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68화. 옐로우 게이트.(38)
* * *
전신에서 흘러나온 새까만 독은 지금껏 사용해왔던 독 마법과는 달랐다.
【확산】의 성질을 가진 독 속성은 발현되는 순간 주위로 퍼져나가려는 성질을 띠고 있었기에,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에 굉장히 좋은 속성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나의 전신에서 흘러내리는 끈적한 독은 아주 천천히 흘러내릴 뿐이었다.
【독구름】처럼 따로 독무를 뿜어내는 것도 아니고, 【산성독】처럼 강력한 산성으로 상대방을 녹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의 전신에서 새까만 독을 방출해낼 뿐, 【확산】의 성질이나 지금껏 사용해왔던 독의 성질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상황.
....이게 뭐야. 너무 실망스러운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투두둑. 투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나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커스로치들이 힘없이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린다.
내 신체에서 흘러나온 검은색의 독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녀석들은 지면으로 떨어지고 나서 배를 까뒤집고 드러누운 채, 허공에다 힘없는 발길질을 해댈 뿐이다.
그리고는 그 날카로운 주둥이에서 새까만 액체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마치, 지금 내 몸에서 흘러내리는 독과 비슷한 새까만 액체를.
녀석이 토해낸 새까만 액체를 다른 녀석들이 밟고 지나가며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들의 동족을 밟고 올라 내 몸을 기어오른다.
그 상황을 매서운 눈으로 관찰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중, 곧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툭. 투두두두툭. 툭 툭. 투투툭.
흡사 우박이나 장대비가 내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장대비나 우박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 소리의 정체는 나의 몸을 빽빽이 뒤덮어 비늘을 뚫기 위해 열심히 턱을 움직이던 커스로치들이 지면으로 떨어지는 소리였으니.
극독.
나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극독의 위력에 나조차도 놀란 눈으로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때.
쿠쿠쿵.
육중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낮아졌다.
꽁꽁 옥죄고 있던 여왕의 다리가 맥없이 풀리며 여왕이 바닥에 처박혔기 때문이다.
일미의 고개를 쑥 빼내어 바닥에 쓰러진 여왕을 바라보니 여왕은 나의 몸에서 흘러나온 새까만 독에 온몸이 절여진 상태였다.
속성화를 사용하기 전에 나에게 【텔레파시】를 이용해 말을 걸어왔단 녀석은 그 이후 단 한마디의 말도 내뱉지 못했다.
.....죽은 건가?
아무런 미동도 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녀석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푸화아아아악
돌연. 바닥과 키스하며 쓰러져있는 여왕의 입에서 검은색의 액체가 거세게 뿜어지기 시작했고, 그 토사물들은 축축하게 지면을 적셨다.
그게 시발점이었다.
여왕의 죽음 이후, 내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커스로치들이 하나둘씩 비틀비틀하더니 이내 검은색의 토사물들을 토해내며 죽어간다.
그 토사물들은 주변에 있는 녀석들에게 튀기도 했고, 지면을 타고 흘러 녀석들의 발밑을 촉촉하게 적셔갔다.
그 검은 토사물에 닿은 녀석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똑같은 증상을 보이며 죽어갔다.
머리를 강한 둔기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느껴진다.
.....확산.... 확산의 성질이 없던 게 아니었어.... 이건 마치...
독이 아닌, 전염병과 같았다.
닿기만 해도 전염되며 치사율 100%에 이르는 죽음의 전염병.
독 마법의 성질인 【확산】에 너무나도 충실한.
이미 주변에서는 하늘을 향해 배를 까뒤집어 토사물을 분수처럼 뱉어대는 녀석들이 잔뜩 깔려있었고, 여왕의 허무한 죽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녀석들은 그대로 그 검은색의 토사물에 노출이 되었다.
"...미, 미친...이게 도대체..."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곳에서 멀찍이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던 훈련생들 중에서 잘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역시 내가 만들어낸 상황에 놀라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데, 녀석들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속성화를 사용해 커스로치들은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리던 표지안은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표지안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처음에만 해도 마법을 사용하며 전투를 벌이던 녀석이 어느 순간 라이칸들의 고유능력인 【신체강화】를 사용하더니,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골드문 아카데미에도 뱀의 크리쳐를 가진 라이칸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 라이칸들이 전투를 벌이는 모습도 봤었고, 뱀의 크리쳐를 가진 라이칸들의 전투방식도 잘 알고 있었다.
표지안의 기준으로는 뱀의 형상을 한 라이칸들은 기준미달이었다.
다리가 없는 녀석들은 공격이 매우 단조로웠고, 이족보행을 하며 싸우는 라이칸들에 비해 뛰어난 점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한 가지가 있다면, 뱀의 종류에서도 독사의 크리쳐를 가진 녀석들이나, 아무 뱀의 크리쳐와 독 속성을 가진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맹독을 독니로 주입할 수 있다는 점인데 그건 공격을 피해내기만 하면 무용지물인 능력이었다.
물론, 이건 표지안이 다니는 골드문의 훈련생들 수준이었고, 세계로 뻗어나가면 아나콘다의 크리쳐를 가지고 있는 미국인 스캇은 라이칸으로 변하게 될 경우 그 크기가 30m가 넘어간다고 했다.
그 30m가 넘는 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으로 모든 걸 부숴버린다고 들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뱀의 크리쳐를 가진 라이칸 중에서 거의 탑을 찍고 있는 사람의 경우였다.
사이비의 경우는 10m가 조금 넘는 크기였지만, 그의 진짜 무기는 거대한 크기나, 힘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껏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던, 극독(??)
독 속성 자체가 굉장히 희귀한데다, 다루기가 까다로웠고 크리쳐와 속성의 궁합이 잘 맞으면 맞을수록 그 성능과 위력도 증가했기에 어쩌면 사이비는 뱀의 크리쳐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 탑을 찍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드는 표지안이었다.
"...아니, 뱀의 크리쳐를 가진 사람뿐만이 아니야. 어쩌면..."
그 수많았던 커스로치들이 모두 새까만 독에 절여져 죽어버린 곳에 우두커니 혼자 서있는 사이비를 보는 표지안의 눈이 깊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
고급스러운 대리석과 온갖 화려한 보석과 장식품들로 화려하게 꾸며진 어느 건물의 내부.
그곳에는 마치 영화관에 있는 거대 스크린과 같은 스크린이 걸려있었고, 그 스크린에서는 속성화를 사용해서 수많은 바퀴벌레들과 바퀴벌레들의 여왕을 모조리 몰살해버린 사이비가 나오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4명.
그 중 짙은 황금빛 머리칼과 새파란 하늘을 박아놓은 듯한 눈동자를 가진 시원한 인상의 남성이 작게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짝짝짝
"어때? 타이판? 너와 상당히 비슷한 타입인 것 같은데?"
그러자 검은색의 후드티의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남성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뱀의 크리쳐와 독 속성을 가진 녀석이 나 말고 더 있을 줄이야. 재밌네."
말을 마친 타이판이 씨익 웃었다.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남성 루이스는 타이판에게서 시선을 거둬 조용히 말없이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는 두명의 남녀를 불렀다.
"제임스, 헬렌"
"....왜 그러지?"
검은 머리칼의 헬렌이라 불린 여성은 말없이 루이스를 쳐다보았고, 대답은 짙은 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제임스란 남성에게서 들려왔다.
"우리 팀에 저 녀석을 끌어들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루이스는 질문을 던져놓고는 검지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며 대답을 기다린다.
루이스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타이판이었다.
타이판은 인상을 와락 구기고서는 루이스를 향해 뭐라 말을 하려던 찰나.
"벌써 잊었나? 루이스? 그건 우리끼리 정할 수 없다는 걸 알 텐데?"
제임스가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으르렁거리자, 루이스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며 말을 이어간다.
"아아. 물론 잘 알고 있지. 알고 있고 말고. 그 녀석들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말이잖아? 그 일은 걱정 마. 이미 내가 연락을 해놓았으니까."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그 녀석들이 말이야."
"헬렌의 판단을 따르라고 하던데?
루이스의 말에 3명의 시선이 여태껏 조용히 있던 헬렌에게로 돌아간다.
검은 머리카락과 헬렌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3명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가 팀에 합류하게 될 확률은 50대 50이에요. 그의 내면에 있는 선악 수치는 정확히 반반이에요."
헬렌은 말을 끝내고서 스크린 속 사이비를 쳐다보았고, 루이스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자신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그러더니.
"3일 전에 스카웃을 제의했던 크리스의 선악 수치는 몇이었지?"
"선이 47 악이 53이었어요."
3일 전 크리스를 스카웃하러 갔던 이 팀의 팀원 중 한 명인 빌이 제안을 거절한 크리스와 전투를 벌였고, 둘은 막상막하 실력으로 접전을 벌였다.
둘의 실력은 비슷했지만, 크리스가 아주 조금 더 우세했다.
결국, 자신이 크리스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빌이 크리스를 끌어안고서 그 녀석들에게 얻은 능력인 자폭을 사용해 동귀어진을 한 일을 떠올린 루이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이비의 영입 건은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꼭 그가 아니더라도 저희가 바라는 선악 수치를 가진 사람들은 많으니까요. 그들을 노려서 합류시키는 게 더 효율적입니다."
헬렌이 이렇게까지 얘기를 한 이상, 그녀의 말에 따라야 했다.
헬렌은 이 팀, 몬스터에서 가장 낮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녀의 능력은 너무나도 특별하기에.
그녀는 대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대상의 내면에 있는 선악 수치를 알 수 있었고, 그보다 더 중요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마음대로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는 것이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영입 후보에 올라선 녀석들은 많았고, 몬스터의 수많은 팀원들이 후보자들에게 스카웃 제의를 하러 전 세계 곳곳에 파견이 된 상태였다.
후보자들이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인다면, 동료가 될 것이고 거절한다면, 이 세상에서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제임스는 자신의 할 말이 끝나자, 입을 꾹 닫고 스크린 속의 사이비를 쳐다보는 헬렌을 힐끔 쳐다보았다.
`....정말 닮았단 말이지...뭐, 성격은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상당히 비슷한..아니, 너무나도 똑 닮은 헬렌을 바라보던 제임스의 입술이 삐쭉거리며 위로 올라갔다.
이내 헬렌에게서 시선을 거둔 제임스가 모두에게 말했다.
"스카웃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헬렌을 이용해서 사상검증은 확실하게 하도록 해. 우리의 목적은 그 녀석들과 결이 같은 듯 다르니까."
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거린 3명이었고, 이내 모두가 빠져나가 버린 그곳에는 거대한 스크린 속에서 작게 미소를 짓고 있는 사이비만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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