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70화. 옐로우 게이트.(40)
* * *
표지안의 두 눈을 손바닥을 이용해 감겨준 후, 맥박을 체크한다.
....뛰지 않는다.
심장을 직격당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녀에게서 한걸음 물러선 후, 다음 행동을 하려던 순간.
정희철이 쿵쾅거리며 걸어오더니, 나의 멱살을 잡는다.
"...뭐하냐?"
"이, 이 씨발새끼야 너야말로 뭐 하는 거야!!"
정희철은 이마에 굵은 핏대를 세우며 버럭 소리쳤고, 그 모습은 얼핏 보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과 상당히 비슷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미운 정이라도 붙은 건가? 하긴...어렸을 때 부터 봐왔으....
"아 이 씨발!!! 드디어 따먹을 기회가 생겼는데!!! 씨발!!! 이 개새끼야!! 네가 다 망쳤어!!"
...역시 쓰레기는 쓰레기다.
"지금 이 손 놓지 않으면 죽인다?"
말을 함과 동시에 살기를 정희철에게 쏘아 보냈다.
그러자.
터벅터벅.
허둥지둥하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선 정희철은 두 주먹을 꽉 쥐고서 싸늘하게 식어있는 표지안의 시체를 바라본다.
그 순간.
표지안의 몸에서 푸르른 마력이 한 줌 흘러나왔고, 곧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일단 한 가지 문제는 해결했네.
마력의 맹세는 마력의 맹세를 한 자가 죽게 되면, 그 계약까지 절로 사라지게 되어 있었기에 더이상 정희철과의 계약에 표지안이 고통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순결한 처녀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올데스 하라마만타의 세 번째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잠시 후, 두 번 째 안전지역 카르시로 이동됩니다.】
기다리고 있던 알림음이 들려오자, 재빠르게 다음 계획을 준비한다.
..드디어 그걸 써볼 차례인가?
원래대로라면, 한시아의 한시아를 한시아만을 위해서 아껴뒀던 능력이었지만, 그녀가 비교적 안전한 곳에 있는 지금은 써야 할 상황에 써야 했다.
더군다나, 표지안은 내가 필히 공략해야 할 상대가 아닌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표지안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죽음회피】를 떠올린다.
휘이이잉.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앞머리를 살랑살랑 흔들었고, 보랏빛의 기운이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이내 그 보랏빛의 기운들이 제단 위에 누워있는 표지안의 주변을 맴돌더니 그녀의 입과 코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화아아아악.
엄청난 바람이 일며 옷깃을 마구 흔들었고 제대로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그 바람이 어찌나 센지, 나를 제외한 모두가 문워크를 하듯이 뒤로 쭉 미끄러지고 있었다.
표지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바람에 맞서던 그 순간.
파아앗!
그 사납던 폭풍과도 같던 바람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으으음....엄마........?"
축축한 물기에 젖은 표지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 살아난 건가...?
처음 써보는 능력에 나조차도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그녀를 바라본다.
눈을 뜨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그녀는 이내 눈을 부릅뜨고는 자신의 심장을 내려다본다.
나의 공격에 의해 뻥 뚫려있던 그녀의 심장 쪽의 상처는 어느새 말끔히 사라져있었고, 그 풍만하고 새하얀 피부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자신의 심장 부근을 어루만지며 놀란 표정을 짓던 표지안이 고개를 홱 하고 돌려 나를 바라본다.
"어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기분은?"
"...너, 너...이 씨발같은 새끼!!!!"
채애앵.
표지안의 새하얀 손끝에서 길다란 손톱이 자라났고, 벌떡 몸을 일으킨 표지안이 나를 향해 손톱을 휘두르려는 순간.
【안전지역 카르시로 이동합니다.】
환한 빛무리가 모두를 감쌌고, 나를 조각내기 위해 달려들던 표지안 또한 빛무리에 휩싸인다.
안전지역으로 이동하기 전, 분함에 가득 찬 표지안의 처절한 욕설이 들려온다.
"사이비 이 개새끼야!!! 넌 뒤졌어!!!"
※
또 한 번 공기가 변하자 이동이 끝났음을 직감한 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곳에는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서 유난히 울먹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누군가.
그 누군가는 이내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내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타닥타닥.
터억.
달려오던 그 속도 그대로 멀리 점프해 나의 허리를 껴안는 그 누군가는 바로 한시아였다.
한시아는 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연신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있었고 난 재빠르게 한시아가 말을 할 수 있도록 【텔레파시】 채널을 켰다.
【다녀왔어.】
【흐에에엥!! 사이비님!! 사이비님!! 저, 정말 어떻게 되신 줄 알았다고요!! 흐어어엉!!】
【...미, 미안. 나름 빨리 온다고 빨리 온 건데...기다리게 해서 미안.】
【흐으윽...흐어어엉!! 살아서 오셨으니...흐으윽...그거면 됐어요..정말...흐으응.】
그렇게 나의 가슴을 얼굴을 묻고 한참을 오열하고 있는 한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진정시키고 있을 때.
저벅저벅.
턱.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다가온 누군가가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강진이었다.
그는 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리고며 한 손으로는 엄지를 치켜세워 따봉을 날리고 있었다.
"정말로 자네가 자랑스럽다네."
"아, 하하..그렇게 봐주시니...감사드립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쉼터로 움직이려던 찰나.
"야 이..사이비 개 같은 새끼야!!!"
표지안이 수많은 인파를 훌쩍 뛰어넘어 그 날카로운 손톱을 나의 목으로 휘둘러왔다.
이내.
퍼어어엉!!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표지안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내 앞에는 한시아가 서 있었다.
눈물로 얼룩진 눈매에는 분노가 가득 담겨있었고,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런 눈빛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눈으로 표지안을 노려본다.
곧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신지헌과 한강진이 개입해 상황을 멈추었다.
하지만 좀처럼 진정을 하지 않는 표지안에게 【텔레파시】로 어떻게 된 상황인지 다급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왜 그녀를 죽였는지, 그녀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었는지, 마력의 맹세에 대한 사실까지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주자, 표지안은 맥이 풀렸는지 털석 주저앉았다.
특히나, 마력의 맹세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표지안의 눈에서는 맑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신지헌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잠시 혼자 있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어딘가로 걸어갔다.
한시아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요! 다짜고짜 사람을 죽이려고 하다니!!" 라며 분개하고 있었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죽임을 당했으니, 당연한 행동이라고 한시아를 설득하며 달랬다.
처음 써보는 능력이라, 어떤 식으로 발현이 될지, 제대로 부활이 될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98%는 다시 살아날 거라는 강력한 확신이 있었기에, 표지안을 죽였던 것이다.
뭐, 처음부터 다시 부활을 시켜준다고 말해도 그녀가 곧이곧대로 나의 말을 믿을 것 같지도 않았기에.
..어쨌든, 결과는 괜찮았으니까. 뭐. 용서해주겠지.
복잡한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서 한강진과 교수님들의 안내를 받으며 어느 한 건물로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후, 정말로 오랜만에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다.
한참을 늘어지며 달콤한 휴식을 취하며 알아낸 정보로 인하면, 역시나 이 안전지역에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건 D 지역 인원이라고 한다.
또한, 이 안전지역 카르시의 관리인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이곳에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3일이었고, 3일 후에는 카르시를 떠나 이 옐로우게이트의 마지막 관문인 보스몬스터를 마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3일 후면 이곳 카르시를 떠나야 한다는 말에도 모든 훈련생들은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이번엔 각 지역으로 흩어지지 않고 모두가 같은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D 지역에서 생존한 인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 정도였다.
각 아카데미의 교수님들과 함께라면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을 받기 때문에.
소위 버스를 타서 교수님들의 캐리를 받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 생각을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D 지역에서 겪었던 일들은 생각만 해도 좆같은 기억이었다.
그 고난과 역경 속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지만, 좆같은 건 좆같은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시아와 오소리를 불러내어 산책이나 다녀올까 하는 생각을 하던 중.
잠시 잊고 있었던 녀석이 생각났다.
...아, 씨발 그 새끼를 잊을뻔했네. 분명, 블루문의 이지원이었지?
D 지역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를 죽일뻔한 트롤짓을 했던 쓰레기.
D2 지역에 도착해서 살아나가게 되면 박살 내버리겠다고 다짐한 녀석.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블루문의 훈련생들이 머무는 3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를 빠득빠득 갈며 이지원을 찾아다니던 그때.
"왜 살냐? 이 병신새끼야. 나가 뒤져 제발."
"씨발. 트롤새끼야! 그때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려. 이 개새끼야!"
10명은 넘어 보이는 남 훈련생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찾았네.
안 봐도 뻔했다.
죽을죄를 지은 듯이, 대가리를 처박고 있는 저놈은 이지원이 확실했다.
저벅저벅.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들에게로 다가가자, 나의 발소리를 들은 녀석들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길을 터주었다.
척.
어느새 이지원의 앞에 도착한 난 걸음을 멈추고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지원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멍이 든 얼굴과 흙이 잔뜩 묻은 제복은 녀석의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아마,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갈굼을 당해왔겠지.
하지만 동정심을 단 1만큼도 들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쥐락펴락하며 추태를 부리던 녀석이었으니.
.....한심한 새끼.
만나면 반쯤 죽여주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한심한 모습에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엔 너무 씨발 같았다.
"야, 딱 한 대만 맞자?"
나의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고개를 든 녀석은 두 눈동자를 쉴 새 없이 떨어댔다.
"...흐허헉! 너, 넌...."
"반갑다? 이 능지 박살 난 새끼야. 이 꽉 물어. 혀 잘린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날아간 나의 주먹은 엄청난 속도로 이지원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퍼어엉!
타격음이 아닌,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이지원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간다.
신음 한 번 내뱉지 못하고 기절해버린 이지원을 바라보던 주위에 녀석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엄지를 들어 올려 따봉을 날린다.
이지원에 대한 간단한 응징을 끝내고서 한시아와 오소리와 어울려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표지안의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그 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미리 【죽음회피】에 대한 언질이라도 줘야했나라는 찜찜한 생각이 계속해서 맴돌았고, 결국 그날 하루를 마무리 하기 전까지 표지안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늘 하루 계속해서 많은 눈물을 쏟아내었던 한시아는 피곤한지, 이른 밤에 잠이 들었고 한시아를 방에 데려다주고서 답답한 마음에 건물을 빠져나와 주변을 산책하길 몇 시간.
서늘한 바람이 부는 야심한 밤, 표지안이 나에게로 찾아왔다.
"....거 참 얼굴 보기 힘드네?"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왔다."
말을 마친 표지안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고맙다."라고 말한 뒤, 고개를 돌렸다.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차라리, "고맙다. 이 씨발같은 새끼야."라고 말했으면 평소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을 텐데, 괜히 표지안이 부끄러워하자 되려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 불편함을 날리고자, 씨익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건넸다.
"맨입으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농담으로 건넨 말에 표지안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다짐하는 듯 입술을 꽉 깨문다.
"나한테 원하는 게 있어?"
표지안이 그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직시하며 묻는다.
...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면 고자 새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 아주 많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