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67화. 옐로우 게이트.(37)
* * *
"으..으아아악!!! 고, 고자라니이이!!!"
정희철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절규할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무섭게 가라앉다 못해 따끔따끔한 살기로 채워져 간다.
쿨럭.
기침 소리와 함께 정희철의 피로 인해 입 주변이 빨갛게 물든 오소리의 입에서 정희철의 그것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으으...맛..없어..."
가슴에 난 상처에서 피를 울컥울컥 쏟으면서도 맛에 대한 평가를 하는 걸 보니, 아직은 정신줄을 붙잡고 있는 듯 했다.
여왕의 입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여왕과 마찬가지로 분개한 커스로치들이 재빠르게 달려 나가 알주머니 위를 굴러다니는 정희철의 가죽을 이곳저곳 깨물고서 질질 끌며 여왕의 앞으로 데려간다.
여왕 또한, 그 긴 앞다리를 이용해 쓰러져있는 오소리를 자기 앞으로 끌고 왔고, 혈전을 벌인 둘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아직 세상을 향해 제대로 된 걸음을 떼기도 전에 죽어버린 자신의 새끼들의 죽음에 크게 분노한 여왕이 직접 피를 묻히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거대한 두 앞다리를 이용해 둘의 머리를 향해 내려찍으려는 자세를 취한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무서운 분노와 슬픔이 담긴 그 일격이 시작되는 순간.
콰아아앙!
shaaaaaaa!!!
오소리의 근처에 도달해 기회를 엿보고 있던 일미들이 지면을 부수고 튀어나와 여왕을 향해 달려든다.
또한, 그 한순간에 【신체강화】를 사용했고, 여왕을 향해 달려들던 세 개의 꼬리 가운데에서 순식간에 새로운 머리 하나가 만들어짐과 동시에 몸속에서 거대한 힘이 끓어오른다.
점점 커지는 크기에 따라 시야가 넓고 높아지기 시작했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냥 거대하기만 하던 여왕이 작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나의 몸길이는 13m가 넘은 상태였고 여왕은 7m쯤 되는 크기였기 때문이다.
다른 커스로치들과는 다르게 인간처럼 상시 생각하고 높은 지능을 가져서 그런 것일까, 농구공만 한 녀석의 눈에 당황스러움과 놀람이 내비쳐 보이는 듯 했다.
녀석의 눈을 보기도 전에 이미 움직이고 있던 거대한 나의 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여왕을 칭칭 감은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불안한 것인지, 짜증이 난 것인지 녀석은 그 기다란 더듬이를 빠르게 움직인다.
집단전을 하게 될 시,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의 장수를 먼저 죽이고 명령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녀석이 무언가의 명령을 내리기 전에 온몸에 힘을 주어 녀석을 강하게 압박하며 옥죄었고, 그와 동시에 4개의 입에서 자욱한 【독구름】을 내뿜었다.
푸화아악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등장에 넋을 잃고 날 바라보기만 하던 훈련생들의 입에서 서러움과 울분, 일말의 희망이 담긴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들 중에서 가장 복합적이고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오소리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려왔다.
"대, 대장!!!"
"사, 사이비!!!"
"으, 으흐흑...왜 이, 이제 온 거야!!! 흐흑.."
조금 더 녀석들의 투정을 받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자신의 여왕이 공격을 받은 사실을 눈앞에서 목격한 커스로치들이 여왕을 칭칭 감고 있는 나에게로 달려들기 시작했고, 그런 녀석들 외에도 몇몇 커스로치들은 바닥에 엎드려있는 훈련생들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기에.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뒤지고 싶어?!"
나와 재회한 감동 때문인지, 커스로치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이미 전투가 벌어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바닥에 엎드려있는 모습에 욕지기가 치밀어오른다.
오소리 역시 바닥에 엎드려있는 상태였지만, 이유는 달랐다.
정희철과의 전투에서 생긴 상처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장은 그러한 상황을 봐주거나 하지 않는다.
이유가 어쨌든,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고, 죽는 놈이 약한 것이다.
그리고 전장에서 약한 놈, 약해진 놈은 아주 훌륭한 먹잇감이 되었다.
힘겹게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던 오소리에게로 커스로치 한 마리가 날카로운 턱을 들이밀며 오소리의 목을 조준한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이미 손을 쓰기에는 늦은 것 같았다.
"오, 오소리!!! 조심...."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는 커스로치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 오소리에게 경고하려던 찰나.
샤아아악!
날카로운 절삭음이 들려온다.
곧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오소리의 목을 노리던 커스로치의 상반신에서 엄청난 양의 체액이 뿜어지며 바닥을 향해 처박혔다.
........!!!
푸쉬이이익...
오소리의 앞에는 언제 이곳으로 합류했는지 모를 표지안이 한 마리의 흑표범으로 변한 상태로 온몸에서 희뿌연 수중기를 내뿜으며 서 있었다.
그리고는 상반신에 치명적인 공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꿈틀거리며 발버둥을 치는 커스로치를 향해 다가가 양손으로 난자하기 시작한다.
촤악! 촥! 촥촥!!
그럴 때마다, 끈적한 체액이 이리저리 튀었고, 그 날카로운 손톱으로 커스로치를 완전히 찢어발긴 후에야 녀석은 움직임을 멈췄다.
크르르릉...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날 바라보는 표지안.
그 눈빛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동쪽의 지배자인 여왕의 무리들과 호위대들과 전면전을 벌이게 된 이상, 더는 패를 숨겨두는 것은 멍청한 일.
"지금부터는 전면전이다!! 라이칸들은 모두 속성화를 사용하고 수인들은 라이칸들을 보조해!!"
속성화, 라이칸들의 전유물이자 양날의 검.
내면에 숨겨져 있는 야생성을 폭발시켜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고 속성의 힘을 사용하게 해주는 사기적인 능력.
.......주어진 시간은 15분.
이미 표지안은 속성화를 사용한 상태였고,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15분 후에도 커스로치들이 살아남아 있다면, 그녀는 야생성이 폭주하며 한 마리의 짐승이자 버서커가 될 것이다.
10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수천 마리의 커스로치들을 전부 죽이기엔 무리일 게 뻔했다.
물론,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틀리다.
이미 7,000마리 이상의 커스로치들을 일미들을 이용해 잡아먹은 난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 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자신의 여왕을 지키기 위해 나의 몸에 달라붙어 비늘을 날카로운 턱으로 공격하고 있는 커스로치들의 공격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기 새끼들이 무는 것처럼 짜증이 나기는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정희철과 오소리가 혈전을 벌이기 전에 그냥 몸으로 들이받는 판단이 훨씬 좋았을지도 몰랐다.
나조차도 내가 이런 상태일 줄 몰랐기에, 그런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여왕 역시 그 거대한 몸에서 나오는 힘으로도 나의 조이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비늘의 단단함 뿐만이 아니라, 근력 자체도 상당히 많이 올라갔기에.
이 정도면 해볼 만 하겠다고 생각하며 더욱더 몸에 힘을 주어 여왕을 조이기 시작할 때쯤.
곳곳에서 라이칸들의 포효소리가 들려왔고, 갖가지 속성들이 번쩍번쩍하며 자신의 위용을 뽐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곧 불의 속성을 가진 라이칸이 커스로치들의 사이로 뛰어들어 주변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바람의 속성을 가진 라이칸들이 허공에서 뛰어다니며 나의 몸에 붙은 커스로치들을 한 마리 한 마리씩 빠르게 공격을 시작한다.
희뿌연 수중기를 뿜어대는 물의 속성을 가진 라이칸들은 각개전투를 해가며 착실하게 숫자를 줄이고 있었고, 대지의 속성을 가진 라이칸들은 한군데에 모여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는 수인들을 빙 둘러싸 커스로치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표지안이었다.
그녀가 희뿌연 수중기를 내뿜으며 움직일 때마다, 커스로치 한 마리가 잘게잘게 해체되어 잘게 다져진 고깃덩어리로 변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캐, 캐스팅 끝났어!!"
때마침, 캐스팅을 끝낸 수인들이 비장한 목소리로 주변에 소리쳤고 가장 커스로치들이 많이 모인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그 장소는 바로.
여왕을 강하게 옥죄고 있는 나와 여왕의 근처였다.
커스로치들은 마치, 바퀴벌레 탑을 쌓아 올리듯이 서로를 밟고 올라와 나의 몸 위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수인들이 당황한 얼굴과 목소리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을 때.
"상관없으니까, 그냥 쏴."
나의 말에 여전히 벙찐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들.
"그, 그러면...너, 너도 말려들 거..."
"씨발!!! 이 능지 박살 난 새끼들아! 이미 라이칸들이 속성화까지 사용한 마당인데, 한 마리도 빠짐없이 전부 죽여야 할 거 아냐!!"
버럭하고 소리치며 욕설이 섞인 거친 말을 내뱉자 녀석들은 한순간 감동한 듯한 얼굴을 짓더니, 곧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너, 너의 그 각오는 잘 전해졌어. 더, 더는 우리도 약한 소리 하지 않고 전력으로 갈게."
...으응? 각오?
녀석들이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은 그저 단순히 내 몸에 달라붙은 커스로치들을 1차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녀석들에 의해 공격력이 약해진 마법을 단단한 나의 비늘로 버텨낼 자신이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불화살!!"
"전기 사슬!!"
"대지의 창!!"
수십 개의 마법이 여러 가지 속성을 품고서 빠르게 날아온다.
콰콰콰쾅!!!
연달은 폭격음이 울려 퍼지며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고, 커다란 충격이 나의 비늘을 강하게 때렸다.
......크으....새, 생각보다 강하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 충격에 절로 입이 앙다물어졌지만, 결론은 버틸 만 했다.
마법들에 의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니었고, 내 몸에 달라붙어 있던 수많은 커스로치들이 후드득 밑으로 떨어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마법에 직격당해 밑으로 떨어진 동족의 시체들을 밟고서 또 다른 커스로치들이 다시 그 자리를 메꾸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고, 그 짜증을 분출해내기 위해 여왕의 몸을 더욱 세게 옥죄었다.
그러자 끼에에엑!! 하고 큰 괴성을 지르는 여왕.
우드드득.
신축성이 좋은 키틴질로 이루어진 여왕의 외피가 강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절호의 찬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걸 사용해야 할 때인가.
속성화를 떠올렸다.
불, 물, 바람, 대지, 전기의 속성을 가진 라이칸이 속성화를 사용하는 모습은 봤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독의 속성을 가진 라이칸이 속성화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어떤 모습으로 발현이 될지 몰랐기에, 나의 독에 주변의 훈련생들이 피해를 입을수도 있었기에.
내가 보유한 독 마법 중에서 【무색무취】란 마법이 있었지만, 만약 속성화를 사용해서 만들어 낸 독이 【무색무취】에 대한 효과를 받지 않는다면?
나의 독은 말 그대로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모두를 죽이는 양날의 검이 아닌, 무차별 테러 공격이 될테니까.
아니, 생각해보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화속성을 가진 라이칸은 또 다른 화속성을 가진 라이칸이 뿜어대는 불꽃에 의해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랬기에, 화속성의 라이칸들은 자신들끼리 한군데에 모여 거대한 불꽃을 주위에 내뿜으며 싸우고 있었고, 전기속성을 가진 라이칸들 또한 자신들끼리 모여 거대한 전기 스파크를 주변에 발산하며 싸우고 있었다.
이곳에서 독 속성을 가진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 내가 걱정했던 부분은 결국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었다.
"모두 뒤로 빠져! 지금부턴 나도 속성화를 사용한다!"
명령을 들은 라이칸들이 귀를 쫑긋거렸고, 다른 녀석들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열을 지키며 천천히 뒤로 빠지기 시작한다.
슬슬 마법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부위에 비늘이 내구력이 약해져 커스로치들의 공격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천천히 후퇴를 하는 훈련생들을 따라 커스로치들이 따라가자, 좀 더 힘을 주어 여왕을 조이자 여왕의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온다.
그러자 집요하게 훈련생들을 쫓아가던 녀석들이 몸을 돌려 나를 향해 뛰어 들어온다.
그때.
【그, 그....만....】
듣기가 거북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온다.
........??
【너구나...이 벌레 새끼야.】
【지, 지금이라...도...그..만두면...너희에게 해를 끼치...지 않....】
우드드득.
녀석이 나에게 텔리파시를 보내자, 더욱 힘을 주었고 또 한 번 녀석의 몸이 붕괴되는 소리가 들린다.
【좆까. 씨발같은 새끼야.】
【속성화】를 떠올리자, 나의 몸속 내부에서는 매우 흉폭하고 사나운 힘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이, 이것이 속성화..!
그 흉포하고도 거친 야생성을 거부하지 않고 천천히 음미를 하듯 느낀다.
shaaaaaaaaaaaa!!!!
주체할 수 없는 야생성에 절로 포효가 흘러나왔고, 검 보랏빛의 독이 아닌, 칠흑같이 새까만 끈적한 독이 전신에서 흘러나와 죽음의 기운을 사방으로 퍼트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