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77화. 옐로우 게이트.(47)
* * *
툭 툭.
끈적한 침이 턱을 타고 흘러내리며 마찰음을 내던 그 순간.
크허어어어어엉!!!
그 넓은 백두산 전체에 울려 퍼질듯한 커다란 포효소리가 마치 옛날얘기에 나오는 산의 수호신, 산의 왕이라 불리는 산군(山?)과 비슷한 위용을 뽐내는 호랑이 라이칸, 한강진에게서 터져 나온다.
그러자..
【고유 능력: 산군(山?)의 포효로 인해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합니다.】
그 뒤를 이어, 이어지는 새하얀 털과 검은색의 무늬가 용맹하게 펼쳐진 백호, 신지헌의 포효소리가 들려온다.
크허어어어어엉!
다른 듯, 상당히 비슷한 울음소리가 길게 이어지고.
【고유 능력: 제왕(?王)의 포효로 인해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합니다.】
그 능력마저 완전히 닮은 시스템의 알림음이 들려온다.
.....미, 미친...!! 이 노인네들 미친 거 아냐?
단 두 개의 포효만으로 전투력 100% 증가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엄청난 능력을 보여준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뗀 나는 저절로 마지막 한 명인 블루문의 이사장인 김현철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쿠우워어어어엉!!
역시나, 마찬가지로 앞의 두 개와는 조금 다른 울음소리를 내며 포효를 내지르는 그.
【고유 능력: 승리의 포효로 인해 속도, 재생력, 마력 재생력이 100% 증가합니다.】
두 사람과는 다르게 생소한 문구가 떠오른다.
그 의미를 곱씹어 보던 중, "헛!" 하는 숨소리와 함께 김현철을 바라보며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라이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치에 따라, 공격력, 방어력, 재생력, 속도 등등이 달라진다.
목숨을 위협하는 커다란 상처가 아니라면, 웬만한 자잘한 상처는 빠르게 회복하는 라이칸에게 재생력을 100% 상승시켜준다는 의미는 긴 싸움에도 전력의 이탈 없이 장시간 전투가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또한, 마력을 회복하는 방법이라고는 자연적으로 다시 마력이 차기를 기다리는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마력의 재생력 100% 상승이라는 건 라이칸보다 수인들에게 더욱 솔깃한 효과였다.
마법을 난사하는 수인들의 입장에서는 단 한발이라도 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될 테니.
마지막으로 속도의 100% 상승.
적들과 최전선에서 부딪히며 전투를 벌이는 라이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속도였다.
이미, 산군과 제왕의 포효로 인해, 엄청난 스펙업을 한 상태에서 이어지는 세부적인 능력의 100% 상승.
김현철이 마지막에 포효를 내지른 이유는 따로 있던 것 같았다.
한강진과 신지헌의 포효로 뻥튀기가 된 능력치에 의해 올라간 재생력이나, 속도를 더욱더 상승시키기 위함이 틀림없었다.
이러니저러니,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몇 번의 대화가 오갔었지만, 함께 오랜 세월을 지내며 마주하다 보니 또 이런 데서는 팀워크가 잘 맞는 것 같았다.
....이 정도는 해야, 수장의 자리를 먹는 건가?
단 하나의 가식과 편견 없이 바라본, 그들의 능력은 실로 놀라웠다.
각 아카데미의 수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들은, 말 그대로 수장으로써의 면모를 아주 확실하게 갖추고 있었다.
.....라이프 게임에서 우선순위를 언급하던 신지헌도, 그의 의견을 따르던 김현철도, 나약한 심성을 통제하지 못해 한시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한강진까지.
그들의 이기심과 나약함을 동시에 느끼고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그들을 깎아내렸던 그 오만한 생각이 처참하게 부숴져 나간다.
.....꼰대들이라고 무시할 수준이 아니잖아...이건.
나처럼 시스템의 알림음으로 정확히 어느 수준의 버프를 받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대단해. 이렇게 좋은 버프는 처음 받아봐."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각 아카데미의 수장이 다시 한번 포효를 내지름과 함께 앞으로 뛰쳐나갔고, 그 뒤를 수많은 라이칸들이 뒤따른다.
쿵 쿵 쿵 쿵!!
파바바바밧.!!!
육중한 발소리와 경쾌한 발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전투의 시작을 알려온다.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끈적한 침들은 그들이 지금 얼마나 전투에 굶주려 있는지를 대번에 보여준다.
"전원 공겨어어억!!!!"
등 뒤에 커다란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조류의 날개를 달고 있는 이석훈이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이윽고, 그의 손과 그 뒤에 서 있는 수많은 수인의 상태가 된 교수님들이 저마다 중급 마법과 상급 속성 마법을 쏘아 보냈다.
눈에 힘을 주고서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내게.
【이름: 이석훈】
【나이: 42】
【크리쳐: 까마귀】
【특성: 마법】
【속성: 불, 바람】
【힘: A】 【민첩: A】
【마력: S】 【체력: A】
【고유 능력: 차원안, 칼날 깃털, 유생 깃털, 비상한 두뇌, 까마귀 떼.】
이석훈의 상태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 자식.. 세컨드하트(second heart)였나.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에게서 한가지 속성을 물려받게 되는데, 아주 가끔 예외적으로 부모의 두 가지 속성을 물려받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러한 축복을 받은 사람을 세컨드하트(second heart)라고 불렀다.
사람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심장과도 같은 속성의 힘을 2개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세컨드하트(second heart)라 불렸다.
이석훈 그의 왼손에서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거대한 화염의 창이 쏘아져 나갔고, 오른손에서는 드릴 같은 모양을 한 연한 초록색의 바람이 쏘아진다.
그리고는 얼마 동안을 날아가다, 두 개의 마법이 중간에서 섞이더니, 더욱 큰 불길을 일으키며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간다.
"......!!!"
...달라, 확실히 지금껏 봐왔던 훈련생들의 마법과는 격이 다르다.
이석훈 뿐만이 아니라, 마법을 쏘아 보낸 교수님들의 마법은 훈련생들과는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라이칸들이 들끓는 야성을 주체 못 하고 먼저 달려나갔지만, 그들을 제치고서 먼저 보스몬스터를 강타한 여러 마법들이 터져나간다.
퍼버버벙!!!
콰과과과광!!!
거의 비슷한 속도로 쏘아져 나간 마법이었기에, 연쇄적인 폭발음이 아닌 두 세 발의 미사일이 폭발하는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화아아아악!!!
마법의 폭발로 인해, 엄청난 바람의 후폭풍이 밀려왔고, 그 후폭풍은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훈련생들에게 쏟아졌다.
....크, 크으읏...
엄청난 흙먼지와 뜨거운 바람이 피부를 뜨겁게 달구고 시야를 가려왔지만, 결코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단 한 번의 마법 공격이었지만, 사실은 라이칸들은 나설 차례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엄청난 위력의 폭격이었다.
기본 능력치도 뛰어난 교수님들인 것은 물론이고, 세 수장의 어마어마한 버프까지 더해졌으니 결과가 좋다면 보스몬스터는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고, 그 결과가 미미하다고 해도 최소 중상을 입었을 것.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 생각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무지막지한 공격은 아무리 인간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은 한강진이나, 신지헌, 김현철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파르르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가가 떨려온다.
그 무지막지한 폭발과 공격력에 살기를 품고 달려가던 라이칸들마저 멈춰서 상황을 지켜보았을 정도로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근데 서서히 걷히는 흙먼지 속에서 보이는 저 검은 실루엣은 뭐란 말인가.
처음 등장해 서 있던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는 검은색의 실루엣.
그 모습은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충격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그 검은 미라를 목전에 두고 있는 라이칸들의 놀라움도 컸지만, 특히나 직접 마법을 사용해 공격을 했던 수인 상태의 교수님들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모두가 입을 쩌억 벌리고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물론, 그건 이석훈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또한, 자신의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보며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니.
전율스러운 공포가 벌레가 몸을 타고 기어 올라오듯이 전신으로 퍼져간다.
"...이, 이거 거짓말이지? 마, 말도 안 돼..어, 어떻게 이럴 수가...."
"교, 교수님들...이, 이거 몰래 카메라죠...? 그, 그쵸...?"
한 훈련생이 후다다닥 뛰쳐나가며, 아무 교수님의 팔을 붙잡고서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어, 어떻게 이럴 수가...부, 분명 모든 마력의 50%를 꾸, 꾹꾹 담아서 사용한....마...법...일텐데....?"
그 교수님의 넋이 나간 듯한 중얼거림을 들은 훈련생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그건, 그 교수님의 얼굴을 보고 중얼거림을 들어서가 아니었다.
그 교수님의 뒤로 수많은 교수님들이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말, 똑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힉....으아아아악!!!!!"
결국, 그 공포와 두려움에 전염이 된 듯, 훈련생은 비명을 지르고 만다.
한 마법에 50% 이상의 마력을 꾹꾹 응축해 사용한다는 의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출력으로 마력을 사용한다는 말과 똑같았다.
마력의 응축이 50% 이상 넘어가게 되면, 응축된 마력이 불안정해지고 위력은 감소한다.
자칫 잘못하면 마법이 쏘아지기도 전에 손아귀에서 터져나갈 수도 있었다.
또한, 50% 이상이 넘어가게 되면 몸에 상당한 무리가 갔기에, 마법을 사용해 전투를 하는 수인들은 절대 50% 이상의 마력을 응축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뒤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민한 청각으로 인해, 하나도 빠짐없이 듣게 된 라이칸들.
특히나 한강진, 신지헌, 김현철 이 세 수장은 더이상 사기가 떨어지면 좋지 않다는 걸 잘 알았기에, 공격 명령을 내리며 보스에게로 달려간다.
그 세 수장의 명령이라면,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짚을 뒤집어쓰고서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로 라이칸들이 그 뒤를 따른다.
그렇게 보스와의 거리를 1m 정도 남겨둔 시점에, 세 수장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점프를 하며 보스를 향해 강력한 힘이 담긴 앞발을 휘두른다.
그 순간.
「멈춰라. 하등한 인간들이여.」
예의 그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멈췄다.
모든 게 멈췄다.
당장에라도 보스를 찢어 죽일 것만 같은 힘을 품고 있는 그 세 수장의 앞발은 물론이고, 그 거대한 육체, 그들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라이칸들까지 모든 게 멈췄다.
".....마, 말도 안 돼!!!"
누군가의 절망 어린 음성이 크게 터져 나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멈춰있는 건 라이칸들과 그들을 이끄는 세 수장뿐이었고, 뒷열에 있는 훈련생들과 수인 상태의 교수님들은 움직임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건 불행 중 다행일 뿐이었고, 달리던 그 상태 그대로 멈춘 라이칸들과 허공에서 정지라도 된 듯이 멈춰있는 세 수장을 보게 되자,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는 패배라는 단어가 각인됐다.
패배.
압도적인 패배.
녀석의 말 한마디에. 한국에서 가장 강할 거라고 칭송받는 세 수장이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때.
「꿇어라. 죄 많은 인간들아.』
또다시 들리는 녀석의 목소리.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달랐다.
녀석의 말 한마디에 멈춰있던 라이칸들과 허공에 떠 있는 채 멈춰있던 수장들, 그리고 뒤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모든 인원들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두 무릎을 바닥에 꿇는다.
".........!!!!"
나 역시 내 의지는 아예 무시라도 한 듯이, 저절로 꿇리는 무릎에 이를 바득바득 갈며 저항해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너희는 결코, 나를 쓰러트릴 수 없다.」
그 짧디짧고도 단순한 한마디에 절로 수긍이 되어간다.
멋대로 움직이는 몸은 어쩔 수 없어도, 지랄하지 말라고, 이거 당장 풀라고 거친 말을 내뱉어서라도 그 말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단 한마디...아니, 단 하나의 단어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패배한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탈출이 눈앞에 있건만...,
대한민국의 최고 아카데미의 세 수장이 있음에도...
너무나 허무하게 패배한 것이다.
패배...?
아니, 제대로 싸워보기라도 했던가?
녀석에게 허용 아닌 허용된 공격은 단 한 번의 마법 공격.
아니, 그걸 공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세 명의 수장이 약한 것일까?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헌터라도 저 괴물...저 괴물에게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세 명의 수장이 약한 게 아니라, 저 괴물 새끼가 강한 것이다.
세 명의 수장은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강자였다.
저 세 명이 아무런 힘도 못 쓰고 있다면, 그 누가 왔었어도 우리를 구원해줄 수 없을 터.
우리는 패배...아니, 굴복했다.
싸워보기도 전에 진 것이다.
「제안을 하나 하지. 죄 많은 인간들이여.」
당장에라도 모두를 죽일 것만 같았던 녀석에게서 썩은 동아줄과 같은 애처로운 희망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온다.
「단 한 명, 단 한 명의 목숨만 제외하고는, 전원 돌려보내 주겠다. 너희들의 세상으로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또 누군가를 바쳐야 한다는 그 지긋지긋한 말이 들려온다.
「다만, 그 대상은 내가 직접 고르도록 하지.」
쿠우우웅!!
녀석이 자신이 서 있던 계단에서 발을 떼어 발걸음을 옮기자 쿵 하는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심장 위로 커다란 돌덩이가 떨어진 것 같은 공포와 무력함이 휩쓸기 시작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