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63화. 옐로우 게이트.(33)
* * *
퍼어억!
또다시 순두부로 변해버린 커스로치 한 마리가 일미의 아가리 힘을 못 이기고 터져나가며 목구멍을 타고 술술 넘어간다.
【커스로치를 섭취하셨습니다.】
【힘과 민첩, 체력이 극소량 상승합니다.】
이미 몇 번을 커스로치들을 꿀꺽 먹어 치웠고, 그에 따른 알림음이 들려온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극소량의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말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분명, 처음에 들려왔던 키틴질, 신경차단, 끈질긴 생명력 등등과 같은 단어가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녀석들을 먹어 치우면 되는 게 아니었나?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며 전투에 대한 집중을 방해했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싹 지워버렸다.
지금 현재는 일미를 제외한 이미와 삼미는 커스로치의 섭취를 그만두고서 연신 【독구름】을 사용하고 있었고, 일미만이 커스로치의 시체들 틈에 숨어 기습을 통해 배를 채우고 있었다.
이럴 때, 한시아와 같은 바람 속성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바람을 조종해 독구름을 빠르고 넓게 확산시켜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구란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이미와 삼미가 내뿜는 【독구름】은 빠르게 확산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계속해서 뿜어대는 【독구름】과 커스로치들이 서로를 죽이며 움직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날갯짓에 조금씩 【독구름】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커스로치들의 크기가 워낙 거대하고 그 물량이 많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동족상잔을 벌이고 있는 커스로치들 사이에서 내가 바라고 있던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부르르르르...
타구역의 커스로치를 죽인 동쪽의 커스로치가 턱에 묻은 살점을 정리하던 도중 몸을 부르르 떨며 토사물인지, 피인지, 체액인지 모를 액체를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중독.
그건 바로 내 독이 슬슬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중독상태였다.
그러한 증상은 점점 자욱한 독무 속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커스로치들에게서 나타나고 있었고, 내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만약 독을 사용하는 마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봤다면, 무척이나 위험한 상태라며 지금 당장 독무 속을 빠져나오라고 거칠게 명령을 내릴 상황.
하지만 이 커스로치들은 독 마법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설상 알고 있다고 해도 셀 수도 없이 많은 숫자가 뒤엉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곳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광기의 환각】을 써야 할까?
확실히 내 눈으로만 본다면, 써도 좋을 상황이었다.
내 시야에 닿는 모든 곳에는 【독구름】이 가득 차 있었기에...
하지만 만약, 이 【독구름】이 터널 끝에 있는 여왕의 둥지에까지 닿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 여왕과 여왕을 지키는 호위대가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면..?
여러 가지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난 결정을 내렸다.
아니, 내려야만 했다.
그 이유는 아무리 동쪽의 커스로치들이 자신들의 터전과 여왕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운다고 하나, 상대는 세 구역의 커스로치 집단들이었다.
한 구역과 세 구역의 무리들의 전투는 기본적으로 머릿수가 달랐다.
또한, 처음 전투가 시작된 그때는 모든 커스로치들이 뒤섞여 피아식별 없이 서로를 죽였다면,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은 세 구역의 커스로치들이 슬슬 단합해 동쪽의 커스로치들만을 골라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퀴벌레는 영리하고 똑똑한 놈들이었다.
첫 전투 시점에는 갑자기 시작된 전투에 놀라 흥분감을 감추지 못해 자신과 다른 페로몬을 가지고 있는 타구역의 녀석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했다면, 인간보다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생물답게 빠르게 상황에 적응하며 동쪽의 커스로치들을 말살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 같았다.
....지금 사용해야 해. 안 그러면....동쪽의 커스로치들이 모두 죽고 녀석들은 이곳에 자리를 잡을 거야.
서로 피가 터지도록 싸우며 모두 자멸할 줄 알았던 내 계획과 상당히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았다.
.....지금 이곳에서 모두 죽여야 해. 최소한 내 시야에 보이는 이놈들은 모두..
【광기의 환각】
이미의 아가리를 타고 아주 음울한 연보라색의 빛이 주변에 퍼진 【독구름】을 타고 그 속으로 스며든다.
【광기의 환각】이 【독구름】에 스며든 이상, 독무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녀석들을 매초 일정 확률로 광기에 침식이 될 것이다.
【야, 바깥 상황은 어때? 뭔가 좀 안정적인 듯한 느낌이 드는데.】
【뭐, 일단은 숨통이 트였어.】
【...그럼 이제 나 좀 밖으로 꺼내줄래? 여기 존나 기분 나쁘거든?】
【안 돼. 아직 그 정도로 안전하지는 않아.】
그렇게 【광기의 환각】이 창궐하기를 기다리며 표지안과 대화를 나누고 있자, 드디어 입질이 왔다.
동쪽, 서쪽, 남쪽, 북쪽 할 것 없이 모든 구역의 커스로치들에게서 광기에 물든 녀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광기에 물든 녀석들은 훨씬 더 흉포한 공격성을 드러내며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진득진득한 체액과 녀석들의 잔가시가 달린 다리와 반투명한 날개들이 절단이 된 체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투둑투둑.
콰득 콰득
좀 전과는 달리 훨씬 빠른 속도로 수많은 커스로치들이 생명을 잃어갔고,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엔 수많은 알림음들이 맹렬하게 울려댔다.
【동쪽의 커스로치를 처치하셨습니다.】
【남쪽의 커스로치를 처치하셨습니다.】
【북쪽의 커스로치 3마리를 처치하셨습니다.】
【현재 처치한 커스로치: 174】
녀석들의 생명을 조금씩 갉아먹는 【독구름】과 무차별한 학살을 주도하는 【광기의 환각】의 능력으로 인해 녀석들을 죽이는 데에 굉장히 큰 지분을 차지함으로써, 녀석들의 데스카운트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또한.
샤아아아악!!
콰득.
【커스로치를 섭취하셨습니다.】
【힘과 민첩, 체력이 극소량 상승합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커스로치들의 시체와 독에 중독되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녀석들을 위주로 일미가 포식을 하며 꾸준히 능력치를 올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일미의 입가에는 흰 갈색의 누런 체액과 녀석들의 잔해가 잔뜩 묻어있었다.
하지만 그런 혐오스러운 모습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마치, 능력치가 복사가 되는 버그에라도 걸린 듯한 지금의 상태는 나의 눈알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한 마리도 빠짐없이 전부 먹어 치운다.
그때부터였다.
적당히라는 단어는 완전히 삭제해버린 후, 이성의 끈을 놓고 오로지 본능만을 좇아 녀석들을 먹어 치웠다.
먹고 또 먹고, 또 먹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독구름】을 계속해서 뿜어내던 이미와 삼미도 일미와 합류해 포식을 시작한다.
일미 녀석들에게는 소화기관이나 위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커스로치들을 삼켜댔다.
배부름이나 과식의 징후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삼키는 순간,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무아지경(無?之?)에 빠져 포식을 하던 중, 나의 머리 위를 묵직하게 누르고 있던 커스로치들의 시체가 모두 사라지자 번쩍하고 정신이 돌아왔고, 왠지 모르게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몸을 숨기기 위해 머리 위에 덮어놓았던 수많던 시체들은 이미 일미들의 입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고, 머리를 살짝 들어 올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바라본다.
주변엔 셀 수도 없이 많은 반투명한 곤충의 날개와 가시가 달린 다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물론, 커스로치들의 통통한 몸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녀석들의 몸통은 일미들의 입속으로 들어가 나의 능력치로 변했기에.
【코오오.....흠...흐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입속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표지안은 어느새 작게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고, 중간중간 들려오던 오소리의 걱정스러운 말이 담긴 【텔레파시】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조금 전부터 이상하게 답답하고 꽉 막힌 기분이 자꾸만 들었던 난 조심스럽게 머리와 몸을 움직여 내가 만들어낸 깊은 구멍에서 기어 올라왔다.
그러자 답답했던 기분이 사라지며, 몸에서 활력이 치솟아 올랐고 아주 흡족스러운 힘이 넘쳐나는 걸 느꼈다.
이내 찌뿌둥했던 몸을 풀기 위해 고개를 높게 쳐들고 기지개를 켠 후, 다시 밑으로 시선을 돌려 내 몸을 바라보았을 땐.
.......어? 뭐, 뭔가 더 커진 것 같은데?
처음 【신체강화】를 이용해 거대한 사두사로 변했을 때보다 뭔가 더욱 커진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커져 있었다.
10m가 조금 넘어 보이던 전과는 달리, 현재는 13m 이상은 되어 보였고, 둘레 또한 좀 더 굵어져 있었다.
.....신체강화에 이런 기능이 있었던가?
황당함에 내 자신에게 물어본 말이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뭔가를 잡아먹어서 더욱 거대해지고 강해지는 이런 기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라이칸들이 몬스터를 안 잡아먹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옐로우게이트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데...
현재로서는 이렇다는 추측만이 가능했기에, 금세 머릿속에서 이 문제를 털어내고선 시련의 결과를 떠올렸다.
그러자.
【현재 처치한 커스로치: 7158】
.....치, 칠천백오십 팔마리...?
무아지경(無?之?) 빠져 식탐을 채우기 바쁠 동안, 【독구름】과 【광기의 환각】이 만들어 낸 엄청난 결과물에 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아무리, 집단 대 집단이 싸울 때 가장 무섭고 효율이 좋은 독 속성 마법이라지만, 이 정도로 최고의 결과를 가져다줄 줄은 몰랐다.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광기의 환각】이라는 마법이 전원 말살이라는 특성에 특화된 것도 있지만, 커스로치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공격성이나 공격력이 뛰어난 이유가 한몫을 해낸 것 같았다.
그때.
【..흠냐.....흐음...잘잤....다....? 헉...! 미, 미친 거 아냐? 이 상태에서 잠이 들다니!!】
작게 코를 골며 자고 있던 표지안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반응해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한다.
【어. 깼어?】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벌려 표지안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머리를 바닥에 가져다 대었다.
쩌억..
벌린 입 사이로 침이 쭈욱 늘어졌고, 표지안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온다.
【......뭐야....다 끝난 거야?】
【완전히 끝난 건 아니고.】
수많은 커스로치들에게 쫓기며 도망칠 때 두통을 호소하던 표지안의 얼굴을 제법 많이 환해져 있었다.
그 많던 커스로치들이 전부 죽었으니, 더는 위험 요소가 없다고 그녀의 【야생의 감】이란 능력이 말해주고 있을 터.
이내 완전히 밖으로 나온 표지안은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마 보이는 게 없을 것이다.
아주 조금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피워놨던 불도 전부 사그라들었기에.
그저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경계하는 것일 뿐.
【야, 오소리.】
더는 표지안과의 대화가 이어지질 않았기에 굴속에 숨어있는 오소리에게 전음을 보낸다.
...........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장난스러운 미소가 지어졌고, 짐짓 빈정이 상한듯한 목소리를 내며 다시 한번 말한다.
【...누구는 목숨 걸고 싸우고 왔는데, 자빠져서 잠이나 잔다 이거지?】
........
하지만 이번에도 오소리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전체 【텔레파시】 채널로 말하고 있음에도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상했다.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있다고 하더라도 머릿속에서 울리는 이 【텔레파시】의 목소리를 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
표지안 역시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나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온다.
【....아...씨발...뭔가 존나 불안한데...】
작은 욕설을 내뱉으며 심호흡을 하는 표지안.
그 말에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나 또한 그녀와 같은 불안함을 느낀다.
콰아아앙!!!
일미가 오소리 일행이 숨어있던 굴의 벽면을 머리로 강하게 들이박자, 커다란 소리를 내며 벽면이 파스스 무너져 내린다.
벽면이 무너져 내린 그 순간.
나는 상황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피냄새.
강제로 벽면을 부숴 드러난 굴속에서는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비릿한 피 냄새가 아주 진하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씨발!!!"
콰아아앙!!!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좆같음을 참지 못하고 거친 욕설을 육성으로 내뱉으며 벽면을 강하게 후려쳤다.
표지안 또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않는다.
"....이, 이게 도대체.....씨발.....이 녀석들은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표지안은 비릿한 피 냄새로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나는 피트기관을 이용해 처참한 굴속의 현장을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굴속에는 완전히 잡아먹혀 머리카락만을 남기고 있는 시체도 있는가 하면, 반쯤 먹다 만 시체, 내장만 깨끗하게 사라진 시체도 있었다.
그리고 그 꽤 넓은 굴속에 천장과 옆 벽면에는 제법 커다란 구멍이 여러 개 슝슝 뚫려있었다.
안 봐도 뻔했다.
저 구멍에서 튀어나온 커스로치들에 의해서 기습 공격을 당한 것 같았다.
빠득.
.....이런 개새끼들.....
절로 이가 갈렸다.
터벅터벅.
굴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직 덜 마른 피들이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고, 코끝을 찌르는 혈향은 더욱 진해진다.
눈을 감지도 못하고 죽은 참담한 모습에 주먹이 꽉 쥐어졌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어가 상처를 내었다.
그렇게 한참을 굴속에 들어가 이것저것을 살피던 난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소리의 시체가 없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 굴속에 있는 시체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녀석들이 전부 먹어 치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내 감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 감을 믿으며, 아니, 맞길 바라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벽면에 있는 구멍에 손을 가져다 댔다.
... 그럼 한 번 확인해보자. 내 감이 맞는지, 아닌지.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분노를 달래며 【사이코메트리】를 이용해 이 처참한 현장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한 편의 지옥도가 나의 머릿속에서 재생되기 시작했고, 그 끔찍한 기억들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