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57화. 옐로우 게이트.(27)
* * *
독충들을 맨 앞으로 보내 척후 활동을 시작하고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존재감이 미약한 형광색의 불빛에 최대한 눈을 적응시키며 전방을 주시한다.
졸졸졸졸..
산속에서 들었다면, 가까운 근처에 계곡이 있다고 생각될만한 물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하지만 정작 내 눈앞에 보인 건, 녹색과 검은색이 섞인 거뭇거뭇한 이끼로 뒤덮인 오염수 배출구에서 흘러나오는 구정물, 쉽게 말해 똥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우리 파티의 옆으로는 제법 큰 물길이 만들어져 오염수가 흐르고 있었다.
미궁과 같은 모습을 하던 D3 지역과는 다르게, 이곳은 대한민국 아래에 존재하는 지하수로, 또는 하수도 그 밑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한 악취와 속이 메슥거리는 환경이었다.
벽에 다닥다닥 붙은 정체 모를 갈색과 검은색이 섞인 무언가에 회색을 띠는 털 뭉치가 붙어있었고 나의 발바닥만 한 쥐새끼들이 찍찍거리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숨을 쉴 때마다, 유독가스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불쾌한 감정과 왠지 모를 두려움이 느껴진다.
.....도대체 이곳에는 뭐가 살고 있는 거지....? 설마...쥐?
보통 쥐보다 훨씬 커 보이는 쥐들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이 쥐새끼들만 한 반딧불도 있었는데......아니, 잠깐...반딧불은 깨끗한 공기가 존재하는 청정지역에서만 서식할 수 있다고 알려졌는데...이곳은 아무리 봐도 지하수도 그 자체잖아...?
이렇게 더러운 지하수도를 비추며 살아가는 반딧불이라니, 무언가 이상했다.
지금 내 발밑을 기어 다니는 쥐보다 더욱 큰 크기를 가지고 있던 반딧불의 모습도 이상했고...
....한낱 곤충이 짐승보다 크다...?
등 뒤로 서늘한 감각이 훑고 지나가는 것 같다.
이런 환경을 가장 좋아할 만한 존재가 있다면, 그건 아마....
.......쥐나 바.....
찍찍찍찌이익!!!!
마치, 누군가에게 경고를 하듯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던 쥐새끼들이 아주 재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대, 대장!!! 쥐, 쥐들의 움직임이 이상해!!"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듯해 보이는 그 모습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야..."
그 순간, 옆에서 이제껏 들을 수 없었던 표지안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일이야?"
"....내 능력 중에 【야생의 감】이란 능력이 있거든…? 지금 당장 길게 설명하긴 힘든데...도, 도망쳐야 해....아, 안 그럼 모두 죽는다....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덜덜덜덜...
말을 하는 와중에도 몸을 덜덜 떨어가며 말하는 표지안.
"....펴, 평생을 살면서 내 감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도망치라고 말하는 건...처음이야..."
난 【뱀의 심안】으로 표지안의 상태창을 한 번 본 적이 있었기에, 그녀가 【야생의 감】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게 정확히는 어떤 능력인지 모르겠지만, 감이라는 건....살면서 많은 상황에서 운명을 뒤바꿔놓는 역할을 했다.
이제껏 그 어떤 몬스터들을봐도 콧방귀를 끼던 표지안이 이렇게 당황하며 몸을 떨 정도라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떻게 하면 되지? 뒤로 후퇴를 해야 해? 아니면, 적당한 곳에 몸을 숨기...."
"..물.!!! 물속으로 뛰어들어!! 그, 그래야 살 수 있어."
표지안의 말에 난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저 들어가기만 해도 피부병이 걸릴 것 같은 오염수로 뛰어들라고…?
탁한 빛을 내며 알 수 없는 건더기가 둥둥 떠다니는 물을 보며 몸을 흠칫 떨었다.
다른 녀석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 불신이 담긴 눈빛으로 표지안을 바라본다.
"잘 선택해. 네 명령 하나에 이 새끼들 목숨이 다 달려있으니까."
으르렁거리는듯한 말투로 나를 노려보는 표지안.
척후 활동을 보낸 독충들의 시야에는 그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우리에게 죽음이 다가온다고 하니 머리가 복잡했다.
"...시, 시간 없어!! 이 새끼야!!!"
머리가 아픈 것인지, 표지안이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꾸욱 누르며 선택을 재촉했다.
...절대 헛소리를 할 여자가 아니야. 표지안을 믿고 가자.
".......모두 물속으로 입수해서 몸을 숨긴다. 명령이야."
딱딱하게 얼굴이 굳어지는 녀석들.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까, 오소리 그다음으로 네가 들어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오소리.
곧.
풍덩!
오염수를 향해 몸을 내던진 순간,
차가운 듯, 미지근한 찝찝한 감각이 나를 감쌌고,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악취가 내 코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모두 살고 싶으면 뛰어!!"
오소리가 입수하기 전, 주변의 녀석들을 바라보며 말했고 이내 오소리가 오염수로 자신의 몸을 던진다.
그 모습을 본 표지안이 여전히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꾸욱 누르며 기어오다시피 해 물속으로 스르륵 떨어져 내렸다.
풍덩 풍덩!
그에 맞춰 수많은 훈련생들이 이를 악물고 오염수로 자신의 몸을 던지기 시작하자.
"씨발...니미...지랄들을 하고 있네. 진짜...."
현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 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욕설을 내뱉는 정희철이었다.
자신을 따르던 따까리들은 모두 다른 구역으로 이동을 해버린 상황이라, 멍하니 혼자 서 있는 정희철이었다.
이 파티의 리더는 표지안이 되거나, 자신이 될 줄 알았던 정희철은 느닷없이 거의 모든 훈련생들이 뱀 같은 새끼에게 리더를 맡아달라고 부탁을 하자, 그것을 말릴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자신의 편을 들어줄 이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무리를 지어 행동하던 전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어버린 상황.
어느덧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가 오염수로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숨을 참으며 몸을 숨기고 있었다.
찌찌찌...찌이...
귓가를 날카롭게 강타하던 쥐새끼들의 울음소리가 돌연 사라져버렸다.
그리고는...
소소소소솟.
이유 없이 돋아나는 소름에 등골이 찌르르한 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이...씨발...진짜!! 별 거 아니기만 해봐라……."
마지막으로 정희철의 몸이 오염수를 향해 떨어지고서, 10초 정도가 흘렀다.
일미의 왼쪽 눈만을 물 위로 살짝 꺼내 밖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나였다.
마지막으로 한 녀석이 오염수로 뛰어들고서, 몇 초의 시간이 흐른 지금.
밖의 상황은 별로 특별할 게 없었다.
딱, 하나 이상한 게 있다면.....너무 쥐죽은 듯이 고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던 반딧불들도 전부 어디론 가로 사라져버렸고, 말 그대로 깜깜한 칠흑만이 존재하는 이곳이었다.
하지만 피트기관으로 인해,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어둠에 전혀 방해를 받지 않는 시야를 가진 내게 있어 이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대체....뭐가 온다는 거지....
코를 망가트리려는 듯한 악취가 너무 지독한 탓인지, 이제는 후각이 마비되어버린 것 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더기가 몸과 얼굴을 툭툭 치며 떠내려갈 때마다, 엄청난 불쾌감이 몸을 뒤덮었지만 참아야 했다.
숨을 참던 모두가 호흡을 위해 천천히 얼굴을 들어 올려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진 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시야와 정적으로 가득 찬 이곳은 평화로워 보이는듯했으나, 내 뒤에서 나의 등에 몸을 기대서 덜덜 몸을 떨고 있는 표지안을 보자니, 아직 상황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사이코메트리】라도 사용해서 이곳에 뭐가 지나다녔는지 알아봐야지.
벽에다가 손을 갖다 댔다.
미끈거리는 불쾌한 감촉이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곧 정신을 집중하여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했다.
뻘뻘 거리며 이곳을 날아다니는 반딧불과 오염수로 뛰어들어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건더기를 물고 사라지는 쥐들. 그런 쥐들보다 좀 더 커 보이는 거대한 거미가 쥐들을 기습해서 잡아먹는 모습과 반대로 쥐들에게 처참하게 물어뜯겨 사지가 절단되는 거미.
수많은 장면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나에게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이런 녀석들 때문에 표지안이 이렇게 된 건 아닐텐데...
생각보다 너무 별거 없는 광경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찌찌찌찌찌이이익!!!!
쥐들이 단체로 울부짖으며 재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은...? 조금 전의 상황과 상당히 비슷하다.
이 장면에서 무언가 실마리가 잡힐 것 같았다.
그렇게 쥐들이 한참을 울부짖으며 벽틈 속으로, 물속으로, 오염수 배수구 쪽으로 몸을 숨긴 순간.
미처 숨지 못한 통통한 쥐 한 마리 앞으로 무언가가 아주 빠르게 달려온다.
"............!!!!!"
.....저, 저건....!!! ........바, 바퀴벌레...?
분명, 바퀴벌레가 맞았으나 뭔가 이상했다.
바퀴벌레의 모습을 한 그 녀석은 크기가 2m는 되어 보였고, 마치, 인간처럼 두 다리를 이용해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4개의 다리를 이용해 쥐새끼를 낚아채 자신의 입으로 들이밀었다.
찌익!! 찍!! 찌이...
그리고는 가장 연한 쥐의 복부부터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이족보행을 할 뿐이지, 사람과 비슷한 구석은 전혀 없었다.
.......세, 세상에…. 이족보행을 하는 바퀴벌레라니…….
온몸에서 우수수 돋아나는 소름을 느끼며 다급하게 【사이코메트리】를 중지했다.
나의 정신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그 순간.
숨이 탁 막히는듯한 느낌이 내 몸을 덮쳐온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숨을 멈추고서 떨리는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하기 전까지만 해도, 온통 칠흑 같은 검은색의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지금은.. 마치 열화상 카메라에 나오는 무언가처럼 나의 눈앞이 주황, 빨강, 녹색, 파란색 등이 섞여 만들어내는 화려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화려한 색들은 하나의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봤던 이족보행을 하는 바퀴벌레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바, 바퀴벌레....
내가 놀란 이유는, 단순히 이족보행을 하는 바퀴벌레를 봤기 때문이 아니었다.
피트기관으로 바라본 나의 시야에는 우리가 몸을 숨기고 있는 오염수를 제외하고는 온통 알록달록한 화려한 색상들을 뒤집어쓴 바퀴벌레들이 셀 수도 없이 사방에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지하는 인간의 것이 아닌 바퀴벌레의 것이라고 했던가, 아니 어쩌면 진정한 세계의 주인은 바퀴벌레일지도 몰랐다.
고대에서부터 살아남은 이 끈질긴 생명력만큼은 인정해줘야 하는 존재.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녀석들의 숫자에 절로 몸에 힘이 풀렸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여전히 칠흑밖에 보이지 않는 다른 녀석들이 슬슬 이 오염수를 빠져나가고 싶은지, 몸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
.....미, 미친!!
한 명이 공격을 당하는 순간.
비명을 들은 바퀴벌레들이 달려들면 모두가 전멸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
......해 본 적은 없지만....지금 그딴 걸 따질 때가 아니잖아.
【.....우, 움직이지 마!!! 아무런 소리도 내지 마!!】
나의 뒤로 늘어서 있는 녀석들을 전부 【텔레파시】의 채널에 추가하고선 전음을 내뱉었다.
머릿속에서 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움찔하는 녀석들.
【제, 제발 !! 움직이지 마!!! 조용…. 조용해야 해....지금 녀석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어.】
【대, 대장...녀, 녀석들이라니...도대체 누가...? 지금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크기가 2m는 되어 보이는 바퀴벌레야. 그것도 이족보행을 하며 걸어 다니는....셀 수도 없이 많은 숫자가 지금 천장과 벽, 지면 등등 할 것 없이 우리 주변에 넓게 퍼져있어.】
그런 나의 말이 상상력을 자극 했을까, 한 여 훈련생이 "으읍…."하고 짧게 앓는 소리를 낸다.
그 순간.
스스스스스슷.
자신의 더듬이를 주둥이로 핥으며 정리를 하던 한 바퀴벌레 녀석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그 여 훈련생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물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그곳에 더듬이를 쭈욱 뻗은 채, 그 뾰족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 여 훈련생이 있는 곳과 가까워지는 바퀴벌레의 머리.
【....아까 소리냈던 여자. 너...너...숨도 쉬지 말고 있어. 아주 천천히 물속으로 잠수해. 절대...절대 소리를 내선 안 돼.】
그러자 그 여 훈련생이 어깨를 흠칫하며 살짝 떨더니, 곧 고개를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얼굴을 물속으로 담그기 시작한다.
바퀴벌레 녀석은 눈앞에 그녀를 두고서도 찾지를 못했는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다시 몸을 일으켜 두 다리로 서기 시작하던 찰나.
찌익!! 찍!!!
웬 쥐새끼 한 마리가 튀어나오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런...미친 쥐새끼...!!!
스스스스스슷!!!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며 쥐새끼의 소리가 났던 방향을 향해 그 가시 같은 톱날이 잔뜩 붙어있는 4개의 다리를 물속으로 푸욱 찔러넣는 바퀴벌레.
푸우우욱!!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 내지 마!!!!】
본능적으로 나머지 녀석들에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물속에 4개의 다리를 찔러놓은 녀석이 천천히 다리를 들어 올리기 시작하자, 그 4개의 다리에 몸과 머리가 꿰뚫린 여 훈련생이 추욱 늘어진 꼬치처럼 물 밖으로 꺼내진다.
이기적인 생각이었지만, 바퀴벌레의 다리가 그녀의 두개골을 뚫고 뇌를 직접적으로 공격했기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버린 여 훈련생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만약, 그녀가 비명이라도 질렀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지옥도가 펼쳐졌을 것이다.
꼬챙이에 꿰어놓은 고기처럼 추욱 늘어진 채, 물 밖으로 꺼내진 여 훈련생이 바닥에 떨어지자 녀석들의 만찬이 시작되었다.
더욱 무서운 건, 녀석들은 너무나 조용했다.
보통 몬스터라면, 몬스터다운 괴성을 내던가 할 텐데, 녀석들은 발성 기관이 없는 것인지, 그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 뾰족한 주둥이를 이용해 여훈련생의 제복과 함께 연한 살을 뜯어 먹을 뿐.
콰드득. 콰득!!
찌이이잊!!
살이 찢기는 소리와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실시간 라이브로 들으며 오염수에서 몸을 덜덜 떨고 있는 녀석들을 보니, 마지막에 트롤짓을 했던 이지원이란 놈이 생각이 났다.
......씨발새끼....만약에...내가 이곳을 빠져나가면……. 넌 뒤졌어. 이 개새끼야...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포감을 밀어내기 위해 녀석을 떠올리며 이빨을 갈고 있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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