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인 아카데미의 NTL 왕이 되다-77화 (77/102)

〈 77화 〉 76화. 옐로우 게이트.(46)

* * *

안전지역 카르시에서 허락된 마지막 날인 그날도 한시아는 찾아오지 않았다.

....뭐, 정이 많은 만큼 여린 녀석이니까.

몇 번이나 직접 찾아가볼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끝내 찾아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한시아를 직접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한강진이 여러 번 한시아에게 퇴짜를 맞는 모습을 봤었기에.

그럴 때마다, 한강진은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된다면, 그때 다시 찾아오마. 정말로 미안하다."라는 말을 내뱉곤 했다.

그 모습을 보곤, 아직도 한시아의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질 않았다는 걸 알았기에.

이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신영진은 단 하루 사이에 아주 유명 인사가 되어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주 격렬한 절정을 맞이한 신영진은 그 화끈거리는 쪽팔림에 바닥에 쏟아부어진 자신의 정액을 신발로 몇 차례 비비고는 있는 힘껏 건물 안으로 도망쳤다.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방에서 나오는 일이 없었는데, 이미 그 장면을 목격했었던 훈련생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소문이 퍼져나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는 스스로 한시아 앞에 서는 걸 포기했고, 그 결과는 내가 의도하고 바라던 결과였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지나간다.

이 옐로우게이트의 최종관문이자, 이 게이트가 아닌, 세상 밖으로 빠져나가게 해주는 탈출구.

카르시에서 휴식을 취하며 기력의 충전을 끝낸 모든 인원이 포탈 존 앞에 반듯하게 정렬해 서 있었다.

­ 터벅터벅.

신지헌이 세 아카데미의 이사장을 대표해 장엄한 얼굴로 입을 연다.

"그동안 모두들 정말로 수고 많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곳에 도달하지 못한 동료들의 몫까지 힘내주길 바란다. 이곳을 나가게 되면..."

꽤나 긴 장대한 연설이 될 것 같았기에, 적당히 관심을 꺼두고서 내 옆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본다.

평소대로라면, 한시아가 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음을 지어 보였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내 옆에 있는 누군가는 오소리였다.

그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괜히 오소리의 볼을 잡아당기고서 심술을 부리고 있었는데.

"..아우으으... 어? 대, 대장!! 저, 저기!!"

볼이 쭈욱 늘어난 채로, 다급하게 어딘가를 가리키는 녀석.

왠지 바람에 상큼하면서도 달달한 복숭아향이 배긴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뒤를 돌아보니...

한시아, 한시아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고선,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 저벅저벅.

­ 터업.

내 앞에서 두 발을 가지런히 모은 채, 멈추어 선다.

【...생각은 좀 정리됐어?】

무슨 말을 건넬까 생각하다가, 튀어나온 말.

【네...기,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

혀로 입술을 살짝 훑으며 물었다.

만약, 여기서 한시아 그녀가 "그 사람들을 원망하고 저주해요. 모두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한다면,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내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알까.

.....넌 그냥 대답만 해. 그 사람들은 전부 죽여버리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선 내가 필요하다고.

세로로 길게 찢어진 내 파충류의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생각을 읽어낸 것일까?

한시아가 흠칫 몸을 떨고선, 옅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는 자신이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제 대답에 실망하실 거예요...】

아아. 끝났다.

더는 듣지 않아도,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씨발....왜, 왜 이렇게 멍청할 정도로 착한 건데...?

그 새끼들은 사람의 새끼들이 아니야. 짐승!! 아니, 짐승 새끼도 자기 가족 소중한 건 알고 있어!! 왜!! 어째서!!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을...

­ 빠드드득..

그런 적나라한 말들을 직접 내뱉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무리 그녀에게 따져가며 이건 아니라고 소리쳐봤자, 이미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끝냈기에.

하지만...하지만... 내가 용납을 할 수 없다면? 주제넘은 참견이라면, 주제넘은 참견이라 할 수도 있지만 너무나도 착해빠진 한시아를 위해 내가 대신 피를 뒤집어쓰겠다면?

떨리는 낮은 나의 목소리.

【시아야.】

【...네.】

【나 있잖아...진심으로 네가 그 녀석들을 죽여달라고 한다면, 어떻게든 그 목적을 이룰 거야. 아니, 그렇게 만들 거야.】

【.......】

【정말, 언젠가...언젠가라도 내가 필요해지면 말해.】

【......】

【네 입으로 직접. 내가 필요하다고.】

【......사, 사이비님...】

【그럼, 뭐든지 해줄게.】

말을 마치고선, 스윽 고개를 돌려 두 눈으로 한강진과 한설화의 모습을 담는다.

한강진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와 한시아를 바라보고 있었고, 한설화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이, 그 공허한 눈빛을 허공에 뿌려댈 뿐이다.

그때.

­ 처억.

나의 손을 잡는 한시아의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온다.

그리곤 바보같이 순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본다.

­ 두근.

이 바보같이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바보같이 웃는 얼굴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

이 바보같이 웃는 얼굴이 나를 끝없이 나아가게 만든다.

...그래. 지금은 이거면 됐어. 하지만 만약에 혹시라도...네가 날 필요로 하는 날, 그때는...

한시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스스로 다짐을 하던 그 순간.

어느새 끝나버린 신지헌의 장엄한 연설을 끝으로 환한 빛무리가 모두를 감싼다.

거무튀튀한 갈색의 바위로 이루어진 조각상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양 벽에 딱 붙어 줄지어 세워져 있는 이곳.

아무래도, 최종관문인 보스의 방인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진 바위 조각상 말고는, 특별해 보이는 게 없는 그런 장소였다.

마치,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공터.

이곳에 오기까지 만났던 수많았던 몬스터들은 커녕, 각 아카데미의 인원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생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한 모습에, 주변에 있던 수많은 훈련생들이 동요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동요를 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D 지역을 탐사한 인원들이었다.

이곳은 마치 D­1 지역과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와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서, 설마 이거 또 뭐...처녀나 목숨을 바치라는 건 아니겠지?"

"...야! 말이 씨가 된다고 그딴 말 하면 안 돼!!!"

세 아카데미의 교수님들과 이사장님까지 있는 이상,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괜히, D­1 지역에서처럼, 누군가를 바쳐라. 하는 재수 없는 시험이 내려지면 제물로 바쳐지는 그 누군가만 억울할 뿐이다.

【죽음회피】도 아직 25일이 넘는 쿨타임이 남아있었기에, 부활을 할 수도 없었다.

"...아, 씨발...이거 그때랑 꽤나 비슷하지?"

언제 근처에 왔는지, 표지안이 옆에 이진하를 대동한 채 나에게 다가오며 말을 꺼낸다.

"그러게."

별 감흥없는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시아가 복잡한 시선으로 표지안을 바라본다.

표지안 또한, 복잡한 시선으로 한시아를 마주 보았고, 골 둘의 사이에서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이진하는 제법 눈치가 좋은 편인 것 같았다.

어색한 기류가 흐르자,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선 너스레를 떨며 그 분위기를 날려 보낸다.

"이거 분위기가 왜 이래? 하, 하하...그나저나 무슨 소리야? 그때와 비슷하다니?"

그의 말에 나는 표지안에게 이 녀석에게 그때의 일을 얘기하지 않았냐는 의미가 담긴 눈빛을 표지안에게 보냈다.

그러자..

"아...씨... 그 역겨운 새끼한테 따먹힐 뻔한 걸, 뭘 자랑이라고 떠들고 다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진하에게 D­1 지역에서 내려졌던 시험에 관해 적당히 얘기를 해줬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터에 차츰 흥미를 잃어가던 사람들은 낮게 울리는 내 목소리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고, 곧 모두가 "그런 일이 있었구나...참 힘들었겠다."라고 말하는 느낌의 말들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신지헌 또한, 나의 말을 듣고선 턱을 괴고서 "정말 그런 종류의 일이라면, 불필요한 희생이 일어나겠군."이라고 중얼거린다.

그 순간.

­ 쿠구구구궁.

D­1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땅에서 진동이 느껴지고, 뭔가 올라오는 기계음 소리가 들려온다.

.....실화냐고...

너무나도 비슷한 상황에 눈만 껌뻑이며 그 모습을 지켜본다.

­ 휴우...

D­1 지역을 겪어봤던 어떤 훈련생에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전에는 처녀를 바칠 제단 같은 게 올라왔다면, 지금은 그 제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랗고 많은 계단이 올라와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제단이 없는 걸 보니, 제물을 바치라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때.

­ 툭.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계단의 위, 시꺼먼 천장에서 무언가 하나가 툭 떨어져 내렸다.

떨어져 내린 그것은,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많게 쳐줘야 2m 정도 되어 보이는 키, 빼빼 마른 몸. 인간과 상당히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신체까지.

얼핏 보면, 검은색의 페인트를 흠뻑 뒤집어쓴 미라 같은 인간이라는 착각이 일어났다.

그 앙상한 몰골에 "저, 저런 게 보스인 거야?"라며 수군거리는 음성들이 터져 나온다.

교수님들 또한, 그 미라 같은 녀석에게서 그 어떠한 살기나, 기운이 감지되지 않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주시한다.

보통,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살기가 깔려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저 미라에게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모두,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상대방의 정체를 확실히 알아낼 때까지는..."

훈련생들은 "약해 보여서 다행이야."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있었지만, 교수님과 몬스터와의 전투 경험이 제법 있는 3학년 훈련생들은 바짝 긴장한다.

아무런 기운도, 살기도 내뿜지 않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욱 큰 압박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 순간.

「한낱 하찮고 죄 많은 인간들아.」

마치, 쇠가 갈리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검은색의 미라가 있는 방향에서 들려온다.

절로 마음속에서 두려움을 뿜어내게 만들어내는 목소리였다.

실제로, 녀석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세 아카데미의 신입생 중 반은 "커헉!" 하는 소리를 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 역시 내부를 울리는 무언가에 충격을 받았지만, 곧 그 기운을 밀어내고선 휘청거리는 한시아를 부축한다.

그 모습에.

"이봐. 강진이. 예삿놈이 아닌 것 같군. 훈련생들은 뒤로 물리고 빨리 처리하는 게 어떤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던 신지헌은 바지 주머니 속 깊숙하게 찔러놓고 있던 손을 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며, 주변의 교수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던 신지헌은 정신을 못 차리고서 멍하니 서 있는 한강진을 다시 불렀다.

"강진이? 자네 지금 뭐 하는 겐가?"

그제야,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든 한강진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아무래도 많이 심란한가 보네.

자업자득(????)이었다.

그가 얼마나 무거운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얼마나 큰 후회를 하고 있던 더는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곧 각 아카데미의 교수님들이 훈련생들을 향해 소리치며 가장 후미로 훈련생들을 물리기 시작한다.

맨 끝이 1학년, 그다음이 2학년, 3학년.

훈련생들을 모두 물린, 교수님들 또한 빠르게 각 아카데미의 수장이라 불리는 이사장들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찌릿찌릿한 마력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러자 전투 태세에 돌입한 교수님들과 이사장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 파지지지짓!!!

그 강대한 기운들이 한데 뭉쳐, 서로의 힘을 뽐내고 있자 전기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 크허어어어엉!!!

­ 아오오오오오오오!!!!

지금껏 봐왔던 각각 아카데미의 신입생들이 보여주었던 라이칸의 모습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흉폭한 야생성이 흘러넘치는 라이칸 군단이 탄생했다.

그런 라이칸들에게서 살짝 물러난 다른 교수님들의 몸에는 각각 다른 동물의 귀나 꼬리가 달려있었고, 그 손에는 훈련생들과는 전혀 비교도 할 수 없는 마력이 담긴 마법이 완성되어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청나네....캐스팅이 몇 초 걸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저런 마력을 담고 있는 마법이라니...

가지각색의 속성을 뽐내며 화려한 빛을 내고 있는 그 마법에는 절로 침을 삼키게 하는 강대한 위력을 품고 있는 게 느껴진다.

....라이칸 쪽도 장난이 아니야. 항상 사람 좋은 얼굴로 훈련생들을 대하는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직접 보니..

같은 늑대 라이칸이라 할지라도, 그 크기부터가 달랐다.

훈련생들이 라이칸으로 변한 크기가 2m가 살짝 넘는다 치면, 교수님들의 라이칸으로 변한 모습은 3m를 넘기고 있었으니.

그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나,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그런 라이칸들의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사람.

아니, 세 마리의 짐승이랄까, 세 마리의 라이칸이랄까.

그곳에는 크기가 5m가 넘어가는 거대한 흑곰과 각각 4m가 조금 안 되어 보이는 누런빛의 털을 휘날리는 호랑이와 새하얀 털을 휘날리는 백호가 끈적이는 침을 뚝뚝 흘리며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