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인 아카데미의 NTL 왕이 되다-50화 (50/102)

〈 50화 〉 49화. 옐로우 게이트.(19)

* * *

며칠 동안 죽음을 정면에서 받아치며 싸워온 전우들이 한순간에 등 뒤에 칼을 숨기며 다가오는 적군으로 전락해버린 상황이었다.

........아...씨발....네들이 자꾸 그러면...그땐 나도 진짜 깡패가 되는 거야...이 새끼들아.

나는 왼손으로 한시아의 오른손을 붙잡았고, 나의 오른손을 천천히 움직이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의 오른손을 주시하며 눈알을 굴리는 모습에 D 구역을 제외한 세 구역의 생존자들에게도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메리의 특별한 제안은 D 구역의 생존자들에게 보인 것이 아니었다.

팔이 안쪽으로 굽듯이, 자신들의 훈련생, 후배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살아남길 바라는 게 그들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사이비님..저희는 어떻게 해야....】

한시아였다.

【....상황을 지켜보긴 할 테지만, 여차하면....알지...?】

입술을 질끈 깨무는 한시아.

서로를 향한 불신의 눈빛이 서로의 양심을 찌르고 소리와 형체 없는 칼들이 날아다니던 순간.

­ 고오오오오...!!

매우 강렬한 3개의 기운이 모든 것을 억누르며 순식간에 모든 것을 정리한다.

......이 기운은...? 한강진 이사장님..?

이전에 이사장실에서 한 번 맛보았던 한강진의 기운과 그와 대등한 2개의 기운.

추측하건대, 블루문과 골드문의 이사장이 아닐까 싶었다.

"........그만!!"

어수선하던 이곳의 분위기를 깔끔하게 정리한 3명이 메리에게 다가서며 주위의 훈련생들을 바라본다.

"그만!!" 이라는 단 한 마디의 여파는 상당히 컸다.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조용히 입을 닫고서 그 셋을 바라보고만 있다.

"이, 이사장님!!!"

"이사장님" 이란 말이 블루문과 골드문의 교수들 사이에서 나오는 거로 보아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곧 세 이사장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메리를 바라본다.

블루문의 이사장인 김현철이 가장 먼저 입을 연다.

"다른 구역에서 D 구역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아예 없는 건가?"

­ 그렇습니다.

아주 짧은 대답.

김현철이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고, 그 뒤를 이어 골드문의 이사장인 신지헌이 묻는다.

"만약에, D 구역의 최소 탐사 인원인 100명을 남겨뒀다 가정했을 때, 그 100명의 인원이 이곳에서 대기를 하고 있어도 되는가? 나머지 세 구역의 생존자들이 이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전까지 말일세."

신지헌의 물음에 D 구역의 생존자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마, 맞아...!! 이곳은 안전지역이니까, D 구역을 탐사할 100명의 인원들은 한무 대기를 하면..."

기쁨과 희망에 가득찬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곧 그 목소리는 메리의 무감정한 말 한마디에 싹둑 잘려버린다.

­ 불가합니다. 이 안전지역 하르멜은 정확히 10일 뒤에 소멸하게 되며, 이곳에 있는 생존자들은 모두 탐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에 남는다면, 하르멜과 함께 육신이 소멸하게 됩니다.

"아.....아아...."

곳곳에서 무거운 탄식이 들려온다.

그 탄식을 뚫고서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는 레드문의 이사장, 한강진.

"그럼, 남겨진 100명의 D 구역 탐사 인원들이 모두 전멸하게 됐을 시, D 구역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머지 세 구역에서 또다시 100명의 인원을 보충해서 D 구역으로 보내야 하는가?"

한강진의 날카로운 질문에 A, B, C 구역의 훈련생들이 얼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지만 그 긴장감과 걱정은 괜한 우려였는지, 메리의 입에서 제법 솔깃한 얘기가 들려온다.

­ 아닙니다. 만약, D 구역의 탐사 인원들이 모두 전멸하게 됐을 시, D 구역은 저절로 폐쇄가 되며 더는 진입이 불가한 출입금지구역으로 설정됩니다. 다만, A, B, C 구역의 난이도가 조금은 상승하게 됩니다.

"흐음....."

한강진의 침음이 낮게 깔린다.

D 구역의 인원을 보충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소식이 있었지만, 그건 단지 불행 중 다행이었을 뿐.

기본적으로 불행에 속하는 상황이 깔려있었다.

­ 올데스 하라마만타님께서 제게 내린 명령은 전부 이행했습니다. 만약, 궁금하신 게 있다면 안전지역의 중심에 있는 커다란 분수대에서 저의 이름을 부르시면 됩니다. 또한, 현재 이동 희망자의 숫자는 분수대 옆에 있는 커다란 시계탑에 표시됩니다. 부디 생존자분들의 무사를 기원하겠습니다.

더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오는 이가 없자, 깔끔하게 빠져주며 생존자들끼리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메리였다.

그렇게 메리가 사라져버리자, 잠시간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지만, 곧 서로 친분이 있는 교수들과 선배들이 D 구역의 생존자들을 향해 따뜻한 말을 건네오자 금세 훈훈해지는 분위기로 변해간다.

한강진 역시 딱딱하게 굳어있던 얼굴을 피고서 내 옆에 있는 한시아를 향해 팔을 벌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한시아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는 왼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한강진에게로 밀었고, 한시아는 울먹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강진을 향해 다가간다.

......하아....우선은 10일간은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는데.....

작은 한숨을 내쉬며 한강진을 껴안고서 눈물을 흘리는 한시아를 바라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어.

【텔레파시】 채널에 한강진을 연결시킨다.

그러자, 한강진이 놀란 눈으로 한시아를 바라보았고, 이내 눈물을 글썽거리며 한시아를 강하게 껴안는다.

"이, 이 목소리는....설마....!!"

평생을 살면서 처음 듣게 된 손녀의 목소리에 복받쳐 올라오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 한강진이다.

곧, 한시아의 【텔레파시】 사용법에 대해 들은 한강진이 【텔레파시】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둘의 대화가 내 머릿속에서 들려왔지만, 나는 그 둘에게서 신경을 껐다.

한시아의 말에 한강진이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눈을 빛내었지만, 애써 모른 척 고개를 돌려 오소리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생각보다 길어지는 상황에 누군가가 작은 헛기침을 내자, 세 아카데미의 이사장인 한강진, 김현철, 신지헌이 교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모든 훈련생들을 통솔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교수님들의 지시 아래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자, 아주 삐까뻔쩍하고 으리으리한 최고급 호텔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주변의 얘기를 주워들은 바로는, D 구역의 생존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의 생존자들은 이곳에 도착한 지 며칠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A 구역의 생존자들.

그들은 이곳에 도착한 지, 5일 정도가 됐다고 했으니, 이 안전지역 하르멜은 총 15일이라는 생존시간을 생존자들에게 주었다는 말이다.

첫 팀이 도착하고 나서 15일이란 생존시간을 주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팀의 생존자가 도착해야 10일이란 생존시간을 주는 것일까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10일이란 안전한 시간을 보장받았기에 지금 당장은 얼른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D 구역의 생존자들이었다.

생존자들이 머물게 될 이곳은 총 5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물이었는데, 1층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식당과 넓은 로비가 있었고, 2층은 레드문, 3층은 블루문, 4층은 골드문이, 5층은 각종 편의시설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이석훈의 미소를 바라보며 그의 지시에 따라 2층에 있는 한 호실로 들어선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252호였는데, 혼자서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252호를 배정받은 훈련생은 총 4명.

A 클래스의 김민철, B 클래스의 오소리, C 클래스의 지현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D 클래스의 나, 사이비였다.

방 안으로 들어온 넷은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채,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석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1시간 뒤에 식사준비가 끝나니까, 시간에 맞춰서 1층으로 내려오도록."

무뚝뚝한 음성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신입생들을 다시 만나게 된 기쁨을 미처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문이 살짝 닫히는 소리가 나며 이석훈이 빠져나가자, 어색한 기류가 방 안에서 흐르기 시작한다.

C 클래스의 지현우를 제외하고선, 모두 일면식이 있는 룸메이트였다.

이 옐로우 게이트에서 제법 끈끈한 관계가 되어가고 있는 오소리, 먹이사슬 정립 때 마찰을 빚었던 한설화의 추종자인 김민철은 이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쯧."

혀를 차며 고개를 홱 돌리는 김민철.

【대, 대장이랑 김민철은 사이가 안 좋은...게 맞지? 저번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힐끔 눈치를 보며 묻는 오소리.

【뭐, 나는 아무런 감정도 없지만, 녀석은 아닌 것 같네. 그래도 전보다는 나아.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만 보면 이를 드러냈으니까 말이야.】

실제로, 아카데미에서 오고 가며 몇 번 마주칠 때마다 김민철은 표정을 와락 구기며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는데, 어째선지 지금은 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서의 내 모습이 그렇게 임팩트가 강했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뭐, 그래봤자....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건 똑같겠지만.

그때.

"어...그러니까, 내 소개를 해야지? 상황을 보니까, 서로 알고 있는 눈치인데...나는 C 클래스의 지현우야. 잘 부탁해."

아주 가느다란 실눈을 하고 있는 지현우였다.

일명,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실눈캐와 상당히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어, 어. 반가워. 나는 B 클래스 오소리야."

대표로 오소리가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고, 오소리의 손을 마주 잡은 지현우가 빙긋 웃는다.

그 날 저녁.

식사를 마친 모든 생존자들이 거대하고 넓은 1층 로비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세 아카데미의 이사장들과 몇몇 교수들이 서 있었는데, 이곳에 모인 이유를 모두가 눈치를 채고 있는 만큼 꽤나 엄숙한 분위기가 1층 로비를 물들이고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이곳에 모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이석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금부터 저희는 라이프 게임에 대한 회의를 시작할 것입니다. 모두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인 만큼 모든 과정은 투명하게 보여줄 것이며 이 회의에서는 나이와 지위 등등을 모두 떨쳐내고 인간 대 인간으로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의 목숨이 한두 개가 걸린 일이 아니었기에, 신중을 기해야 했고 모든 것들이 투명해야 한다.

이석훈의 말에 그를 바라보는 수많은 생존자들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또한, 이 회의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지켜보고 있음을 명심해주십시오. 자랑은 아니지만, 저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을 모르시는 분은 없겠지요?"

이석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말하자, 조그마한 웃음꽃이 생존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컨트롤 타워.

이석훈의 이명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 말은 지금 이 상황을 전 세계에 있는 최소 몇백만에서 최대 몇억에 이르는 인류가 이 상황을 지켜본다는 말이었기에, 경솔하게 말을 내뱉는 이들은 웬만하면 없을 거란 얘기였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기에, 어떤 돌발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이석훈이 미리 밑밥을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나였다.

....확실히, 우리나라는 관음의 민족이다 보니까...남들 눈치를 엄청나게 신경을 쓰긴 하지만....과연 그것만으로 이기심을 막아낼 수 있을까..

"그럼, 먼저 골드문 아카데미의 신지헌 이사장님이 먼저 의견제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고서, 슬그머니 물러나는 이석훈과 한 걸음을 내디디고서 생존자들을 바라보는 신지헌.

큼! 큼! 하며 목을 다듬던 신지헌은 이내 마력을 끌어올리며 입을 열기 시작한다.

"모두 식사는 잘하셨는지요. 흠흠. 긴말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신지헌이 말의 끝나자, D 구역의 생존자들에게서 커다란 파문이 일어나며 순식간에 소란스러운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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