, 운명의 뒤틀림으로 인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지."
나를 육체와 정신을 집어삼키려는 녀석을 말하는 것 같았다.
"녀석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 동안 수많은 생명과 힘을 삼키며 빠르게 성장했어. 그러다가 결국엔, 하데스 조차도 다스릴 수 없는 지하의 밑에 존재하는 지옥의 힘에 눈독을 들이고서 그 힘을 훔치고 지상으로 탈출했어."
"....아...씹...그래서? 결론만 간단하게 말해. 내가 나를 죽이려 했던 새끼의 과거까지 세세하게 알아야 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나와 별 상관이 없는 얘기만 늘어놓는 네메시스를 보자니 짜증이 솟구쳐 오른다.
"....그럼, 네가 관심이 있을법한...아니, 들으면 아주 눈이 돌아갈 만한 얘기를 해줄게."
네메시스는 목이 타는지, 침을 꼴깍 삼키고선 혀로 입술을 축인 뒤, 아주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네 몸 안에 있는 탐(?)이 훔친 지옥의 힘은 말이야…. 원래대로라면, 이병찬이 가져야 할 힘이야."
".......!!!"
너무도 갑작스럽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당황스러움이 밀려왔지만 이내 그 감정은 빠르게 사라지고 진득한 살심과 분노가 몸을 타고 올라온다.
"...씨발...그 새끼 이름이 여기서 왜 나오는 건데? 그 새끼는 벌써 뒈졌다며."
"....그건....거짓말이다."
쉬이이익!!!
콰아아아앙!!
네메시스가 말을 마치는 순간 날아간 일미가 굉음과 함께 튕겨져 나온다.
"내가 말했지? 조금 있으면, 나를 죽이고 싶어 할 거라고."
"....으아아악!!! 이... 씨발같은 년이.... 뒤져 이 개새끼야!!!"
한시아와 많은 감정을 나누며 사랑이라는 의미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된 지금과는 달리, 사랑이란 감정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하린과의 시절.
그녀의 대한 속죄와 복수로 이병찬 일행을 전부 죽여버렸건만, 어찌 된 영문인지 녀석이 살아있다고 말한다.
분명, 녀석의 목에 칼을 쑤셔 박았고, 확실히 녀석이 죽었는지 확인까지 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 망할 개새끼가 살아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어...서, 설마 내가 실수했나? 설마 그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있었단 말이야?
순식간에 그날 있었던 일들과 확실하게 끝내지 못한 후회와 아쉬움이 몸을 덮쳐오고 있을 때.
"그렇게 초조해할 필요 없어. 그날 이병찬은 확실히 죽었으니까."
"....죽었다며...근데 살아있다는 개소리는 뭐냐고!! 씨발..."
"내가 말하지 않았었나? 이병찬은 너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 차원의 영웅이 될 운명이었다고?"
"....장난해? 네 입으로 내가 그 녀석의 운명을 훔쳤다고 했잖아!! 내가 그 개새끼의 운명을 빼앗았다면 그 새끼는 완전히 죽는 거 아니였냐고!!"
"....그게, 거짓말이었다는 거야. 여기엔 따로 사정...."
"왜에에에!!!!! 왜!!! 왜!!!! 왜 그랬어!!! 왜!!! 씨발!!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에!!! 왜!!! 왜!!! 왜에에에!!!!"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었나?
지금 내 두 볼 위로 흐르는 아주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지금 내 머릿속을 헤집는 단 하나의 생각은 왜? 하나뿐이었다.
네메시스를 만나기 전까지 이미 충분히 정신과 감정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며 툭 하고 건드리면 터져나갈 것 같던 나의 멘탈이 부서진다.
온통, 세상이 나를 몰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상처가 난 곳에, 소금을 뿌리고 아니, 멈추고 다시 뿌리고를 반복하며 견딜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을 쏟아붓는다.
"...왜...왜...그랬어...씨발....도대체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흐..흑... 도대체 왜...내가 그녀를 위해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복수였다고....도대체 왜...그런 거짓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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