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61화. 옐로우 게이트.(31)
* * *
지옥의 아귀처럼 게걸스럽게 나와 표지안을 먹어 치우기 위해 뒤를 바짝 쫓아오는 커스로치들.
조용한 몸놀림과 빠른 속도가 주는 위압감에 절로 침이 삼켜졌지만, 골드문의 서열 1위인 표지안을 잡아내기란 힘들어보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딱딱한 듯, 부드러운 표지안의 육체를 꽉 잡고 매달려야 했다.
...됐어. 거의 다 왔어.
녀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소란을 피웠던 중심부에서 동쪽 터널길의 끝에 있는 커스로치들의 둥지 근처까지는 금방이었다.
어느새 동쪽 터널길의 절반 정도를 지났을 때.
【1분 뒤에, 끝에 있는 둥지를 향해 가장 강력한 마법을 사용해줘.】
싱싱한 먹잇감이라는 동기를 부여해준 다른 구역의 커스로치들과는 달리 동쪽 구역의 커스로치들에게는 다른 의미의 동기를 부여해줘야했다.
그건 바로, 자신들의 터전이자 여왕과 알을 지키는 것.
【아, 알았어..!!! 안 그래도 지금 모두 캐스팅을 마친 상태야! 정확히 60초 후에...】
긴장한 듯, 가늘게 떨리는 오소리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표지안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전음들을 듣고선 조금 더 속도를 올린다.
나 역시, 중심부에서부터 표지안의 뒷목을 꽉 끌어안고 이동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독구름】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내 뒤쪽으로는 자욱한 검 보랏빛 독무로 가득 차 있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뿜어대면, 이 동쪽 터널길은 【독구름】으로 가득 차서 서서히 이곳에 있는 모든 커스로치들을 중독시켜 녀석들을 약화시킬 것이다.
그 순간.
콰콰콰콰쾅!!!!
퍼버버벙!!!
파지지지짓!!!!
미리 맞춰놓았던 계획과는 다르게 조금 더 일찍 마법이 시전되었다.
......분명 1분 뒤에 마법을 사용하라고 했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마법 사용 명령을 내린 뒤, 30초도 안 돼서 요란한 마법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씨발... 도대체 무슨 일이...
입술을 질끈 깨문 뒤, 앞에서 대기중인 녀석들을 향해 전음을 보내려던 찰나.
【대, 대장!!!】
다급한 오소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기, 기습이야!!! 둥지에서 여왕을 보호하던 녀석들이 갑자기....크읏...!!!】
【...뭐, 뭐어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은밀하게 실행되던 계획이었다.
이틀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고, 수상한 낌새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녀석들이 왜 이제와서 갑자기 둥지를 벗어난단 말인가.
아니, 이유 따위는 상관없다.
이미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째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생각보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파헤쳐 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게 우선이었다.
.....씨발...왜 하필....지금...
표지안 또한 당황스러운지, 고개를 살짝 돌려 흘깃 나를 바라본다.
【기습을 한 녀석들의 숫자는 어떻게 돼?】
【세, 세마리 정도가 천장을 타고 내려와서 기습을 가했어. 기습을 당한 블루문의 훈련생이 그 세 마리에게 끌려갔는데...아마...】
뒷말은 들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처음 커스로치들에게 공격을 받은 여 훈련생처럼 녀석들의 든든한 영양분이 되었으리라.
【당장 그곳에서 도망쳐서 미리 파두었던 굴속에서 대기해. 어차피 마법의 폭발 소리가 들렸을 테니까, 곧 녀석들은 세 마리 정도가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많은 숫자로 무리 지어서 튀어나올 거야.】
【아, 알았어. 대장! 빨리 와야 해.】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대답하는 오소리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무작정 앞으로 달리는 수밖에 없다.
"업힌 처지에 할 말은 아닌데..."
멋쩍은 얼굴로 표지안에게 말을 건넨다.
"그럼 하지마."
"아니, 그래도 해야겠어. 조금만 더 빨리 달려주면 좋겠는...."
"아 좀!! 최대한 빨리 달리고 있으니까...닥치라고!!!"
얼굴을 와락 구긴 채, 으르렁거리며 말을 하는 표지안.
그렇게 뒤꽁무니에 수많은 커스로치들을 매달고 얼마간을 달리자, 저 멀리 앞에서 굴속에서 얼굴을 삐쭉 내민 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오소리가 보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굴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바닥에 만들어두었던 작은 불꽃이 은은하게 주위를 비춘다.
일렁이는 불꽃이 출렁이는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오소리의 얼굴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을 때.
나의 눈에 이상한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천장에서 은은한 광택을 내는 무언가가 번쩍이며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잠깐...광택...? 이, 이런 씨발..키틴질..!!!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작을 불꽃이 만들어내는 빛에 반응해 광택을 낼 수 있는 무언가는 녀석들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즉시 피트기관을 이용해 천장을 바라보자 형형색색의 영롱한 색감들이 커스로치의 형태를 한 채, 천장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 중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오소리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고 있는 상황.
파두었던 굴까지 닿기까지는 아직 거리가 많이 남아있었지만,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야! 오소리!!! 지금 당장 입구를 막아!!! 네 머리 위에 커스로치들이 있어!!!】
나의 말에 오소리가 얼마나 놀랐는지가 공기를 통해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가득 베인 헛숨이 짧게 울려 퍼지더니, 곧 패닉에 빠진 수많은 훈련생들 사이에서 대지 마법의 이름이 들려왔다.
"수, 수복!!!"
그 짧은 마법명과 함께 누군가가 오소리를 굴속으로 확 잡아당겼고, 이내 굴이 빠른 속도로 메워지기 시작하더니 아주 단단한 바위가 그 입구를 빈틈없이 막아버렸다.
그 순간.
천장 위에서 오소리를 공격하려던 커스로치 한 마리가 입구를 막고 있는 바위에 머리를 한 번 강하게 부딪혀보고는 머리를 돌려 나와 표지안이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대, 대장!!! 괘, 괜찮아?!!!】
정신을 차린 오소리가 나에게 전음을 보내온다.
【괜찮으니까, 거기에 숨어서 꼼짝 말고 있어. 우리는 어떻게든 이 녀석들을 따돌려볼 테니까.】
그 뒤로도 오소리와 몇몇 훈련생들의 걱정스러운 전음이 날아왔지만, 그런걸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와 표지안의 뒤로는 우리를 찢어 잡아먹으려는 타지역의 커스로치들이, 앞으로는 자신들의 둥지와 여왕을 지키기 위해 침입자들을 죽이려는 커스로치들이 달려오고 있었으니.
덜덜덜덜..
나와 오소리가 주고받던 전음때문일까, 아니면 표지안이 말하던 【야생의 감】 때문일까 그녀는 조금씩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이러스가 전염되듯, 표지안의 두려움이 나의 몸을 스멀스멀 타고 올라온다.
생각해내자.
아니, 생각해내야 한다.
앞뒤로 우리를 찢어 죽이기 위해 달려오는 녀석들에게서 살아남을 방법을.
아무리 표지안이 골드문의 1학년 대표라지만, 혼자서 수천 마리의 커스로치들을 상대할 방법은 없었고, 폭발적인 화력이나 공격력이 없는 나의 마법도 이 순간을 벗어나게 해줄 수는 없을 터.
그렇다면...
신체강화...!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면, 이전에 새롭게 얻어낸 능력인 【신체강화】를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신체강화】의 설명란에 더욱 더 강력한 힘과 방어력, 재생력을 가져다준다고 했으니, 이 약하디약한 인간 모습의 몸보다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얼마나 단단해질지는 모르겠지만, 1%의 생존율을 올릴 수 있다면 그 선택을 믿고 나아가야 했다.
【고생했다. 이제 좀 쉬고 있어라.】
나를 지금까지 업고서 전속력으로 달리던 표지안에게 말을 던진 뒤, 머릿속으로 【신체강화】를 떠올렸고 곧 내 몸속에서 처음 느껴보는 미지의 힘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이내 마음속으로 【신체강화】를 외치자.
뿌드드드득.
몸속에 있는 뼈들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이질적인 느낌과 함께 시야가 더욱 높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스르르르르.
나를 업고 있는 표지안의 매끈한 등과 허리라인에서 신체가 떨어졌고, 심상치 않은 나의 변화가 느껴졌는지 표지안이 휙 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쉬이이이이익!!
내 입에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주 묵직한 뱀의 쇳소리가 들려왔으며, 강력한 힘이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 나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다.
【....너, 너!!! 그 모습은.......어떻게....설마....수, 수라....?】
표지안의 입에서 튀어나온 수라라는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쇳소리를 내었다.
쉬이이익.
배에서 느껴지는 딱딱하고 차가운 돌바닥 감각에 정말로 【신체강화】에 성공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고개를 내려 밑을 바라보니 인간이었던 나의 몸은 매우 두껍고 커다란 뱀의 몸통으로 변해있었다.
새하얀 비늘로 뒤덮인 커다란 뱀이 된 것이다.
그때.
쉬익!!
쉬이이익!!
나의 머리 바로 옆에서 쇳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양옆으로 돌려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냈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나의 머리 오른쪽 방향에는 일미와 이미가 보였고, 왼쪽에는 삼미가 그 시뻘건 눈을 번뜩이며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이게 왜 진짜야? 지금 나 쌍두사도 아니고 사두사(???)가 된 거야?
내심 뱀의 크리쳐를 가진 다른 녀석들과 조금은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일미부터 삼미까지와 몸이 하나가 될 줄이야.
그때.
일미부터 삼미까지의 시야가 뒤늦게 공유되기 시작했고, 일미의 고개를 뒤를 돌려 나의 몸뚱이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니, 몸길이가 10m는 훌쩍 넘어 보이는 두꺼운 몸을 가진 사두사(???)였다.
그런 나의 모습에 표지안을 달려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입을 크게 벌리고서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런..!! 뒤에 녀석들이 쫓아오고 있건만.
인간의 몸에서 뱀으로 완전히 신체를 바꿔버려 몸을 움직이기가 어색할 것 같았던 걱정과는 달리, 마치 뱀의 몸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
쐐애애애액!!
처음의 계획대로 아가리를 크게 벌려 표지안을 향해 들이밀었고, 마치 뱀 앞에 쥐처럼 몸이 굳은 채 가만히 서있는 표지안을 그대로 덥석 삼켜버렸다.
물론, 표지안이 다칠일이 없게 매우 부드럽게 그녀를 입속으로 집어삼켰고, 곧 나의 입천장을 두드리는 표지안의 짜증 섞인 말들이 들려왔다.
【으으...기, 기분 나쁘다고 이 새끼야!!! 사방이 끈적끈적...으...】
그리고는 표지안을 삼킨과 동시에 오염된 이끼가 잔뜩 자라나 있는 돌바닥을 빠르게 기어가며 자신들의 둥지를 지키기 위해 달려오는 동쪽의 커스로치들을 향해 이동했다.
【조금만 참아. 그냥 이것들 데리고 저 앞으로 가자고.】
바닥을 빠르게 미끄러지며 나아가는 나의 몸과 꼬리를 바라보며 추격하는 녀석들을 데리고 다음의 상황을 맞이한다.
.....지금부터는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야.
나의 이 새하얀 비늘이 녀석들의 공격을 얼마나 막아줄지는 모르지만, 두 커스로치 집단을 서로 맞닥뜨리게 만들어야 했다.
......버티자…. 버텨야 돼... 존버는...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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